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범어사 원효암, 범어사 원효암에서 원효와 의상을 만나다. 


범어사는 의상대사께서 창건했다면 금정산의 원효암은 이름 그대로 원효대사께서 창건했습니다. 이 두 분은 동년에 서로 호형호제하며 신라불교를 이끌어왔으며 원효가 있어야 의상이 있고 의상이 있어야 원효가 빛이 발하는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범어사 원효암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명륜동 546

범어사 원효암 전화:051-508-4008



 

 

이곳 금정산에서는 두 분이 서로 사이좋게 절을 세웠으며 또한, 두 스님이 참선했던 범어삼기의 원효석대와 금정팔경의 의상망해도 이웃하고 있어 원효와 의상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효석대와 의상망해의 의상대는 100m의 거리를 두고 솟은 바위 전망대로 의상대는 일반인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원효석대는 기치 창검의 바위를 기단삼아  그위에다 원효의 좌선바위가 놓여 일반인은 위험해서 함부로 접근조차 하기 힘듭니다.



 

 

 

필자는 여러 번 원효암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발길이 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원효암을 여행하면서 당시 세월의 무게가 내려 앉은 고졸한 전각은 오간데 없고 모두 새로 들어선 삐까번쩍한 건물을 보면서 느낀 점은 원효암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조용한 산사의 고느적한 예스러움이 사라진게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해발 500m 높이의 원효암은 범어사에서 대략 2~30분은 발품을 팔아야만 만나고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아마 원효대사도 미륵암과 함께 창건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며 다만 원효가 머물면서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옵니다.



 

 

 


원효암 입구를 들어서면 키 큰 편백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울창창합니다. 그 속에 조선 시대에 세워진 종형의 부도군이 있습니다. 부도군이라 해봤자 모두 3기로 스님의 부도인  승탑입니다. 이 승탑은 모두 조선 말기에 세워졌으며 그와 마주한 곳에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1호이며 경내에 있는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2호인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인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건립된것으로 추정합니다. 큰 지대석 위에 현재 3층의 탑신부만 남아 있으며 탑의 형식에서 가늠해보면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가 올려졌을 것이나 지금은 기단부와 상륜부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각층의 탑신부에 올려진 지붕돌인 옥개석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파손의 정도가 심한데 이는 무너졌던 석탑의 부재를 수습하여 다시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했으며 옥신석에는 귀기둥을, 옥개석의 중급 받침은 4단으로 조각하였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탑신의 옥신석은 비례나 재질을 고려해 보면 뒤에 보충된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효암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수법을 보면 10세기경의 석탑으로 추정하며 본래 위치에 재건하였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원효암 대웅전의 위치와 창건 시기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석탑입니다.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은 동편 삼층석탑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경내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동탑과 마찬가지로 이중 기단 위에 세워졌는데 지대석과 하층 기단을 구성하는 하대중석과 상륜부가 남아있지 않으며 하대갑석 위에 상층기단과 3층의 탑신부만 현재 남아 있습니다.


 

 

 

 

 

 

 

 

 

하대갑석의 두 판은 판석으로, 뒷면의 상대중석은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돌로 구성되는데 이는 다른 석탑의 부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각각의 옥개석은 3단의 층급 받침에 옥신석에는 귀기둥을 조각했습니다. 그리고 서편 삼층 옆에는 또 다른 부도가 있습니다. 주석하고 있는 스님께 승탑의 주인을 물었더니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원효석대



 

 

 

 

 

의상대 

 

 

 

 

 

 



(부산여행/금정산 산행)금정산 고당봉~금샘 산행.  만추의 가을빛이 내려 앉은 금정산 고당봉~금샘산행,

 

금정산에도 이제 붉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지난주에 산성마을이라 불리는 금성동 죽전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미륵사를 거쳐 금정상 정상인 고당봉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금정산 산 이름의 유래가 된 금샘을 거쳐 금정산의 명물인 남근석을 보고 임도를 따라 범어사로 하산했습니다.






 

 

 

 

 

 

금정산 옛길인 시시골 산행은 203번 종점인 죽전마을에서 시작합니다. 금성동1통 마을회관이 있는 203번 버스 주차장에서 종점집 음식점 왼편 길로 곧장 갑니다 금성동 교회 건물을 지나면서 오가는 이가 뜸한 한적한 콘크리트 길로 바뀝니다. 10여 분이면 양계장 앞 도원사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입니다. 산길은 오른쪽으로 꺾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금정산 산행이 시작되며 그 번잡했던 도심의 소음을 말끔하게 씻어 줍니다. 키 큰 소나무 숲길을 살포시 넘으면 평지 같은 오솔길이 이어지고 금정산성의 중성에 설치된 암문이 나타납니다. 자연석 막돌을 쌓아 만든 금정산성의 암문은 그 원형이 완벽할 정도로 남아 있습니다.




