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시장 인근에 동래부관아가 복원되어 지나는 길에 보게 되었습니다. 복원된 동래부관아 중에서 가장 내마음에 남아 있는 건물이 맨 왼쪽에 복원된 망미루로 2층의 문루입니다. 그러니까 1층은 문이고 2층은 누각인데 이 건물은 필자가 어렸을 때의 추억이 있습니다.






 

 


원래 자리에 옮겨오기 전에는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입구에 있었습니다. 금강공원을 오르는 입구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니까 벌써 40년도 훨씬 더 지난 세월입니다. 같은 부산의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좀체 갈 기회가 없었지만, 항상 생각이 나는 게 어릴 적 뛰놀던 망미루였습니다.


 

 


그 망미루가 제 위치로 다시 옮겨 복원되었다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반가움에 앞서 망미루 포스팅을 합니다. 망미루는 원래 지금의 자리 바로 옆 그러니까 수안파출소 앞에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그 자리에 망미루 터를 알리는 작은 빗돌이 서 있으며 원래 자리로 복원한다며 바로 30m 옆 동래부 관아 내에 비딱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복원을 제대로 하여 망미루의 누각 문을 열고 그쪽으로 사람을 드나들게 하면 더욱 좋았는데 아쉽게도 그런 기능은 하나도 없고 그저 형태만 갖추어 복원된 모습이 많이 아쉽습니다.


 

 


망미루는 조선 후기인 1742년 영조 18년에 동래부사 김선일에 의해 동래부 동헌 앞에 세워졌습니다. 망미루는 1895년 고종 32년에 동래도호부가 동래관찰사영으로 승격하면서 포장사라 불렀고, 누각에는 동래읍성 사대문을 여닫는 시간과 정오를 알리는 큰북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리를 한다며 망미루 철거를 단행하자 지역민들이 단합하여 경비를 모금해 1930년경에 온천장의 금강공원 입구로 옮겨 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1970년에 한 번 해체복원을 하였으며 그 뒤에도 소소한 수리가 이루어지다 2014년 민족정기를 되찾자는 취지와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 동래부 동헌을 복원하면서 안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망미루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중층 누각인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일반 누문에 비해 누각의 규모가 높고 큰데 이는 누각 아래로 사람이 통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대문으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또한, 누각 기둥을 받치는 긴 돌기둥인 장초석은 누각의 안전을 보안함과 동시에 위엄을 갖추었으며 누마루는 귀틀마루를 깔고 마루 외곽은 계자난간으로 돌렸습니다. 일반의 누각은 산천의 경치를 보기 위해 천장을 높여 탁 트이게 하는 게 보통인데 동래읍성의 망미루는 천장이 낮은 게 외부에서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와 감시용의 건물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망미루의 앞쪽에는 ‘동래도호아문’이, 반대편인 안쪽에는 ‘망미루’의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또한 망미루(望美樓)는 임금의 명으로 한양에서 내려온 동래부사가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하여 2층의 누각을 망미루라 부른대서 유래하며 1919년 동래장터에 울려 퍼진 3.1 운동의 시발점이 망미루입니다.


 

 

 

 


이곳 누각에서 만세삼창으로 시작되었으며 우리에게는 민족의식을 고취시켜준 건물로 일제는 아마 악착같이 허물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동래성의 흔적은 진짜 돌멩이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최근에 와서 마안산 일원에 동래성이 복원되었고 동래부 관아도 복원하였습니다.


 

 


망미루 복원에 사용된 부재는 최대한 기존의 부재를 다시 사용하였으며 붉은 단청은 복원과 함께 벗겨내고 지금은 원래의 나무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1972년 6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동래부 관아(동래부동헌)


동래부 관아 주소: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수안치안센터 건너편)



18세기 동래성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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