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여행/울주여행)600살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은행나무 여행, 울산 울주군 구량리 은행나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에는 영남알프스 고헌산을 받치고 있는 큰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구량리 은행나무라 불리는데 그 규모가 실로 대단합니다. 

600살이라는 연륜이 은행나무의 모습에서 그대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구량리 은행나무는 익재 이재현의 4대손인 이지대 선생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면서 내려올 때 함께 은행나무를 가져와 연못가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구량리 은행나무의 모습은 가정집도 연못도 모두 사라지고 주위에 논 한가운데 자리한 모습입니다.

 


구량리 은행나무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구량리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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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은행나무 아래로는 물이 솟고 있는데 마을의 공동 우물터였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지대선생이 1394년(조선 태조3년)에 경상도 수군만호로 재직하였을 때 왜군의 배를 나포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관직이 올라 벼슬이 한성판윤에 이르렀습니다.






1452년에 단종이 즉위하고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왕보인 등을 주살하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내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해지다 선생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을 내어놓고 내려오면서 함께 가져온 은행나무입니다.

 


지금 구량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대략 되짚어 보면 600살쯤이며 높이는 22m에 가슴둘레가 12m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 떼 구량리 은행나무는 큰 가지가 찢어지면서 큰 생채기를 겪어 현재에는 지지대에 의지한 모습입니다.






한여름에 초록색의 은행잎이 나무를 에워싸면 수관의 규모가 대단했을 듯합니다. 

마을의 정자나무로 한몫 단단히 했을 듯싶습니다. 




세월의 흐름만큼 구량리 은행나무에는 숱한 전설이 있는데 누가 은행나무에 해를 입히면 당사자는 꼭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며 아들을 못낳는 부인이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꼭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은행나무입니다.





천전리 각석이나 반구대 암각화를 여행할 때 함께 찾아보세요.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64호에 지정


(울산여행/울산가볼만한곳)울주 반구대암각화. 봄에 좋은 여행지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울산에서 두 개의 국보는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입니다. 두 곳 다 대곡천의 암벽에 새겨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포스팅할 반구대암각화는 울산시민의 식수원인 사연호를 두른 암벽에 새겨져 있어 항상 수량유입이 많은 여름철에는 침수하여 암각화 보존 문제가 떠나지 않는 곳입니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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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거북이가 엎드린 모습을 한 반구대와는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고려말 충신이자 삼은 중 한 분인 포은 정몽주 선생입니다. 포은선생은 선죽교, 이성계, 이방원 등 조선의 건국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절의와 일사이군의 상징적인 분입니다. 




고려 우왕 2년인 1376년에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명나라는 배격하고 원나라와 친한 ‘친원배명’의 외교 정책을 반대하여 1년 정도 이곳에서 귀양살이했습니다. 또한, 반구대 바위에 올라 .‘중양절감회‘란 시를 남겼으며 정몽주와의 인연으로 반구대를 포은대라고도 하는 이유입니다.


반구대풍경


현재 이곳에는 포은선생을 기리는 반고서원과 집청정, 대곡천 건너 반고서원유허비가 남아있어 포은선생의 유적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집청정은 17세기 중반에 경주최씨 운암 최신기공이 세웠습니다. 정몽주 선생이 반구대의 풍치에 반해 시를 남긴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건립한 정자로 지금은 효행을 가르치는 예절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연로개수기

그와 함께 이웃한 반고서원도 1712년 숙종 38년에 건립하여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지역유림에 의해 1885년 ’포은대영모비‘ 1890년 ’포은대실록비‘. 1901년 ’반고서원유허비실기'의 비석을 세우고 사인 댐에 의해 수몰되었던 반고서원은 1965년 현 위치에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로 향하다 보면 옛길을 뜻하는 연로 개수기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훼손된 글자가 많아 전체 내용을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순치 12년의 연호가 있어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인 1655년 숙종 조에도 이 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포은선생도 유배 시절에 이 길을 거닐었을 것 같습니다.




연로는 벼루를 만드는 돌이 있는 길로 ’벼루길‘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계곡에 걸린 덱길을 지나면 하늘을 찌를 듯 키가 큰 짙은 녹색의 대나무가 군락을 이루었습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맞기며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사각사각 댓잎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희미했던 정신이 갑자기 상쾌해지며 맑아졌습니다. 이래서 예전 선비는 절의를 상징하는 사군자에 대나무를 넣고 더욱 가까이 했나 봅니다대곡천 언저리의 암반에 공룡발자국이 있다는 안내판을 보고 내려갔습니다.



울주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











울주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으로 약 1억 년 전인 전기 백악기의 공룡발자국 화석입니다. 곧 반구대 암각화를 만나는 전망대입니다. 계곡 건너편에 있어 제법 먼 거리이며 그냥은 확인할 수 없고 전망대에 고정된 망원경으로 보고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귀담아 들어야만 확인 가능합니다.






