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문화공원. 동요 산토끼를 상징하는 토끼 조형물 창녕문화공원 여행


창녕에서 두 번째 찾았던 공원은 창녕군을 대표하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은 창녕군청 뒤의 야트막은 산봉우리와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을 푹 담근 명덕저수지, 창녕향교를 아우르는 7만 평의 넓이로 보는 재미와 걷는 재미가 쏠쏠한 군민공원이었습니다.





창녕문화공원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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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문화공원을 구성하는 시설물은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주는 분수대와 화왕산과 창녕 읍내의 빼어난 전망을 선사하는 팔각정, 산새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걷는 산책로, 108개 번뇌를 씻어준다는 108계단,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놀이터 등이 있으며 공원과 연계된 수변 생태공원인 명덕저수지가 있습니다.

 


휴식과 산책을 동시에 겸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다양한 수생식물을 심어 어린이의 자연학습장으로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공원 인근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12호인 창녕향교와 교동 고분군까지 갖추고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세웠다는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찾았던 창녕문화공원은 다른 공원과 다르게 창녕의 지명과 문화라는 이름이 붙어 무엇인가 특별한 공원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창녕은 동요 산토끼의 고장으로 ‘산토끼노래동산’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어린이는 물론이고 청장년층까지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로 시작하는 산토끼 동요는 모르는 분이 없는 국민동요입니다.





이 산토끼 노랫말은 1928년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안리 당시 이방보통학교에 재직했던 이일래(1903~1979) 선생이 지었습니다.

학교 뒷산 고장산을 올랐다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산토끼를 보고서 생각한 노랫말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나라 잃은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나라와 억압에 빼앗겨버린 자유를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동요라 합니다.


창녕문화공원



저도 창녕문화공원의 산토끼 조형물을 만나면서 새삼스럽게 산토끼의 노랫말에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녕문화공원의 탄생은 바로 이 노랫말인 ‘산토끼’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시설 등이 참 잘되어 있어 가족공원으로서도 최고였습니다.





108계단을 오르다가 왼쪽의 덱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키큰 나무가 서 있는 오솔길을 오르면 어느덧 봉우리에 팔각정 전망대에 닿습니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창녕읍내를 세세하게 내려다보는 그야말로 일급조망이 펼쳐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날 날씨가 흐려서 많이 아쉬웠지만 맑은 날이면 전망은 끝내줄 듯합니다.





 재미있게 산토끼를 풍자화한 조형물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어도 보았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명덕저수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다가 보니까 사직단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싶어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합니다. 

그런 곳이라 하면 아주 신성시했던 곳 같았습니다.











창녕현 사직단의 기록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하며 『여지도서』, 『경상읍지』, 『조선후기지방지도』, 『교남지』 등의 문헌에 나타나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현의 서쪽 1리에 위치한다고 하며 지금의 사직단과 위치나 방향 등 모든 게 일치하며 창녕 사직단은 16세기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창녕사직단







창녕은 6·25 한국동란의 최고 격전지였던 낙동강 방어선 중 한 곳인 박진 나루터와 오항 나루터, 남지 등을 방어했던 미 제24사단이 북괴의 제4사단을 맞아 많은 병력을 희생하면서 지켜내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세워진 ‘6.25 월남 참전기념비’를 보면서 이분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과 6·25 참전 용사로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의가사 제대를 하셨던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했습니다.

월남 참전비를 보면서 이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습니다.

 








이제 명덕저수지입니다. 생태공원답게 수변공원을 따라 덱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참 반영이 아름다웠습니다. 누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저 아름다운 반영을 깨트리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못은 고요했습니다. 

연못을 돌아 창녕향교로 향했습니다.

 



창녕명덕저수지 명덕수변공원








창녕향교

창녕향교는 외삼문이 굳게 닫혀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으며 까치발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창녕 지역 유림이 건립했으며 공자의 위폐 봉안과 외삼문과 동·서재, 강학소인 명륜당, 동·서무, 제향 영역인 대성전으로 구성했습니다. 

창녕향교는 명륜당 뒤로 제향 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특이한 점은 석축을 쌓은 석재 중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사찰의 기단, 면석 등이 섞여 있는데 이는 폐사된 인양사의 부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높게 석축을 쌓고 명륜당을 세웠으며 앞면5칸, 옆면 2칸의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명륜당의 둥근 나무 기둥을 받치는 둥근 돌기둥의 주춧돌에 명륜당은 더욱 웅장하며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창녕향교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원년인 1650년에 한 차례 중건되었고 여러번 중수가 있었다 합니다. 

