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경산·청도여행)영천 구지리, 경산 반곡지, 청도 유등리 복사꽃마을 삼색 여행


영남지역에는 복사꽃으로 유명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복사꽃은 꿀벌이 수정하고 나면 무더운 여름에 맛있는 과일인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립니다. 

천도복숭아의 품종은 따로 있지만 복숭아를 흔히 천도라 합니다. 

하늘의 신선이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이름에서 부터 벌써 존귀한 과일 느낌이 듭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구지리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청면 구지리 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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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은 영남지방에서는 귀하지 않은 그만큼 흔한 꽃으로 여러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 어디인지 한번 보면 부산과 가까운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와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와 영덕군도 있습니다.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여름철 이 지역의 국도를 지나면 도롯가에 복숭아를 모두 내다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모두 복사꽃 마을로 불리며 이른 봄이면 복사꽃 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부산과 가까운 영천 구지리와 경산 반곡지, 청도 유등리에서 복사꽃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가장 편한 노선으로 복사꽃 여행 경로를 선택했습니다. 

영천 구지리 복사꽃 마을을 먼저 갔다가 되돌아 나와 경산 반곡지를 거쳐 25번 국도의 남성현 터널을 빠져나와 청도 화양읍 유등리에서 갈무리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녁은 청도에서 유명한 청도 추어탕을 먹기로 했습니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산 나들목을 나와 35번 국도의 언양 교차로에서 24번 도로로 바꿔 타고 밀양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석남사 못미처 덕현 교차로에서 내려 가지산 온천을 지나고 운문령을 타 넘으면 경상북도청도 땅입니다. 

운문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운문댐을 지나면 대천 삼거리입니다. 

농촌에는 벌써 봄기운이 완연해서 그런지 논에 나와 모내기 준비를 하는 농부가 많이 보였습니다. 

농부의 부지런함을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운문댐 전망대를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919번 지방도인 운용로를 타고 경산시 용성면 소재지에 도착해서 용대로를 탔습니다. 

곧 고죽교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었습니다. 

도로 옆 오른쪽에 복사꽃이 한 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다가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복사꽃만 피었다면 지나쳤지만, 복사꽃 아래에는 노란 민들레 꽃이 함께 피어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이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면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구지리 복사꽃 마을로 향했습니다. 

외촌 저수지를 지나고 곧 금박산을 잇는 고개를 넘었습니다.




갑자기 선분홍색 물감을 뿌린 듯 온 구릉지를 복사꽃이 붉게 물들였습니다. 

KTX 굴다리를 지나면 왼쪽에 구지신저수지를 끼고 온통 복사꽃이 활짝핀 복숭아나무였습니다. 

와!!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저도 주차하고 복사꽃에다 KTX를 넣는 사진을 한번 담아보려고 삼각대를 펼쳤습니다.



마침 한 분이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진 아래쪽에다 복사꽃을 크게 넣고 KTX를 넣는 촬영 포인트였습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담고 한 모퉁이를 도니까 바로 구지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을 빙 둘러 모두 복숭아나무이며 지천으로 복사꽃이 피었습니다. 

이곳에서 한참동안 작품(?) 활동을 벌였습니다.



나무 덩치가 크고 오래된 복숭아나무도 보였습니다. 

고목을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며 마치 용이 하늘을 타고 오르는 듯 한 복숭아나무는 사군자의 매화가 부럽지 않은 자태였습니다. 

복사꽃마을·복숭아마을 안내판을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자인면을 들어서면 삼성현의 고장을 알리는 안내판이 곳곳에서 반깁니다.

 





경산 복사꽃 촬영지 반곡지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반곡지까지는 대략 20km 거리에 30분쯤 걸렸습니다. 

반곡지 주차장에는 주차할 곳이 없이 차 꽉 찼습니다. 

다행히 나오는 차를 보고 그 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복사꽃으로 유명한 반곡지의 명소는 익히 알려졌습니다.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에 지정되었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반곡지를 찾고 있습니다. 

반곡지는 복사꽃과 수령이 300년이 넘었다는 버드나무의  반영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그림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합니다.



