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다대포여행)다대포 빛축제. 다대포꿈의낙조분수에서 열리는 다대포 빛축제.



부산 다대포 하면 생각나는 게 2대 볼거리라 하여 일출과 일몰입니다. 

해수욕장이라 부르지만, 주위의 사상공단과 장림공단 때문에 언제부턴가 해수욕장이란 의미는 많이 퇴락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다시 다대포해수욕장의 재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해수욕장 일부에다 덱 전망대길이 설치되었고 해수욕장의 정비로 지금은 작지만, 해수욕장의 기능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은 일출과 일몰은 많은 관광객에게 익히 알려졌지만 지금은 한여름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분수와 레이저쇼가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에서 연출을 해 다대포 3대 볼거리로 호평 받으며 싱그러운 여름밤을 나게 합니다. 그만큼 다대포 꿈의낙조분수 또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겨울의 다대포도 일몰과 더해서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에서 펼치는 빛축제로 다대포를 찾는 많은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대포 4대 볼거리라 호평하고 있습니다.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다대포꿈의낙조분수 주소: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482-3 다대포해수욕장 진입로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다대포꿈의낙조분수 전화:051-220-5891






지난밤에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노트 5를 들고 다대포 빛축제 사냥에 나섰습니다. ㅎ ㅎ 여름철 레이저를 뿜어내는 분수에는 지금 로마 왕실의 분수대와 같은 모습을 한 화려한 불빛 조형물이 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곳이 다대포 빛축제의 매인부스입니다. 시시각각 조명의 색상이 바뀌면서 영롱한 빛을 연출하는데 화려한 보석도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빛축제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많은 관광객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저도 스마트 폰으로 메인 빛축제 구조물을 이쪽 방향, 저쪽방향 아니 이몽룡이 성춘향이 얼굴을 돌려보듯 360도로 방향을 바꿔가며 빛이 변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사진에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빛의 아름다움은 진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주위에 펼쳐지는 많은 조명과 함께 더욱 다대포 빛축제의 열기는 빛이 났습니다. 


밤만 되면 다대포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다대포 일몰과 함께 바다에서 만나는 다대포 빛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가족 나들이도 많이 보였습니다.

 다대포 분수대 주위 조경에 감아올린 빛 조명과 설치된 구조물의 조명이 함께 어울려 다대포의 밤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 예년을 보면 다대포 빛 축제는 연말과 연초까지 아마 길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부산여행에서 특히 꼭 빼놓을 수 없는 다대포 일출과 일몰, 그리고 덤으로 다대포 빛축제를 함께 여행해보세요. 부산이 이리 아름다울 수가 하며 부산 여행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다대포꿈의낙조분수에서 열리는 다대포 빛축제 사진으로 보기▶






































































































 

(부산동구여행/부산동구가볼만한곳)호랭이이바구길.  부산 동구 범일동 호랭이이바구길을 걷다

 

이번에 부산의 이바구길인 동구 호랭이이바구길을 산보 삼아 다시 한번 걸었습니다. 도시철도 1호선 범일역 7번 출구로 나오면 현대백화점입니다. 이곳 현대백화점에서 동구 호랭이이바구길은 출발합니다. 호랭이이바구길을 알리는 안내판을 보면서 백화점 건물을 오른쪽으로 끼고 도로를 걷습니다.

 

 

 

 

 

안창마을 주소: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산 65-300

 

호랭이 이바구길 지도

 

 

곧 하늘에 걸린 구름다리가 보일 때쯤에 갑자기 하수가 흐르는 도심 속의 하천이 나타납니다. 이 하천이 수정산에서 발원하는 호계천입니다. 범일동과 범천동의 유래가 되었던 골짜기지만 지금은 도심에 묻혀 계곡의 흔적은 이곳 이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호계천일대가 온통 수림의 바다였습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숲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몸을 숨기고 살았다 합니다. 지금이야 모두 집이 들어서고 도심의 개발에 밀려 숲의 흔적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호랭이이바구길의 흔적을 찾아 발길을 옮겼습니다. 구름다리를 올라갑니다.

 

 

경부선 철로에 걸린 구름다리는 언제부터인가 ‘친구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부산 출신 영화감독 곽경택이 메가폰을 잡아 ‘친구’가 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유행병처럼 번졌던 명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등 유행어를 남겼던 영화 친구는 부산 영화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구름다리를 다람쥐처럼 뛰어올라 범일동 극장 방향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던 우리들의 친구.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나도 배낭을 옆구리에 끼고 냅다 뛰어보지만 아이고 무릎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는 게 이제 다되었나 봅니다. 나의 학창시절도 이럴 때가 있었다며 그때를 생각하고 보림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이야 영화관이 모두 광복동과 서면 해운대로 몰려있지만, 예전에는 보림극장하면 부산 최고의 시설을 갖춘 빵빵한 영화관이었습니다. 실제 시설과 규모 때문에 영화상영보다는 당대의 기라성 같았던 연예인이 단골로 출연해 리사이틀을 주로 열었습니다.

