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굴불사지 사면석불. 경덕왕이 염불소리를 듣고 발견했다는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해는 527년인 법흥왕 때입니다. 신라는 당시 귀족세력의 권력이 강해 왕이라 하여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법흥왕은 왕권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였으며 불교를 이용하여 왕권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하였고 박이차돈은 그런 법흥왕의 고심을 알고 은밀하게 제안을 합니다. ‘신라에 불교가 융성해지고 왕권이 강화된다면 제한 목숨 바치겠다’는 박이차돈은 끝내 순교로서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만들었습니다.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4



2016/10/29 - [여행] - (경주여행)이차돈과 백률사. 신라 불교의 최초 순교자 이차돈의 전설이 있는 백률사 여행을 하다. 백률사



 

 

 

그리고 통일신라 경덕왕(742~765)이 재위하면서 불교문화는 최고 절정을 이루며 많은 불교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석굴암과 불국사가 이때 창건되었습니다. 어느 날 경덕왕은 박이차돈이 순교하면서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 창건된 백률사를 찾았습니다.


 

 

 

경덕왕이 백률사로 향하던 중 소금강산 기슭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나 파보게 했습니다. 땅속에는 정사면체의 큰 돌이 있었으며 돌의 사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경덕왕은 절을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땅속에서 부처를 파냈다’하여 굴불사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사면 석불은 현재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제가 여행하면서 본 사면 석불은 공덕산 사불암과 남산의 칠불암, 그리고 굴불사 사면 석불로 그만큼 존재 자체로도 귀한 문화재입니다. 사면 석불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모두 부처님이 자리해 있습니다. 굴불사 사면 석불의 전면인 서쪽은 아미타 불상과 좌우로 협시보살이, 북쪽은 마애 미륵보살상과 십일면육비 관음보살상이, 남쪽은 석가삼존불이, 동쪽은 약사여래불을 모셨습니다.


 

 

 

먼저 서쪽면은 굴불사지 사면석불의 전면부이며 그 가운데 아미타불을 모셨습니다. 사면 석불의 바위 자체에다 몸통을 삼았으며 따로 돌을 올려 불두를 만들었습니다. 협시보살을 보면 왼쪽은 관음보살입니다.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듯 그 모습이 수려하며 오른손은 잘려나간 상태입니다.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은 머리 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며 신체와 함께 파손 상태가 심한 모습입니다. 대세지보살의 머리는 훼손되어 알 수 없지만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협시 보살인 관음보살은 신체보다 머리 부분이 더 큰 게 비율로 보면 맞지 않습니다. 이는 멀리서 기도하는 사람의 시각에 맞춘 것으로 이목구비가 육안으로 뚜렷하게 보이면 더욱 친근감과 부처님을 숭배하는 마음이 크게 생긴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는 경주 남산의 여러 석불에서 나타난 현상들입니다.


 

 

 

북쪽면은 한쪽에 마애 미륵보살을 조각했는데 그 모습은 꼭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보는 듯 천진난만해 보입니다. 이 보살도 하체보다는 상체가 크며 기도자의 원근을 감안한 것은 아닌지,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바위면에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선각으로 남아 있는 관음보살상입니다.


 

 

 

 

 

 

특이한 것은 얼굴이 11개이며 팔은 6개로 십일면육비 관음보살로 우리나라에 십일면관음보살은 있지만 팔이 6개인 불상은 굴불사 사면 석불이 유일하다 합니다.


 

 

 

 

 

 

 

 

 

동쪽면의 약사불은 서쪽의 아미타불과 대비되며 오른손은 훼손되었고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사부대중의 질병을 약으로 치유한다는 부처님입니다. 선각으로 표현된 광배하며 신체보다는 얼굴의 윤각이 더욱 뚜렷합니다. 가부좌를 튼 부처님의 모습이 근엄하며 '모든 질병은 내 손안에 있소이다’ 하는 듯 보입니다.


 

 

 

 

 

 

 

 

 

남쪽면은 석가 삼존불로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는 보현보살이 있었다지만 일제강점기 때 왜인이 바위를 통째로 뜯어가 지금은 빈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보면서 짐작해보면 왜인의 마음을 뺏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보살상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왼쪽의 문수보살도 대체적으로 원형이 남아 잘록한 허리 하며 신체의 볼륨이 살아 있는 듯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은 머리 부분이 뜯겨 나간 상태지만 신체를 표현한 조각가의 솜씨가 다른 불상에 비해 더욱 돋보이며 섬세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서쪽면의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라면 남쪽면의 석가 삼존불은 현세 부처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굴불사 사면 석불을 조각한 분도 현세의 부처님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보물 제121호


 

 

 

 

 

 

 

 

 

 

 

 

제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경주에 계시는 페친 강정근님의 댓글입니다. 삼국유사 탑상편의 사불산 굴불산 굴불사 만불산조에 나온 내용으로 굴불사지 사면석불의 조각기법이 7~8세기 때 조성된 것으로보이며   경덕왕 때인 8세기 중반과는 석불의 조각기법과 맞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홍수등 일연의 자연재해에 묻혔던것이 경덕왕때에  다시 발견된 것으로 추측된다하여 말미에 첨부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