이 반곡지의 광경을 담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구지리 복사꽃 마을의 복사꽃은 한창 맵시를 뽐내고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반곡지의 복사꽃은 모두 꽃잎이 떨어져 끝물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녹색의 이파리로 한창 물이 오른 버드나무를 보면서 복사꽃의 아쉬움을 달랠수 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바람이 그리 부는지 반곡지에는 잔물결이 많이 일어 반곡지의 1경인 반영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둘레길을 따라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을 포기하고 반영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어보였습니다.

어쩔수 없이 반곡지 반영을 포기하고 마지막 복사꽃 마을인 청도 화양면 유등리로 향했습니다. 

상대온천을 뒤로하고 고갯길을 돌아 남천면 금곡리에서 25번 국도로 차를 올렸습니다.

 


잘 닦여진 국도는 금방 남성현 터널을 지나고 남성현 교차로에서 내려 용암온천을 지나 유등리 노산못에 닿았습니다. 

20km 거리에 25분쯤 걸렸습니다. 

이곳은 반곡지와는 다르게 온 마을에 복사꽃이 선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노산지 주위에 주차하고 저수지를 한 바퀴돌아 보았습니다.




청도 유등리 복사꽃마을 주소:경산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마땅하게 그림이 될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찾아보았습니다. 

사진 포인트는 야산에 올라가 복사꽃을 크게 넣고 마을 쪽을 보고 사진을 담는다면 그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포기하고 눈으로 그저 복사꽃의 아름다움만 질리도록 보았습니다.





이날 미세먼지와 황사가 정말 심했습니다. 

폰에 미세먼지로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문자가 계속 날라 왔습니다. 

그래도 뿌연 날씨 속에 영천·경산·청도 복사꽃마을 삼색 여행을 무사히 마치며 차를 청도역으로 달렸습니다. 

청도 추어탕으로 목구멍의 미세먼지를 좀 씻어내려고요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읍성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청도 석빙고 여행


청도를 거치면서 잠시 들러 청도 읍성과 청도석빙고를 보고 왔습니다. 

청도읍성은 현재 일부 복원된 상태이며 석빙고는 허물어진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석빙고는 남북한을 합해 총 7곳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한에 6개의 석빙고가 있으며 그 대부분이 경주와 청도, 현풍, 창녕읍과 영산에 각각 1개씩 총 5개와 안동에 1개뿐인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청도읍성과 청도석빙고 주소: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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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석빙고는 남한에서 모두 영남권에만 모두 몰려 있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먼저 청도읍성 주차장에다 주차하였습니다. 

청도군을 다스렸던 현감들의 선정비가 수두룩한 게 많은 선정비가 청도군의 오랜 역사를 대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청도읍성은 경상북도청도군 화양읍 교촌리·동상리·동천리에 걸쳐 쌓은 토성과 석성을 혼합해 쌓은 성입니다.

 




남고북저의 읍성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 하며 산성과 평지성을 혼합한 평산성으로 성벽은 자연석 협축벽입니다. 

북쪽과 서쪽, 동쪽에 성문을 내었으며 읍성의 높이는 1.65m에 길이는 약 1,8km, 성벽 위를 덧쌓은 여첩은 600측이라 합니다. 

1590년(선조25)에 청도읍성을 석축형태로 고쳐 쌓으면서 성벽을 더 높였습니다.



때마침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왜적의 총공세에 동·서·북·문은 불타버렸고 읍성은 허물어졌습니다. 

다시 청도읍성 문루와 성벽을 재정비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나 일제강점기에 읍성을 철거하는 정책을 벌여 성벽과 문루를 모두 뜯어 파괴했습니다. 

그때 장관청, 아전청, 회계소, 동헌, 객사, 군기고와 3개의 누각이 철거됐습니다.





청도 선정비군은 서상리 동천리 남성현 등에 흩어져 있던 것을 2008년 청도읍성 동문지 주변에다 옮겼습니다. 

선정비는 1675년에서 1904년까지 건립된 비석으로 모두 30여 기입니다. 

청도석빙고는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규모도 크다 합니다. 

또한, 그 모습이 가장 적나라합니다.