 

 

 

 

가수 남진·나훈아·하춘화·이미자와 코미디언 서영춘·배삼룡 등 백지수표를 제시하며 모셔갔다던 연예인을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만날 수 있었던 쇼 전문극장 보림극장, 역사의 굴레 속에 폐관되었다가 부산 동구 호랭이이바구길로 조금은 옛 명성을 잇고자 당시를 회상하는 걸개그림을 달았습니다.

 

 

 

 

 

 

 

 

참 많은 사람을 울게 하고 웃게 했습니다. 보림극장을 왼쪽으로 돌면 범일 골목 시장입니다. 지금이야 쇠락하여 명맥만 유지하지만, 한때는 좁은 골목길에 시장을 보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던 곳입니다.

 

 

 

이는 한국동란의 피난민과 6~70년 경기가 살아나면서 호구지책으로 탈 농촌 하여 무조건 도시로 올라온 사람이 신발공장과 봉제 공장이 많았던 범일동·범천동에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상사·삼화고무·태화고무 등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굵직굵직한 공장입니다.

 

 

이들 여공과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채소와 생선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고 갔는지 이제 범일 골목 시장도 추억만이 흘렀습니다. 골목 안에 ‘동구 영화 촬영지’를 훑어보면서 우리가 보았던 많은 영화가 동구에서 촬영되었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골목 시장을 지나다 보면 호천석교비 안내판이 있습니다. 1711년 숙정 37년에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 썩고 해서 돌다리로 바꾸면서 세운 기념비로 당시에 세웠던 비석은 2000년에 박물관으로 옮겨가고 그 대신 지금의 비석을 세워 호천석교비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호천석교비를 지나면 ‘누나의 길’과 만납니다. 6~70년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무작정 고향을 떠나 신발공장이 많았던 범일동에 몰려들었던 우리의 누나들... 이 골목길은 신발공장, 봉제 공장에서 여공이 되었던 수많은 누나가 출·퇴근하면서 오르내렸던 골목길입니다.

 

 

 

 

하늘의 별과 함께 출근하고 하늘에 솟은 달과 함께 퇴근하면서 지났던 골목길. 그 당시 출퇴근 시간에는 따각따각 하는 누나들의 구둣발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합니다. 그 누나들의 흔적이 신발박물관에 남아있으며 골목 담벼락 이곳저곳에 빛바랜 흑백사진으로나마 당시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신발박물관

 

 

 

 

 

신발박물관은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아름빌 아파트 앞입니다. 여러 갈래가 갈라지지만 아름빌아파트를 왼쪽으로 끼고 도로를 따라갑니다. 왼쪽 산비탈에 ‘극장이야기’ 안내판이 있습니다. 영화 포스트, 당시 동구의 수많았던 영화관이 있었음을 알게끔 꾸며놓았습니다.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 등이 있었으며 ‘저 하늘에도 슬픔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영자의 전성시대’ ‘미워도 다시 한번’ ‘얄개’ 등 영화 포스트가 당시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제 영축사 계단 길을 올라 새롭게 조성된 범일동 전망대에 오릅니다. 이곳은 똥산으로 불렸던 아담한 산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집집이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당시에는 푸세식으로 똥바가지에 똥을 퍼와 이곳에다 구덩이를 파고 묻었으며 멋모르고 오르내리다 똥통에 숱하게 빠졌다는 에피소드가 있는 범일동 전망대를 똥산전망대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참 우습고 슬프다는 신조어인 ‘웃프다’를 떠오르게 하는 범일동산전망대. 그러나 전망하나는 시원한 게 끝내줍니다.

 

 

범일동산전망대

 

 

 

마을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이제 귀환 동포 마을입니다. 주위의 집들보다 한결 낮아 보이는 단층 슬레이트 지붕이 해방과 함께 부관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내렸던 귀환 동포를 수용했던 시설물입니다. 그중에서도 천재 화가 이중섭도 1951년 12월에 안내 마사코와 함께 피난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한국명 이남덕은 ‘범일동 1497번지’ 판잣집의 생활이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고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술회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뒤에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마사코는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아이와 함께 떠나고 이중섭은 술과 부두노동자로 고단한 삶을 살면서 가족을 그리워하다 그의 대표작인 ‘범일동 풍경’을 그리게 됩니다.

