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구여행/부산동구가볼만한곳)호랭이이바구길. 부산 동구 범일동 호랭이이바구길을 걷다
이번에 부산의 이바구길인 동구 호랭이이바구길을 산보 삼아 다시 한번 걸었습니다. 도시철도 1호선 범일역 7번 출구로 나오면 현대백화점입니다. 이곳 현대백화점에서 동구 호랭이이바구길은 출발합니다. 호랭이이바구길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면서 백화점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도로를 걷습니다.
안창마을 주소: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산 65-300
호랭이 이바구길 지도
곧 하늘에 걸린 구름다리가 보일 때쯤에 갑자기 하수가 흐르는 도심 속의 하천이 나타납니다. 이 하천이 수정산에서 발원하는 호계천입니다. 범일동과 범천동의 유래가 되었던 골짜기지만 지금은 도심에 묻혀 계곡의 흔적은 이곳 이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호계천일대가 온통 수림의 바다였습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숲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몸을 숨기고 살았다 합니다. 지금이야 모두 집이 들어서고 도심의 개발에 밀려 숲의 흔적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호랭이이바구길의 흔적을 찾아 발길을 옮겼습니다. 구름다리를 올라갑니다.
경부선 철로에 걸린 구름다리는 언제부터인가 ‘친구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부산 출신 영화감독 곽경택이 메가폰을 잡아 ‘친구’가 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유행병처럼 번졌던 명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등 유행어를 남겼던 영화 친구는 부산 영화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구름다리를 다람쥐처럼 뛰어올라 범일동 극장 방향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던 우리들의 친구.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나도 배낭을 옆구리에 끼고 냅다 뛰어보지만 아이고 무릎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는 게 이제 다되었나 봅니다. 나의 학창시절도 이럴 때가 있었다며 그때를 생각하고 보림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이야 영화관이 모두 광복동과 서면 해운대로 몰려있지만, 예전에는 보림극장하면 부산 최고의 시설을 갖춘 빵빵한 영화관이었습니다. 실제 시설과 규모 때문에 영화상영보다는 당대의 기라성 같았던 연예인이 단골로 출연해 리사이틀을 주로 열었습니다.
가수 남진·나훈아·하춘화·이미자와 코미디언 서영춘·배삼룡 등 백지수표를 제시하며 모셔갔다던 연예인을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 역사의 굴레 속에 폐관되었다가 부산 동구 호랭이이바구길로 조금은 옛 명성을 잇고자 당시를 회상하는 걸개그림을 달았습니다.
참 많은 사람을 울게 하고 웃게 했습니다. 보림극장을 왼쪽으로 돌면 범일 골목 시장입니다. 지금이야 쇠락하여 명맥만 유지하지만, 한때는 좁은 골목길에 시장을 보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던 곳입니다.
이는 한국동란의 피난민과 6~70년 경기가 살아나면서 호구지책으로 탈 농촌 하여 무조건 도시로 올라온 사람이 신발공장과 봉제 공장이 많았던 범일동·범천동에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상사·삼화고무·태화고무 등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굵직굵직한 공장입니다.
이들 여공과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채소와 생선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고 갔는지 이제 범일 골목 시장도 추억만이 흘렀습니다. 골목 안에 ‘동구 영화 촬영지’를 훑어보면서 우리가 보았던 많은 영화가 동구에서 촬영되었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골목 시장을 지나다 보면 호천석교비 안내판이 있습니다. 1711년 숙정 37년에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 썩고 해서 돌다리로 바꾸면서 세운 기념비로 당시에 세웠던 비석은 2000년에 박물관으로 옮겨가고 그 대신 지금의 비석을 세워 호천석교비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호천석교비를 지나면 ‘누나의 길’과 만납니다. 6~70년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무작정 고향을 떠나 신발공장이 많았던 범일동에 몰려들었던 우리의 누나들... 이 골목길은 신발공장, 봉제 공장에서 여공이 되었던 수많은 누나가 출·퇴근하면서 오르내렸던 골목길입니다.
