(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서찰을 받아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서출지 여행


경주 남산 동쪽에는 특별난 이력의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이라 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연못보다는 조금 큰 못이라 생각됩니다. 

이곳에 정자를 지어 놓고 세상 시름을 잊으며 지냈을 분을 생각하니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뒤로는 경주를 대표하는 남산이 드리우고 앞에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은 토함산을 정원 삼아 그 가운데 연못에 정자을 세운 이요당은 사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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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돌을 쌓아 정자의 턱을 받쳤으며 나머지는 연못에 몸을 맡기며 즐거움을 노래했을 이요당은 1664년 조선 현종 5년에 임적(1612~1672)이 지었던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3칸 규모였다고 하나 5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치며 앞면 4칸에 옆면 2칸으로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팔작기와지붕에 건물은 ‘ㄱ’자 형태입니다.

 


임적은 평소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 마을에서 덕망이 높았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어 농작물이 바싹 말라 농민이 애를 태웠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선생은 직접 땅밑에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내어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마을에까지 물을 공급하여 사용하게 했습니다. 

서출지 정자의 편액은 물과 산을 즐긴다는 ‘요산요수’의 뜻을 취해 ‘이요당’이 되었습니다.





이요당을 품은 서출지는 신라 시대 때부터 있었으며 전설이 있습니다.

488년 신라 21대 소지왕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소지왕은 궁궐을 나왔다가 남산 아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난데없이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습니다. 

쥐는 소지왕에게 까마귀가 날아가는 쪽을 가르키며 따라가라고 일렀습니다.


 


소지왕은 신하를 보내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신하가 서출지 부근에 이르자 멧돼지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정신이 팔려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면서 소지왕에게 전해주라고 당부했습니다. 

신하는 괴이하게 생각하여 소지왕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봉투 겉면에는 “봉투를 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만약에 보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는 글이 있어 고민하다가 두 명이 죽는 거보다는 한명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봉투를 뜯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보고는 “두 명은 백성을 말하며 한 명은 임금을 뜻한다며 봉투를 뜯을 것을 아뢰었습니다.


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소지왕이 봉투를 뜯었더니 안에는 ‘사금갑(射射匣)’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며 소지왕은 궁궐로 돌아와 활을 당겨 화살을 거문고 통에 쏘았습니다. 

그때 거문고 통 안에서 비명이 났습니다. 

통 안을 보니 궁녀와 승려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잡아 참형시키고 그일이 있은 후 서찰을 받아 임금의 목숨을 구했다는 뜻인 서출지(書出池)라 불렀습니다. 

서출지 사적 제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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