 

 

 

 

다시 골목길을 나오면 쌈지공원에 운동기구가 놓인 호랭이 쉼터입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만물상회를 지나면 산복도로의 삼거리와 만납니다. 오른쪽 럭키슈퍼 골목길을 따라가면 통일교 성지인 통일교 기도관 옆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도로를 내려서서 안창마을로 바로 가도 되지만 내친김에 문선명 목사가 한국동란 때 범일동에 피난 와 기도했다는 ‘눈물의 바위’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성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세계 40개국에서 모은 돌과 눈물의 바위를 보고 내려와 만나는 첫 번째 집에서 왼쪽 골목으로 빠져나갑니다.

 

 

지금은 정자쉼터 등 말끔하게 정비를 해 놓아 한결 좋아 보였습니다. 다시 마을 길을 내려서면 안창마을 오르는 메인도로입니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르던지 광명사 앞의 하천을 따라 오르는 길을 가도 안창마을 29번 버스종점에서 만납니다.

 

 

 

 

동구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안창마을. ‘골짜기 안의 분지마을’이라는 뜻인 안창마을은 실제 밖에서 보는 것하고는 엄청나게 규모가 큽니다. 피난민과 산업화로 몰려들었던 많은 사람이 하나둘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마을로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에는 이른 새벽 범일동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합니다.

 

 

많은 사람의 애환이 서려 있는 안창마을에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호랭이이바구길’로 다시한번 새로운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어둡고 칙칙했던 동네는 밝고 화사하게 바뀌었으며 언제부터인가 오리 요리하면 안창마을로 통할 정도로 오리요리 대표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 가운데 루미네수녀 기념관에서 호랭이이바구길 여행을 마쳤습니다. 루미네수녀님은 부산 동구의 안창마을 2평 남짓한 판잣집에서 형편이 어렵던 마을의 아이들을 모아 21년 동안 사랑과 희생. 봉사로 돌보았던 수녀님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입니다. 부산 동구 호랭이이바구길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루미네수녀 기념관

 

한국동란과 그 후의 산업화의 중심에 있었던 범일동과 범천동 특히 호계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많은 아버지·엄마·누나·형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부강한 대한민국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구경 오세요


다음 주인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 마을인 감천문화마을에서 ‘제7회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가 감천동 태극 마을 일원에서 열립니다. 

7년 동안 매년 이어온 행사지만 올해에는 조금은 특별한 골목 축제로 주제를 정했으며, ‘골목 그리고 마을 이야기’로 풀어가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감천문화마을만의 이야기를 들으러 꼭 놀러 오세요.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 행사의 주요 내용을 보면 12일과 13일 양일 동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열린다면 14일인 마지막 날은 타악기 연주에 맞추어 이색복장을 하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골목 나라 퍼레이드가 열립니다. 

이 행사는 지난해의 인기에 힘입어 축제 기간 내내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7080 의상을 입고 참가하는 관광객은 베스트드레스상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ㅋㅋ 나도 나팔바지에 교복 입고 한번 참가해봐야겠습니다. 

초중고생이 프린지 어워드에서 다양힌 끼를 발산하도록 하고 마을 주민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연극으로 선보이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합니다. 그리고 축제라면 먹거리가 빠질 수 없습니다. 추억의 간식인 달고나와 강정, 학창시절 점심시간 전에 미리 까먹은 양은도시락 등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먹거리가 축제 기간 내내 우리의 추억을 끄집어 내 줍니다. 

엄마 아빠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60년 70년 한창 어려울 때 자식을 위해 희생으로 삶을 살아온 부모님과 함께 3대가 즐기기에 딱 좋은 감천문화마을에서 추억여행 공유를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재7회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행사기간:2017년 5월12일(금)~5월14일(일)

개막식:5월12일 금요일 오후 5시 감천문화마을 주민어울마당


사진으로 감천문화마을 구경하기 





감천문화마을 안내센터 주소: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1-14

감천문화마을 안내센터 전화:051-204-1444

 




2017/04/19 - [여행] - (부산여행)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우째 이런마을이 공동묘지에 들어선 비석문화마을 여행

2017/04/14 - [여행] - (부산서구여행)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가슴 먹먹한 부산 사람들의 모습 최민식갤러리에서 만나보세요.

2017/02/08 - [여행]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에서 사진찍기 인증 포인트 바로 여기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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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 찾아가는 길



감천문화마을 교통편: 2017년 5월12일~14일 축제 기간내 셔틀버스 운행 안내:토성역 부산대학병원 암센터 앞 마을버스정류장~감천문화마을(감정초교)~감천2동삼거리~감천지구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20분 간격 운행

지하철을 이용할 시에는 A:토성역 6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학교 암센터 앞 마을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 또는 셔틀버스 환승. 마을버스:사하1-1, 서구2, 서구2-2

B:괴정역 6번 출구로 나와 뉴코아아울렛 맞은편 마을버스정루장에서 사하1, 사하1-1번 마을버스를 환승하여 감천문화마을 감정초교에서 내립니다.