다시 명덕저수지로 돌아와 수변공원을 가로지르는 덱 길을 걸으면서 창녕문화공원 여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만옥정공원, 진흥왕척경비 창녕척화비 창녕객사 퇴천삼층석탑 만옥정공원 


와우, 창녕에 자주 가지만 창녕 주민을 위한 휴식공원이 이리 많은 줄 몰랐습니다. 

문화재도 많지만, 우포늪, 남지체육공원, 창녕문화공원, 영산연지못, 남산호국공원, 창녕함안보와 합천창녕보등 산책이면 산책, 자전거면 자전거길 등 공원과 낙동강 보 하며 다양한 게 정말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창녕군 창녕읍의 창녕만옥정공원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만옥정공원안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가득해서 더욱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면적은 1만㎡이며 도심 공원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규모였으며 국보 제33호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와 대원군의 창녕척화비, 창녕 객사, 퇴천삼층석탑, 유엔전적비, 창녕현감비군, 지석묘가 공원을 가득 채웠습니다.

 




창녕 만옥정공원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23

창녕 만옥정공원 전화:055-530-2478




2017/11/22 - [여행]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석빙고,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2017/11/26 - [여행] - (경남여행/창녕영산여행) 영산 만년교. 13세 소년의 신필 만년교 비석과 돌다리를 보다.



특히 4월에는 벚꽃공원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창녕신라 진흥왕척경비 앞의 벚나무에 벚꽃이 필 때는 정말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생각날 것 같았습니다. 

유엔전적비를 지나면 흥선대원군의 창녕척화비가 있습니다. 

척화비는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서양인을 배척하고자 곳곳에 척화비를 세워 백성이 이를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창녕척화비는 높이 1.23cm, 폭 46cm, 두께 20cm인 화강암으로 다듬었으며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자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짓이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창녕읍 교화리에 있던 것을 광복 이후 만옥정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그 왼쪽 작은 언덕에 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비각을 세워 보호하는 게 다른 문화재하고 달라도 정말 달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럴 만도 했습니다. 

비석인데요 국보 제33호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입니다. 

창녕군 안에서는 나라의 보배인 국보는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함께 딱 두 점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위엄있어 보였습니다.



창녕신라 진흥왕척경비는 넓은 자연 암석을 이용해서 대충 다듬은 다음에 비문을 새겼습니다. 

비문은 중국 육조풍의 해서체로 새겨졌으며 모두 27행에 643자가 쓰였습니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진흥왕이 세운 3곳의 순수비에 나타나는 ‘순수광경’이라는 제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는 순수비가 아니라 영토를 넓히고 신라의 국경을 표시하는 비를 뜻하는 척경비라 합니다. 



그러나 왕을 수행했던 신료의 명단 등이 나와 있어 순수비에 속한다고도 보고 있습니다. 

비문 내용에서 전반부는 마멸되어 거의 판독이 불가능하나 첫머리에 ‘신사년이월일일립(辛巳年二月一日立)’의 글자가 확인되어 이 진흥왕 척경비는 561년인 진흥왕 22년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문의 후반부는 알아볼 수 있는데 대략 400자가 정도를 판독하였다 합니다. 

비문의 후반부에서 보면 어가를 수행한 관리의 관직명과 출신지역과 수행 순서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았습니다. 




그 아래쪽에는 퇴천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이층의 기단에 탑신을 세운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따랐습니다. 

상륜부는 분실했으며 위층 기단과 갑석 일부는 부서져 없어졌으며 기단의 면석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탱주를 새겼습니다. 



각층의 몸돌 양 모서리에 기둥인 우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그 옆에는 창녕 객사 건물입니다. 

이 객사는 창녕 관아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다고 합니다. 

300~400년 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객사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시장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술정리로 옮겨졌다가 1988년 다시 현재의 위치인 만옥정공원내에 이전했습니다.



객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원, 외국사신이 머무는 숙소이며 또한 임금과 대궐을 상징하는 전폐를 모시는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객사 건물의 배치는 종묘 건물을 모델로 삼아 주건물과 좌우에 익사를 두어 건립되는데 창녕 객사는 주건물로 지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창녕 객사 건물은 벽체와 창호는 없고 지붕에 기둥만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본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하겠습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31호.












마지막으로 창녕현감비군입니다. 

역사가 깊은 고을이면 입구에 쭉 늘어서 있는 게 고을을 다스렸던 관리의 선정비입니다. 

신라에서부터 조선말까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창녕에 부임했다 떠나는 부사. 현감과 어사 관찰사가 베푼 선정에 떠나는 것이 아쉬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을 백성이 세운 비석입니다. 

창녕 고을의 선정비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것을 보면서 오랜 창녕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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