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전혀 다른 모습인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경주 여행 포스팅에서 이번에는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서출지 가운데 있는 경주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경주 남산은 문화재의 보고라 할 만큼 많은 보물과 국보가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 떡을 주무르듯이 빚어낸 석불과 석탑이 남산을 가득 채웠고 그것도 모자라 남산 언저리에 무수한 문화재가 널려 있습니다.




경주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227-3

보물 제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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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곳이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은 폐사지로 추정되지만 염불사지 같은 절터 명칭을 찾지 못하고 지역의 이름을 따와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남산리 서 삼층석탑


그런데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이 자리한 이곳은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남산사로『삼국유사』에는 ‘남산 동쪽의 양피사’를 근거로 폐사지를 추정하고 있을 뿐 아직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 합니다. 

아마 인근에 양피 저수지가 있는 것을 저수지 명칭이 양피사에서 근거한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은 나란히 섰다 하여 보통 남산리 쌍탑이라 합니다. 

그런데 쌍탑이라면 쌍둥이처럼 똑 닮지는 않아도 조금은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산리 쌍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완전 180도로 그 모습을 달리하는 이란성 쌍둥이인 특이한 모습이라 더욱 눈길이 갑니다.




남산리 서 삼층석탑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쪽 탑은 모전 석탑의 형식으로 세웠다 생각됩니다. 

기단부는 바위를 벽돌식으로 다듬어 쌓았으며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 8개를 어긋나게 놓아 서로 물리게끔 했습니다. 

층마다 몸돌과 옥개석인 지붕돌을 한 개씩 다듬어 올렸고 전탑 형식인 죽장리 오층석탑과 같은 지붕돌의 경사면에 5개의 층단을 두었습니다. 

또한, 처마 밑에도 층급받침을 5개 두었습니다.





남산리 서탑은 동탑에 비해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하겠습니다. 

동탑의 기단부는 돌을 그냥 다듬은 형태로 쌓았다면 서탑은 2중 기단에 위층은 사방 널돌에 팔부중상을 돋을새김한게 돋보입니다. 

진짜 예술성이 장난 아닙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이 꿀떡 같았지만, 문화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둘려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보이는 곳만 렌즈를 당겨 담았습니다. 

팔부중상 하나하나 개성이 넘쳐나며 한 분 한 분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세세하게 조각했습니다. 

한 면마다 불법을 수호하는 두 분의 팔부신장을 조각했는데 동쪽에는 야차와 용, 남쪽은 아수라와 건달바, 북쪽은 긴나라와 마후라가 서쪽은 천과 가루라 신장입니다.



팔부중상은 신라 중대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탑은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을 나타내는 신앙의 한 표현입니다. 

원래 석탑은 열반에 든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곳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듯이 아주 신성시 하며 불법을 보호하는 팔부신장을 새겨 악귀들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의 높이는 동탑은 7.04m, 서탑은 5.85m이며 동탑이 서탑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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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동쪽에는 특별난 이력의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이라 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연못보다는 조금 큰 못이라 생각됩니다. 

이곳에 정자를 지어 놓고 세상 시름을 잊으며 지냈을 분을 생각하니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뒤로는 경주를 대표하는 남산이 드리우고 앞에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은 토함산을 정원 삼아 그 가운데 연못에 정자을 세운 이요당은 사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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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돌을 쌓아 정자의 턱을 받쳤으며 나머지는 연못에 몸을 맡기며 즐거움을 노래했을 이요당은 1664년 조선 현종 5년에 임적(1612~1672)이 지었던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3칸 규모였다고 하나 5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치며 앞면 4칸에 옆면 2칸으로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팔작기와지붕에 건물은 ‘ㄱ’자 형태입니다.

 


임적은 평소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 마을에서 덕망이 높았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어 농작물이 바싹 말라 농민이 애를 태웠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선생은 직접 땅밑에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내어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마을에까지 물을 공급하여 사용하게 했습니다. 

서출지 정자의 편액은 물과 산을 즐긴다는 ‘요산요수’의 뜻을 취해 ‘이요당’이 되었습니다.





이요당을 품은 서출지는 신라 시대 때부터 있었으며 전설이 있습니다.

488년 신라 21대 소지왕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소지왕은 궁궐을 나왔다가 남산 아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난데없이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습니다. 

쥐는 소지왕에게 까마귀가 날아가는 쪽을 가르키며 따라가라고 일렀습니다.


 


소지왕은 신하를 보내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신하가 서출지 부근에 이르자 멧돼지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정신이 팔려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면서 소지왕에게 전해주라고 당부했습니다. 

신하는 괴이하게 생각하여 소지왕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봉투 겉면에는 “봉투를 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만약에 보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는 글이 있어 고민하다가 두 명이 죽는 거보다는 한명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봉투를 뜯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보고는 “두 명은 백성을 말하며 한 명은 임금을 뜻한다며 봉투를 뜯을 것을 아뢰었습니다.


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소지왕이 봉투를 뜯었더니 안에는 ‘사금갑(射射匣)’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며 소지왕은 궁궐로 돌아와 활을 당겨 화살을 거문고 통에 쏘았습니다. 

그때 거문고 통 안에서 비명이 났습니다. 

통 안을 보니 궁녀와 승려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잡아 참형시키고 그일이 있은 후 서찰을 받아 임금의 목숨을 구했다는 뜻인 서출지(書出池)라 불렀습니다. 

서출지 사적 제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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