단 주차공간이 매우 부족하니 자가운전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아주 편안합니다.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주차장안내:부산대학교병원주차장, 아미성당, 감정초교공영주차장, 감정초교운동장, 감내공영주차장, 감천문화마을공영주차장, 서천초교운동장, 감천1동노외주차장

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051-291-1444 070-4485-7405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천태종 삼광사 연등 축제. 5만개의 연등이 장관인 삼광사 연등 축제 여행


방가방가 안녕하세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토요일 저녁에 삼광사 여행을 했습니다.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의 천태종 종단인 삼광사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매년마다 연등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삼광사 주소: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54-58

삼광사 전화:051-808-7111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4월 16일부터 세상을 밝히는 연등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삼광사의 연등을 보기 위해 수많은 방문객이 매일 찾고 있습니다. 삼광사의 연등축제는 CNN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50선에도 당당히 이름 올렸으며 한국에서 가장 가 볼 만한 여행지에도 뽑혔습니다.

 

 

 

 


 

 

저도 가장 아름다운 한국 50선에 선정된 삼광사 연등 축제 구경을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연등축제 행사 기간에는 삼광사주변이 복잡해서 대중교통편 이용이 편리합니다. 저 또한 대중교통편을 이용했으며 교통편을 보면 도시철도 1·2호선이 만나는 서면역에서 영광도서 방향인 9번 출구로 나가면 됩니다.

 

 

 

 

영광도서 건너편 분수대 옆에 부산진구 15번 마을 버스정류장이며 이곳에서 승차하면 편안하게 앉아서 삼광사까지 갈 수 있습니다. 물론 환승도 가능합니다. 삼광사 연등축제는 오는 5월 3일 부처님오신날까지가 공식행사 기간이지만 예년을 보면 기간이 끝나도 연등에 불을 밝혀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금은 더 연장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연등에 불을 밝히는 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이며 승용차 이용하여 밤늦게 도착하면 여러 곳에 마련된 삼광사 주차장에서 주차할 수 있지 않나 쉽습니다. 올해 삼광사 연등축제는 대략 5만 개의 연등을 입구에서부터 달아 놓았습니다.


 

 

 

 

 

삼광사 산책길은 물론이고 지관전과 법화삼매당 사이의 광장에까지 모두 뒤덮어 그야말로 연등의 바다입니다. 삼광사 연등 사진포인트는 지관전 2층과 3층 그리고 법화삼매당 2층 복도입니다. 이 두 곳이 삼광사 사진 포인트이며 저도 갤럭시 노트3 스마트폰을 들고 삼광사 연등 사진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담았습니다.

 

 

 

 

 

 


 

 

 

 

여기 올린 삼광사 연등사진은 모두 스마트폰으로 찍었습니다. 노출하고 화이트발란스만 조절했는데 사진을 잘 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삼광사에서 수많은 연등에 둘러 싸여보는 행복도 느꼈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성불도 기원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즐거운 석가탄신일 되십시요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우째 이런마을이 공동묘지에 들어선 비석문화마을 여행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산 서구 아미동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아니 벌써 나왔을지도 모를 공동묘지 마을인 비석 마을이 있습니다. 공동묘지 옆의 마을이겠지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공동묘지의 봉분을 대충 뭉개고 그 위에다 집을 짓고 지금까지도 사는 마을입니다.





부산시 서구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아미동2가 227-7


 

묘지의 주인을 말해주는 비석과 상석은 건물의 지반을 받치는 축대나 계단이 되었으며 또한 개중에는 가스통을 받치는 받침대가 되었습니다. 왜 이곳에 공동묘지가 들어섰고 또한, 공동묘지에다 집을 짓고 살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모두 일본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들어온 일본인이 조성했던 공동묘지입니다. 그리고 광복이 되면서 일본인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무덤은 가져갈 수 없으니 지금의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영락공원에서 화장하여 뿌리거나 귀향 편에 가져갔습니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하늘 전망대

 

 구름도 쉬어간다는 하늘 전망대 전경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가 터지면서 수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궁둥이라도 붙일 틈이라도 보이면 우선 비바람이라도 피할 욕심에 판데기로 움막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동묘지라고 꺼렸던 이곳도 몰려드는 피난민에 하나둘 무덤 사이에다 움막을 짓고 바닥을 고르기 위해 비석과 상석을 깔며 생활했습니다.

 

 

차츰차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룰 정도로 그 규모는 커졌으며 사람들은 공동묘지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비석 마을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세월 속에 비석 마을의 존재는 이곳 사람들 이외에는 모두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으로 아미동 비석문화 마을이 알려졌고 지금은 근대 애환을 가진 역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아미동 비석문화 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 마추픽추로 알려진 감천문화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을 둘러봤다면 아미동 비석 마을도 여행해보세요. 당시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집들 사이로 미로같이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었으며, 폭이 50cm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좁은 골목은 몸을 옆으로 돌려야만 겨우 빠져나가집니다.