 

 

 

 

 

 

전란 때 적에게 동태가 발각 나지 않게 드나들었다는 암문을 빠져나오면 완만한 오솔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시골농장 음식점을 지나 부산학생교육원 진입로에 닿습니다. 도로를 가로질러 유씨농원으로 직진합니다. 넓은 산길은 오솔길로 바뀌고 하늘을 가렸던 나뭇잎은 모두 붉고 노란 옷을 털어내는 중입니다.


 

 

 

그와 반대로 바위가 박혀있는 울퉁불퉁한 산길은 떨어진 낙엽으로 인해 한층 더 깊게 가을의 여운이 계곡을 파고듭니다. 졸졸졸 시시골을 흐르는 물소리가 이제는 꼭 반갑지 않은 날씨입니다. 계곡에 걸린 너른 공터와 만나면 갈림길입니다. 계곡을 건너면 제2금샘 방향이고 고당봉으로 향하는 미륵사는 오른쪽입니다.


 

 

 

 

 

 

 

 

 

계곡을 두 세차례 건너다보면 어느새 북문으로 향하는 임도와 만납니다. 교육원 입구 도로에서 30분 소요. 갈림길에서 왼쪽 미륵사 방향으로 꺾으면 미륵사에서 설치한 연등이 산길을 인도합니다. 등산로 옆의 만추홍엽 단풍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미륵사 마당입니다.


 

 

 

 

염화전의 꽃문살 

 

 

 

 

 

 

 

법당 뒤로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그 가운데 바위가 햇빛을 받으면 미륵불로 나타난다합니다. 미륵사에서 범종각 앞을 지나 화장실 방향으로 향합니다. 50m 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율리(6.2km)는 직진이고 고당봉(1.1km)은 오른쪽으로 꺾어 오르막 능선길입니다.


 

 

 

 

 

 

5분이면 주 능선에 올라서고 오른쪽 능선을 다시 타면 고당봉 방향입니다. 미륵봉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미륵봉을 통과하고 바로 고당봉(0.7km)으로 향합니다. 200m쯤 가면 다시 미륵사 갈림길, 이제 고당봉은 지척인 500m 거리입니다.


 

 

 

 

장군바위 

 

 

 

 

 

 

 

 

 미륵바위

 

이곳에서는 바위봉우리 고당봉이 성채처럼 보이는데 오늘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산성을 끼고 난 등산로는 정상으로 향하고 사각의 바위기둥이 우뚝 선 장군바위를 지나면 고당봉 바위 밑에 자연석인 미륵바위가 사부대중에게 산길을 인도합니다. 미륵바위 오른쪽으로 난 길을 오릅니다.


 

 

 

곧 정상을 오르는 덱계단이 있으며 고당 할미를 모신 고모당에서 암괘에 설치된 또 다른 덱 계단을 오르면 금정산 정상인 801.5m 고당봉 정상입니다. 고당봉에는 많은 산꾼이 정상 등정을 만끽하며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금정산 정상석은 지난여름 내리 친 번개로 파괴되었고 최근에 다시 정상석이 세워졌습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시계 제로입니다. 다방리(8km) 이정표를 보고 어서 빨리 금샘으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수직의 철계단을 내려가면 갈림길. 금샘(0.35km)은 직진합니다. 참고로 왼쪽은 장군봉과 범어사 방향입니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고당봉을 우회하는 산길과 만납니다. 오른쪽이 북문 방향이라면 금샘은 왼쪽, 30m 앞 갈림길에서 다시 금샘(0.2km)은 오른쪽으로 꺾습니다. 왼쪽은 범어사(3.6km)방향. 금샘까지는 200m 작은 안내판이 여러 개 붙어 있어 길찾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금샘 전망대을 오르는 암반에 안전밧줄이 묶여 있으며 이곳에 올라설 때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정상에서 10분이면 금샘입니다. 금샘은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빛 붕어가 노닐었다는 돌우물로 범어사와 금정산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금샘은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6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금샘 바위를 내려와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금정산을 횡단하는 너른 길과 만남니다. 오른쪽은 북문 방향이며 왼쪽은 범어사방향. 일단 금정산의 보물인 남근석을 보고 갑니다. 오른쪽으로 50m 진행하면 산길은 능선을 돌아갑니다. 이 지점에서 왼쪽 능선으로 산길이 내려가지만 밧줄로 막아놓았습니다.


