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강의 금시당 백곡재 여행. 밀양 금시당 백곡재

 

방가방가

이번 밀양 여행은

밀양강변에 있는

금시당입니다.

 

밀양 금시당 백곡재 주소:경남 밀양시 활성동 582-1

2018.05.14 - [여행] - (경남여행/밀양여행)삼성 갤럭시 노트5로 담은 밀양위양지. 5월 이팝나무와 위양지 반영

 

(경남여행/밀양여행)삼성 갤럭시 노트5로 담은 밀양위양지. 5월 이팝나무와 위양지 반영

(경남밀양여행)삼성 갤럭시 노트5로 담은 밀양 위양지. 5월 이팝나무와 위양지 반영   5월의 경남 밀양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 또는 밀양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하라면 밀양 위양지를 이야기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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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당은

조선시대 문신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의

별서입니다.

이광진이

말년에 낙향해

제자을 교육시키는

건물로 지었습니다.

백곡재

이광진 선생은

1546년인 명종 1년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중종·인종 실록

편찬에 관여했으며

벼슬은 좌부승지에 올랐습니다.

 

금시당(今是堂)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인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에서 따왔습니다.

2017.11.29 - [여행]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갤럭시 노트 5로 찍은 밀양 위양지 가을 정취. 밀양 이팝나무 위양지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갤럭시 노트 5로 찍은 밀양 위양지 가을 정취. 밀양 이팝나무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갤럭시 노트 5로 찍은 밀양 위양지 가을 정취. 밀양 이팝나무 위양지 밀양 위양지(位良池) 밀양 부북면 위양지에서 마지막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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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당은

임진왜란에 불탔다가

그의 5대손인

백곡 이지운 선생이 복원했습니다.

백송 뒤로 금시당과 오른쪽에 백곡재 건물

 

 

금시당

 

백곡재(栢谷齋)는

백곡 이지운을 추모하여

1860년 철종 11년에

세운 건물입니다.

가까이서 본 금시당

 

2016.12.15 - [여행] - (밀양여행)김종직 생가 추원재와 김종직의 묘, 호랑이 무덤 여행.

 

(밀양여행)김종직 생가 추원재와 김종직의 묘, 호랑이 무덤 여행.

(밀양여행/밀양가볼만한곳)김종직 생가 추원재와 김종직의 묘, 호랑이 무덤 여행. 밀양여행을 하면서 김종직의 생가 추원재 여행을 했습니다. 추원재는 김종직의 생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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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매와 백곡재

 

금시당은

이광진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보호수인 은행나무와

금시매로 불리는 매화나무,

백송이 있습니다.

 

2019.04.27 - [여행] - (경북여행/경산여행)버드나무의 반영이 아름다운 반곡지 여행. 경산 반곡지

 

(경북여행/경산여행)버드나무의 반영이 아름다운 반곡지 여행. 경산 반곡지

(경북여행/경산여행)버드나무의 반영이 아름다운 반곡지 여행. 경산 반곡지 지난 목욜 영천 쪽으로 갈 일이 있어 무작정 경산 반곡지를 경유하여 가기로 하고 출발했습니다. 일기예보에 저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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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버드나무의  반영이 아름다운 반곡지 여행. 경산 반곡지


지난 목욜 영천 쪽으로 갈 일이 있어 무작정 경산 반곡지를 경유하여 가기로 하고 출발했습니다. 

일기예보에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지만,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잿빛으로 뒤덮였습니다.




경산 반곡지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2018/04/23 - [여행] - (영천·경산·청도여행)영천 구지리, 경산 반곡지, 청도 유등리 복사꽃마을 삼색 여행


밀양을 통과하는데 차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혀 벌써 비가 시작되었나 걱정하였으나 다행히도 경산의 반곡지에는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반곡지와 함께 꼭 찾는다는 신선 꽃인 도화는 벌써 자취를 감추고 없었습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10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성현의 말씀처럼 기대는 하지 않고 왔지만 그래도 도화가 우리를 맞이했다면 아쉬운 날씨 속에 조금은 더 위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반곡지의 반영은 그 자체로도 익히 진사님들에게 알려져 많이 찾는 곳입니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무작정 출발했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날씨가 흐려 있어 그래도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반곡지는 2011년 문체부에서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지정했을 정도로 제방에 늘어선 300년 된 버드나무는 한마디로 일품입니다.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담은 듯 뒤틀린 가지는 축 늘어져 수면에 닿을 듯이 자세를 낮추고 반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반곡지는 물결이 잔잔할 때 수면에 그려내는 반영은 그 어떤 수식어도 무색할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입니다. 

작년에 찾았을 때는 연녹색의 잎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는 조금 더 짙은 초록색의 물감이 가지마다 뿌려져 있어서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초록색 물감이 반곡지에 뚝뚝 떨어져 물속에 잠긴 버드나무의 반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게 내년을 또다시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울산여행/울주여행)600살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은행나무 여행, 울산 울주군 구량리 은행나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에는 영남알프스 고헌산을 받치고 있는 큰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구량리 은행나무라 불리는데 그 규모가 실로 대단합니다. 

600살이라는 연륜이 은행나무의 모습에서 그대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구량리 은행나무는 익재 이재현의 4대손인 이지대 선생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면서 내려올 때 함께 은행나무를 가져와 연못가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구량리 은행나무의 모습은 가정집도 연못도 모두 사라지고 주위에 논 한가운데 자리한 모습입니다.

 


구량리 은행나무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860




2019/04/17 - [여행] - (울산여행/언양여행)선사시대 고인돌 언양지석묘 여행. 언양지석묘

2018/11/12 - [맛집] - (울산맛집/진하맛집)명선도맛집 진하해수욕장맛집 강양항맛집 고향해물횟집. 고향해물횟집

2018/05/24 - [여행] - (울산여행/장생포여행)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 전시장과 고래빵, 고래아이스크림 맛보기

2018/05/15 - [여행] - (울산여행)울산대공원과 울산시립도서관 여행.

2017/04/22 - [여행] - (울산여행)울주 반구대암각화. 봄에 좋은 여행지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2017/04/12 - [여행] - (울산여행)울주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 청동기시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을 만나다.

2017/03/30 - [여행] - (울산여행)영남알프스 작천정계곡. 하얀 암반과 함께 운치있는 작천정계곡과 누각



지금도 은행나무 아래로는 물이 솟고 있는데 마을의 공동 우물터였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지대선생이 1394년(조선 태조3년)에 경상도 수군만호로 재직하였을 때 왜군의 배를 나포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관직이 올라 벼슬이 한성판윤에 이르렀습니다.






1452년에 단종이 즉위하고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왕보인 등을 주살하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내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해지다 선생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을 내어놓고 내려오면서 함께 가져온 은행나무입니다.

 


지금 구량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대략 되짚어 보면 600살쯤이며 높이는 22m에 가슴둘레가 12m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 떼 구량리 은행나무는 큰 가지가 찢어지면서 큰 생채기를 겪어 현재에는 지지대에 의지한 모습입니다.






한여름에 초록색의 은행잎이 나무를 에워싸면 수관의 규모가 대단했을 듯합니다. 

마을의 정자나무로 한몫 단단히 했을 듯싶습니다. 




세월의 흐름만큼 구량리 은행나무에는 숱한 전설이 있는데 누가 은행나무에 해를 입히면 당사자는 꼭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며 아들을 못낳는 부인이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꼭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은행나무입니다.





천전리 각석이나 반구대 암각화를 여행할 때 함께 찾아보세요.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64호에 지정


(울산여행/언양여행)선사시대 고인돌 언양지석묘 여행.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에는 영남에 가장 큰 고인돌이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개발되지 않아 지석묘가 상당히 큰 규모라 눈에 확 들어왔는데 이제 아파트 등 주위 개발로 인해 언양지석묘는 규모가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언양지석묘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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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도착해서 안내판이나 찾지 않는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지석묘는 고인돌이라 부르는데 선사시대인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입니다. 

언양지석묘의 크기가 대단해서 언양에 상당한 지배력을 가진 권력가의 무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언양지석묘




지석묘는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분류되며 북방식은 우리들이 보통 알고 있는 4개의 받침돌 위에 평평한 너른 돌을 올린 형태로 흔히 탁자식이라 합니다. 

남방식은 땅을 파서 돌구덩이 방을 만들고 그 위에다 작은 돌로 받침대를 공구어 돌로 뚜껑을 덮은 방식이며 바둑판식이라고도 불립니다.






언양지석묘는 남방식인 땅을 파낸 뒤 돌구덩이를 만들어 그 위에 돌 뚜껑을 덮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울산지역은 언양 지석묘 이외에는 바둑판의 돌 받침이 없는 개석식의 지석묘가 대부분이라 합니다.

 





영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석묘인 언양지석묘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숭배의 대상에 용바위라 불렀습니다. 

지석묘의 크기는 길이가 850㎝ 너비는 530㎝, 받침돌의 크기는 280㎝~310인 매우 규모가 큰 지석묘입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여행하기.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


경주 감은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감은사지는 동해구인 대종천을 거슬러 오르는 곳에 있습니다. 

감은사지는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대왕께서 바다 건너 왜구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경주 감은사지삼층석탑 문의 전화:054-772-3843




2018/07/01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배동 삼릉. 신라왕릉 경주 배동 삼릉과 삼릉숲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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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무대왕이 승하하면서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이 죽으며 동해안의 대왕암에 장사를 지내라고 말입니다. 

죽어서라도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는 호국용이 되겠다면서 말입니다. 



당시 남해안과 동해안에 왜구의 노략질이 잦아 정말 골치가 아주 아팠던 모양입니다.

이를 부처님의 원력으로 물리치려고 문무왕은 생전에 감은사를 짓게 했습니다.

 




문무왕은 절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으며 그의 아들인 신문왕이 유업을 이어받아 절을 완공하였습니다. 

절은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다”는 뜻인 감은사로 명명하였습니다.





현재 감은사지는 부처님의 원력으로 세운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금당 터가 남아 있습니다. 

금당 터는 경주에 많이 남아 있는 신라 금당 터와 아주 다르게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기









금당의 바닥이 뜬 마루 식으로 밑에 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는 문무왕이 화한 동해의 호국용이 대종천을 따라 올라와 이곳 감은사 금당 밑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1959년 감은사지 금당 터 발굴조사를 시작하면서 금당의 바닥구조가 바위를 깎아 마루로 깐 뜻한 구조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문무왕의 전설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국보 112호에 지정됐습니다. 

이 삼층석탑은 682년 신문왕 2년에 창건된 감은사의 석탑으로 창건연대가 확인되는 석탑으로는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탑의 높이는 13.4m이며 이중기단에다 몸돌을 올렸습니다.



하나의 큰 돌로 만든 석탑이 아니라 초창기 석탑의 특징인 여러 개의 돌로 조립하여 만들었습니다. 

지붕돌의 처마 밑은 5단의 층급받침에 지붕돌 위의 곡면에서 우리나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0년까지 금당 터와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을 해체 복원하였으며 1996년에는 감은사지 동 삼층석탑도 해체복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해체복원하는 동·서탑에서 금동제 사리함과 사리가 들었던 수정 사리병이 함께 나왔습니다.


(부산여행/중구여행)부산근대역사를 한눈에 부산근대역사관 관람


부산근대역사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은 부산 미문화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1982년 3월 18일 일어난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났던 건물이지만 부산의 근대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24-2

부산근대역사관 전화:051-253-3845



부산근대역사관 관람안내

부산근대역사관 관람시간:09:00~18:00

부산근대역사관 휴관일:1월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그다음날 휴무)

부산근대역사관 관람료 무료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건물 이였습니다. 

1929년 건립되었으며 당시로써는 부산에서 가장 혁신적인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철근콘크리트에 서구 양식이 들어간 외형의 건물은 품격있는 건물로 현재 몇 남지 않은 건물 중 한 곳입니다.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에 지정.



























일제의 경제 수탈 선봉에 섰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부산에 들어온 미군의 숙소로 이용되었습니다. 