 

일본인 무덤의 비석과 상석으로 만든 축대 

 

 

항상 어둡고 칙칙한 달동네의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비석 마을에 이제는 수시로 벽화를 교체하는 작업을 해 밝고 아름다운 마을로 탈바꿈했습니다. 비석 마을이 높은 곳에 있어 ‘구름도 쉬어간다‘는 하늘 전망대에는 ’싸이‘와 여러 캐릭터를 세워 사진 촬영장소로 최고의 인기 코스입니다.

 

 

 

 

멀리 북항과 부산항대교 등 시원한 조망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비석 마을 하늘 전망대도 만나고 부산 서구의 근대 문화 관광지 중 한곳인 비석 마을 여행을 꼭 추천합니다.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닌 서로 한 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부산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비석 마을을 보면 생각도 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을 때 무심코 튀어나오는 말인 “우째, 이런 일이‘ 하며 깜짝 놀랄 여행지입니다.

 

일본인 무덤위에 들어선 집 

 

 

 

 

 

 


(부산서구여행/부산서구가볼만한곳)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가슴 먹먹한 부산 사람들의 모습 최민식갤러리에서 만나보세요.



부산광역시 서구에 속칭 달동네라 부르는 아미동 비석 마을 언저리에 아미문화학습관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작가 최민식 갤러리가 있습니다. 1957년부터 한평생을 오직 흑백사진으로만 작품을 찍었던 분입니다. 한국동란의 아픈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0년 부산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 부산 사람들의 참 인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았던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전시실. 최민식 선생님을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라 부릅니다. 그분의 작품 속에서 Human(인간)이란 모습을 찾을 수 있으며 사진 한 장 한 장에 우리 부모님의 모습인 억척같은 삶과 일상을 만나게 됩니다. 왜, 우리 부모님이 처절하게 살았는지 최민식 님의 사진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으며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아보세요.






2016/12/03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이태석신부 생가. 울지마 톤즈 이태석신부 생가 여행.

2016/12/11 - [산행] - (부산여행)부산서구 천마산 산행. 부산 최고 조망 산행지 중 한곳 남부민동 천마산 원점산행

2016/11/01 - [여행] - (부산여행)옛 부산미문화원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 일제강점시 수탈현장의 중심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부산지점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

2017/02/08 - [여행]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에서 사진찍기 인증 포인트 바로 여기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아미문화학습관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천마산로 410호

최민식갤러리(아미문화학습관) 전화:051-240-4495~6

최민식갤러리 운영시간:평일 오전10시~오후7시(단 주말은 오후 5시까지)

갤러리 월요일 휴무

대중교통편: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이나 자갈치역하차. 토성역에소는 부산대학병원 응급병동 앞 정류장, 자갈치역에서는 서구청 앞 마을버스 1,2,3를 이용 아미골 공영주차장 하차.

 































(부산다대포일몰) 부산다대포일몰 '해를 따라 서쪽으로...'

2017.3.11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해를 따라 서쪽으로..."









17.3.5 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부산다대포일몰)17.3.5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2017/03/09 - [사진] - 17.2.12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0 - [사진] - 17.2.12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일몰

2017/03/11 - [사진] - (사진)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17.2.12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3 - [사진] - 17.2.12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4 - [사진] - 17.2.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해넘이 일몰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에서 사진찍기 인증 포인트 바로 여기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감천문화마을 하면 다 아십니다. 요즘은 삼천만의 관광지라 해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부산의 새로운 관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은 부산 사하구 감천동에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의 반달고개에 자리 잡았습니다.






감천문화마을 주소: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 10-63

감천문화마을 안내센터 전화:051-204-1444

 


 

 

 

지금이야 감천2동으로 불리지만 옛 지명은 감내라 하여 물이 아주 달고 좋았던 모양입니다. 이곳에 태극도 마을이 들어서게 된 유래를 보면 6·25 한국전쟁으로 충청도 등 전국의 태극도 신도들이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피난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모두 이곳에 집단 이주하여 산비탈을 깎아내고 1천여 가구의 주택과 자급자족을 위한 밭뙈기를 만들어 거주한 데서 태극도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마을을 형성하면서 무작빼기로 집을 지었던 게 아니라 구획정리를 먼저 하면서 집터와 경작지 소방도로 등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마을 가운데에다 태극도 본부를 두고 좌우로 총 9개 구역으로 나누고 산비탈을 계단으로 깎아낸 뒤 집을 지었으며 모두 똑같은 형태의 공동 주택이었습니다. 똑같은 집들이 일렬로 늘어선 게 기차가 연결된 것 같아 요즘 보면 꼭 작은 집 모양인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았다 합니다.


