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석빙고,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창녕 우포늪을 여행하고 나서 점심을 창녕전통시장에 있는 수구레국밥을 먹었습니다. 수구레국밥을 맛있게 먹고는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으면서 창녕 석빙고를 보기로 했습니다. 창녕석빙고는 조선 시대 얼음창고입니다. 요즘은 냉장고가 집집이 없는 집이 없어 냉동실에서 쉽게 물을 얼려 얼음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래서 얼음의 귀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냉장고는 귀하고 아주 값이 비싼 물건이라 서민은 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서민의 여름나기는 지금 생각하면 애처롭습니다. 



한여름에는 우물에다 수박을 담근 다음 차게 해서 먹는다든지, 아니면 얼음집에서 큰 얼음을 블록만 하게 톱으로 자른 팔았습니다. 작은 얼음에다 바늘을 꽂아 망치로 살살 치면 신기하게도 얼음이 산산 조각났고 그 얼음으로 차디찬 얼음 수박 화채를 만들어 먹든 기억이 있습니다.




창녕석빙고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

창녕석빙고 연락처:055-481-4650






호랑이 담배 피우든 시절도 아닌 4~50년 전에도 이러했는데 조선 시대의 여름 나기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조선 시대에도 시원하게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삼복더위에는 요즘 같이 냉장고도 없는데 어디서 얼음을 구해와 냉 화채를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그러나 간단합니다. 겨울에 계곡의 꽁꽁 언 얼음을 잘라 석빙고에 보관했으며 그 얼음을 가지고 삼복더위에 얼음 화채를 만들어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석빙고의 얼음은 아무나 끄집어 내어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날 임금이 신하들에게 “아주 귀한 것이니까? 조금씩 나누어 먹어야 해”하면서 하사품으로 내려줬다고 합니다.







지금은 냉장고에서 얼음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빙수, 아이스크림, 얼음과자 등 먹고 싶으면 손쉽게 먹을 수 있어 좋은 시대에 사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창녕 석빙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 곳에서 석빙고가 남아 있지만 그중 창녕 석빙고는 완벽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녕석빙고는 현재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려고 입구에 쇠창살로 막아 놓아 내부를 볼 수 없어서 참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석빙고의 내부를 완벽하게 본 곳이 청도 석빙고였습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청도석빙고를 내려가 보면서 여름철 얼음을 보관했던 원리와 석빙고 구조도 함께 보았습니다. 

창녕석빙고는 봉분은 흙으로 덮였으며 문은 닫혔지만, 창녕석빙고도 이와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석빙고는 옛 무덤인 고분을 닮았습니다. 고분과 크기도 비슷하고 출입구가 없다면 그냥 고분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석빙고의 구조를 보면 네모나게 땅을 깊이 파내었고 천장은 돌을 무지개(홍예) 인 둥글게 돌다리 형태로 짜맞추었습니다. 바닥은 평평하게 돌을 깔았으며 한쪽으로 약간 경사지게 했습니다. 이곳이 얼음을 보관하는 방이며 빙실입니다. 

바닥의 북쪽에는 녹은 얼음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있으며 벽체는 바닥에서부터 다듬어진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습니다. 천장 부근에서는 다듬은 돌을 어긋나게 끼워 맞추어 무지개식 돌다리로 골조를 만들었으며 총 4개입니다. 

그리고 무지개형태의 돌다리 위에다 긴 돌을 걸치고 다시 보온을 위해 흙으로 두껍게 덮었습니다. 

천장에는 환기구멍을 두었는데 바깥의 공기가 적당히 드나들게끔 하는 굴뚝입니다. 이게 얼음이 잘 녹지 않게 하면서 오랫동안 보관하게끔 했습니다. 

창녕석빙고는 1742년인 조선 영조 때에 창녕 현감인 신서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계곡의 얼음을 석빙고에 쉽게 옮기도록 화왕산에서 내려오는 자하골과 직각이 되게 하였으며 남북으로 긴 모양에 출입구는 남쪽에 두었습니다. 보물 제3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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