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사마소. 경주 교동 사마소 여행


경주 최부잣집으로 통하는 최씨 고택과 경주향교, 월정교를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보았던 곳이 경주 교동 마을 입구에 있는 경주 사마소(慶州 司馬所)입니다. 사마소하면 텔레비전 사극드라마에 한 번쯤 등장하는 양념입니다. 사마소는 조선 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그 지방의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유학을 가르치거나 토론을 벌이던 장소를 말합니다.



경주 교동 사마소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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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과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지방수령에게 자문하던 유향소가 당시 권력인 훈구파가 장악했는데 이와 맞서서 사마소는 젊은 유생들이 모여 만들었습니다. 훈구파의 행태를 보면서 팔팔한 젊은 기상으로 뭉쳐져 아주 좋은 뜻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학문연구와 정치토론을 하면서 고향마을 교화에 힘써기도 하고 관청의 행정도 도와주는 등 처음에는 아주 좋은 뜻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권력이 따라붙고 세력화가 되니까, 초창기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관청의 업무를 도와 주던 게 권력으로 개입하고 수령에게 태클까지 거는 일도 서슴지 않으며 변질하여 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등 그 행동이 도를 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폐단이 자꾸만 일어나자 조선 선조 때 류성룡은 사마소 폐지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시국의 시류에 휩쓸리는 정치꾼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경주 사마소는 언제 세워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741년 영조 17년에 복원해서 풍영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사마소를 찾았을 때는 풍영정과 병촉헌 사마소 현판이 없었는데 이번에 세 현판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때는 아마 수리 중이었나 봅니다. 사마소 현판은 1762년 부윤 홍양한이 글씨라고 합니다. 그리고 병촉헌은 1832년 생원 최기영이 썼다고 하는데 사마소, 풍영정, 병촉헌의 현판 글씨의 필체가 묵직하고 모두 힘이 넘쳐 보였습니다.

 


사마소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출입문이 꽉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게 정말 아쉬웠습니다. 까치발로 담장 너머에서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사마소는 경주향교와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월정교 인근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84년에 옮겨 왔다고 합니다.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



그리고 사마소 바깥의 담장 아래에는 영광대가 새겨진 사각 돌기둥과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무엇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안내판을 보니 사마소에 세워져 있었던거라 합니다. 1860년에 선비들이 남천에 흩어져 있는 월정교의 석재를 모아 대를 쌓고 영광대(影光臺)라 했다고 합니다.



영광대의 뜻풀이는 송나라 주희의 시에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한다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따왔으며 “책을 읽으면 그 속에 성현의 아름다운 말과 잘못하지 않게 타일러 주의를 시키는 글귀가 담겨 있다”는 의미라 합니다. 영광대를 보면서 성현의 책을 읽고 마음을 닦는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 상을 보는 듯했습니다.





(경주여행)경주 월정교와 춘양교지. 반월성에 걸린 경주 월정교 


경주 월정교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현재 10여 년 가까이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며 2018년 봄이면 월정교를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월정교의 다리와 건물은 모두 완공되었지만, 월정교 주변의 유적지 부대시설이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공사 중이지만 멀리서 외부를 보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어 엄청난 규모의 월정교를 마음껏 보고 왔습니다.






경주 월정교지와 춘양교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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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인 760년(경덕왕 19년)에 “궁궐 남쪽 문천에 월정교,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아 경덕왕 때 건설된 다리임을 알 수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1,250년 전입니다. 오랜 세월을 겪다 보니 지금은 다리가 남아 있지 않으며 다리를 지탱했던 배 모양의 교각만 남천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월정교의 길이가 60.57m였으며 교각 사이에서 불에 타다남은 목재와 기와가 나왔다 합니다. 그 유물로 추정하기를 교각 위에 누각과 지붕이 연결된 누교가 있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경주 월정교 복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복원된 월정교




월정교 복원공사는 2008년 4월 시작하여 내년에 봄에 모든 공사가 끝나는 10년의 장기 복원공사입니다. 복원되는 월정교의 규모를 보면 길이가 66.15m에 너비가 9m, 높이는 8.25m입니다. 다리는 돌기둥이며 그 위의 다리 상판은 나무를 깔고 두리기둥에다 기와지붕을 올렸으며 다리 양쪽 끝에는 문루를 세웠습니다.



 




문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건물의 최고 높이는 15.67m인 중층 건물에다 주심포 양식의 팔작기와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월정교 발굴조사를 하면서 원효가 태종무열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로 향하던 중 남천에 놓인 유교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데 요석공주와 로맨스를 만들게 했던 다리의 유적을 발굴했다 합니다. 당시의 다리가 맞는다면 삼국시대 유적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반월성 걸린 월정교






반월성






월정교와 700m 위쪽에 남아있는 춘양교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남아 있는 누각 다리의 유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졌지만 이제 원효가 건넜던 유교가 가장 오래된 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춘양교는 조선 시대에 월정교와 짝을 이루어 일정교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으며 효불효교와 칠성교 등 민간신앙과 결합해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월정교와 함께 두 다리는 왕궁으로 드나들던 다리입니다. 춘양교도 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그 규모가 밝혀졌습니다. 길이는 월정교보다 조금 짧은 55m이며 다리 상판은 최소한 13m, 교각높이는 5m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교각은 월청교와 같은 방식인 남천의 유속을 고려하여 배 모양으로 쌓았으며 다리의 규모와 석재의 재질, 색깔까지도 월정교와 거의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합니다. 이 두 다리 터는 고대 신라의 교량 축조방법과 토목기술, 신라 왕경의 규모와 교통로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라 합니다. 춘양교지는 경주 박물관 뒷쪽에 있습니다. 경주 월정교지와 춘양교지는 사적 제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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