 

 

 

지금도 당시 형태의 주택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주택에서 눈여겨볼 점은 아랫집이 윗집을 전혀 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시의 전기사정과 밀접합니다. 모든 주택은 햇볕인 자연채광을 막지 않으려는 조처입니다. 지금처럼 전기를 펑펑 사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최대한 자연채광을 이용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화선 역할을 하도록 폭이 6m인 수직계단을 3개소 만들었는데 이는 모든 집이 판자로 짓다 보니 혹시 모를 화재에 의한 방지책이며 지금도 그당시 오르내리던 계단은 다소 좁아졌지만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처음 지어졌던 판잣집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80년대에 와서는 패널과 슬래브지붕으로 탈바꿈하면서 감천문화마을도 세태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당시 골목 형태와 건물의 구조 등이 그대로 남은 곳도 있어 감천동의 감내마을이 문화마을로 불리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전에 감천동의 감내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태극도 마을의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창 호황일 때 이곳에서 생활하던 주민들도 모두 공장에 나가 돈을 벌었다 합니다.


 

 

 

지금은 부산 서구청 앞과 사하구 괴정 로터리에서 감천문화마을까지 마을버스가 수시로 다니지만 그때에는 도로가 뚫려있지 않아 반달고개~까치고개를 지나 대티고개에서 사상공단으로 출퇴근했으며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합니다.


 

 

 

현재 감천문화마을에는 태극도 신도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 떠나고 몇 남지 않으며 거의 모두 다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절에 호구지책으로 무작정 고향을 떠나 상경하여 숙식해결을 위해 들어왔던 분들이 이제 대부분이라 합니다.


 

 

 

 

 

 

저는 이런 골목길을 좋아해서 감천문화마을 이전부터 여러 번 찾았습니다. 평화롭기만 하던 산골 마을이 어느 순간 감천문화마을로 바뀌면서 관광객이 하나둘 찾아오고 급기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부산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으며 한국관광 100선에도 2회 연속 올랐다 합니다.


 

 

 

1년에 서너 번은 감천문화마을을 꼭꼭 찾게 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건물이 자꾸만 들어서고 기존의 집들은 헐려지고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감천문화마을과 현재의 감천문화마을을 보면서 벌써 많은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의 실제 주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데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너무 심하게 상업화에 치우쳐져 감천문화마을의 모습이 없어지는게 아닌지, 또한, 생기는 건물은 모두 먹자판 전문 상가로 변질되어 옛날 태극도 마을의 모습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 포인트는 역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로 나인주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가는 “별을 떠나 지구로 온 어린 왕자는 사막여우를 만나 긴 여행을 하다가 공간을 뛰어넘어 감천문화마을로 왔는데 여행 중 잠시 난간에 걸터앉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작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곳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는 연중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으며 감천문화마을의 가장 중요한 사진찍기 인증 포인트입니다. 그 때문인지 항상 이곳에는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천문화마을에서는 매년 작품이 업데이트되는데 이번에도 지난번에 왔을 때 보지 못했던 작품이 여러 편 있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동래향교. 부산 동래 여행에서  꼭 가봐야할 동래향교.


아주 오랜만에 동래향교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8년 전쯤에 와보고 처음 오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동래향교와 현재의 향교 모습은 그리 변한 곳이 없어 보였습니다. 동래향교는 1392년인 조선 태조 1년에 처음 생긴 교육기관입니다. 당시에는 동래읍성 안쪽의 망월산 아래 현재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합니다. 






동래향교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5

동래향교 전화:051-552-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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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그러다 1812년인 순조 12년에 동래부사였던 홍성만이 지금의 장소인 명륜초등학교 옆으로 옮겨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향교란?? 공자를 비롯한 유교의 성현을 배향하는 기능과 교육을 담당하는 국립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중등교육기관이 이에 해당합니다.











현재 동래향교도 교육을 담당했던 명륜당과 성현을 모시는 사당인 대성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명륜당과 대성전을 담을 쌓아 영역을 나누었으며 내삼문을 달아 서로 통하게 했습니다. 대부분 향교는 앞쪽에는 학생들의 수업공간이며 뒤쪽에는 제향 공간인 전학후묘의 양식을 취하지만 동래향교는 명륜당 오른쪽으로 대성전이 약간 비켜나게 배치하여 일반향교와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반화루





명륜당과 대성전은 앞면 5칸에 옆면은 2칸이며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그리고 부속건물인 동재와 서재는 앞면 3칸에 옆면 1칸인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수업하는 공간이라면 좌우 동·서재는 학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입니다.