 

 

 

밧줄을 넘어서 100m만 가면 오른쪽 바위 뒤에 장군의 칼처럼 우뚝 솟은 금정산의 기물 남근석이 있습니다. 기자신앙의 발로로 남문 인근의 수박 샘에 있는 여근석과 대각선 방향으로 일직선을 긋고 있으며 산성마을 주민에게는 아주 신성시하는 곳입니다. 몇해전 국제신문 근교산에서 금정산의 숨은 기물인 남근석과 여근석을 소개하는 산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다시 고당봉 갈림길까지 돌아가 직진하면 범어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납니다. 범어사는 오른쪽입니다. 이제 너른 임도만 따라가면 산행 종착지인 범어사 경내 주차장입니다. 현재 금정산 하산길에는 단풍이 만산홍엽을 이루며 붉게 물든 가을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남근석에서 범어사 주차장까지 대략 60분이면 산행 끝.


 

 

 

 

 

 

 

 

 

 

 

 

 

 

 

 

 

 

 

 

 

범어사은행나무 

 

 

범어사 조계문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호국사찰 금정산 범어사 여행


부산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큰 규모인 금정산 범어사.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로 양산 통도사, 가야산 해인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입니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과 부산 최고의 사찰인 범어사는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그 유래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2016/10/01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는 당을 걸었던 당간은 없고 범어사에는 범어사 당간지주만 남았네요. 범어사 당간지주

2016/09/30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얼굴인 웅장한 일주문 조계문을 만나다. 범어사일주문 조계문

2016/09/29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외벽의 담벽에서 만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대단.



범어사 일주문 조계문


유래를 보면 금정산 산정에 50척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사시사철 물이 가득하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물빛은 항상 금빛을 띠고 있어 그곳에는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어가 살고 있다 하여 금정산과 범어사의 설화가 탄생했습니다.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대사께서 신라 문무왕 10년인 670년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678년에 창건했습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도 범어사가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되어 있는 게 범어사 창건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천왕문 


그리고 범어사의 창건 설화를 보면 신라 문무왕 당시 왜군의 침입이 잦아 대왕이 항상 근심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왜인이 신라를 공격해온다는 소문으로 대왕은 수심에 가득 차 잠이 들었는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당나라에서 귀국한 의상을 불러 ‘화엄신중기도’를 권하며 사라졌습니다.





문무왕은 의상과 함께 금정산에 올라 7일 동안 화엄신중독송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남해의 왜선은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죽고 죽이더니 물러갔다 합니다. 문무왕은 크게 기뻐하며 의상에게 이곳에다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게 오늘날의 범어사입니다.


 

보제루


그러니까 범어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왜구를 진압했던 비보 사찰인데 이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에는 서산대사가 범어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조직하자 그것을 알게 된 왜군은 범어사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고, 1919년에는 만해 한용운 스님과 범어사 스님의 독립운동입니다.


 




구포 나루에서 3.1만세 독립선언문 초안을 몸에 품고 왜경의 눈을 피해 금정산을 넘어와 범어사에 도착하여 밤새워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범어사 스님과 부설학교인 명정보통학교(현 금정중학교) 학생은 동래장터에서 부산 최초의 3.1운동을 주도하다 스님과 학생은 투옥되었고 학교는 폐교되는 등 부산의 항일 운동은 범어사를 시작으로 들불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범어사의 현존하는 건물은 모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에 건립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범어사를 호국사찰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임진왜란 이후로 범어사는 10여 년간 폐허가 되었습니다.





문무왕의 청으로 의상이 창간했던 범어사는 전각이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으며 웅장했다는데 그만 왜적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으며 선조 35년인 1602년에 관선사에 의해 중건하지만, 다시 화재로 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여러 스님에 의해 법등의 불을 밝히는 중창을 하여 오늘날 범어사의 뿌리가 됩니다. 범어사의 가람배치를 보면 산지가람의 특성상 일반사찰과 다른 모습입니다. 맨 아래에다 일주문인 조계문을 세우고 그다음에 천왕문, 불이문을 배치했습니다.