1949년에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가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1999년 반환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산의 근대 역사관에서 부산 역사 알아보기




















부산근대역사관은 1900년 전후의 암울했던 우리 부산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와 함께 부산 중구에는 근대의 건축물이 건물의 노후와 역사 세우기로 대부분 헐렸지만 40계단과 영도다리 등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부산의 역사를 이곳 부산 근대역사관에서 알아보세요. 관람은 무료입니다.

 



(제주여행)제주 용눈이오름 여행. 제주 오름 전망대 용눈이 오름


제주도는 한라산의 백록담과 함께 387개의 오름으로 이루어진 섬입니다. 

개수를 보면 하루에 한곳씩 열심히 올라도 1년 365일에 한 달을 더해야만 제주 오름을 다 오를 수 있습니다.




제주 용눈이 오름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38

제주 용눈이 오름 주차장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4650




2018/08/01 - [여행] - (제주여행)폭염도 두렵지 않은 제주도 삼나무 숲인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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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 [여행] - (제주여행)선녀와 나무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60~70년대 풍경을 추억 태마 공원 선녀와 나무꾼에서 되살리다. 선녀와 나무꾼

2016/09/27 - [여행] - (제주여행)섭지코지. 제주여행 초보라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 동화속의 궁전 같은 섭지코지. 섭지코지



그 많은 오름 중에 이번에는 용눈이오름을 올랐습니다. 

자꾸 애니메이션 왕눈이와 착각을 해서 왕눈이 오름 왕눈이 오름이 입안에서 맴돌았습니다. 

 용눈이오름은 초지로 이루어져 오름 주위로 나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이는 목장 터 였기 때문입니다.

 

용눈이오름 표지석


용눈이 오름 입구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U가 산길



그 덕택에 용눈이 오름에 올라서는 내내 조망은 360도 끝내주고 절경 또한 최고였습니다. 

가까이에는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과 작다는 뜻인 아끈다랑쉬오름, 손지오름, 멀리 특이한 모습을 한 성산 일출봉도 보이는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용눈이 오름 굼부리 전경 세번의 폭발이 있었음을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용눈이오름을 걸으면서 할미꽃이 정말 많았습니다.

겨 이삭, 개민들레, 잔디, 제비꽃 등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철까지 온갖 야생화로 산상의 화원을 이룰 정도로 아름다웠던 용눈이오름입니다.



정면에 누런 억새 오름이 손지오름



용와악(龍臥岳)으로 불리는 용눈이오름은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며 용이 노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용눈이 오름’이 되었다 합니다. 

용눈이 오름의 정상은 248m이며 남북으로 길게 비스듬하게 누운 모습입니다.


저멀리 성산일출봉도 보입니다.



다랑쉬오름이 말귀처럼 쫑긋합니다. 



용눈이는 용논이가 변해서 불린다는 설입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둥글게 봉긋 솟아 경주의 왕릉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서서 보면 분화구를 뜻하는 굼부리가 여러 개 보입니다.



용눈이 오름 고스락

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과 작다는 뜻인 아끈 다랑쉬오름


용눈이 오름 고스락 전망안내도



이를 보면 여러 번 화산폭발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눈이 오름 주차장에서 보면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완만한 사면 아래에도 폭발로 굼부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제주 오름 중에서 손쉽게 오를 수 있으며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용눈이오름 제주 여행에서 한번 만나보세요.


(부산여행/중구여행)독립운동가 백산안희재 선생 백산기념관 관람


부산 중구 동광동에 가면 백산기념관이 있습니다. 

옛 백산상회 터로 백산 안희재 선생의 성품을 닮아서 그런지 꾸밈이 없이 단아한 모습입니다. 

백산기념관은 지상 1층 건물이지만 들어서는 출입구 역할만 하며 전시실은 지하 1층과 2층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부산여행 백산안희재 백산기념관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3가 10-2

부산여행 백산안희재 백산기념관 전화:051-600-4067




2019/04/03 - [여행] - (부산여행)근대건축물 구 한성은행 부산지점 청자빌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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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지하 1층은 백산기념관이며 지하 2층은 제 2전시실 입니다. 

백산기념관을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백산 안희재 선생의 흉상입니다. 

백산 선생은 1885년 음력 8월 4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백산은 호이며 본관은 강진입니다.



선생은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늑약 강제 체결을 보면서 국권 회복을 위해서는 신학문을 통한 자주독립 사상 고취가 급선무임을 깨닫습니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고는 양정의숙 경제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07년에 구명 학교와 의신학교를 설립과 1909년 대동청년당을 결성하였으며 1911년에는 러시아로 망명도 하셨습니다. 

 전시장 내부에는 선생의 출생과 성장부터 선생의 생애를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백산상회의 설립목적과 운영을 보면 1914년에 귀국하여 백산상회를 설립하였고 곡물과 면포, 해산물 등을 취급하는 소규모 점포였습니다.



1918년에 합자회사 백산상회로 개편하였다가 1919년 백산무역 주식회사로 확대했습니다. 

선생은 단순히 물건만 판매하는 백산상회를 운영한 게 아니라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자금 조달과 독립신문 보급의 아지트로 사용했습니다. 

선생은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남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했습니다.

 



동아일보 창립발기인에 참여하고 중외일보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협동조합 운동인자력사를 설립하여 전개했습니다. 

국외에서는 발해농장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기지로 활용하는 등 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습니다. 

광복을 3년 앞둔 1942년 11월 19일 임오교변 때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 이듬해 8월 3일 순국하셨습니다.

 


1970년과 1990년 때의 백산상회 건물은 사진만으로 백산기념관에 남아 있지만, 지금은 옛 백산상회 건물은 찾을 수 없습니다.

현재는 독립운동가 백산안희재 선생의 백산기념관을 건립하여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문무왕의 만파식적을 신문왕이 받았다는 이견대 여행. 경주 이견대 여행


경주 감포읍 대본리 이견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갑자기 손과 발목 골절로 포스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기록 차원에서 하였습니다. 

이견대는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을 한눈에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있는 정자입니다.





경주 이견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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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이견대를 문무왕과 김유신이 보낸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을 받았던 곳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이견대’를 중국의 주역인 ‘비룡재천이견대인(飛龍在天利見大人)’에서 차음해왔다는 기록과 “큰 용이 바다에 있는 것을 보았다”라는 뜻입니다.

 




현재의 이견대 정자는 1970년에 발굴하여 옛 이견대 터로 확인하였습니다. 

신문왕이 문무왕을 생각하며 완공한 이견대는 사라졌지만 1979년에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현재의 정자로 복원했습니다.


저기 암초인 대왕암 보입니다. 



이견대 주위에는 신문왕이 용이 된 부왕의 휴식처로 감은사를 지었습니다. 

감은사지에는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금당 터는 기존의 형태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금당 아래가 비어 있는 뜬 모습을 보여주며 석재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 신문왕과 신라의 국운만을 생각한 문무왕을 만나보세요.


(부산여행)근대건축물 구 한성은행 부산지점 청자빌딩 여행.


부산 중구 동광동의 옛 청자빌딩 건물을 보고 왔습니다. 

청자빌딩은 1920년대에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으로 처음 영업을 했던 건물입니다.





구 주식회사 한성은행 부산지점(청자빌딩)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길 13



2018/04/02 - [여행] - (부산여행/부산지구여행)부산시민공원과 부산시민공원역사관 여행, 부산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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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 [여행] - (부산여행/부산서구여행)부산 최고의 전망대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


 


청자빌딩은 백산기념관 옆의 벽체가 붉은 벽돌 건물입니다. 

기단부는 화강석 석재로 ‘수평 돌림띠’를 두른 건물로 관리가 잘되어서 그런지 품위가 있으며 완전 깔끔한 모습입니다.



적벽돌로 벽체는 ‘길이쌓기’와 ‘마구리 쌓기’를 번갈아 쌓아 올렸으며 일정한 간격으로 벽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청자빌딩의 지붕은 우진각이며 지붕과 벽이 맞닿은 부분에 석제 돌림띠를 둘러 건물의 장식성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청자빌딩의 설계자는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이며 1918년 건립되었습니다. 

46년간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다가 1964년에 팔리면서 새로 인수하여 연와조 2층 건물에서 철근 연와조 3층 건물로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본관 2층과 3층을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자빌딩은 근대건축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10월에 부산시가 매입하여 2016년 6월 1일 근대건조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현재 청자빌딩은 1층에 ‘한성 1918’ 간판이 붙어 있으며 1918년에 처음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재 부산시에서 부산 생활문화센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장항리사지와 장항리 서 오층석탑 여행. 경주 장항리 서 5층석탑


경주 토함산 골짜기에 자리한 장항리사지 장항리 5층 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장항리 5층 석탑은 지난해 한번 보고 왔으나 이번에 또다시 석탑의 몸돌에 조각된 정교한 인왕상이 보고 싶어 다시 찾았습니다.





경주 장항리사지, 경주 장항리서오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1081

국보제236호




2019/03/26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보문사지에 있는 경주 보문사지 석조 여행. 경주 보문사지 석조

2019/03/24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사지를 여행하면서 만난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경주보문사지당간지주

2019/03/20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남아 있는 보문리 사지. 경주 보문동 사지 경주 보문사지 여행

2019/03/15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 여행

2019/03/12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있는제26대 신라 진평왕릉 여행. 진평왕릉

2019/03/06 - [여행] - (경주여행)경주황복사지 발굴 현장도 보고 황복사지삼층석탑을 만나다. 경주구황동삼층석탑


 


지난번 장항리 5층 석탑을 여행하면서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정교한 석탑의 인왕상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금 느끼게 했습니다. 

경주 장항리 5층 석탑은 경주 한수원과 토함산 터널 인근에 있습니다.



깊은 골짜기에 자리해서 그런지 석굴암을 찾아 토함산을 오르는 관광객이거나 아니면 장항리사지의 소문을 듣고 찾는 사람이 전부일 정도로 한적합니다. 

경주 소문난 여러 관광지에 비해서는 한적하여 꼼꼼하게 구경하기에 참 좋습니다.

 


국보에 지정되어서 그런지 장항리사지 건너편에는 주차할 곳도 있어 정말 편리합니다. 

눈에 장항리 5층 석탑이 빤히 보이지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주차장에서 주차하고 협곡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는 장항리사지까지 곧추선 덱 계단이 놓였는데 이게 여간 아니게 힘들었습니다. 

장항리사지에 올라섰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으나 국보를 본다는 생각에 감수해야했습니다. 

이제 한숨 돌렸다면 본격적인 장항리사지 동·서 오층석탑과 좌대를 보도록 합니다.



 


장항리사지에는 온전한 모습인 장항리 서 5층 석탑과 완전히 파괴된 장항리 동 5층 석탑 그리고 불상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가고 좌대만 현재 장항리사지에 남아 있습니다. 

 


장항리사지는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탑과 불상이 안치된 좌대가 온전한 모습으로 토함산을 지키며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늘도 너무나 완벽한 예술품을 시샘했는지 일제강점기인 1923년 도굴범에 의해 장항리 두탑과 불상을 안치한 좌대는 폭파되고 말았습니다. 

도굴범은 주위 광산에서 사용하던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와 폭파했다니 두 탑과 불상에 진귀한 보물이라도 들었나 싶어서라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진귀한 보물은 정작 두 석탑과 불상인데 인간의 헛된 욕심으로 천년 역사가 한 번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장항리사지 좌대 사자상



경주 장항리사지는 절의 명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아 지역의 장항리를 따와 경주 장항리사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안치된 불상은 조각난 부재 이외에 찾지 못한 부재는 경주 남산에서 재질이 같은 석재를 찾아내어 돌을 깎아 접착하여 전시 중입니다.







이 석조불상을 안치한 좌대가 장항리사지에 남아 있습니다. 

좌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익살스러운 사자상입니다. 

장항리 서 5층 석탑은 1932년 주위에 흩어졌던 부재를 모아 복원되었지만, 장항리 동 5층 석탑은 1층의 몸돌과 5개의 지붕돌을 포개어 놓았습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장항리 서 5층 석탑만이라도 온전하게 남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항리 서 5층 석탑은 금당 터에 복원되었으며 2단의 기단에 5층의 탑신을 올려 한눈에 봐도 시원스러웠습니다.



