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여행/영동여행)양산팔경 금강둘레길 강선대 여행, 영동 강선대 여행


산자 수려한 고장 중 한 곳이 충청북도 영동입니다. 

영동군 내에서도 빼어난 명소를 많이 가진 곳이 양산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양산면의 최고의 절경만을 묶어서 양산팔경을 만들었습니다. 

양산팔경의 1경은 천년고찰 영국사이며 2경이 오늘 포스팅할 강선대입니다.





영동 양산팔경 2경 강선대 주소: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756-1





강선대는 울울창창한 소나무숲과 여의정이 있는 송호관광지와 마주하고 있으며 양산팔경의 최고 경관지로 꼽습니다. 

강선대는 층층의 바위에 고고하게 자란 소나무를 울타리 삼아 앉은 정자입니다. 

이전에도 정자가 있었다 하나 오늘날의 정자는 1954년 함양여씨 종중에서 세웠으며 시멘트가 덧시어진 정자입니다. 



요즘 새로 지은 정자를 보면 깨끗한 목재로 멋들어지게 세우는데 시멘트가 들어가서 그런지 강선대의 정자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강선대의 정자도 60년 세월이 넘다 보니 그 자체로 하나의 우리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강선대는 신선이 내려와서 노닐었다는 뜻으로 통하지만, 이곳 영동 양산면의 강선대는 신선 중에서도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바둑을 두었던 게 아니고 미모의 선녀가 내려왔던 곳입니다. 

천상에서 선녀가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경치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이 어디 없을까 하며 눈으로 스캔하였습니다.

 


스캔하던 중 선녀의 마음을 ‘확’ 붙잡은 곳이 있었으니 이곳이 강선대 입니다. 

물 좋고 소나무 좋고 석대까지 갖추었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선녀는 오늘은 저곳에서 목욕을 즐겨볼까 하고 내려왔다 하여 강선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있듯이 선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꼭 훔쳐보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용(龍)이었습니다. 

승천할 날을 꼽으며 천 년을 기다리던 용이 금강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승천하게 되었고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을 오르던 용은 아름다운 경관의 강선대를 떠난다는 생각에 무엇인가 아쉬웠던지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았던 금강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용은 깜짝 놀라며 힘차게 휘젓던 꼬리를 멈추었습니다. 

선녀가 강선대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었던 것을 훔쳐보았고 그것을 하늘의 옥황상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괘씸한 놈”하며 옥황상제는 선녀의 목욕을 훔쳐본 죄를 물었고 용은 죗값을 받아 그만 강에 떨어져 죽어서 바위가 되었습니다. 

강선대 앞 금강에 아담한 바위가 용이 떨어져 변한 용암입니다. 

선녀가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강선대라 조선 시대에는 많은 시인묵객이 찾아들어 강산대를 노래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며 조선 중기 문신인 동악 이안눌, 백호 임제 등 무수합니다. 

동악 이안눌 선생은 명승지를 찾아 시를 짓기를 즐겼는데 강선대에서도 한시를 남겼습니다.

 




“하늘 신선이 이 대에 내렸음을 들었나니/옥피리가 자줏빛 구름을 몰아오는구나”로 시작하며, 선녀가 하강해서 목욕했다는 강선대의 모습을 글에서 그대로 나타내는 듯했습니다. 

백호 임호란 분은 칼과 피리, 거문고를 좋아하고 술과 기생을 즐겨 찾았을 만큼 성격이 호방한 게 시원시원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1583년 평안도 도사로 부임할 때 송도의 황진이 무덤을 찾아서 술상을 차려놓고 시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역시 성격만큼 멋진 분입니다. 

임호의 강선대에서도 역시나 기생이 빠지지 않습니다. 제목이 ‘한우가’인데 찬비를 뜻하기도 하지만 기생의 이름이 한우입니다.






임제와 기생 한우가 서로 화답하며 읊었는데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하노라”하자 한우의 답가가 따뜻합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원앙금침을 두고 얼어자리/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ㅎㅎ 

층층의 강선대에 올라 술 한잔 들이킨다면 술맛이 저절로 날듯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