하늘의 별과 함께 출근하고 하늘에 솟은 달과 함께 퇴근하면서 지났던 골목길. 그 당시 출퇴근 시간에는 따각따각 하는 누나들의 구둣발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합니다. 그 누나들의 흔적이 신발박물관에 남아있으며 골목 담벼락 이곳저곳에 빛바랜 흑백사진으로나마 당시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신발박물관
신발박물관은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아름빌 아파트 앞입니다. 여러 갈래가 갈라지지만 아름빌아파트를 왼쪽으로 끼고 도로를 따라갑니다. 왼쪽 산비탈에 ‘극장이야기’ 안내판이 있습니다. 영화 포스트, 당시 동구의 수많았던 영화관이 있었음을 알게끔 꾸며놓았습니다.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 등이 있었으며 ‘저 하늘에도 슬픔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영자의 전성시대’ ‘미워도 다시 한번’ ‘얄개’ 등 영화 포스트가 당시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제 영축사 계단 길을 올라 새롭게 조성된 범일동 전망대에 오릅니다. 이곳은 똥산으로 불렸던 아담한 산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집집이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당시에는 푸세식으로 똥바가지에 똥을 퍼와 이곳에다 구덩이를 파고 묻었으며 멋모르고 오르내리다 똥통에 숱하게 빠졌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범일동 전망대를 똥산전망대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참 우습고 슬프다는 신조어인 ‘웃프다’를 떠오르게 하는 범일동산전망대. 그러나 전망하나는 시원한 게 끝내줍니다.
범일동산전망대
마을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이제 귀환 동포 마을입니다. 주위의 집들보다 한결 낮아 보이는 단층 슬레이트 지붕이 해방과 함께 부관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내렸던 귀환 동포를 수용했던 시설물입니다. 그중에서도 천재 화가 이중섭도 1951년 12월에 안내 마사코와 함께 피난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한국명 이남덕은 ‘범일동 1497번지’ 판잣집의 생활이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고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술회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뒤에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마사코는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아이와 함께 떠나고 이중섭은 술과 부두노동자로 고단한 삶을 살면서 가족을 그리워하다 그의 대표작인 ‘범일동 풍경’을 그리게 됩니다.
다시 골목길을 나오면 쌈지공원에 운동기구가 놓인 호랭이 쉼터입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만물상회를 지나면 산복도로의 삼거리와 만납니다. 오른쪽 럭키슈퍼 골목길을 따라가면 통일교 성지인 통일교 기도관 옆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도로를 내려서서 안창마을로 바로 가도 되지만 내친김에 문선명 목사가 한국동란 때 범일동에 피난 와 기도했다는 ‘눈물의 바위’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성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세계 40개국에서 모은 돌과 눈물의 바위를 보고 내려와 만나는 첫 번째 집에서 왼쪽 골목으로 빠져나갑니다.
지금은 정자쉼터 등 말끔하게 정비를 해 놓아 한결 좋아 보였습니다. 다시 마을 길을 내려서면 안창마을 오르는 메인도로입니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르던지 광명사 앞의 하천을 따라 오르는 길을 가도 안창마을 29번 버스종점에서 만납니다.
동구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안창마을. ‘골짜기 안의 분지마을’이라는 뜻인 안창마을은 실제 밖에서 보는 것하고는 엄청나게 규모가 큽니다. 피난민과 산업화로 몰려들었던 많은 사람이 하나둘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로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에는 이른 새벽 범일동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합니다.
많은 사람의 애환이 서려 있는 안창마을에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호랭이이바구길’로 다시한번 새로운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어둡고 칙칙했던 동네는 밝고 화사하게 바뀌었으며 언제부터인가 오리 요리하면 안창마을로 통할 정도로 오리요리 대표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 가운데 루미네수녀 기념관에서 호랭이이바구길 여행을 마쳤습니다. 루미네수녀님은 부산 동구의 안창마을 2평 남짓한 판잣집에서 형편이 어렵던 마을의 아이들을 모아 21년 동안 사랑과 희생. 봉사로 돌보았던 수녀님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입니다. 부산 동구 호랭이이바구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루미네수녀 기념관
한국동란과 그 후의 산업화의 중심에 있었던 범일동과 범천동 특히 호계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많은 아버지·엄마·누나·형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부강한 대한민국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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