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복천박물관. 가야시대 복천동 고분군 유물전시관인 복천박물관 여행


이번에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복천동 고분군과 고분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을 전시한 복천박물관을 여행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은 가야시대 고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삼국시대 하면 신라·백제·고구려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도 가야의 존재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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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이 43년에 나라를 세운 가야는 500여 년 동안 유지되다가 562년 멸망했습니다. 그만큼 긴 세월 동안 우리 한반도에 삼국과 함께 존재했는데 그러나 역사적인 평가는 삼국보다 아주 미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라·백제·고구려가 삼국으로서 뿌리를 내리기 전에 낙동강을 기반으로 소부족이 각각 자신의 부족을 다스리며 연맹체를 결성했는데 이들 12개의 소국을 변한이라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낙동강 하구인 김해지역을 근거지로 한 구야국으로 가야의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가야의 건국신화를 보면 김해 구지봉의 6개 황금알에서 여섯 아이가 나왔으며 각각의 나라를 다스렸는데 가락국, 대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 소가야입니다. 이들 6가야는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에 끼어 많은 부침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김해지방의 가락국인즉슨 금관가야의 유물들입니다. 금관가야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습니다. 경남지역 17곳에서 철이 나왔는데 김해지역에만 13곳이나 몰려 있으며 생산된 철로 농기구와 무기 등의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부산 온천동 유적지에서 발굴

 

당시 김해는 물자 또한 풍부했으며 바다와 낙동강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했습니다. 그리고 낙동강과 바다에 배를 띄워 일본과의 중계무역 등을 하면서 물품 운반 등을 내세우며 여섯 가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복천박물관 전시유물을 보면 유독 철제품이 많이 보입니다.


 

 

칼끝장식: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20호

 


이는 김해지역의 많은 철 생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야인의 무덤에서 화살촉, 칼, 창, 철판을 가죽과 함께 기워 맞춘 기마병의 마늘 갑옷과 투구뿐만 아니라 말에게 입힌 갑옷, 말 머리에 씌운 투구 등도 함께 나와 당시 발전한 가야 철제 무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복천박물관에서는 이 모든 철제품을 한눈에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세기 말경에 철 무기로 무장하고 왜군과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지만,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으로 가락국은 폐배하고 결국은 가야는 몰락의 길로 들어 작은 국가로 운영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도약하지만 562년 신라 진흥왕에 의해 멸망하고 역사 속으로 가야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럼 금관가야 유물을 전시 중인 복천박물관을 관람하겠습니다.


 

고구려

 

사적 제273호인 복천동 고분군을 보면서 고대 부산지역도 가야문화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천고분군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로 1996년 10월 5일에 복천박물관을 개관했습니다. 복천 고분군에서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고분군은 덧널무덤(목관묘),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앞트기식돌방무덤(황구식석실묘), 독널무덤(옹관묘) 등 총 200여 기의 무덤이 나왔으며 이곳에서 가야토기와 철제무기류, 갑옷, 투구, 가지방울, 금동관, 목걸이 등 12,000여점의 유물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가야

 

복천박물관에서는 이들 유물을 분류하여 두 개의 대형 전시실에서 진열 중이며 복천박물관 야외전시실에서는 무덤의 내부와 당시 발굴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전시 중입니다. 이곳 복천동 고분군의 유물을 보면서 유물과 무덤은 지금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가야 왕국의 신비를 풀어 줄 열쇠입니다.


 

신라

 


또한, 고대 가야와 일본과의 교류 등을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과 그외 부산의 여러 고분군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을 만나면서 고대 부산의 역사, 문화와 더 나아가 가야사를 실체를 밝히는 역사교육장으로서 복천박물관은 온 가족이 참관하면 정말 좋습니다. 물론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복천박물관 사진으로 보기 ◆

 

 

 

 

복천동 고분군 전경

 

 

 

 

 

특별전으로 일본고대 문화로의 초대전 (사진촬영 금지로 사진 없음)

 

 

 일본고대 문화로의 초대전 포토존 사진

 

 

 

복천동고분군의 재현모습

 

 

 

 

복천동 38호분

 

 

복천동 21·22 고분군 모습

 

 

 

 

 

 

 

 

 

 

 

 

 

 

 

 

 

 

 

말머리 가리개" 부산 복천동 고분군 10호 출토

 

 

 

 

 

 

 

 

 

 

투구와 목 가리개

 

 

 

 

 

투구

 

 

갑옷

 

투구·목가리개·갑옷. 4세기 복천동 고분군 38호

 

 

가지방울

 

 

 

 

 

 

 

 

 

 

 

 

오리모양토기 4세기 부산복천동 고분군 86호

 

 

특이한 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

 

 

 

 

 

 

 

 

 

 

 

 

 

 

 

 

 

 

 

 

 

 

 

 

 

 

 

 

 

 

 

 

 

 

 

 

복천박물관 관람안내


복천박물관 관람시간:평일 09:00~18:00, 매주 토요일:09:00~21:00,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09:00~21:00

복천 박물관 입장시간:평일:09:00~17:00, 매주 토요일(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09:00~20:00

복천박물관 휴관일: 1월1일, 매주 월요일

복천박물관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

★복천박물관 전화:051-554~4263~4

복천박물관 입장료 무료

복천박물관 교통편:

●버스:동래방면 동래시장 또는 동래전화국 하차~걸어서 15분 쯤 소요.

