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안에 있던 동래독진대아문을 보고 자란 한사람입니다. 당시 금강공원 안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이름이 말바위였습니다. 이곳에서 동래 꼬치 친구와 총싸움, 칼싸움하며 뛰어놀았습니다. 그 옆에는 동래독진대아문의 현판이 걸린 삼문형식의 솟을대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게 왜 이곳에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우리의 놀이터로서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동래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2016/10/17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수축을 기록한 내주축성비

2016/10/13 - [여행]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복천동고분군

2016/10/12 - [여행] - (부산여행)동래 장관청.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음 가봤던 동래 장관청 건물이 지금은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중. 동래 장관청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항상 한번 찾아가야지 하며 생각했던 놀이터의 유물(?)을 금강공원이 아닌 동래부동헌에서 만났습니다. 동래독진대아문은 동래부 동헌을 복원하면서 외대문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동헌 밖에서 현판의 동래독진대아문을 되뇌며 참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릴 적 놀이터로 뛰어놀았던 그 문이었습니다. 동래독진대아문은 처음에 이곳과 마주 보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옛터를 알리는 작은 빗돌이 당시의 동래부 동헌 외대문의 영화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경상좌병영 경주진영에 소속되었던 동래부가 독립하여 독진이 되었음을 알리는 문이며, 지금은 동래부 동헌 안으로 옮겨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東萊府 東軒 外大 門)이었던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인 동래독진대아문은 조선 후기 동래부의 군사적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이곳은 일본과 가까웠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일본과의 전란을 겪었고 크고 작은 충돌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래부에는 일본인의 거주지역인 왜관도 있어 국방과 외교상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고을의 관아보다 규모도 컸습니다. 동래부독진대아문의 건립은 1636년인 인조 14년에 동래부사였던 정양필이 두 전란으로 황폐되었던 동래부동헌을 새로 건립하면서 함께 건립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870년 고종 7년에 동래부사 정현덕이 중건했으며 외삼문 가운데에 ‘동래독진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 현판이 떡하니 걸려 있습니다. 그 아래 두 기둥에는 주련이 달렸습니다.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과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사) 현판으로 동래부가 진변의 병마절제사영이고 대일외교를 하면서 일본사신을 접대하는 관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독진이 된다는 뜻은 원래 동래부의 군사적 관할은 경상좌병영의 지휘하에 경주 진관 소속이었습니다. 경주진관소속에서 따로 독립하여 동래독진이 되었음이며 그것을 보여주는 유적이 현재 수영시장 인근에 남아있는 경상좌수영 건물입니다.




 



동래부 동헌 외대문은 전형적인 관아 대문 모습입니다. 규모는 작으나 삼문형식의 솟을대문은 흔하지 않으며 천정 아래 홍살이 있어 처음부터 외삼문이었던 건물로 보입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칸의 홑처마입니다. 이 건물은 동헌 대문으로 망미루 뒤편에 세워졌는데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경에 시가지 정비를 하면서 철거위기에 처하자 동래 백성들의 노력으로 망미루, 내주축성비와 함께 금강공원 입구와 안으로 옮겨졌으며 2014년 8월 동래부 동헌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동래독진대아문(동래부 동헌 외삼문)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5호

동래부 동헌 동래독진대아문(동래부 동헌 외삼문)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 112번길 61(수안동)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수축을 기록한 내주축성비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에 세워진 동래읍성은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과 동래 읍민의 죽음을 불사한 항쟁의 피가 남아 있습니다. 송상현 부사는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나무막대에다 ‘명나라를 치기 위한 길을 빌려 달라”며 글을 썼어 성문 앞에 세워둔 것을 보고 송상현 부사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이라 적은 나무토막을 던지며 끝까지 항쟁하다 동래성과 함께 순절하였습니다.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란 뜻의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은 동래성전투와 함께 길이길이 후손에 남아 작금의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 송상현 부사와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자 했던 동래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두 전란이 끝나면서 무너진 성벽은 더욱 황폐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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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복원된 동래읍성의 북문 앞에는 ‘내주축성비(來州築城碑)’란 비석이 있습니다. 이는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는데 1731인 영조 7년에 당시 동래부사였던 정언섭이 임진왜란과 함께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고쳐 쌓은 사실을 기념하며 1735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동래읍성의 비망록이라 할까요?. 비명을 보면 읍성의 둘레가 대략 1.4km, 성벽의 높이는 3.9m, 1731년 1월에 성터를 측량하고 경상도 65개 군에서 52,000명의 인원을 동원했다는 것을 보면 당시 동래읍성의 수축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연인원 417,050명에 쌀 4,585석, 베 1,552필과 13,454냥의 막대한 돈이 들어간 공사로 4월부터 성벽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5월에 성문을, 7월에는 문루를 완공했다 하며 이때 수축공사로 동래성의 둘레는 약 3.8km에 성벽의 높이는 5.1m가 되었습니다.