동래향교의 중심건물인 명륜당과 마주한 건물은 2층 누각 반화루입니다.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에다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여 중후한 분위기와 향교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반화루의 의미는 동래향교의 교육이념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학생의 수업공간인 명륜당








 그 뜻을 보면 “성인을 따라 덕을 쌓고 임금을 받들어 공을 세우기를 원한다 ”이며 이는 나라의 동량을 기르는데 동래향교는 큰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 공간인 대성전 앞의 좌우 건물인 동무와 서무는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명륜당과 대성전을 가르는 내삼문





건물은 동·서재 양식과 비슷하며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경국대전에는 동래향교의 학사관리에 학전 7결을 지급하였으며 종 6품의 교수 1명과 70명의 학생이 수업을 했다 합니다. 반화루 한쪽에는 동래 관헌에 부임한 부사들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를 흥학비라 부릅니다.


















제사공간이 대성전








동래부사들의 공덕비. 흥학비라 합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2016년 제8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광복로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2016년 제8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대표 겨울 축제하면 이제는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인 것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2016년도 제8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11월 26일 화려한 점등식을 시작으로 무려 44일간인 2017년 1월 8일 일요일까지 부산 중구 광복로에서 팡파르를 울렸습니다.





 





이번 개막 점등식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하여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의 의미를 더했는데요. 각기관의 단체장과 장애인, 소방관, 환경미화원, 탈북민, 다문화 ,상인대표 등이 점등식에 참여하여 성탄축제의 의미를 더욱 크게 하였습니다.





올해 제8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는 “탄생의 기쁨”이라는 주제로 부산의 원도심 지역인 1.2km 광복로와 용두산공원 일부 구간에서 진행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겨울 축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의 콘텐츠는 높이 17m인 6단짜리 생일축하케이크모양으로 시티스폿의 메인 트리입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설치되는 각종 장식물이 부산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광복로 거리에 설치되어 광복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포토존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다양한 사진 촬영을 즐길 수 있으며 용두산공원 입구 등 일부 구간에는 조명 장식을 추가하여 트리축제 구간을 확대하여 더욱 많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년의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보다 올해는 더욱 많은 시민의 참여로 가장 돋보이는 축제라 생각됩니다.





2016년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의 축제 한마당은 부산 대표 겨울 축제로 올해에도 트리축제로 아주 따뜻한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광복로 부산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구경 많이 놀러 오세요.





2016년 제8회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사진보기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범어사 원효암, 범어사 원효암에서 원효와 의상을 만나다. 


범어사는 의상대사께서 창건했다면 금정산의 원효암은 이름 그대로 원효대사께서 창건했습니다. 이 두 분은 동년에 서로 호형호제하며 신라불교를 이끌어왔으며 원효가 있어야 의상이 있고 의상이 있어야 원효가 빛이 발하는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범어사 원효암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명륜동 546

범어사 원효암 전화:051-508-4008



 

 

이곳 금정산에서는 두 분이 서로 사이좋게 절을 세웠으며 또한, 두 스님이 참선했던 범어삼기의 원효석대와 금정팔경의 의상망해도 이웃하고 있어 원효와 의상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원효석대와 의상망해의 의상대는 100m의 거리를 두고 솟은 바위 전망대로 의상대는 일반인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원효석대는 기치 창검의 바위를 기단삼아  그위에다 원효의 좌선바위가 놓여 일반인은 위험해서 함부로 접근조차 하기 힘듭니다.



 

 

 

필자는 여러 번 원효암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발길이 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원효암을 여행하면서 당시 세월의 무게가 내려 앉은 고졸한 전각은 오간데 없고 모두 새로 들어선 삐까번쩍한 건물을 보면서 느낀 점은 원효암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조용한 산사의 고느적한 예스러움이 사라진게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해발 500m 높이의 원효암은 범어사에서 대략 2~30분은 발품을 팔아야만 만나고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아마 원효대사도 미륵암과 함께 창건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며 다만 원효가 머물면서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옵니다.



 

 

 


원효암 입구를 들어서면 키 큰 편백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울창창합니다. 그 속에 조선 시대에 세워진 종형의 부도군이 있습니다. 부도군이라 해봤자 모두 3기로 스님의 부도인  승탑입니다. 이 승탑은 모두 조선 말기에 세워졌으며 그와 마주한 곳에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1호이며 경내에 있는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2호인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인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건립된것으로 추정합니다. 큰 지대석 위에 현재 3층의 탑신부만 남아 있으며 탑의 형식에서 가늠해보면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가 올려졌을 것이나 지금은 기단부와 상륜부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각층의 탑신부에 올려진 지붕돌인 옥개석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파손의 정도가 심한데 이는 무너졌던 석탑의 부재를 수습하여 다시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했으며 옥신석에는 귀기둥을, 옥개석의 중급 받침은 4단으로 조각하였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탑신의 옥신석은 비례나 재질을 고려해 보면 뒤에 보충된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효암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수법을 보면 10세기경의 석탑으로 추정하며 본래 위치에 재건하였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원효암 대웅전의 위치와 창건 시기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석탑입니다.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은 동편 삼층석탑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경내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동탑과 마찬가지로 이중 기단 위에 세워졌는데 지대석과 하층 기단을 구성하는 하대중석과 상륜부가 남아있지 않으며 하대갑석 위에 상층기단과 3층의 탑신부만 현재 남아 있습니다.