기단부를 넓게 해서 그런지 전체적인 느낌은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 몸돌에는 사면에다 문 형상을 만들고 문을 지키는 한 쌍의 인왕상도 조각해 놓았습니다. 

우락부락하며 근육질의 인왕상은 살아있는 듯 정교했습니다.







그러나 마모된 부분도 있어 많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지붕돌인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에 두께가 얇으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서 날렵하며 경쾌합니다. 

 지붕돌의 아랫면은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으며 상륜부는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습니다.

 






장항리서 오층석탑은 1층 몸돌의 인왕상에서 통일신라 8세기의 특징이 보입니다.



(경남여행/양산여행)울울창창한 숲이 일품인 양산 법기수원지 여행. 양산 법기수원지


지난 연말에 법기수원지 여행을 하고는 다리와 손가락 골절로 포스팅을 미루었던 법기수원지를 이제야 늦었지만, 포스팅을 합니다. 

부산과 인근에 일제강점기에 쌓은 수원지가 3곳 있습니다.





양산 법기수원지 주소:경상남도 동면 법기리 332

양산 법기수원지 전화:055-383-5947

입장료 무료

강아지, 배낭 등 큰 가방과 음식물 반입은 금지




2018/07/06 - [여행] - (경남여행/양산여행)양산 원동 신흥사. 신흥사 대광전 벽화 보물 제1757호

2018/05/31 - [여행] - (경남양산여행)양산 황산공원 캠핑장 인근에서 화려한 꽃양귀비를 만나다.

2018/03/25 - [여행] -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매화축제 순매원. 원동매화축제 순매원 매화 보고 왔어요.




먼저 구덕령에 있는 옛 구덕 수원지, 부산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성지곡의 성지곡수원지와 양산 법기리 법기수원지입니다. 

이들 수원지의 공통점은 모두 일본인 주거지 인근이었으며 일본인들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에 따라 세워졌습니다.

 




법기수원지는 이중 가장 막내로 1927년 착공하여 1932년에 완공된 상수도 시설입니다. 

식수원 근처에는 민간인은 얼씬도 못 하도록 엄하게 관리를 할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는데 1990년대 천성산(당시 원효산) 정상을 올라 법기수원지 오른쪽 능선으로 하산하다가 법기수원지 입구의 검문소에 붙잡혀 엄하게 조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성지곡과 구덕 수원지는 식수원의 기능을 상실하고 위락시설로 바뀌었다면 법기수원지는 오늘날까지도 부산시민에게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법기수원지는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지만 부산시 소유이고 부산 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집수된 물은 모두 범어사 정수장으로 보내어 정수하여 인근의 청룡동 남산동 선두구동과 노포동 일대의 7,000여 가구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법기수원지는 흙을 쌓아 만든 댐인 토언제이며 만수위 때는 해수면 기준 약 197m에 수심은 14.7m, 댐 길이가 260m에 폭은 6m, 높이는 21m입니다.







총저수량 1,507천톤에 하루 8,000㎥+5% 상수원수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법기수원지의 준공과 함께 수원지 보호를 위해 일반인에게는 폐쇄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7월에 둑과 그 아래 울울창창한 숲을 일반인에게 개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법기수원지의 자랑거리는 수원지 입구에 자리한 측백나무와 편백 그리고 30~40m에 달하는 개잎갈나무입니다. 

또한, 둑 위에 자라는 수령이 약 130년 된 7그루의 반송은 칠형제 반송으로 불리며 법기수원지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숲도 울창하고 자연생태계도 그대로 살아있어서 그런지 2004년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새도 발견되었다 합니다. 

법기수원지에서 삼림욕을 겸한 여행을 한 번 해보세요 정신이 맑아지면서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원정윤군생(源淨潤群生) “깨끗한 물은 많은 생명체를 윤택하게 한다”는 뜻이며 일제강점기 법기수원지를 준공하면서 조선총독부를 지냈던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입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보문사지에 있는 경주 보문사지 석조 여행


경주 보문동 마지막 여행지는 경주 보문사지 석조입니다. 

석조는 사찰에서 물을 담는 그릇을 말하는데 요즘으로 보면 물을 담아두는 물탱크라 하겠습니다. 

지금이야 물탱크는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등의 재료로 만드는데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방수입니다.





경주 보문리 사지, 경주 보문사지 석조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8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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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래전에는 물을 담아두는 큰 수조의 재료를 보면 나무나 돌을 사용했습니다. 

나무는 물과 만나면 쉽게 썩는 단점이 있지만, 돌은 내구성과 방수가 완벽하여 사용하였다고 보입니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는 보문사의 창건과 함께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문’이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현재 보문사의 옛터에 당시에 사용하던 수조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경주 보문사지 석조라 부르며 보물 제64호에 지정했습니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는 화강암이 재료입니다. 

길이가 273㎝·너비 90㎝·깊이 61㎝ 크기입니다. 

가로가 긴 직육면체의 모양을 가졌으며 그 안쪽을 조금 작게 정육면체 모양으로 넓고 깊게 파내었습니다.

 



보문사지 석조는 내·외부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느낌은 밋밋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는 물을 담아만 두는 장식으로 사용한 게 아니고 물을 담는 석조로 실제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7㎝ 배출구멍이 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사지를 여행하면서 만난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경주보문사지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를 보고 왔습니다. 

당간은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이는 사찰의 의식이나 행사가 열릴 때 절 입구에 당인 깃발을 깃대에 달았으며 이를 고정하는 받침대를 당간지주라 합니다.







경주 보문리 당간지주,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856-3




2019/03/20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남아 있는 보문리 사지. 경주 보문동 사지 경주 보문사지 여행

2019/03/15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 여행

2019/03/12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있는제26대 신라 진평왕릉 여행. 진평왕릉

2019/03/11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전홍유후설총묘 여행.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 설총묘 여행.

2019/03/06 - [여행] - (경주여행)경주황복사지 발굴 현장도 보고 황복사지삼층석탑을 만나다. 경주구황동삼층석탑

2019/03/04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구황동모전석탑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도림사 절터 구황동모전석탑지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의 높이는 380㎝입니다. 

통일신라 시대 사찰이며 보문사지로 알려지게 된 사유는 보문의 명문이 새겨진 기왓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사유로 경주보문리사지의 경주보문리당간지주로 불리다가 경주 보문사 지당 간지 주라는 바른 이름을 찾게 되었습니다.

 








보문사지 금당 터에서 서남쪽에 제법 많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와 조금 혼동되기 쉽지만, 완전 다른 당간지주입니다.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의 두 기둥의 간격은 62㎝이며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두 돌기둥 중에서 왼쪽 기둥은 윗부분이 잘려 나간 상태이며 오른쪽 돌기둥만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의 두 기둥 안쪽에 마주 보고 당간을 고정하는 3개의 네모난 구멍이 세로로 배열해 뚫렸습니다.




보물 제123호



특이 하게도 왼쪽 기둥은 구멍이 반쯤 뚫렸으며 오른쪽은 구멍이 완전히 뚫려 있습니다. 

기둥 사이에 받침돌은 분실상태이며 가늘고 긴 모습에 안정감이 있는 소박한 모습입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남아 있는 보문리 사지. 경주 보문동사지  경주 보문사지 여행


경주에서 가장 큰 위락시설이 있는 곳을 보문호가 있어 보문단지라 합니다. 

보문단지는 보문리에서 그 이름이 나왔는데 그 보문리의 유래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는 경주의 진산인 낭산과 명활산성이 있는 명활산 사이에 있는 너른 들을 보문들이라하며 그 보문들 가운데에 보문사로 보이는 옛터가 있습니다.





경주 보문리사지. 경주 보문동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848-6




2019/03/15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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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 [여행] - (경주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 경주 남산 배동 비운의 왕 경애왕릉 여행


 


보문리의 명칭이 아마 이곳 보문사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문리에 있는 절터라서 보문리사지로도 불립니다. 

보문사지는 사방이 개간한 논으로 둘러싸여 현재 훼손이 엄청나게 심한 모습입니다.

 


그 보문들 사이의 훼손된 보문사지 사이에서 그래도 용케 금당지와 동서 목탑지의 주춧돌만은 그당시 흔적을 유지하며 남아 있어 신라 천 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보문사지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남아있는 금당의 부재와 건물 배치, 석재 등을 고려해보면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이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보문이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장이 출토되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문사지는 금당 터와 목탑지가 주위의 논보다는 1~1.5m 정도 높습니다. 

이게 원래의 위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논이 들어서다 보니 흙을 깎아내면서 보문사지 금당터보다 현저하게 낮아진 게 아닌지 싶었습니다. 

이를 고려해 보면 보문사가 있었을 당시에는 소나무가 울창한 명활산의 낮은 능선이 흘러내린 구릉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ㅎㅎ

 


금당지에는 건물을 바쳤던 기단석과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금당터 앞인 동·서에는 목탑지가 남아 있습니다. 

동탑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며 서탑지에는 연화문이 새겨진 초석 중앙에 목탑을 지탱했던 구멍이 뚫린 대형 초석이 남아 있습니다.


보문사지 동서목탑지. 연화문이 새겨진 초석은 서탑지





우리나라에서는 목탑은 사실 아주 귀한 문화재입니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이 목탑건물로는 유일하다면 유일합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최근에 복원된 황룡사 9층 목탑과 근래 소실되었다 복원된 쌍봉사 대웅전 등이 목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문사지 목탑도 이들 석탑과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는 작았겠지만 비슷한 형태였을 것 같습니다. 

목탑은 나무로 만들다 보니 화재에 가장 취약합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목탑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웃에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 시대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탔다고 합니다. 

가까이 있다보니 보문사지 목탑도 그때 함께 불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금당지와 마주 보고는 보문사를 훤하게 밝혔을 석등의 받침돌과 옥개석, 초석이 그대로 나뒹굴며 방치되어 있습니다.

 





보문사지 금당지 앞 석등 초석




이외에도 많은 석불과 석등을 바쳤을 좌대와 초석 등이 논두렁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어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보문사지에는 그래도 이름값을 하는 보물 두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 하나가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23호)이며 둘이 경주 보문사지 석조(보물 제64호)입니다. 

따로 포스팅하겠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절 입구에 절을 알리는 깃발을 깃대에 달아 세웠던 두 개의 돌기둥을 말합니다. 

안쪽 면은 평면처리를 했고 나머지 삼면은 아래쪽을 잘록하게 했으며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가늘게 처리했습니다. 

당간을 고정했던 구멍이 상중하로 3개 뚫려 있으며 북쪽의 돌기둥에는 구멍이 반만 나 있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는 절에서 물을 담았던 돌그릇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졌으며 바위 안쪽을 넓고 깊게 사각으로 파내었습니다. 

석조의 내외부에 별다른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랫부분에 물을 빼내었던 배출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물을 담아두었던 용기로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주보문사지는 사적 제39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 여행


이번 경주 보문동 구황동 5번째 여행지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입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라 안내하지만, 입구 이정표에는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로 나와 있어 조금은 헷갈립니다. 




경주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7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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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는 정확하게 당간지주를 세운 절명칭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 그 지역 이름을 앞에다 붙여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라 합니다. 

안내판에는 경주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정확하게 절 이름이 확인되었을 때 그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보면 바로 이웃에 보문사지가 있습니다. 

현재 여러 문화재가 남아 있으며 여기에도 보문사지 당간지주가 보물로 지정해 있습니다. 

그래서 보문사지연화문당간지주로는 약간 의구심이 들며 이정표의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가 정식 명칭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는 보문들 가운데 세워져 있어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정표가 없다면 찾기 힘들 듯합니다. 당간지주는 보통 사찰 입구에다 세워두는데 이는 절에서 행사나 불교의식을 행할 때 부처님이나 보살의 공덕을 기린다거나 악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깃발을 당이라 하며 깃발을 단 깃대가 당간입니다. 