 

 



범어사의 강당인 보제루는 불이문에서 7m의 높이에 계단을 만들어 그 위에 세웠는데 보제루 밑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올라섭니다. 근래까지는 보제루를 돌아서 대웅전 앞마당에 다다랐는데 일제강점기 때 보제루가 변형되어 그 모습이 많이 훼손되어 호국사찰인 범어사에서 일제 잔재가 왼 말이냐며 지금은 삼층석탑의 난간 철거와 함께 보제루도 옛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범어사에서 가장 큰 규모답게 당당하며 웅장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둘러보면 범어사의 모든 전각이 보일 정도로 넓게 조성되었습니다. 보제루 좌우로는 심검당과 비로전, 미륵전을 각각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뒤쪽으로는 선원과 스님들의 요사채, 종무소를, 심검당 뒤로는 강당 등 승려들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당 끝에는 삼층석탑과 고려 시대 석등 사이에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대략 8m의 축대 위에 1613년에 중수된 대웅전이 보무도 당당한 모습입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는 지금은 수리 중인 관음전과 일로향각이 자리하고 왼쪽으로는 명부전과 서향각이 그리고 한 단 높여 한일자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팔상전·독성각·나한전입니다. 제가 이번 범어사 여행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곳입니다.
















화려하기로 그지없는 독성각의 문살과 조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세히 보면 독성각의 눈길을 잡는 것은 무지개형의 문틀 좌우로 모란꽃이 조각되었고 그 밑에 보살 두 분이 각각의 꽃을 받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꽃무늬 문살 또한 독성각의 격조를 한층 더 높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참을 넋을 잃고 문틀 조각을 봤습니다. 팔상전·독성각·나한전의 전각은 18세기 초에 지어졌는데 처음에는 가운데 천태문만 있었으며 1905년 중수하면서 앞면 7칸의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독성각은 스승을 모시지 않고 혼자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말하는데 이는 나반존자를 말하며 이번 범어사 여행을 하면서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범어사의 전각들은 저를 더욱 궁금증을 유발하게 합니다. 다음에 범어사의 다른 전각을 만나기 다시 위해 찾아야겠습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불




범어사 부도





 금정상 고당봉


 



금정산 범어사의 유래인 금샘. 금정산 산정에 50척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사시사철 물이 가득하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물빛은 항상 금빛을 띠고 있어 그곳에는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어가 살고 있다 하여 금정산과 범어사의 설화가 탄생했습니다.



범어사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전화:051-506-3122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는 당을 걸었던 당간은 없고 범어사에는 범어사 당간지주만 남았네요.



오래된 사찰 입구에 똑같은 모습을 한두 개의 돌기둥이 있습니다. 이를 당간지주라 하는데 그 역할은 사찰의 표시등 다양한 용도의 깃발을 거는 데 필요한 장대인 당간을 세우기 위한 고정시설물을 말합니다.








2016/09/30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얼굴인 웅장한 일주문 조계문을 만나다. 범어사일주문 조계문

2016/09/29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외벽의 담벽에서 만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대단.






흔히 당간은 돌 또는 쇠, 그리고 나무로 되었는데 양산에 있는 통도사의 당간은 돌을 깎아 세웠다면 계룡산 갑사의 당간은 철로 만들녀 졌던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 범어사의 당간은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범어사 창건 사적’과 ‘범어사 사적비명’에 33단의 철당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철당간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아주 귀한 문화재가 될 뻔 했는데 안타깝게도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남아 범어사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33이란 숫자는 불교에서 이상의 세계인 33척을 나타낸 것인데 당간에 그 숫자를 부여한 것을 보면 절에서 당간의 의미가 아주 크다 하겠습니다.





범어사의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 범어사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보다는 늦은 시기에 세워졌습니다. 또한, 범어사 당간지주는 돌을 다듬은 솜씨가 정교하지 않고 약간은 투박한 듯하며 소박한 느낌까지 듭니다.










당간지주의 높이는 4.5m에 아주 큰 규모로 이 정도의 크기면은 당간의 규모는 대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간지주는 가로가 50cm, 세로가 87cm이며 기둥의 간격은 79cm로 지주는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끝머리가서는 둥글게 처리했습니다. 현재 범어사 당간지주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입니다.





옛날 물을 받아 보관 했던 돌그릇인 수조는 지금은 어항으로 사용중입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얼굴인 웅장한 일주문 조계문을 만나다. 


모든 사찰의 얼굴은 무엇일까요??? 저는 생각하기로 그것은 주지 스님의 얼굴도 아니고 대웅전도 아니며 사찰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만나는 웅장하거나 소박한 모습을 한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보면 대부분 사찰의 규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정산 범어사에서는 여타 사찰의 일주문과 조금은 색다른 일주문을 보게됩니다.