반구대암각화



높이가 대략 3m, 넓이는 6.5m 크기에 빽빽하게 300여 점의 그림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고래, 물개, 바다거북, 사슴, 멧돼지, 개 등을 새겨놓았습니다. 지금도 고래하면 울산방어진을 먼저 떠올리지만,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문양을 보면서 울산이 선사시대부터 고래잡이가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연호 때문에 여름 장마철에는 물에 잠겨 있다가 11월이 지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우리 문화재의 보호를 위해서 빠른 대책이 시급합니다. 울산 반구대암각화는 국보 제285호입니다. 암각화의 사진은 스마트폰을 줌으로 당기고 망원경의 눈을 붙이는 곳에 스마트폰을 밀착시켜 담았습니다. 불친님들도 혹 반구대암각화로 가면 따라 해보세요.





 반구대 암각화 문양



2015년 3월 28일 반구대 암가화 대곡천 봄풍경






(울산여행/울산가볼만한곳)울주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 청동기시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을 만나다. 


울산광역시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가 단 두 점 있습니다. 그 국보는 모두 울주군에 있으며 이는 선사시대 암각화입니다. 암각화 하면 바위 면에 그림이나 글씨 등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새겨 놓은 것을 말하는데 우주군에는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암각화입니다. 이번 포스트는 국보 제147호인 천전리 각석입니다.





천전리각석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10-2



일단 천전리 마을에 있어 ‘천전리 각석’이라 부르며 1970년 12월에 처음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으며 1973년 5월에 학계의 지대한 관심속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에 등재되었습니다.





천전리 각석의 넓이는 9.5m이며 높이는 2.5m의 길이가 긴 사각바위로 앞으로 15도 정도 넘어질 듯 기울어져 있으며 경사진 바위에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전리 각석 앞으로는 대곡천이 흐릅니다. 주위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생활했던 여러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천변의 바위는 중생대 백악기의 암석이며 퇴적암이 굳어진 사암이라 물살과 충격에 쉽게 씻겨나가거나 깨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은 돌을 뾰쪽하게 하여 바위에 홈을 낸다든지 두드려서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와 추상적인 형태의 그림 등 기하학적인 무늬를 천전리 각석에 표현했습니다.

 




천전리 각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하학적인 그림은 물론이고 동물과 어류 문양, 인물, 그림과 글씨도 나타나며 기마행렬도 등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부터 신라 시대까지의 생활상이 나타나는 우리에게는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고마운 자료들입니다.



아쉬운 점은 천전리 각석은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현재 접근을 막는 안전시설물만 세워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 천전리 각석에 새겨진 문양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기하학무늬인 둥근 무늬, 우렁 무늬, 마름모꼴 무늬, 굽은 무늬, 가지 무늬 이외에도 사슴, 호랑이, 파충류, 물고기, 서 있는 사람과 얼굴상 등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표현한 형태로 이는 청동기시대의 동경이나 동검 같은 유물에 나타낸 문양과 고인돌의 덮게 돌에 새겨놓은 암각화와 유사해 청동기시대 암각화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여러 암각화는 농경문화를 이룸으로써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종교적 형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천전리 각석에는 신라 시대 때의 기록이 남은 특이한 경우인데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사용해 새긴 가는 선, 사람의 옷차림, 용 그림, 돛을 단 배. 말들이 행렬하는 모습 등과 신라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이 525년인 을사년에 대곡천에 놀러 와 바위에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이를 을사명이라 하며 그 내용을 보면

“을사년에 사탁부의 갈문왕이 찾아 놀러 와서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다. 오래된 골짜기인데도 이름이 없는 골짜기였다, 좋은 돌을 얻어 글을 쓰고서 이하에는 서석곡이라 이름하고 글자를 지었다. 함께 논 벗은 매인 아름다운 덕을 지닌 밝고 신묘한 어사추영랑님이다.“



또한, 539년인 기미년에 사부지 갈문왕의 부인인 지몰시혜가 남편인 사부지 갈문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진흥왕을 데리고 남편의 흔적을 찾아왔다는 내용도 각석에 남아 있습니다. 기미명의 내용은 “지난 을사년 6월18일 새벽 사탁부의 사부지 갈문왕과 매인 어사추여랑님이 함께 놀러 온 이후? 년 8사년이 지나갔다. 매왕을생각하니 매왕은 죽은 사람이다. 정사년(537)에는 왕(사부지)이 죽었다.그 왕비인 지몰시혜비가 (사부지)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셔기미년 7월3일 (갈문)왕과 매가 함께 보았던 서석을 보러 계곡에 왔다. 이때 함께 셋이 왔는데, 무즉지태왕비 부걸지비와 사부지왕자인 심?맥부지가 함께 왔다.“





















이곳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암각화는 현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천전리 각석이 있는 대곡천 건너편 암반에는 약 1억 년 전 전기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초식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 등의 중대형 공룡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200여 개 발견되었으며 현재 둥근 홈이 팬 게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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