복원 된 동래읍성 북문



비신의 앞면은 이 모든 축성에 관한 사실을 20행으로 기록하였고, 뒷면에는 축성에 동원된 임원 명단을 새겨 놓은 그야말로 동래읍성의 수축에 관한 모든 기록물이라 하겠습니다. 비의 높이는 422cm, 넓이는 108cm 규모의 비석으로 이수는 한 쌍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비석의 받침돌은 연꽃무늬가 조각된 아주 소박한 모습입니다. 비문은 황산도 찰방이던 김광악이 짓고 글씨는 송광제가 썼습니다. 그리고 비신의 전자는 현풍 현감 유우기의 글씨입니다. 이 내주축성비는 동래읍성의 중요한 연구자료로서 조선 후기 축성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원래 내주축성비는 동래읍성 남문 밖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정비계획으로 헐릴 위기에 처하자 1930년경 망미루와 함께 이전하였습니다. 내주축성비는 금강공원 내에 있던 독진대아문 뒤편으로 옮겨졌으며 2012년 10월에 지금의 동래읍성 북문 안으로 다시 옮겨왔습니다.





내주축성비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산 3-2 일원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부산에서 큰 규모이며 또한 부산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 사적 제27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복천동 고분군의 발견은 아이러니하게도 1969년 주택공사를 하면서 고분군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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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 [부산 축제]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제22회 동래읍성역사축제가 열려요. 동래읍성역사축제






동래성이 있는 마안산이 반월형으로 감싸는 지능선의 완만한 구릉에 다양한 고분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조사와 유물수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발굴조사는 발견 당시인 1969년 9월 28일부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10월 3일까지 조사하였습니다. 이때 복천동 고분군의 모습이 드러났으며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함께 나왔습니다.





그 후 1995년까지 부산대학교와 시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며 유구는 130여 기에 출토 유물은 총 9,000여 점입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인골 등과 금은의 유물보다는 철로 만든 유물이 더 많았으며 특히 무구류와 갑주류가 많았습니다.





부장품 중 특별한 것은 보물 제598호인 마구식 각배와 오리 모양 토기입니다. 고분을 보면 널무덤이 3기, 부곽이 딸린 덧널무덤 19기, 덧널무덤만 58기, 부곽 딸린 구덩식 돌방무덤 6기, 구덩식 돌방무덤만 42기, 독무덤 2기와 굴식 돌방무덤이 1기 등 전체적으로 170여 기의 무덤이 나왔습니다.


 



지금은 복천동 고분군의 발굴조사와 유물수습이 모두 끝난 상태이며 고분군이 있던 자리는 회양목으로 둘러놓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분군을 발굴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으며 건물은 흡사 우주선을 닮은 듯 특이합니다.







야외전시장에 복원된 복천동 53호 무덤과 54호 무덤의 출토유물을 보겠습입니다. 먼저 53호 무덤은 능선 가운데 있으며 5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대형 구덩식돌덧널무덤으로 수혈식 석곽묘입니다. 덧널무덤 형식인데 따로 부곽이 달린 구조로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그 당시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부장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토기, 철기, 목걸이 귀걸이, 숫돌과 철제품 등 30여 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이중 토기류가 가장 많았는데 굽다리접시, 항아리, 그릇받침과 함께 등잔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도 출토하였고 이 토기는 당시 가야인의 부장 풍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출토된 토기류를 보면서 알 수 있는데 굽다리 접시는 신라계, 함안계 등 여러 지역으로 나누는데 부장된 토기는 함안계가 상당수 나와 무덤의 주인은 서부경남지역의 사람일 확률이 높으며 다른 무덤에 비해서 매장품이 작고 무기류의 비중이 낮아 남성보다는 여성일 가능성 높다 합니다.







복천동 54호 무덤과 출토유물을 보겠습니다. 무덤은 4세기 말에 만들어졌으며 대형 덧널무덤인 목관묘입니다. 무덤은 주곽과 부곽을 따로 갖춘 형식으로 후대에 와 무덤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부장유물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 철기, 목걸이 등 200여 점이며 거의 토기류입니다. 굽다리접시, 항아리, 손잡이 달린 굽다리 항아리, 그릇받침대 등 다양하며 투구, 재갈, 덩이쇠, 화살촉, 창 도끼, 관못 등 철기류도 함께 나왔습니다. 54호 무덤은 함안을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지역과 일본계 유물이 나온 것을 보면 가야인들은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일본과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유물로서 알 수 있다합니다.







복천동 고분군을 보면 경주의 고분군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남부지방 최대 고분에 속하며 출토된 유물 또한, 경주 고분 다음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고 많은 양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복천동 고분군의 중요한 유물 중 하나는 방어용 무기인 갑옷과 투구입니다.









우리나라 갑옷 연구와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산의 고대 유물이 궁금하다면 복천동 고분군을 꼭! 꼭! 추천합니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복천박물관으로 갑니다. 







 영보단비


영보단비(永報壇碑)를 아세요. 복천동 고분군과 복천고분박물관 사이에 있는 비석으로 1909년 나라에서 호적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였습니다. 이에 동래지역 13개 면민이 반발하며 조상들의 이름이 적힌 호적대장을 함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마안산 기슭에다 불태우고 이곳에다 단을 쌓아 영모단이라 하였습니다. 이곳에다 일제 침탈로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다짐하며 1915년에 ‘영보단비’를 세웠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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