당간지주는 깃대를 고정하는 돌기둥을 말합니다. 

여행을 좋아하여 전국의 많은 당간지주를 찾아서 보았습니다. 

대부분 당간지주는 밋밋한 형태에다 두 개의 돌기둥이 서로 마주 보며 서 있습니다.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한 연꽃무늬를 장식한 게 특징입니다. 

저도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에서 이런 아름다운 당간지주를 처음 만났습니다. 

꼭 떡틀에 섬세하게 새겨진 문양 같습니다.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는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높이는 146㎝인데 이는 아랫부분은 땅속에 파묻혀있어 작아 보이지만 실제는 사람 키보다 훨씬 더 키 큰 모양입니다.

 


일전에도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를 보았습니다. 

그때는 추수가 한창인 가을이었습니다. 

누런 들판에 솟은 당간지주의 모습이 정말 보기가 좋았습니다. 

무채색의 겨울에 찾아본 당간지주도 참 괜찮은 듯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연화문양에 이끼가 끼어 돌이 시커먼 색이었는데 현재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는 당간지주 기둥을 청소했는지 깔끔했습니다. 

두 기둥의 간격은 62㎝이며 당간지주 안쪽 윗부분에 너비 13㎝의 구멍이 있으며 당간을 고정했던 구멍이 보입니다.





그리고 바깥쪽의 윗부분에는 지름이 47㎝인 동근 원안에 팔엽연화문을 조각했으며 화려한 조각솜씨를 뽐냈습니다. 

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는 보문사에서 세웠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있는제26대 신라 진평왕릉 여행. 진평왕릉


이번 경주 보문동 4번째 여행지는 진평 왕릉입니다. 

진평왕은 신라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의 부왕이었습니다. 

현재 진평 왕릉은 남산과 명활산 사이에 만들어진 보문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낭산에는 그의 큰딸인 선덕여왕릉이 있어 서로 부녀의 정을 나누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주 진평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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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릉은 이번 겨울 방문까지 합해 세 번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진평왕릉은 고목에 새싹이 터지는 늦봄부터 찾는 게 좋을듯합니다. 

특히 여름이면 진평왕을 호위하듯 두른 짙은 수림의 노거수로 그야말로 환상의 경관을 연출합니다.



26대 진평왕은 신라의 초대 왕인 박혁거세를 이어 두 번째로 장기집권한 왕입니다. 

579년에 집권하여 632년까지 무려 53년 동안 왕위에 올랐다가 27대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진평왕의 아버지는 동륜 태자입니다.





24대 진흥왕의 장자로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일찍 죽자 그의 동생 금륜이 왕위를 계승하여 25대 진지왕이 되었으며 후에 동륜 태자의 장자인 진평왕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줍니다.



신라에는 불교가 국교로 공인된 게 법흥왕으로 진평왕은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전 가족을 인도 카빌라국의 석가모니 왕실의 이름을 따와 사용했습니다. 

진평왕은 석가모니의 아버지 이름인 ‘백정’이라 했으며 왕비는 석가모니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따와 '마야부인 김씨'라 불렀습니다.



동생도 백반, 국반이라 하였는데 정반왕의 아우들 이름입니다. 

진평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초반에는 할머니의 수렴청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왕권을 잡으면서 먼저 관제 정비를 서두릅니다.



이찬 노리부를 상대등에 임명하고 이찬 후직을 병부령에 임명하여 국정과 군권을 장악해 왕권 강화에 힘써섭니다. 

581년에는 위화부를 설치하여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게 했으며 관제를 정비하고 설치하였습니다.

 






603년에는 고구려가 북한산성으로 쳐들어오자 직접 군사를 일으켜 출격하는 등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분쟁이 심해 잦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를 타계하려고 진평왕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폅니다. 

608년에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원광법사에게 걸사표를 짓게 하여 수양제에게 고구려 정벌을 유도하였습니다.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자 진평왕은 더욱 외교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신라를 수많은 위기로부터 지켜내었으며, 남산산성을 축성과 명활산성 개축 등 서라벌 방어에 전력하였습니다.



진평왕은 632년 죽자 한지에 장사지냈다고 합니다. 

진평왕은 의지가 굳고 현명하고 식견이 있는 군주였나 봅니다. 

당나라 태종은 국서를 보내어 ‘좌광록대부’를 추증하였습니다.

 


진평왕릉을 보면 봉분의 지름은 약 40m이며 높이는 8m로 흙을 쌓아 올린 둥근 형태의 봉분입니다. 

봉분 아래쪽에는 자연석의 호석을 돌렸으며 그중 몇 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적 제180호


(경북여행/경주여행)전홍유후설총묘 여행.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아들 설총묘 여행.


경주 보문동과 구황동을 여행하면서 찾았던 설총묘를 포스팅하겠습니다. 

이 묘의 주인은 전 홍유후 설총묘로 알려졌습니다. 설총은 최치원과 강수와 함께 신라 3문장 가중 한 분입니다. 

설총은 독특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분입니다. 요즘 말로 보면 아주 드라마틱한 출생의 비밀이라 할까요?. 부친은 신라 시대 고승 의상과 쌍벽을 이루는 원효대사이고 모친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친딸인 요석공주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깃거리는 왕족과 평민의 혼인이라고 치부하면 그저 평범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스님입니다. 스님은 결혼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사실인데 공주와 결혼했으니 얼마나 큰 뉴스입니까 ㅎㅎ




경주여행 전홍유후설총묘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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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길을 오릅니다. 

서라벌에서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타려고 찾아가는 길도 만만찮았습니다. 험난한 산과 깊은 계곡을 타고 넘으면서 몸은 파김치가 되었고 기진맥진하여 이들은 어느 동굴을 찾아들었습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곯아떨어졌고 원효는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더듬다가 바가지에 담긴 물이 손에 잡혔습니다. 

목이 말라 급한 김에 벌꺽벌꺽 순식간에 다 비워버렸고 다시금 곯아떨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난밤에 꿀맛이었던 물그릇을 찾았다가 그게 해골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밤새 달콤하게 잠을 잤던 동굴은 무덤 속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든 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초 사상을 깨달았습니다. 

원효는 당나라에 가보았자 별 통수가 없다고 유학을 포기하고 의상만 보내고 자신은 신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민중 속을 파고들며 노래로서 불법을 전합니다.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하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노래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태종무열왕 김춘추만이 “자신에게 여자를 주면 뛰어난 현자를 낳아 나라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라는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김춘추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과부가 되어 다시 궁궐로 돌아와 요석궁에 머물러 있던 딸이 있어 이 둘을 맺어줄 계책을 세우고는 신하를 불러 원효를 궁궐로 모셔오라고 합니다. 

원효는 김춘추가 자신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는 궁궐로 향하다가 요석궁 앞의 개울에 발을 헛디뎌 빠지면서 넘어져 그만 입고 있던 옷이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김춘추는 원효에게 오늘 밤은 요석궁에서 옷을 말리고 내일 만나자는 어명을 내렸고 원효는 옷을 말리려고 요석공주가 있는 요석궁에서 옷만 말리며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김춘추는 원효에게 옷만 말리라 했는데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요석공주는 10개월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분이 신라 10현 중 한 분인 설총입니다. 이로써 원효대사는 파계승을 자처하며 자신을 소성거사라 불렀습니다. 

설총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경북 경산시 원효대사의 고향마을과 가까운 곳에 설총과 요석공주의 전설이 있는 반룡사가 현재 남아있습니다. 

요석공주는 원효의 고향에서 설총을 낳았고 설총과 함께 반룡사에 머물면서 설총을 키웠습니다. 김춘추는 공주와 외손자가 보고 싶을 때는 왕비와 함께 항상 구룡산에 걸린 고개를 넘어 반룡사를 찾았고 지금도 그 고개를 태종무열왕이 넘었던 고개라 하여 왕재라고 부릅니다. 

설총은 성장하면서 총명했나 봅니다. 아버지 원효대사의 노랫말처럼 현자를 낳아 나라를 받치는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닐 정도로 말입니다.




설총은 이두법을 집대성했는데 이는 한자인 음과 훈인 소리를 새겨 우리말식으로 적어 사용했던 문자로서 유교경전도 우리말로 풀이해서 고려 중기까지 사용했습니다. 이두는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전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삼국사기의 설총 열전 편을 보면 외삼촌인 신문왕에게 향락을 멀리하고 도덕을 엄격히 해줄 것을 우화로 엮어서 이야기해줍니다. 이게 한국 최초의 창작 설화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후대에 와서 화왕계로 불렸습니다. 

신문왕은 조카의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있다, 글로 써서 왕 된 이들의 경계로 삼기 바란다“며 후세의 임금에게 이를 본받도록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문왕은 설총을 관직에 발탁시켰습니다. 

설총의 묘는 지름이 15m, 높이가 7m이며 둥글게 흙을 쌓은 형태로 아랫부분에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022년(고려 현종 13년) 홍유후의 시호를 추증받았고 최치원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습니다. 1623년(조선 선조 1년)에 경주 서악서원에 제향 되었습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30호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황복사지 발굴 현장도 보고 황복사지삼층석탑을 만나다. 경주구황동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여러 번 찾았던 곳입니다. 

이번에 또다시 황복사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경주황복사지삼층석탑은(국보 제37호) 이곳 구황동의 이름을 따와서 경주구황동삼층석탑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번 황복사지 여행은 어수선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과 그 주변에 현재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내가 찾게 된 이유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주 황복사지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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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황복사지 여행은 사실 삼층석탑도 삼층석탑이지만 주위에 황복사지 아래에 십이지신상과 귀부인 석재가 남아 있다고 해서 찾았습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때 발굴이 진행되면서 황량하게 바뀌었고 출입 할 수 없도록 줄도 쳐 놓아 삼층석탑 주위에서 맴돌다 먼발치로 그냥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국유사에서 언급하기를 황복사는 의상대사께서 진덕여왕 8년인 654년 출가했다는 곳입니다. 

그게 오늘날 황복사지이며 삼층석탑이 남아 있습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눈으로 처음 만나면 첫인상이 늠름한 기상을 가진 장군을 닮은 듯 듬직해 보입니다.

 


그만큼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데 보는 내내 정말 잘생긴 석탑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692년 7월 2일에 세워졌으며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삼층석탑을 세웠습니다.

 


황복사지삼층석탑은 1300년이 넘은 장구한 세월을 견디어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석탑의 상륜부 대부분은 분실되었습니다. 

석탑은 2단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전체 높이가 7.3m입니다.

 


같은 시기에 세워졌던 고선사지삼층석탑과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비교하면 2m 정도 작은 크기입니다. 

전체적으로 석탑의 규모가 간소하게 바뀌었는데 그 출발점이 황복사지삼층석탑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의 발표로는 이번 황복사지 발굴조사에서 대석단 기단과 십이지신상 기단의 건물지, 지붕이 있는 긴복도인 회랑지도 발견되었으며 연못에서는 금동입불상과 보살입상 7점이 나오고 기타 유물 1,000여점이 출토되었다 합니다.



또한. 조사과정에서 효성왕의 미완성 왕릉과 건물지 등도 확인되는 등 신라 왕실사원의 위엄을 보여주는 대단위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42년 황복사지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함에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 명문이 확인되었습니다.





국보제 79호 금동여래입상과 국보 제80호에 지정된 금제여래좌상이 당시 해체수리과정에서 함께 나왔습니다.

이는 효소왕의 뒤를 이은 아우 성덕왕이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에서 본 황복사지 다음스카이뷰 캡쳐


아래 황복사지 발굴및 출토된 유물사진은 문화재청 보도자료 사진을 캡쳐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구황동모전석탑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도림사 절터 구황동모전석탑지


경주 구황동의 폐사지를 보고 왔습니다. 

지난 번 여행에서도 구황동모전석탑지를 보고 왔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구황동모전석탑지는 경주나들목에서 포항 가는 외곽도로에 있습니다. 

더욱 정확하게 장소를 언급하면 9층 모전석탑이 있는 분황사와 경주 최대의 왕궁사찰인 황룡사지 맞은편 사거리에 보문단지로 꺾는 도로 오른쪽에 있습니다.





