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보물 제665호인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은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문화재. 


신라 시대에는 가장 신성시했던 산이 경주 낭산입니다. 선덕여왕이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고 도리천에다 장사를 지내라며 유언을 남깁니다. 도리천은 불국토에서 28개의 하늘나라 중에서 첫 번째가 사천왕이 지키는 나라로 사왕천이라 합니다. 두 번째가 사왕천 위쪽에 있는 나라인데 이를 도리천이라 합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낭산이 곧 도리천이라 합니다.






중생사 주소:경북 경주시 배반동 640-1

중생사 전화:054-772-4836



2016/10/22 - [여행]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 경주 능지탑지 여행.



 



이 때문인지 신라인들은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지상의 극락세계인 낭산을 신성시하는 것이 어쩜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선덕여왕이 붕어하고 10여 년 뒤에 선덕여왕릉 밑에 절이하나 들어섰는데 그게 사천왕사였습니다. 그리고 낭산 기슭에는 황복사와 중생사터가 남아 있으며 도리천으로 불렸던 낭산이라 모두 예사롭지 않은 사찰의 규모를 부재로 짐작 할 수 있지만 현재 모두 폐사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경주여행에서 다시 찾았던 중생사의 옛 영화는 부재로 남았으며 초라한 절집은 강아지 두 마리만 왕왕 짓으며 우리를 반겼습니다. 한쪽으로 길게 늘어선 중생사에서 출토된 연꽃 대좌와 석탑의 부재 등 석물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만 더욱 깊게 남습니다.





그러나 중생사는 도리천이라 일컫는 낭산 기슭의 사찰답게 경주 낭산 마애보살 삼존좌상이 보물 제665호에 지정되었으며 이곳에서 뒹굴던 거대한 관음보살 입상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옮겨 전시 중이라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마애보살 삼존좌상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바위면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흔적만남아 있는 마애보살삼존좌상이 보물로 지정된 것을 보면 문화재로서 그 가치가 아주 높은 것 같습니다





경주 낭산 마애보살 삼존좌상은 매우 드문 사례로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가운데 모신 본존불은 머리에다 두건을 썼으며, 양어깨를 감싼 듯한 옷은 고려 불화에서 보는 지장보살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또한, 몸과 머리에서 빛을 내는 모습을 한 광배를 돌렸으며 손 모양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본존불 왼쪽의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오른쪽에 칼을 집고 있으며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위로 올린 유희좌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신장상은 양손에 무기를 들고 있으며 악귀를 내쫓아내는 모습을 하고 있는게 꼭 절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과 닮았습니다.

 





 


현재 중생사 모습. 왼쪽 전각에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 경주 능지탑지 여행.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경주여행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들에는 오곡백과가 누렇게 변해 그야말로 황금들판을 이루었습니다. 여행객들의 입으로 경주는 봄과 가을 여행이 최고라는 말이 허투가 아님을 이번 여행에서 다시 느꼈습니다. 이번 경주여행은 능지탑지입니다.






경주 능지탑지 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


경주 능지탑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621-1






능지탑지하면 벌써 여행을 하신분도 있지만, 저도 이곳을 두 번째 여행합니다. 한번은 이른 초봄에 찾았는데 그때는 삭막했던 겨울의 잔해가 남아 있어서 지금과는 느낌이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경주 능지탑지는 옛 신라인이 매우 신성시한 산으로 여겼던 낭산의 구릉지에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건축물로 2층으로 복원한 게 탑 같기도 하고 무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능지탑을 능시탑, 연화문을 새긴 바위를 테두리에 돌려 연화탑으로도 불립니다. 현재 능지탑은 삼국통일의 원대한 꿈을 이루었던 문무대왕의 죽음을 이곳에서 화장하고 동해 감포 앞바다 대왕암에다 해중릉을 모셨던 곳으로 추정하는 곳입니다.




 

 


능지탑지의 발굴조사에서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소조 불상 조각과 내부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어 누군가의 화장터임을 보여주는데 주위에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등 유적을 보면서 문무왕의 화장터로 보고 있습니다.


 

 

 


문무왕이 죽으면서 “내가 죽거든 열흘 후 창고 문밖 뜰에서 인도불교의식에 따라 검소하게 화장하라”며 유조를 남겼다는 대목이 (삼국사기 권7 문무왕 21년 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고 문밖 뜰’이란 지점이 현재 능지탑지가 세워진 곳이라 합니다.


 










 

 


한때 문무왕의 화장터를 원성왕릉인 괘릉으로 주장했던 적도 있었지만 새로운 조사과정에서 능지탑이 문무왕의 화장터임을 밝혀내었습니다. 복원된 능지탑지를 보면 2층입니다. 현재 주위에 남아 있는 부재를 보면서 원래 능지탑은 5층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마 복원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능지탑은 사각 형태이며 연화문을 새긴 석재가 기단과 탑신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사방의 기단에다 십이지신상을 배치하였는데 그중 뱀과 용 호랑이상은 분실되어 빈 곳의 바위를 설치했습니다.