청도석빙고 이외의 석빙고는 모두 복원과정을 거쳐 큰 고분 같은 모습이지만 청도석빙고는 지붕은 뼈대만 남았고 벽체는 돌을 촘촘히 쌓은 석빙고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했던 청도석빙고는 화양읍 동천리 청도읍성 동문 부근에 자리했습니다.



 






당시 동문으로 살짝 나와서 얼음을 빼갔을듯합니다. 

석빙고 앞에는 석빙고를 축조하면서 함께 세운 비석이 유구한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줍니다. 

비석에는 3개월가량 공사를 해서 완성했으며 건립날짜와 석빙고 건립에 관계한 이름까지 나와 있는 그야말로 창녕석빙고의 출생기록부입니다.







창녕석빙고 비석에는 “조선 1713년(숙종39년) 2월11일에 진사 박상고에 의해 공사를 시작해서 그해 5월5일 공사가 마무리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도석빙고의 빙고는 길이가 14.75m, 넓이 5m, 홍예 높이 4.4m에 화강암을 사용했습니다.









서쪽에다 출입구를 내고 동·서 방향이며 천장은 4개의 홍예가 걸쳐져 있습니다. 

바닥은 직사각형에 안쪽으로 경사지게 했고 흙을 다진 다음 그 위에다 돌을 깔았으며 가운데에는 배수구를 내었습니다. 

10개의 돌을 어긋나게 짜맞추어 4개의 홍예를 만들었고 그 위에는 장방형의 돌을 걸쳐 천장을 덮는 형태였으나 지금은 돌은 모두 깨어져 몇 개만 남아 있습니다. 

청도 석빙고는 1963년 1월 보물 제323호에 지정했습니다.












 


(청도여행/청도가볼만한곳)삼족대. 동창천변 그림같은 풍광과 어울리는 삼족당 김대유공의 삼족대 여행.  


청도군 매전면을 가로질러 문복산에서 발원한 동창천이 흘러갑니다 동창천에는 조선의 선비들이 낙향하여 많은 정자를 세워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는데 그중에 한곳이 갓등산을 등지고 벼랑 끝에 둥지를 튼 삼족대입니다.






청도 삼족대 주소: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 901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9호



 

 


삼족대는 1519년 조선 중종 14년에 삼족당 김대유(1479~1552)선생이 낙향하면서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했습니다. 삼족대는 삼족당 김대유의 호에서 따왔으며 그는 남명 조식, 정암 조광조, 정여창 등 많은 문인과 교류했습니다.

 

 

 

 

본관은 김해이며 자는 천우. 부친은 직제학 김준손이며 김일손의 조카입니다. 1498년 연산군 4년에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제자였던 김일손이 성종실록을 편찬하면서 벌어진 사초 사건이 무오사화입니다.


 

 

 

이로 인해 일손이 화를 당하자 김대유는 아버지와 함께 이일로 연유되었다하여 호남에서 유배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즉위하여 유배에서 풀려났습니다.


 

 

 

 

 

 

다음 해인 1507년 중종 2년에 정시에 장원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가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호조좌랑 겸 춘추서기관, 정언과 칠언현감 등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해 일어난 기묘사화로 현량과가 혁파되면서 관직과 과거합격이 삭탈 당하는 수모를 겪자 청도로 낙향하여 삼족대를 세웠습니다.


 

 

 

1545년 인종 원년에 현량과가 다시 복과 하자 재서용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상경 도중 발병하여 다시금 청도로 되돌아와 죽었습니다.


 

 

 

김대유 선생의 삼족당은 나이 70이 넘었으니 수(壽)가 족하며 환란에 사미시에 합격도하고 관직에도 올라 고을 살이도했으니 영화도 족하며 조석으로 술과 고기가 끊어지지 않아 이 또한 족하다 하여 세 가지가 모두 흡족하다며 삼족당이라 하였습니다.


 

 

 

 

 

 

삼족대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 건물입니다. 정자는 흙담을 둘렀으며 아래쪽으로 일각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뒷문을 달아 선생과 똑 닮은 듯한 갓등산을 산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일자형의 건물은 방 두 칸에 부엌을 내었고 마루는 ‘ㄱ'자인 우물마루입니다. 1519년 기묘사화로 낙향하여 건립하였으며 후대를 거치면서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삼족대는 조선 후기에 다시 중수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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