경주 구황동모전석탑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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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동모전석탑지는 남아 있는 부재를 통해서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지라고 합니다. 

분황사 전탑보다는 규모 면에서 작지만 비슷한 형태의 전탑지로 추정하고 있으며 남북 감실에 사용된 돌기둥 2쌍이 옛 절터의 영화를 이야기하듯 나뒹굴고 있습니다.





분황사의 아름다운 전탑을 보면서 구황동모전석탑도 잘만 보존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구황동 모전석탑의 돌기둥 배치형태를 보면 탑은 정사각형이며 한변의 길이가 약 4.5m의 크기로 분황사 전탑이 한 변이 13m인 큰 규모인데 그에 비하면 구황동모전석탑은아주 작은 전탑이라 생각됩니다.





1층의 동서남북 사면에다 사방불을 넣은 감실을 둔 형태로 돌기둥에 사천왕상인 인왕상을 섬세하게 조각하여 세웠습니다. 

그 섬세함이 얼마나 빼어났던지 금강역사상 한 쌍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가져가 고분관 입구에다 안치해 놓았을 정도입니다.

 




구황동모전석탑지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전설이 전해져옵니다. 

그 전설이란 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야기입니다. 

학창시절 모두 배웠던 이야기로 경문왕이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문왕은 큰일 났다며 이를 왕비나 신하에게는 비밀에 부쳤지만,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에게는 어쩌지 못하고 내 귀가 당나귀 귀임을 발설하면 너의 목숨은 죽음이라며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복두장은 마음의 병이 생기면서 시름시름 아파갔고 급기야 죽기 일보 직전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에 복두장은 마음을 깨끗하게 털고 가자는 심정으로 도림사의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며 고함을 크게 질렀고 얼마 뒤 복두장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람만 불면 도림사의 대나무 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귀 귀....”하며 복두장이의 억울한 죽음을 항변하는 양 온 서라벌에 퍼졌고 모두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알게 되었다 합니다.







이에 경문왕은 대나무를 모조리 잘라내고는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게 했는데 이제는 “임금님 귀는 길다”는 황당한 소리가 들렸다 합니다. 

구황동 모전석탑지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경에 일본인이 ‘도림’이란 기와 파편을 발견했으며. 삼국유사에도 서라벌 입구에 도림사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가 전해지는 도림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북여행/영덕여행)영덕 삼사해상공원과 영덕 해파랑공원 여행, 삼사해상공원 영덕해파랑공원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가다 포항을 지나면서 도로는 바닷가에 바짝 붙었다가 떨어졌다 하며 연인들에게는 가장 운치 있는 드라이브코스입니다. 

그중에서 영덕군은 동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동해안 7번 국도를 약 50km나 달려야만 군 경계를 벗어납니다. 

영덕군은 지자체 중 가장 아름다운 해안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영덕 삼사해상공원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58-4

영덕 삼사해상공원 전화:054-730-6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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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 해파랑공원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


 


그리고 영덕군의 관문이라 생각하는 곳은 영덕 최고의 공원인 삼사해상공원입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의 입구에서 삼사해상공원을 찾았습니다. 

지금 부터 강구면 삼사해상공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삼사해상공원은 여러 번 찾았던 터라 더욱 친근한 여행지입니다. 

먼저 삼사해상공원의 삼사 지명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삼사해상공원은 이곳 삼사리에서 따왔습니다. 

삼사리의 삼사는 신라시대 이곳 출신인 세 명이 시랑 벼슬을 지냈다는 설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며 시랑벼슬을 한 세 사람이 숨어 지냈다 하여 삼시랑이라 불렀는데 세 시랑을 생각하여 삼사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래는 이쯤 하면 되겠고 삼사해상공원을 알리는 출입구인 아치 조형물이 입구에 크게 세워져 있어 이곳이 삼사해상공원인 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차로 제법 길게 올라와야 삼사해상공원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봄이면 삼사해상공원은 벚꽃 세상으로 변할 만큼 흐트러지게 핀 벚꽃이 장관을 연출합니다. 

가을의 문턱인 지금은 파란 나뭇잎만 반기는 조금은 황량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덕의 관문에 있는 공원답게 주차장은 대형버스와 승용차를 주차하는 공간이 어마 무시하게 넓으며 주차비 또한 무료입니다.



저도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는 삼사해상공원의 심벌마크인 원형의 조형물을 찾았습니다. 

작품명은 ‘바다의 빛’입니다. 

이는 영덕군의 해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붉게 타오르는 동해 일출로 바다의 빛 조형물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오롯이 담아내었습니다. 

이 조형물만 보아도 삼사해상공원은 영덕군의 상징적인 공원입니다.


영덕삼사해상공원



이곳에는 하산 김한홍 선생의 ‘해유가’ 비도 있습니다. 

까만 돌에 “광화문 육조 거리 잡초가 무성하고~~”로 시작하는 해유가는 한일병탄으로 쓰러져간 조선의 암울함을 통탄하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을 시로서 나타내었습니다. 

해유가는 미국 하와이에서 생활하며 보고 들었던 것을 기록한 가사형식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게 영덕군에서 난다는 꽃 돌인 화문석입니다. 

그 무게만도 자그마치 20톤이며 ‘천하제일 화문석’이란 칭호를 달고 있습니다. 

정말 꽃무늬가 박힌 꽃 돌이 예뻤습니다. 

이제 종각의 경북대종을 만났습니다.



경북대종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에밀레종을(성덕대왕신종)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높이는 420cm에 지름이 250cm, 무게는 29톤의 초대형 대종으로 에밀레종과 정말 비슷해 보였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영덕어촌민속전시관입니다. 

유료입장이며 입구에 영덕 특산물인 영덕대게가 떡하니 걸려 있습니다.

 




민속전시관입니다. 유료입장이며 입구에 영덕 특산물인 영덕대게가 떡하니 걸려 있습니다. 

영덕민속전시관은 예전에 방문해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도 부족하고 했어. 그냥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강구항으로 향했습니다.

 






강구항과 강구시장도 여러 번 찾았으나 이번 강구여행은 최근에 조성 중인 강구항의 영덕 해파랑 공원입니다. 

주차장으로만 사용하다가 최근에 어마 무시한 넓이의 공원으로 탈바꿈하는 중이었으며 저 멀리 영덕 해파랑 공원의 갈매기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황금 대게만 빛을 받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직 부대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나 갈매기 조형물과 대게 조형물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습니다. 

강구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 포인트입니다. 

강구항과 강구시장에서 영덕 특산물을 배불리 먹었다면 영덕 해파랑 공원은 워낙 넓어서 걸으면서 소화하기에 아주 적당했습니다.

 


영덕해파랑공원




우리 일행도 소화도 시킬 겸 해서 저멀리 있는 강구항의 홍등대까지 걸어갔다가 돌아 나오면서 간단하게 영덕 삼사해상공원과 영덕해파랑공원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편으로 강구면의 삼사해상공원과 강구항, 강구시장, 영덕해파랑공원 여행을 계획한다면 포항에서 영덕으로 출발하는 동해선 열차 이용도 편리합니다. 일일 5회 운행. 

강구역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이용하면 바로 끝.










(충북여행/영동여행)양산팔경 금강둘레길 강선대 여행, 영동 강선대 여행


산자 수려한 고장 중 한 곳이 충청북도 영동입니다. 

영동군 내에서도 빼어난 명소를 많이 가진 곳이 양산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양산면의 최고의 절경만을 묶어서 양산팔경을 만들었습니다. 

양산팔경의 1경은 천년고찰 영국사이며 2경이 오늘 포스팅할 강선대입니다.





영동 양산팔경 2경 강선대 주소: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756-1





강선대는 울울창창한 소나무숲과 여의정이 있는 송호관광지와 마주하고 있으며 양산팔경의 최고 경관지로 꼽습니다. 

강선대는 층층의 바위에 고고하게 자란 소나무를 울타리 삼아 앉은 정자입니다. 

이전에도 정자가 있었다 하나 오늘날의 정자는 1954년 함양여씨 종중에서 세웠으며 시멘트가 덧시어진 정자입니다. 



요즘 새로 지은 정자를 보면 깨끗한 목재로 멋들어지게 세우는데 시멘트가 들어가서 그런지 강선대의 정자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강선대의 정자도 60년 세월이 넘다 보니 그 자체로 하나의 우리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강선대는 신선이 내려와서 노닐었다는 뜻으로 통하지만, 이곳 영동 양산면의 강선대는 신선 중에서도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바둑을 두었던 게 아니고 미모의 선녀가 내려왔던 곳입니다. 

천상에서 선녀가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경치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이 어디 없을까 하며 눈으로 스캔하였습니다.

 


스캔하던 중 선녀의 마음을 ‘확’ 붙잡은 곳이 있었으니 이곳이 강선대 입니다. 

물 좋고 소나무 좋고 석대까지 갖추었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선녀는 오늘은 저곳에서 목욕을 즐겨볼까 하고 내려왔다 하여 강선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있듯이 선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꼭 훔쳐보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용(龍)이었습니다. 

승천할 날을 꼽으며 천 년을 기다리던 용이 금강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승천하게 되었고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을 오르던 용은 아름다운 경관의 강선대를 떠난다는 생각에 무엇인가 아쉬웠던지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았던 금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용은 깜짝 놀라며 힘차게 휘젓던 꼬리를 멈추었습니다. 

선녀가 강선대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었던 것을 훔쳐보았고 그것을 하늘의 옥황상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괘씸한 놈”하며 옥황상제는 선녀의 목욕을 훔쳐본 죄를 물었고 용은 죗값을 받아 그만 강에 떨어져 죽어서 바위가 되었습니다. 

강선대 앞 금강에 아담한 바위가 용이 떨어져 변한 용암입니다. 

선녀가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강선대라 조선 시대에는 많은 시인묵객이 찾아들어 강산대를 노래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며 조선 중기 문신인 동악 이안눌, 백호 임제 등 무수합니다. 

동악 이안눌 선생은 명승지를 찾아 시를 짓기를 즐겼는데 강선대에서도 한시를 남겼습니다.

 




“하늘 신선이 이 대에 내렸음을 들었나니/옥피리가 자줏빛 구름을 몰아오는구나”로 시작하며, 선녀가 하강해서 목욕했다는 강선대의 모습을 글에서 그대로 나타내는 듯했습니다. 

백호 임호란 분은 칼과 피리, 거문고를 좋아하고 술과 기생을 즐겨 찾았을 만큼 성격이 호방한 게 시원시원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1583년 평안도 도사로 부임할 때 송도의 황진이 무덤을 찾아서 술상을 차려놓고 시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역시 성격만큼 멋진 분입니다. 

임호의 강선대에서도 역시나 기생이 빠지지 않습니다. 제목이 ‘한우가’인데 찬비를 뜻하기도 하지만 기생의 이름이 한우입니다.






임제와 기생 한우가 서로 화답하며 읊었는데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하노라”하자 한우의 답가가 따뜻합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원앙금침을 두고 얼어자리/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ㅎㅎ 

층층의 강선대에 올라 술 한잔 들이킨다면 술맛이 저절로 날듯합니다.


(전남여행/장흥여행)천관산 천관문학관 여행. 장흥 천관문학관 


장흥여행을 하면서 천년학 영화세트장과 인근의 선학동 마을을 찾았습니다. 

선학동 마을은 이청춘 작가의 고향마을이자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로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메밀꽃이 온 마을을 뒤덮어 유채꽃 축제와 메밀꽃축제가 매년 열리는 마을입니다.





문림의 고향 장흥 천관문학관 주소: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801-8

문림의 고향 장흥 천관문학관 전화:061-860-0457

 

천관문학관 관람안내:동절기 오전 9시~오후 5시, 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

천관문학관 휴관일:매주 월요일



2018/09/22 - [여행] - (전남여행/장흥여행)장흥 임권택감독 천년학세트장, 이청춘작가 선학동 메밀꽃축제




조금 이르게 장흥여행을 했던지라 메밀꽃은 구경도 못하고 인근에 있는 천관 문학관으로 향했습니다. 