 





문무대왕하면 삼국을 통일한 위대한 성왕입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당나라와 손잡고 먼저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그다음에 고구려도 멸망시켰습니다. 당나라는 애초에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 주기로 했던 약조를 깨고 신라를 자신의 속국으로 만들려하자 문무왕은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괴멸시키며 승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평양의 안동도호부를 요동성으로 물리고 이 땅에 당나라군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667년 드디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문무왕은 이제 전쟁은 끝났다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만을 염원하며 삼국통일과 당나라와의 전쟁에 사용했던 모든 무기를 땅에다 묻고 무장사를 지었습니다.









삼국을 통일하고 당나라까지 몰아낸 문무왕은 항상 긴장의 연속에서 살았다 갑자기 풀려났기 때문인지 그다음 해에 56세로 붕어했습니다. 죽으면서 시신을 화장해 동해에다 장사지낼 것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문무왕은 불력으로 신라를 왜구로부터 지키고자 서라벌의 입구인 동해구에 감은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끝내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완공하여 문무왕의 유조를 받들었습니다. 이견대와 만파식적 등 문무왕의 전설은 능지탑과 함께 신비함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경주 여행을 하면서 이런 역사와 전설을 한 번쯤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안에 있던 동래독진대아문을 보고 자란 한사람입니다. 당시 금강공원 안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이름이 말바위였습니다. 이곳에서 동래 꼬치 친구와 총싸움, 칼싸움하며 뛰어놀았습니다. 그 옆에는 동래독진대아문의 현판이 걸린 삼문형식의 솟을대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게 왜 이곳에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우리의 놀이터로서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동래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2016/10/17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수축을 기록한 내주축성비

2016/10/13 - [여행]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복천동고분군

2016/10/12 - [여행] - (부산여행)동래 장관청.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음 가봤던 동래 장관청 건물이 지금은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중. 동래 장관청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항상 한번 찾아가야지 하며 생각했던 놀이터의 유물(?)을 금강공원이 아닌 동래부동헌에서 만났습니다. 동래독진대아문은 동래부 동헌을 복원하면서 외대문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동헌 밖에서 현판의 동래독진대아문을 되뇌며 참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릴 적 놀이터로 뛰어놀았던 그 문이었습니다. 동래독진대아문은 처음에 이곳과 마주 보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옛터를 알리는 작은 빗돌이 당시의 동래부 동헌 외대문의 영화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경상좌병영 경주진영에 소속되었던 동래부가 독립하여 독진이 되었음을 알리는 문이며, 지금은 동래부 동헌 안으로 옮겨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東萊府 東軒 外大 門)이었던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인 동래독진대아문은 조선 후기 동래부의 군사적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이곳은 일본과 가까웠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일본과의 전란을 겪었고 크고 작은 충돌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래부에는 일본인의 거주지역인 왜관도 있어 국방과 외교상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고을의 관아보다 규모도 컸습니다. 동래부독진대아문의 건립은 1636년인 인조 14년에 동래부사였던 정양필이 두 전란으로 황폐되었던 동래부동헌을 새로 건립하면서 함께 건립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870년 고종 7년에 동래부사 정현덕이 중건했으며 외삼문 가운데에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 현판이 떡하니 걸려 있습니다. 그 아래 두 기둥에는 주련이 달렸습니다.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과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사) 현판으로 동래부가 진변의 병마절제사영이고 대일외교를 하면서 일본사신을 접대하는 관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독진이 된다는 뜻은 원래 동래부의 군사적 관할은 경상좌병영의 지휘하에 경주 진관 소속이었습니다. 경주진관소속에서 따로 독립하여 동래독진이 되었음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유적이 현재 수영시장 인근에 남아있는 경상좌수영 건물입니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은 전형적인 관아 대문 모습입니다. 규모는 작으나 삼문형식의 솟을대문은 흔하지 않으며 천정 아래 홍살이 있어 처음부터 외삼문이었던 건물로 보입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홑처마입니다. 이 건물은 동헌 대문으로 망미루 뒤편에 세워졌는데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경에 시가지 정비를 하면서 철거위기에 처하자 동래 백성들의 노력으로 망미루, 내주축성비와 함께 금강공원 입구와 안으로 옮겨졌으며 2014년 8월 동래부 동헌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동래독진대아문(동래부 동헌 외삼문)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5호

동래부 동헌 동래독진대아문(동래부 동헌 외삼문)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 112번길 61(수안동)


 


 

(함안여행/함안가볼만한곳)방어산마애불. 보물 제159호 통일신라시대 함안방어산마애불 여행을 하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방어산에는 방어산 정상 못 미쳐 보물 제159호 ‘방어산마애불’이 있습니다. 방어산은 이름 그대로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했다’는 뜻을 가졌으며 산세는 깎아지른 바위벼랑으로 천연요새와 다름없는 옹골찬 산세입니다. 방어산 마애불은 이 중 하나의 바위에다 새겨 놓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 정도로 지금은 옅어졌습니다.