지하철:도시철도 1호선,동래전철역 하차 4번 출구, 마을버스 6번이용

명륜역하차,2번 출구 마을버스 이용하여 코끼리 유치원 앞 하차 걸어서 3분 

 


(복천박물관 홈피캡쳐)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큰 규모이며 또한 부산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 사적 제27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의 발견은 아이러니하게도 1969년 주택공사를 하면서 고분군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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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성이 있는 마안산이 반월형으로 감싸는 지능선의 완만한 구릉에 다양한 고분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조사와 유물수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발굴조사는 발견 당시인 1969년 9월 28일부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10월 3일까지 조사하였습니다. 이때 복천동 고분군의 모습이 드러났으며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함께 나왔습니다.





그 후 1995년까지 부산대학교와 시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며 유구는 130여 기에 출토 유물은 총 9,000여 점입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인골 등과 금은의 유물보다는 철로 만든 유물이 더 많았으며 특히 무구류와 갑주류가 많았습니다.





부장품 중 특별한 것은 보물 제598호인 마구식 각배와 오리 모양 토기입니다. 고분을 보면 널무덤이 3기, 부곽이 딸린 덧널무덤 19기, 덧널무덤만 58기, 부곽 딸린 구덩식 돌방무덤 6기, 구덩식 돌방무덤만 42기, 독무덤 2기와 굴식 돌방무덤이 1기 등 전체적으로 170여 기의 무덤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복천동 고분군의 발굴조사와 유물수습이 모두 끝난 상태이며 고분군이 있던 자리는 회양목으로 둘러놓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분군을 발굴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으며 건물은 흡사 우주선을 닮은 듯 특이합니다.







야외전시장에 복원된 복천동 53호 무덤과 54호 무덤의 출토유물을 보겠습입니다. 먼저 53호 무덤은 능선 가운데 있으며 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대형 구덩식돌덧널무덤으로 수혈식 석곽묘입니다. 덧널무덤 형식인데 따로 부곽이 달린 구조로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그 당시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부장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토기, 철기, 목걸이 귀걸이, 숫돌과 철제품 등 30여 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이중 토기류가 가장 많았는데 굽다리접시, 항아리, 그릇받침과 함께 등잔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도 출토하였고 이 토기는 당시 가야인의 부장 풍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출토된 토기류를 보면서 알 수 있는데 굽다리 접시는 신라계, 함안계 등 여러 지역으로 나누는데 부장된 토기는 함안계가 상당수 나와 무덤의 주인은 서부경남지역의 사람일 확률이 높으며 다른 무덤에 비해서 매장품이 작고 무기류의 비중이 낮아 남성보다는 여성일 가능성 높다 합니다.







복천동 54호 무덤과 출토유물을 보겠습니다. 무덤은 4세기 말에 만들어졌으며 대형 덧널무덤인 목관묘입니다. 무덤은 주곽과 부곽을 따로 갖춘 형식으로 후대에 와 무덤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부장유물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 철기, 목걸이 등 200여 점이며 거의 토기류입니다. 굽다리접시, 항아리, 손잡이 달린 굽다리 항아리, 그릇받침대 등 다양하며 투구, 재갈, 덩이쇠, 화살촉, 창 도끼, 관못 등 철기류도 함께 나왔습니다. 54호 무덤은 함안을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지역과 일본계 유물이 나온 것을 보면 가야인들은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일본과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유물로서 알 수 있다합니다.







복천동 고분군을 보면 경주의 고분군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남부지방 최대 고분에 속하며 출토된 유물 또한, 경주 고분 다음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고 많은 양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복천동 고분군의 중요한 유물 중 하나는 방어용 무기인 갑옷과 투구입니다.









우리나라 갑옷 연구와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산의 고대 유물이 궁금하다면 복천동 고분군을 꼭! 꼭! 추천합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복천박물관으로 갑니다. 







 영보단비


영보단비(永報壇碑)를 아세요. 복천동 고분군과 복천고분박물관 사이에 있는 비석으로 1909년 나라에서 호적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였습니다. 이에 동래지역 13개 면민이 반발하며 조상들의 이름이 적힌 호적대장을 함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마안산 기슭에다 불태우고 이곳에다 단을 쌓아 영모단이라 하였습니다. 이곳에다 일제 침탈로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다짐하며 1915년에 ‘영보단비’를 세웠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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