천관산은 호남의 5대 명산 중 한 곳으로 하늘의 면류관인 천관산을 찾으러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습니다.



특히 가을이면 천관산은 은빛 날개로 눈이 부실만큼 온산을 억새로 뒤덮어 명실상부한 장흥의 영산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천관산에 장흥 문학의 본향인 천관 문학관이 자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산자수려한 장흥이다 보니 특히 장흥에는 많은 문인이 나왔습니다.

100명도 넘는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장흥을 유림이 아닌 ‘문림의 고향'이라 하는가 봅니다. 

이는 천관산의 기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흥의 문학인 중 최근에는 소설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씨가 있으며 한국문학의 거장 중 한 분인 ‘선학동나그네’의 이청춘과 이승우, 송기숙, 한승원 등이 장흥 문인을 대표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분들 이외에도 많은 장흥의 문인들이 대한민국의 문학계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관동별곡’의 정철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관서별곡’의 기봉 백광홍(1522~1556)도 장흥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보면 장흥은 많은 문인을 배출했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문인을 배출한 장흥답게 장흥군이 2008년 우리나라 최초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했습니다. 

그 중심에 천관문학관이 있습니다. 

천관 문학관에 가면은 장흥 출신의 문인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흥의 유명 관광지에서 촬영한 장흥의 사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학동마을 메밀꽃

천관문학관 전시 사진 촬영


선학동마을 유채꽃

천관문학관 전시 사진 촬영


천관문학관 전시 사진 촬영





저도 사진 한 장씩 보면서 아름다운 장흥의 명소에 감탄사를 연방 날리면서 나왔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천관 문학관의 야외 전시장을 못 보게 온 게 정말 많이 아쉽습니다.

 



(전남여행/장흥여행)장흥 임권택감독 천년학세트장, 이청춘작가 선학동 메밀꽃축제


지난번에 장흥여행을 하면서 임권택감독의 선학동 천년학 세트장을 여행했을 때 색바랜 모습으로 아주 오래된 옛 건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한번 천년학세트장을 찾았습니다. 

2014년 당시에 보던 그런 모습이 아니고 색바랜 양철지붕은 다시 색을 입혀 깨끗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장흥 선학동 천년학세트장 주소:전라남도 장흥군 회지면 회진리 1740-1




천년학에서 용택의 주막으로 나오는 세트장이 있는 마을은 『서편제』와 『선학동 나그네』의 작가 이청춘의 고향마을입니다. 

임권택 영화감독의 100번째 작품인 천년학은 1993년 개봉하여 한국 영화 최초로 백만 관객이 관람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잠재된 한을 잘 끌어낸 영화인 서편제의 완결판으로 천년학의 촬영이 국민의 큰 호응속에 이루어졌습니다. 

큰 인기로 대박을 터트린 영화 천년학세트장을 보려고 천관산 산행을 앞두고 장흥 선학동을 찾았습니다. 

영화 천년학의 시작은 동호가 30년 만에 회진포구를 찾아오면서 시작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3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버려 동호가 보았던 선학동이 많이 변한 모습에 허탈해하면서 주막을 찾습니다. 

동호가 찾은 주막이 이번 장흥여행에서 찾았던 학산마을의 용택 주막입니다. 

동호는 주막주인이 자신의 누이 송화를 좋아했던 용택임을 알아보고 천년학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2014년도에 찾았을 때는 내부도 둘러보고 했는데 이번 방문에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어 외부만 보았습니다. 

요런 곳에 주막이 있어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면 술맛이 팍 살아 날 긴데 생각하니 갑자기 막걸리 맛이 간절했습니다.





빨리 선학동의 유채꽃 상태를 확인하고 천관산 산행을 하고 막걸리 한사발을 마셔야겠습니다. 

천년학세트장 안쪽마을이라 차를 쌩하고 몰아 달렸습니다. 

방문했을 때가 조금 일러서 그런지 그때서야 메밀꽃의 싹이 올라왔습니다.



장흥 선학동 유채마을 천년학세트장 주소:전라남도 장흥군 회지면 회진리











다음 달 10월 중순이면 소금을 뿌린 듯 온 선학동 마을을 뒤덮은 하얀 메밀꽃과 황금 들판이 어울려 장관을 연출한다고 합니다. 

10월에 메밀쫓축제가 열릴 때 다시 찾아 메밀꽃밭 사이의 다듬어진 길을 걷고 쉬게끔 정자도 만들어 놓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유채꽃이 만발한 꽃길에 소달구지를 타고 가던 송화와 동호를 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영화 천년학의 배경이었던 선학동의 노란 유채꽃은 4월의 선학동마을 상징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며 가을 축제인 선학동 메밀꽃축제도 그에 못지않을 만큼 인기입니다. 

유채꽃이 만발한 4월에도 다시 찾고 싶고 10월에도 찾고 싶은 그림 같은 풍경의 선학동 마을은 꼭 영화 천년학이 아니라도 한 번 더 찾고 싶습니다.

 




















선학동나그네와 영화 천년학으로 산저리라 불리던 마을도 선학동으로 바뀌었을 만큼 지명과 정말 잘 어울리는 마을 풍경입니다.




(전남여행/해남여행) 달마산 미황사. 해남 땅끝 달마산 미황사 여행


해남여행을 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곳 모두가 선경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해남을 찾는 여행객은 볼 곳이 많은 곳입니다. 

해남의 산은 대부분 기치창검이 치솟은 듯 삐쭉삐쭉한 바위로 이루어졌고 삼면이 바다로 둘려 어디를 가던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그 속에 잠든 듯 깨어있는 천년고찰은 고고한 해남의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남 땅끝 달마산 미황사 주소: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1

해남 땅끝 달마산 미황사 전화:061-533-3521




 


해남의 대표사찰은 두륜산의 대둔사와 달마산의 미황사를 첫손으로 꼽습니다. 

두 고찰 모두 두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천년고찰에 포함합니다. 

그중에 해남의 명산인 달마산의 미황사를 찾았습니다. 

달마산 하면 언뜻 달마대사를 떠올립니다. 

그 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물렀다는 산이 달마산입니다.

 


능선을 따라 솟은 바위가 만개의 부처님 모습과 닮았을 정도로 부처님의 기운이 가득한 산입니다. 

그 때문인지 달마산의 기운이 장난 아닐 정도로 드세어 항상 신령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설화가 없을 수 없습니다. 

미황사 창건설화는 1692년(숙종18)에 지은 미황사 사적기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749년인 신라 경덕왕 때 달마산 아래 포구에 돌배가 닿았습니다. 

이를 본 의조화상이 마을 사람과 함께 포구에서 돌배를 맞았습니다. 

그 돌배는 많은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습니다.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 16나한, 탱화, 금환, 검은 돌을 싣고 금인이 돌배를 저어 왔습니다.

 


그런데 검은 돌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검은 소가 나왔습니다. 

그날 밤에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금인이 나와 ”나는 돌배를 저어 도착한 우전국 왕이다. 

부처님을 모실 곳을 찾아 여러 나라를 다니다 이곳에 닿았는데 달마산을 보니 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에다 부처님을 모시려 하니 검은 소에 경전을 싣고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다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도록하오“하며 사라졌습니다.

 


스님은 꿈에서 깨어나 꿈도 이상하다며 소등에다 경전을 싣고 걷는데 갑자기 검은소가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겼습니다. 

달마산 골짜기에 들어서니 또다시 검은소가 드러누워 이번에는 아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조화상은 첫 번째 소가 누웠던 자리에다 통교사를 새우고 검은소가 눌러앉은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습니다.





그 때문에 미황사(美黃寺)는 소와 인연이 깊은 사찰입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매우 아름다워서 따왔으며 황은 금인의 색상이 누런 금빛에서 따와 미황사가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천년고찰인 달마산의 미황사는 1989년까지 빈 사찰로 남아 있었었습니다. 

그때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아서야 했는데 아깝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미황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보물 제947호인 대웅보전과 보물 제1183호인 응진당입니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건물답게 웅장합니다. 

또한, 만개의 부처님이라는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한 열두폭 돌병풍이 뒤를 받쳐주며 서향으로 앉아 이게 미황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미황사를 더욱 찾게 하는 거 같습니다.






미황사 대웅전의 중창에 관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1754년 소응천(蘇凝天)이 쓴 『달마산미황사대법당중수상량문』입니다. 

미황사 대웅전의 기록으로는 이게 유일할 정도로 남아 있는게 없다고 합니다. 

미황사 상량문에 3번의 미황사가 중창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에 불타 1598년에서 시작된 제1차 중창은 1601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기록 만으로는 현재 대웅전의 중창인지 확인 할 수 없으며 이후에도 2회의 중건이 더있었기 때문입니다. 

2차 중창은 1658년에 시작되어 1660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2차 중창은 1차 중창과 비교해 보면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때 중창된 대웅전이 현재의 대웅전과 관계된 게 아닌가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3차 중창은 1751년에서 1754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대웅전 이외에도 나한전(응진전) 등이 함께 중창되었습니다. 

이때 쾌행이 상편수로 전체를 총괄하였다 합니다. 

3차 중창이 현존하는 대웅전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건물로 보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2차 중건을 하면서 대웅전을 새롭게 지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 고쳐 지은 것인지는 확인 할수 없다고합니다.





1821년『영암미황사대법당삼존개금급단청중기』에 보면 삼존불 개금과 단청이 이때 다시 이루어졌으며 현재 대웅전의 외관은 단청이 탈색된 상태지만 내부의 단청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1980년 6월에 전라남도 지방유형문화 제79호에 지정되었으며 1982년 대웅전 해체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1988년 4월에 보물 제947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미황사 대웅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 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불전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미황사 대웅전은 자연석을 막돌허튼층쌓기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따로 기단을 세우지 않고 바로 축대를 기단으로 삼았는데 이 방식은 다른 불전에서는 흔하지 않은 방식이라 합니다.

 




대웅전의 초석은 모두 막돌초석의 형식을 띠지만 막돌 그대로 사용한 것과 막돌 위에 원형의 쇠시리로 기둥이 앉을 자리인 주좌를 새긴 것과 막돌에다 원형으로 연꽃을 새기고 그위에 원형의 한단 쇠시리로 기둥이 앉을 자리를 만든 세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복련, 연봉형, 고사리형 문양, 게, 거북 등 바다짐승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는 조선시대 후기 전라도 해안지방 사찰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민간신앙적인 요소를 불교가 수용한 것 같습니다. 대웅전의 기둥은 팽주가 12개, 내부가 2개로 총 14개이며 모두 배흘림기둥을 사용했습니다.







대웅전에서 눈여겨 볼 곳은 앞면의 창호입니다. 

처음에는 시골 부엌문과 같은 양식인 문지방에 고정하여 구멍을 뚫고 문짝에 촉을 두어 끼워 회전하여 안으로 여닫는 방식인 둔테목 구조였으나 1982년 해체보수 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창으로 바꾸었습니다. 

앞면의 문은 문살을 소슬빗꽃살의 살대로 한 사분합을 설치하고 양쪽 툇간에는 빗꽃살의 살대로 한 삼분합을 설치했습니다.





앞면의 문살은 툇간의 문살보다 장식성을 가미했다고는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여 대웅전의 건물과 잘 어울려 품위를 잃지 않아 보였습니다. 

양쪽 측면의 출입문은 한 개씩이며 띠살여닫이문을 달았습니다. 

대웅전의 바닥은 우물마루를 전체에 깔았습니다. 

응진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입니다.







석가모니와 16나한을 봉안하였으며 미황사의 부불전으로 대웅전 오른쪽의 계단 위에 있습니다. 

『달마산미황사대법당중수상량문』에는 나한전이라 했으나 지금 현판에는 응진당이 걸려있습니다. 