 




 

 

 

마애약사여래불 


바위의 높이는 6m에 폭은 대략 7.5m이며 거친 바위 면에다 마애불을 새겼습니다. 방어산 마애불은 약사삼존불로로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 세 분의 부처님입니다. 4.5m 크기의 약사여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추정되는 3.3m 크기의 협시보살 두 분을 새겼습니다. 약사여래불은 앞을 보고 있으며 두 분의 협시보살은 모두 약사여래불을 향하고 있습니다.


 

 일광보살

 

 월광보살

 

 


주존불인 약사불은 옷이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 법의을 걸쳤으며 바위의 암질로 인해서 마모가 심한 상태지만 옷자락은 무릎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보이고 배까지 올린 왼손에는 약그릇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어서 약사불이라 부릅니다.


 

 

 

 


또한, 정수리에는 봉긋하게 솟은 육계 하며 소발, 이마는 짧으며 두 눈썹 사이에 백호가 음각되어 전체적으로 얼굴은 약간 길고 몸은 큰데 좁은 어깨 하며, 힘을 뺀 몸에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위엄은 갖추었습니다.


 

 

 

 

 

 

 

 

 

 


두 협시보살은 약사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일광과 월광보살임을 알 수 있으며 보살상 또한 통견의 법의에다 주존불과는 다르게 어깨 위에 걸친 천의자락이 무릎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모습입니다. 왼쪽 일광보살은 가슴까지 두 손을 올렸으며 강한 남성적인 모습에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왼손은 손등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월광보살은 여성적이며 미간에 달을 뜻하는 둥근 무늬를 새겼고 두 손을 가슴에다 모으고 있습니다. 세 분 모두 발뒤꿈치를 붙인 일자 형태이며 활짝 핀 연꽃잎이 위로 향하는 앙련의 연꽃좌대 위에 서 있습니다. 방어산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의 제작연대는 협시보살인 일광보살 오른쪽에 43자의 명문을 새겨 놓았습니다.


 

 

 

 

 

 

 

 

 

 


내용을 보면 ‘정원 17년 3월 16일에 마애불을 조성하였다’란 뜻입니다. 이는 당나라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인 801년으로 애장왕 2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어산 마애불은 당시 100여 년 전 불상에다 표현한 활력 넘치던 이상적표현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잘 나타내는 불상으로 통일신라 불상 조각사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방어산 마애불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면 산131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얼굴인 웅장한 일주문 조계문을 만나다. 


모든 사찰의 얼굴은 무엇일까요??? 저는 생각하기로 그것은 주지 스님의 얼굴도 아니고 대웅전도 아니며 사찰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만나는 웅장하거나 소박한 모습을 한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보면 대부분 사찰의 규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정산 범어사에서는 여타 사찰의 일주문과 조금은 색다른 일주문을 보게됩니다.





 



일반 일주문은 기둥이 2개뿐이지만 범어사 일주문은 ‘조계문’으로 불리면서 4개의 우람한 돌기둥에 아름다운 공포에 화려한 단청을 입혀 범어사의 얼굴로는 조금의 손색도 없습니다. 범어사의 얼굴답게 조계문은 그에 걸맞은 보물 제1461호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범어사 조계문을 들어서야만 드디어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들어서는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가 조계문 앞에 빗돌로 남아 있습니다. 일주문을 두고 “보통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어 삼해탈문이라”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통 일주문은 2개의 기둥에 양쪽, 네 귀퉁이에 보조로 기둥을 받쳐 안정감을 주는 게 상식인데 범어사 조계문은 이런 방식을 하지 않고 한일자로 길게 4개의 큰 기둥을 세웠습니다. 보기에도 웅장하며 튼튼해 보이고 무엇인가 안정감을 더욱 들게 합니다.


 





범어사 조계문이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범어사의 다른 건물과 함께 여러 가지로 추정해볼 때 1614년인 광해군 6년에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두 전란을 일으킨 왜(倭)의 전초기지는 부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범어사는 짐작하건대 아마 쑥대밭이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전란이 끝나고 세월이 지나 묘전 화상이 다시 범어사전각들을 대대적으로 중수하면서 함께 세우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범어사 조계문을 살펴보면 네 기둥에다 모두 돌을 깎아 기다란 초석을 하고 그 위에는 굵고 짧게 배흘림을 한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립과 함께 이 돌기둥이 있었던 게 아니라 1718년 숙종 44년에 명흡대사께서 기존의 기둥을 빼내고 새로 바꾸었으며 1781년 정조 5년에 백암선사께서 지금의 일주문인 조계문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계문은 앞면 3칸에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에다 다포양식입니다. 지붕 또한 아주 무겁게 느껴지는데 이를 스스로 4개의 기둥으로 무게를 지탱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요즘 경주에서 발생한 5.8 강진에도 한일자로 길게 늘어 쓴 일주문이 끄떡도 없이 견디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고 대견합니다.





범어사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범어사)  

범어사 전화:051-508-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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