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여행/군위가볼만한곳)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집필지 인각사 여행.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에는 산성이 있는 화산이 있습니다. 그 화산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하여 천년고찰 인각사가 자리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도로변에 있어서 아주 편리해졌지만 원래 인각사가 창건될 당시에는 인적은 찾을 수 없고 첩첩의 산골짜기에 호랑이가 살았을 그런 오지였습니다.




군위 인각사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612

군위 인각사 전화:054-383-1161





이곳에 대찰이 들어섰는데 그 사찰이 일연선사의 하안소(1284~1289)였던 인각사입니다. 인각사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국사일연이 1283년 국존의 추대와 원경충조의 호를 받고 이듬해인 충렬왕 10년에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이곳에 내려와 인각사를 중건하게 됩니다.

 


이때 충렬왕은 토지 100경을 하사하였고 이를 가지고 인각사 중건을 도모하였습니다. 일연선사께서 주석하면서 인각사에서 구산선문의 전체모임인 ‘구산문도회’를 두 번씩이나 열렸을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으며 이후 선종의 중심사찰이 되었습니다.



현재 인각사 오른쪽에는 오래된 석재들이 발굴 진열되어 있습니다. 인각사를 정비하면서 출토된 유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석재가 대부분인데 이는 중요 부재만을 모아 놓았어 그렇다 합니다, 창건 당시에는 지금의 인각사 동쪽에 절터가 있었으며 고려시대 후기로 오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왔으며, 이는 현장에서 나온 유물로 알 수 있다 합니다.

 


남아 있는 부재를 보면 연하문 석등 대석, 심초석, 방형초석, 원형초석, 기단석 등이며 2005년 극락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심초석이 확인되면서 통일신라시대에는 목탑이 있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합니다.



인각사는 642년인 선덕여왕 11년에 의상대사 창건기록과 643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대구 팔공산 은해사 말사입니다. 왜 인각사로 불리게 되었는지 보면 인각사를 두른 산이 화산인데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닮았으며 인각사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절 입구 위천에 깎아지른 바위벼랑이 있는데 기린이 뿔을 그 바위에 올렸다 해서 인각사라 부르게 되었으며 기린이 뿔을 올렸다는 바위는 현재 학소대라 불리고 있습니다.

 


인각사에는 삼국유사의 집필지 답게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보물 제 428호인 ‘군위인각사보각국사탑및비’이며 고려시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7호 ‘군위인각사삼층석탑’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9호인 ‘군위인각사석불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6호인 ‘군위인각사미륵당석불좌상’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내 당우로는 극락전, 산신각, 명부전, 국사전, 요사채등이 있습니다.

 


먼저 군위인각사보각국사탑및비는 일연선사 사리탑인 부도와 스님의 행장을 기록한 비석을 말합니다. 보각국사 부도는 팔각원당형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몸돌에는 ‘보각국사정조탑’의 명문이 새겨져 일연선사의 부도임을 알 수 있으며 세워질 당시에는 인각사에서 2km 떨어진 능선 자락에 있었다 합니다.





그러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이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78년도에 국사전 앞쪽에 모셨다가 현재에는 국사전 오른쪽에 인각사석불좌상과 나란히 모셨습니다. 보각국사정조탑 명문 반대편에는 문 모양을 조각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이 2구 조각되어 있습니다. 기단의 중대석에는 동물을 조각했지만, 현재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보각국사 비는 지금 훼손상태가 매우 심합니다. 비는 일연스님의 제자인 법진이 세웠고 비문의 내용은 민지가 지었으며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해서 보각국사 비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황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보각국사비는 이 때문에 엄청난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왕희지의 글씨가 귀하여 수도 없는 탁본을 하면서 파괴되고 훼손되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1701년(숙종 27년) 용문거사 윤광주의 ‘인각사비탑서’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겨울철 불을 피우고 비석을 땅에 넘어뜨려 탁본하면서 보각국사비는 더욱 파괴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1760년 홍양호가 쓴 이계집 제인각사비에서는 스님들이 탁본의 고통에 시달리다 못해 비를 부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록할 정도로 왕희지의 글씨는 인기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극락전 앞에 조성한 군위인각사 삼층석탑은 인각사 경내의 중심에 떡 버티고 있으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초기의 석탑입니다. 현재 인각사삼층석탑은 기단의 상대갑석부터 노출되었으며 노반, 목발, 양화, 보륜 등 상륜부 대부분이 남아있어 인각사 삼층석탑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는 듯 했습니다.



















부도와 함께 있는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은 불신과 배 모양의 광배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소라 모양의 곱슬형태이며 상투 모양인 머리 묶음이 큼지막하게 솟았으며 얼굴은 원만한 인상에 도톰한 입술을 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가 배어 나옵니다.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가 있으며 오른손은 촉지인, 왼손은 선정인의 자세를 취했으며 손위에는 조그마한 보주를 올려놓았습니다. 인각사 석불좌상의 조각수법을 보면 10~11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극락전 뒤쪽에는 전각과 다른 건물이 있습니다. 미륵당으로 이곳에는 군위인각사미륵당석불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훼손상태가 심한 불상이지만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임을 알 수있습니다. 현재 미륵당 앞에는 인각사석불좌상을 설명하는 엉뚱한 문화재 안내판을 세워 놓았습니다. 절이나 문화재청에서 조금은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인각사 산령각






국사전


명부전


극락전








인각사 일연스님 삼국유사 특별전시관 구경하기












































위천


학소대

인각사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께서 말년에 주석했던 사찰로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화산을 등지고 옥녀봉을 바라보는 인각사의 빼어난 절경은 군위 여행에서 최고로 가볼만한 여행지였습니다. 그리고 인각사에서 군위 댐 아래 일연공원을 잇는 둘레길을 만들어 위천을 쉬엄쉬엄 걸으면서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을 만나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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