응진당 또한, 정유재란으로 불탔다가 이듬해인 1598년 중창을 시작하여 1601년 마무리되었으며 대웅전과 함께 2차, 3차 중창하였습니다








응진당의 천장은 대웅전과 같은 형식인데 공포는 이보다 앞선 형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1993년에 보물 제118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문화재청 2011 해남 미황사 대웅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참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해남읍내를 가지 않고 미황사 아래에서 점심으로 연잎밥을 먹기로 계획하고 미황사로 찾아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연잎밥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ㅋㅋ 황당 그자체였습니다.

 무엇이 되느냐하니까 단팥죽과 팥빙수만  된다는 이야기 ㅎㅎ



차마고도라고 불리는 달마산 둘레길 달마고도를 걸으려고 왔는데 ㅎ 단밭죽 한그릇만 먹고 어찌 갈지 그저 암담했습니다. 

우찌하지도 못하겠고 할수 없이 단밭죽에 연빵인지 빵하고 점심으로 대체하고 달마고도 둘레길을 떠났습니다. 

미황사에서 연잎밥을 먹으려는 분은 필히 확인을 하고 출발하는게 좋습니다. 

아니면 저처럼 밥도 쫄쫄 굶고 댕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 점심으로 먹었던 단밭죽 한그릇










(경북여행/안동여행)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안동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봉정사 세계문화유산. 


이번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우리나라 전통사찰 7곳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나같이 모두 유명사찰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두 동의 국보 건축물을 보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안동의 봉정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봉정사는 국보인 대웅전과 극락전 이외에도 여러 국가 문화재를 보유했습니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안동봉정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안동봉정사 전화:054-853-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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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사찰로 규모보다 이리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을 찾기 힘들 정도로 봉정사는 숨겨진 보배로운 사찰입니다. 

봉정사 입구에서 내려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놓은 길을 걸었습니다. 

천연 고찰을 만난다는 설렘을 진정도 시키면서 산사의 진한 풀 내음과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음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16년에도 봉정사 여행을 했지만 2년 만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설렜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오르막이라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돌려야 했습니다. 

막바지에 봉정사 오르는 돌계단을 두고 푸름을 잃지 않은 굵은 소나무가 무더위에 그늘을 만드는 양 길가에 드러누워 관광객을 맞이했습니다.



봉정사에는 따로 천왕문이 없으나 이 소나무가 천왕문 역할을 하는 듯 당당합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봉정사 출입문인 누각형태의 만세루가 있습니다. 

일자로 길게 늘어선 게 세월의 더께를 느껴질 정도로 오래되어 보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1680년(숙종6년)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창건 후에는 덕휘루(德煇樓)라 불렀다 하나 언제부터 만세루가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세루의 특징은 봉정사의 출입문 역할을 하며 산비탈을 깎아서 봉정사 절터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터를 다졌습니다.

 


만세루는 축대 가운데에다 걸친 형태로 그 아래에 출입계단을 내어 봉정사를 드나들도록 했습니다. 

그 때문에 대웅전에서 만세루를 보면 지면과 연결된 단층건물이지만 외부에서 보면 2층 누각형태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앞면 5칸에 옆면 3칸의 크기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모양을 한 홑처마 맞배지붕건물입니다.



마루가 깔린 만세루는 정자나 강당 역할 등을 담당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닥은 우물 정자 모양을 한 우물 마룻바닥에 평난간을 돌렸습니다. 

특히 만세루에서 눈여겨 볼 점은 누각을 받치는 기둥입니다. 

다듬지 않은 자연형태인 기둥은 휘어진 게 찾는 사람의 마음을 경직되지 않게 편안함을 주며 언뜻 보면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여겨집니다. 

만세루는 장식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운판과 북,, 목어를 설치하였고 덕휘루 현판과 기문도 걸려 있습니다. 

유형문화재 제325호. 

만세루를 지나면 봉정사 경내입니다.

 


먼저 앞쪽에 사찰의 중심건물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이 있습니다. 

나라의 보물이 한점도 아니고 두 점이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가운데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두고 좌우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962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나온 기록을 보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중창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극락전 상량문과 천등산 봉정사기(1728), 양법당중수기(1809)인 묵서와 1999년 해체 수리하면서 봉정사 탁자 조성기, 법당중창기(1435), 정면 어칸 기둥 묵서(1436), 대웅전개연중수기(1601)등의 기문을 찾아내어 대웅전의 변천 과정을 알게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확인된 자료에서 1809년까지 9~10회 정도 대웅전을 보수했으며 그중 1361년인 공민왕 10년의 불단 묵서와 1428년 세종 10년에 불화기록, 1431년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내어 최소한 봉정사 대웅전은 1425년인 세종 7년 전후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봉정사대웅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크기로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모양의 팔작기와지붕입니다. 

봉정사대웅전은 기존의 대웅전과 다르게 대웅전 앞에 조선시대 누마루 양식인 툇마루를 달아내었습니다. 

이는 고려와 조선 초기의 건물 양식을 접목한 형태로 눈여겨 볼만합니다. 

안동 봉정사에서는 대웅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 봉정사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이며 1971년 극락전을 수리하다 1625년 인조 3년에 작성한 상량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상량문에는 672년인 신라 문무왕 12년에 능인 대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원효대사의 창건설로 알려졌었으며 1363년인 공민왕 12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훨씬 이전부터 극락전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천등산은 대망산이라 불렀으며 능인대사가 대방산 토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고 그 과정에서 스님의 불력을 시험하려고 천녀는 능인에게 파계하여 속세에 내려가서 함께 살자고 유혹하였으나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불제자의 도리라며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본 옥황상제는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수도 하도록 하였습니다. 

스님은 도를 깨치자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려 봉황이 내려앉은 곳에 봉정사를 창건했습니다.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온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고 산은 천등산이라 불렀습니다.

 



천등산 봉정사는 최근까지 6번의 큰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6.25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는 등 많은 어려움과 곡절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봉정사 불전은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1999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한국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 부릅니다. 

건물 내부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고 그 앞에다 부처님을 보시는 불단을 만들었습니다. 

닷 집은 화려하지 않으나 섬세하게 꾸몄으며 대장전이라 불렸다가 극락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과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맞배지붕 단층 기와건물입니다. 

봉정사의 많은 목조 건물 중에서 미니어처처럼 가장 작아 보이는 건물로 당시의 독특한 건축기법에 시선을 끄는 건물입니다. 

1969년 해체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1616년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은 것을 확인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물 제449호.








고금당과 극락전 사이에는 고려시대 양식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에 지정되었으며 이중 기단에 석탑의 기단부 일부는 깨어지고 상륜부는 분실되었으나 대체로 깔끔하며 양호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봉정사는 대웅전과 극락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데 그 역할을 담당하는 건물이 화엄강당입니다. 

봉정사의 오래된 건축물을 많이 접하다 보니 화엄강당의 연역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목조건물은 몇 년쯤 되었는지 그 궁금증을 가지며 화엄강당을 차근차근 보았습니다.

 






화엄강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크기로 주심포양식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양법당중수기에는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이때 화엄강당도 새로 지어졌거나 수리된 게 아닌지 보고 있습니다. 

본전불을 모신 대웅전에 비해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는데 이는 법당과 강당의 차별을 두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엄강당은 보물제488호.





봉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영산암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안동여행)의성김씨학봉종택. 의성김씨학봉종택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운장각에서 보다.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봉정사를 보려고 찾았던 안동여행에서 먼저 만나는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입니다. 

봉정사와 함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학봉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후에 1679년(숙종5년) 문충 시호를 받았습니다.




의성김씨학봉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5

의성김씨학봉종택 전화:054-672-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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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 하면 황윤길과 함께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조선침략의도를 정탐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분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은 학봉선생을 경상도 관찰사 초유사로 임명하여 전란을 막도록 했습니다. 

먼저 학봉김성일선생 종택을 보기 앞서 학봉선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학봉김성일선생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황윤길과 조선통신사로 참여하여 일본의 조선침략의도를 파악하려고 동행합니다. 

조선통신사의 업무가 끝나고 김성일과 황윤길은 조정에 보고하였습니다. 

황윤길은 조만간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며 전쟁설을 보고하지만, 김학봉은 그와 반대로 일본은 전쟁을 일으킬 꿈도 꾸지 않는다며 전쟁불가 설을 서로 상반 댄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황윤길의 보고대로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조정은 김성일에게 파직과 함께 참형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이에 류성룡은 김성일에게 왜 그런 보고를 하였느냐고 묻자 김성일은 그때야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왜란의 가능성을 부정한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 나기도 전에 온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게 더 시급하다는 판단을 하여 그런 보고서를 올리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류성룡은 선조에게 나아가 지금 전쟁으로 시국이 혼란한데 김성일만이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며 다시 등용할 것을 청했습니다. 

선조는 경상도관찰사초유사로 임명하였고 학봉선생은 경상도로 내려와 의병장 김성일과 정인홍 등을 도와 왜군을 막는데 힘썼습니다.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장군이 죽자 학봉선생은 진주성을 수성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왜적은 군량미 확보를 위해 곡창지역인 호남평야로 진격하려고 진주성을 침공한다는 계획을 미리 알고는 의병과 힘을 모아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왜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 승리로 호남평야는 지켜낼 수 있었고 진주성 전투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입니다. 

학봉선생은 1593년 왜적의 재침에 대비하다가 진주성에서 병사했습니다. 

의성김씨학봉종택은 들어서는 삼문 입구에 ‘학봉선생구택’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앞면 5칸에 옆면 1칸인 대문채를 지나면 진초록의 잔디가 깔린 마당에 들어섭니다.

 


넓은 정원에는 유실수와 소나무와 다양한 문양석이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을 했다면 본격적인 학봉구택을 둘러보겠습니다. 

학봉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였으며 류성룡과 함께 성리학의 학통인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추앙 받는 분입니다



학봉종택은 원래 이곳에 있었으나 저지대로 조금만 비가와도 물이 들이쳤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762년(영주38년)에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옮겼습니다. 

1964년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안채만 옮겼으며 사랑채는 그곳에 남겨두고 소계서당으로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학봉종택의 사랑채는 한일자 건물이며 안채로 들어서는 출입문은 열려 있고 왼쪽의 닫힌 문은 부엌문입니다.



안채에는 현재에도 김성일 후손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사생활을 침해할까 싶어 출입을 삼가는 게 좋을 듯해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안채는 오른쪽에 3칸의 대청을 두었고 왼쪽에 2칸의 안방으로 꾸몄습니다. 그 끝에 부엌이 붙은 전형적인 경상북도 양반가옥의 ‘ㅁ’자형 구조입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2칸은 온돌방이며 2칸은 마루입니다. 

4칸의 사랑채 앞면에 길게 툇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1963년 옮겨오면서 새로 지었으며 칸마다 각각의 현판이 달렸습니다. 

사랑채 옆에는 운장각(雲章閣) 건물이 있습니다. 운장각 안에는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과 유품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국가 문화재인 보물이 수두룩해서 그런지 출입문이 잠겨 있습니다. 

‘운장’은 "탁피운한(倬彼雲漢) 위장우천(爲章于天)”에서 한자씩 따왔는데 “저 높은 은하수처럼 하늘 가운데서 맑게 빛난다”라는 뜻입니다. 

이 앞에도 안동여행을 하면서 학봉종택을 방문했으며 이번에도 학봉종택을 찾았으나 운장각은 개방되지 않고 굳게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오늘은 안동에 관계되는 분인지 단체관광객이 찾아 왔으며 그분들과 인사를 하려고 학봉김성일선생 종손되시는 분이 하얀 계량한복을 입고 나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체 관람객은 가시고 잠시 있다가 우리보고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시기에 부산서 왔습니다. 하고서 "저기 운장각은 평소 개방을 하지 않는가 봅니다" 하며 여쭈었습니다.

 



종손분이 "예" 하시면서 "큰 카메라를 들어 신 거 보니까 어디 사진 찍으러 다니시는 분입니까" 하시며 운장각을 한번 보여 주겠다고 흔쾌히 가자고 했습니다.

 내심 많이 기뻤습니다. 

기쁜 마음에 운장각으로 따라갔습니다. 

