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보문들에 남아 있는 보문리 사지. 경주 보문동사지  경주 보문사지 여행


경주에서 가장 큰 위락시설이 있는 곳을 보문호가 있어 보문단지라 합니다. 

보문단지는 보문리에서 그 이름이 나왔는데 그 보문리의 유래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는 경주의 진산인 낭산과 명활산성이 있는 명활산 사이에 있는 너른 들을 보문들이라하며 그 보문들 가운데에 보문사로 보이는 옛터가 있습니다.





경주 보문리사지. 경주 보문동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8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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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리의 명칭이 아마 이곳 보문사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문리에 있는 절터라서 보문리사지로도 불립니다. 

보문사지는 사방이 개간한 논으로 둘러싸여 현재 훼손이 엄청나게 심한 모습입니다.

 


그 보문들 사이의 훼손된 보문사지 사이에서 그래도 용케 금당지와 동서 목탑지의 주춧돌만은 그당시 흔적을 유지하며 남아 있어 신라 천 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보문사지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남아있는 금당의 부재와 건물 배치, 석재 등을 고려해보면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이 아닌지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보문이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장이 출토되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문사지는 금당 터와 목탑지가 주위의 논보다는 1~1.5m 정도 높습니다. 

이게 원래의 위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에 논이 들어서다 보니 흙을 깎아내면서 보문사지 금당터보다 현저하게 낮아진 게 아닌지 싶었습니다. 

이를 고려해 보면 보문사가 있었을 당시에는 소나무가 울창한 명활산의 낮은 능선이 흘러내린 구릉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ㅎㅎ

 


금당지에는 건물을 바쳤던 기단석과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금당터 앞인 동·서에는 목탑지가 남아 있습니다. 

동탑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며 서탑지에는 연화문이 새겨진 초석 중앙에 목탑을 지탱했던 구멍이 뚫린 대형 초석이 남아 있습니다.


보문사지 동서목탑지. 연화문이 새겨진 초석은 서탑지





우리나라에서는 목탑은 사실 아주 귀한 문화재입니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이 목탑건물로는 유일하다면 유일합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최근에 복원된 황룡사 9층 목탑과 근래 소실되었다 복원된 쌍봉사 대웅전 등이 목탑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문사지 목탑도 이들 석탑과 비교하면 규모 면에서는 작았겠지만 비슷한 형태였을 것 같습니다. 

목탑은 나무로 만들다 보니 화재에 가장 취약합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목탑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웃에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 시대 때 몽골의 침입으로 불탔다고 합니다. 

가까이 있다보니 보문사지 목탑도 그때 함께 불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금당지와 마주 보고는 보문사를 훤하게 밝혔을 석등의 받침돌과 옥개석, 초석이 그대로 나뒹굴며 방치되어 있습니다.

 





보문사지 금당지 앞 석등 초석




이외에도 많은 석불과 석등을 바쳤을 좌대와 초석 등이 논두렁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어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보문사지에는 그래도 이름값을 하는 보물 두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 하나가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23호)이며 둘이 경주 보문사지 석조(보물 제64호)입니다. 

따로 포스팅하겠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절 입구에 절을 알리는 깃발을 깃대에 달아 세웠던 두 개의 돌기둥을 말합니다. 

안쪽 면은 평면처리를 했고 나머지 삼면은 아래쪽을 잘록하게 했으며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가늘게 처리했습니다. 

당간을 고정했던 구멍이 상중하로 3개 뚫려 있으며 북쪽의 돌기둥에는 구멍이 반만 나 있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는 절에서 물을 담았던 돌그릇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졌으며 바위 안쪽을 넓고 깊게 사각으로 파내었습니다. 

석조의 내외부에 별다른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랫부분에 물을 빼내었던 배출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물을 담아두었던 용기로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주보문사지는 사적 제39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동남산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경주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경주 남산은 문화재의 보고입니다. 

흔히 아흔아홉 골(실제는 60여 개)에 아흔아홉 개의 암자가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암자가 부지기수로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현재 절터로 보는 곳이 아주 많은데 그중 한곳이 경주 동남산 칠불사로 오르는 남산마을 맨 안쪽에 자리한 염불사지입니다.






경주 동남산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1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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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에는 현재 동·서 쌍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염불사지의 쌍탑은 2007년 6월에 복원을 시작해서 2009년 1월에 완료하여 현재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으로 맵시를 뽐내며 전시중입니다. 

복원 되기 전 염불사터의 두 삼층석탑은 훼손 상태가 상당히 심했다 합니다.



1963년 나뒹굴던 염불사지 석탑 부재와 도지동의 이거사지 삼층석탑 1층 옥개석을 조합해서 불국동 구정광장에다 삼층석탑을 세웠전시했는데 저도 그곳을 지나면서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염불사지 삼층석탑 복원을 시작하면서 2008년 1월 해체되었고 옛 염불사지에 동·서 삼층석탑으로 거듭났습니다.



경주 남산동 염불사지는 사찰 이름치고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염불이란 “부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중생이 생각하는 염불은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스님의 수행법 중 가장 기초적인 게 염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염불사에 관련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와 있으며 내용을 보면 경주 남산 동쪽인 피리(避李)마을에 어떤 스님이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염불을 외웠다 합니다. 

목탁을 두드리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소리가 얼마나 맑고 청아했던지 서라벌의 백성이 모두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염불을 들은 모든 사람이 스님을 공경하였으며 염불(念佛)스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입적하자 스님의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고 그가 목탁을 치며 머물렀던 피리사(避里寺)는 염불사(念佛寺)로 고쳐 불렀다 합니다.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늠름한 외모와는 다르게 아무런 문화재 감투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주 시내에 신라시대 문화재가 많아서 그런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근에 남산사지 동·서삼층석탑만해도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말입니다.

 그 이유를 문화재에 관심은 많지만,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석탑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염불사지는 사적 제311호에만 지정되었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염불사지를 발굴 조사하고 ‘경주남산 남리사지 동·서삼층석탑 발굴보고서’를 내었습니다. 

보고서를 읽어보면서 염불사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고서에는 남리사지로 나오며 염불사지로 추정되는 곳이라 합니다. 

2003년과 2008년에 각각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2기와 금당터가 확인되었다합니다.







또한, 발굴보고서에서 석탑의 기초는 연약한 지반을 뚫은 후 안에 천석과 사질점토를 섞어서 교차로 다졌고 동탑지의 규모는 사방 6.5m, 깊이 1.2m 정도이며 내부에서 인화문 토기가 나왔는데 석탑의 건축연대를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이외에도 동회랑과 남동회랑, 중문지가 조사되었으며 출토유물을 분석했더니 사천왕사 등 시내사찰과 같은 시기의 기와가 창건기에 사용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서탑에서는 사리장엄구를 봉안했던 사리함이 2개가 나왔으며 3층 탑신의 방형 사리공은 투공되고 탑재 등에서 염불사는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천왕사와 같은 종류의 기와를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선덕여왕의 ‘낭산 도리천에 장사 지내달라’고 했던 그 예언인 도리천이 사천왕사라 생각됩니다. 

그게 맞다면 선덕여왕이 승하하고 30년이 지난 679년에 사천왕사가 창건되었던 것을 참작하면 염불사지의 창건 연대가 그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될 것 같습니다.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을 보고 나서 남산리 버스정류장으로 돌아나오면서 해 떨어진 남산마을의 양피저수지입니다. 

안내판에는 3월에 벚꽃, 7월~10월에는 연꽃과 베롱나무가 장관이라합니다.

(참고:국립경주문화제연구소 '경주남산 남리사지 동·서삼층석탑 발굴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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