 



일반 일주문은 기둥이 2개뿐이지만 범어사 일주문은 ‘조계문’으로 불리면서 4개의 우람한 돌기둥에 아름다운 공포에 화려한 단청을 입혀 범어사의 얼굴로는 조금의 손색도 없습니다. 범어사의 얼굴답게 조계문은 그에 걸맞은 보물 제1461호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범어사 조계문을 들어서야만 드디어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들어서는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가 조계문 앞에 빗돌로 남아 있습니다. 일주문을 두고 “보통 만법이 모두 갖추어져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어 삼해탈문이라”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통 일주문은 2개의 기둥에 양쪽, 네 귀퉁이에 보조로 기둥을 받쳐 안정감을 주는 게 상식인데 범어사 조계문은 이런 방식을 하지 않고 한일자로 길게 4개의 큰 기둥을 세웠습니다. 보기에도 웅장하며 튼튼해 보이고 무엇인가 안정감을 더욱 들게 합니다.


 





범어사 조계문이 세워진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범어사의 다른 건물과 함께 여러 가지로 추정해볼 때 1614년인 광해군 6년에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두 전란을 일으킨 왜(倭)의 전초기지는 부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범어사는 짐작하건대 아마 쑥대밭이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전란이 끝나고 세월이 지나 묘전 화상이 다시 범어사전각들을 대대적으로 중수하면서 함께 세우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범어사 조계문을 살펴보면 네 기둥에다 모두 돌을 깎아 기다란 초석을 하고 그 위에는 굵고 짧게 배흘림을 한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립과 함께 이 돌기둥이 있었던 게 아니라 1718년 숙종 44년에 명흡대사께서 기존의 기둥을 빼내고 새로 바꾸었으며 1781년 정조 5년에 백암선사께서 지금의 일주문인 조계문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계문은 앞면 3칸에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에다 다포양식입니다. 지붕 또한 아주 무겁게 느껴지는데 이를 스스로 4개의 기둥으로 무게를 지탱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요즘 경주에서 발생한 5.8 강진에도 한일자로 길게 늘어 쓴 일주문이 끄떡도 없이 견디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고 대견합니다.





범어사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범어사)  

범어사 전화:051-508-3122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범어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외벽의 담벽에서 만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대단.  


제가 부산에 살고 있으면 금정산을 오르고 아니면 고당봉에서 내려오거나 하면서 매번 통과하는 게 부산 최대 사찰인 금정산 범어사입니다. 그래도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항상 부처님을 찾는 반 불교도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항상 범어사를 다녀서 그런가 다른 오래된 사찰처럼 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뭐 항상 수박 겉핥기로 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하여튼 지금까지 범어사를 너무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범어사를 연달아서 3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대웅전을 보면서 전에 그리 보고 다녀도 외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희미하게 그려진 벽화를 보게 되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흥분의 도가니였다고나 해야할까요. 대웅전을 정면으로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대웅전 우측 벽 상단에 힘이 넘쳐 흐르는 긴 꼬리에 허리는 잘룩하며 경계하는 듯 네 발에 힘이 들어가고 두 눈을 부라린 백호가 그려져 있습니다. 호랑이의 입은 또 어떤가요.


 

 

 

 


크게 입을 벌리며 웃는 듯한 모습을 하면서 역시 백수의 왕 호랑이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호랑이와 함께 백학과 백록(사슴)의 모습을 보면서 사찰 대웅전에다 왜 이런 짐승을 그렸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호도 그러하고 사슴과 학까지 귀한 흰색을 나타내는 것은 대웅전을 지키는 비보 역할인가 생각해봅니다. 지금 대웅전 외벽의 방풍판 안쪽에 있지만, 비바람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 벽의 벽화는 그나마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아 매우 안타까우며 어서 빨리 대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범어사 대웅전은 1966년 2월 28일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범어사의 중심법당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며 왼쪽에는 미래불인 미륵불과 오른쪽은 과거불인 제화갈라를 보살의 모습으로 모셨습니다



 


왼쪽에는 미래불인 미륵불과 오른쪽은 과거불인 제화갈라를 보살의 모습으로 모셨습니다. 대웅전의 주존불은 1661년 현종 2년에 조각승 희장이 제작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으로 사 대웅전과 함께 2007년 9월 16일 보물 제1526호에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개금불사를 한 생태입니다.


 

 

 


앞면과 옆면이 각각 3칸이며 이는 임진왜란 이후에 성행했던 다포식 맞배지붕 양식으로 범어사 대웅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기 회에 범어사 대웅전을 보면서 문화재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내면의 모습을 중시 여겨야 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대웅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또다시 범어사 대웅전을 찾아야겠습니다.


 

 

 

 

 

 


◆부산 범어사 정보 안내

★ 범어사 주소: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546

★전화:051-508-363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