번호 키가 달려 있으며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수많은 책과 병풍이 보관되어 있고 오른쪽 금고도 열어주시면서 내부를 공개했습니다. 

그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학봉김성일 선생의 경연일기, 해사록과 선생의 친필 유고와 사기, 고려사절요 등 조선 초기에 간행된 전적 56종 261점과 교지, 편지 등 고문서 17종 242점 등 총 73종 50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봉선생의 유물인 안경, 벼루, 말안장, 신발 등 400여 년이 넘었다는 선생의 유품을 보면서 후손들의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휴대전화로 사진 몇 장을 담았습니다. 

이번 안동 학봉김성일 선생 종택여행을 하면서 저에게는 큰 수확이라면 운장각에 보관된 선생의 유품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만났던 거였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그 옆에 또 다른 건물은 풍뇌헌입니다. 

누각형태로 지어졌으며 앞면 4칸에 좌우 각 1칸은 온돌방을 깔고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넣었습니다. 

앞에는 툇마루에 난간을 둘렀습니다. 

처마는 겹처마를 넣어 건물의 품위를 한껏 높혔습니다.

 



학봉 김성일선생 기념관



(제주여행)폭염도 두렵지 않은 제주도 삼나무 숲인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


요즘 불볕더위가 연일 세계를 태우고 있습니다. 

한반도도 수은주가 40도가 넘는 등 찜통더위를 넘어 완전 가마솥더위가 연일 기록경신을 하는 등 장난 아닌 날씨입니다. 

요즘 같은 날씨라면 최근에 제주여행을 하면서 찾았던 삼나무 숲이 정말 너무나 그립습니다. 

아!!! 다시 그 숲길을 걸으면서 무더위를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사려니숲길 입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사려니숲길 붉은오름 입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158-4


2016/09/28 - [여행] - (제주여행)선녀와 나무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60~70년대 풍경을 추억 태마 공원 선녀와 나무꾼에서 되살리다. 선녀와 나무꾼

2016/09/27 - [여행] - (제주여행)섭지코지. 제주여행 초보라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 동화속의 궁전 같은 섭지코지. 섭지코지

2018/06/18 - [여행] - (제주도여행)제주도 용두암, 제주 용두암에서 아침을 맞다.




제주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많이 알려진 삼나무숲 하면 제주여행을 한 분들은 '아! 그 숲' 하며 벌써 아실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사려니숲입니다. 

사려니숲은 제주 방언으로 신령스러운 숲이란 뜻이며 신성한 곳을 의미합니다.



사려니는 ‘살안이’ 또는 ‘솔안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살’과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을 뜻하는 신의 영역인 산 이름에 쓰이는 말이라 합니다. 그

래서 그런지 무더운 날씨인데도 정말 선선한 게 신선이 휘리릭하며 내려올 듯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련한 숲 속의 향기에 이끌려서인지 제주 사려니숲은 선남선녀들이 엄청나게 찾아왔습니다. 

사려니숲은 서귀포시 남원읍 함남리 사려니오름에서 물찻오름을 이어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까지 이어지는 15km의 숲길을 말합니다.

 


필자는 지난번에 제주여행을 하면서 제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인 제주 시험림이 있는 사려니오름과 주위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반드시 예약해야만 트레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려니오름 쪽은 조용하게 걸으면서 힐링할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좋았던 감정을 쫓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158-4 붉은오름 입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제주 랜트카의 내비게이션에 사려니 숲을 찍고 찾아갔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려니 숲길 하니까? 제주시 조천읍의 교래리 산등성이의 입구로 우리를 자꾸만 안내했습니다.



이곳에서 문제점은 주차할 때가 따로 없어 수 킬로미터 밑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하는 단점이 있어 주차할 공간을 찾는다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표선면의 붉은오름 입구의 사려니 숲 입구를 찾아내었습니다.





이곳에는 도로도 넓고 길게 주차장도 마련해 놓아 다행히 주차할 공간이 보여 주차를 하고 삼나무숲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사려니숲길은 해발 500~600m의 높이에 걸쳐있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위에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말찻오름, 물찻오름, 괴평이오름, 마은이오름, 붉은오름, 거린오름, 사려니오름과 서중천, 천미천을 끼고 있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전형적인 온대산림지역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 천연림과 인공조림된 삼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하게 식재되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사려니숲길은 에코힐링을 체험하는 최적 최고의 치유 숲입니다. 

사려니숲길은 중간마다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인 잣성과 숯을 구웠던 숯가마터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제주 산간의 산림목축문화를 알 수 있는 숲길입니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 생태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런 숲길이라면 안 걸어 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 일행 중에 아직 돌도 안된 갓난애가 유모차를 타고 있고 해서 입구의 삼나무 숲길만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때에도 바깥 온도는 엄청나게 더웠습니다.

 










그런데 삼나무숲을 들어서는 순간 몸의 열기가 쑥 빠져나가듯 선선해졌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수림 울창한 산림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마 삼나무숲과 외부 온도와는 4~5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려니숲의 삼나무숲은 1930년대에 심어졌으며 대략 80년이 넘은 나무들입니다. 

여기에서 뿜어내는 자연의 향기인 피톤치드는 대도시의 숲 속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와는 양과 질적으로 엄청나게 차이가 나며 맑은 공기와 피를 맑게 하는 음이온이 풍부합니다.

 






또한, 해로운 병균까지도 퇴치하는 등 사려니숲길의 매력으로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제주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저희처럼 짧은 구간이라도 꼭 한번 걸어볼 것을 권합니다.

 











(경북여행/안동여행)일직면 안동 소호헌. 안동소호헌 여행


우리나라 고찰 일곱 군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여 그 기념으로 안동에 있는 천등산 봉정사를 여행했습니다. 

봉정사는 그 이전에도 둘러보았으나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두 동의 고건축물이 국보에 지정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안동 소호헌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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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난 뒤 부산으로 돌아오려고 남안동 톨게이트로 빠져나가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이유는 안동 일직면의 보물 제475호인 소호헌과 보물 제57호 조탑동 5층 모전 석탑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조탑동 5층 모전 석탑은 찾아보려고 했으나 잘 일정과 맞지 않아 이번에 꼭 보고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동여행을 떠났습니다.



안동에서 내비게이션에 조탑동 5층모전석탑을 찍고 출발했습니다. 

조탑동에 도착해서 마을의 모전석탑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하필 꼭 조탑리오층모전석탑을 보고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았더니 이번에는 모전석탑을 분해해서 복원하려는지 가림 건물을 세워놓아 외부에서는 볼 수 없게끔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모전석탑 안내판을 보다가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 생가가 있다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같이한 부부는 권정생의 안내판을 보고는 “생가가 여기에 있네”하면서 “꼭! 저기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권정생이 사실 조금 생소했지만 ‘몽실언니’의 작가라는 말을 듣고 ‘아! 그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생가를 보고 난 뒤 다시 소호헌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소호헌을 들어서는 솟을대문의 문이 꽉 닫혀 있었습니다. 

아직 해는 남아 있었지만, 너무 늦어서 문을 닫은 듯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그렸습니다. 

자세히보니 문간채에 붙은 작은 방의 창문이 열려 있어 후손인지 관리인이 있어 보였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볼까 하다가 괜히 싶어 담장 밖에서 왔다갔다하며 까치발을 들고 겉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마음먹은 대로 볼수없었는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소호헌은 안동 법흥동의 고성이씨 임청각 이명의 5남인 청풍군수를 지낸 무금정 이고가 분가하면서 건립한 집입니다.



그 후 이고는 외동딸에게 장가 온 사위 대구 서씨인 함재 서해(1537~1559)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현재 대구서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정지이며 호는 함재에 저서로는 『함재집』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던 분으로 소호헌은 서해선생이 서재로 사용한 별당건물입니다.



소호헌은 앞면 4칸에 옆면 2칸의 규모에 왼쪽 3칸은 대청을, 오른쪽 1칸은 누마루를 넣었습니다. 

누마루와 붙은 대청 앞면에 직각으로 꺾어서 2*1칸의 방을 드렸습니다. 

소호헌은 위에서 보면 ‘T'자형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부속된 방은 사람 인(人)자인 맞배지붕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대청과 누마루 사이에는 사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개방하도록 하였으며 누마루에서 방에 붙은 툇마루에는 난간을 돌렸습니다. 

누마루를 빼고는 축대를 높이 쌓았으며 주춧돌 위에 건물을 받치는 기둥을 바로 세우지 않고 평방 모양의 귀틀을 짜 돌려 그 위에다 기둥을 세운 건물로 조금은 특별하게 지어졌습니다.

초익공 계통의 공포와 창방머리의 격이 높은 조각수법, 대들보는 주두(암술머리) 위에 얹었으며 포대공을 놓고 종량과 종두리를 받치게 하였습니다.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으며 합장형의 소슬도 보이는데 주택건축에서 소슬 대공을 사용한 예는 소호헌 이외에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특별한 건물로 보입니다. 

안동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소호헌을 보면서 늦게 소호헌을 찾은 저를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다음 안동 여행을 할 때는 우선하여 일직면의 소호헌과 조탑동 5층 모전석탑을 꼭 만나야겠습니다. 




(안동여행)안동이천동석불상. 안동제비원석불


안동에서 가장 독특한 석불을 보고 왔습니다. 

큰 자연석에 따로 바위를 올려 불두를 새겼는데 전체 크기가 12.39m인 아주 큰 불상입니다. 

이천리석불이라 불리는데 제비원 석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석의 큰 바위에다 몸을 얕게 새겼으며 부처 머리를 따로 올린 마애불 형태입니다.




안동 이천동석불상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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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향한 제비원 석불은 자세히 볼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아야만 전체를 알수 있습니다.

워낙 큰 석불이다 보니 밑에서 보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불두를 자세히 보면 뒷부분이 수직으로 잘려나간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따로 돌을 올려 머리 가운데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를 큼지막하게 만들어 올렸습니다.





얼굴은 통통하여 풍만하며 두 눈썹 사이에 백호를 양각했으며 좁으면서 길게 실눈을 뜬 듯한 눈과 그 위에 반원형의 짙은 눈썹을 표현했습니다. 

우뚝 솟은 코와 다부져 보이는 입술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고 목에는 삼도를 새겨 전체적으로 잘 생긴 미남형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자연석에 새긴 몸체에 걸친 법의는 양어깨를 감쌌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왼쪽 어깨의 옷 주름과 오른쪽의 법의 자락이 서로 교차해 접혀 있습니다. 

가슴 밑으로는 속옷의 띠가 보이고 양손은 모두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으며 오른손은 배에 왼손은 가슴에 올린 형태의 입상입니다.





발아래에 불상을 받치는 큰 연꽃 대좌를 음각했습니다. 

이천동의 석불은 'ㄷ'자 형태이며 원래에는 보호하는 기와지붕이 있었다는 것을 17세기 초의 안동읍지인 영가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도 부처 머리 위에 닫집이 있었다 합니다.


 




지금은 당시 기둥을 세웠다는 흔적만 불상 어깨에 남아 있습니다. 

석불 아래 바위 끝에 연미사 중수기인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연미사는 634년 선덕여왕 3년에 명덕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공식 명칭은 안동이천동석불상입니다.



마애의 불신과 불두를 따로 합해 만들어진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에 유행했던 양식으로 안동 이천동석불상도 이시기인 고려 시대에 제작된 석불상입니다. 

1963년 1월에 보물 제115호에 지정. 안동 이천동석불상은 제비원 석불이라 부르는데 이는 미륵불이 있는 넓은 공원이 오래전에 원(院)이 있었던 곳입니다.



원은 요즘으로 치면 여관이며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연미사는 교통의 중요한 길목에 있는 사찰이라 국가에서 출장을 가는 관리의 숙소로 국가에서 지정하여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과는 다르게 석불상 위로 기와지붕이 올려진 게 꼭 제비와 닮았나 봅니다.

 




그래서 연자루(燕子樓)라 했는데 그 끝에다 요사를 짓고는 제비의 꼬리를 뜻하는 연미사가 되었으며 석탑 밑 법당은 제비부리에 해당하여 연구사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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