 

 

 

 

 

 

 

 

 

하대갑석의 두 판은 판석으로, 뒷면의 상대중석은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돌로 구성되는데 이는 다른 석탑의 부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각각의 옥개석은 3단의 층급 받침에 옥신석에는 귀기둥을 조각했습니다. 그리고 서편 삼층 옆에는 또 다른 부도가 있습니다. 주석하고 있는 스님께 승탑의 주인을 물었더니 알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원효석대



 

 

 

 

 

의상대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금정산성 북문. 금정산 주변의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금정산성 북문 여행.


금정산성은 산성의 길이가 대략 18.8km이며 성벽의 높이는 1.4m~2.6m로 우리나라 산성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금정산성의 위치는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의 전 능선을 아우르는 규모입니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금정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군사적 요충지에다 금정산의 능선을 따라 세워졌습니다. 이는 바다 건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았으며 이 산성이 언제부터 처음 쌓아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다와 가깝고 왜구의 침략이 잦아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쌓은 산성이며 또한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보니 신라 시대 때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금정산성 북문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1-13







그리고 문헌상의 금정산성은 1703년인 숙종 29년에 쌓은 산성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경험한 후 항상 왜구를 견제한 것은 사실이며 이에 조정은 1667년 현종 8년에 통제사 이지형을 조정에 불러드려 왜구의 침략을 대비한 방어계책에 금정산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면 두 전란에도 금정산성은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702년 금정산성을 쌓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고쳐 쌓았는지 새로 축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상감사 조태동에 의해 성을 쌓아 그 이듬해 완공하였습니다.


 



그 후에 성의 규모가 너무 크고 넓어 1707년인 숙종 33년에 산성을 남·북 두 구역으로 가르는 중성을 쌓고 장대와 군기고 등을 설치했습니다. 금정산성의 수비는 동래부사가 책임졌으며 중군, 승병장, 군기감 등 여러 직책을 가진 군병과 상비군 및 주변 사찰의 승려가 평상시에 근무했으며 그리고 혹시 모를 전란과 유급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등의 소속군사와 3개 읍 소재 사찰의 승려를 차출하여 편재를 갖추어 방어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정산성은 허망하게도 국권침탈에 의한 일제강점기에 산성 내의 관아 건물은 모두 몰수당하는 등 성곽은 파괴되어졌습니다.


 



산성의 보수는 사적 제215호로 지정하면서 1972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성곽과 성문, 망루 등을 현재까지 정비 보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금정산성에는 동서남북 사대문이 모두 복원되어 있으며 이번 금정산성 여행에서 주변지형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북문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금정산성 북문은 4대문 중 규모가 가장 작습니다. 1703년 숙종 29년에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그때 함께 북문을 설치했다 합니다. 또한, 1828년인 순조 24년에 금정산성 북문에 지금과 같은 문루를 세우고 수비군을 배치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때는 성문을 세우기 위해 엄청나게 큰 돌을 쌓은 성벽에 성문만 있고 문루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금정산성 북문은 허물어져 석축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1986년 지금의 모습으로 문루를 복원하였고 그 후에도 부분적인 보수가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금정산성 북문의 건축 양식은 앞·뒷면이 모두 평거식이며 홑처마 우진각 지붕에 1층은 성문인 출입문 위에 만든 문루입니다. 문루는 앞면 1칸에 옆면 1칸 규모이며 이를 받치는 성문의 규모는 폭이 250cm이며 양쪽 벽면의 길이는 약 350cm로 큰 화강암으로 벽체와 기둥을 쌓았습니다.


  






성문 위에는 몸을 숨기기 위해 낮게 쌓은 담장인 성가퀴를 설치하였는데 금정산성 북문은 필자가 볼 때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을 잇는 산성이며 문루와 성벽의 규모를 보면 정말 잘 어울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연일 많은 산행객으로 붐비는 금정산 북문 여행 꼭 추천해 봅니다.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부 동헌. 새롭게 복원한 동래부 관아 건물 동래부 동헌을 여행하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는 조선 시대 후기 동래부 관아 건물인 동래부 동헌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동헌은 일명 아헌이라고도 하며 수령의 살림집을 내아라고 하며 동헌은 외아라고 불립니다. 동래부 동헌은 조선 시대 동래도호부의 부사가 공무를 보던 곳으로 이청, 무청, 향청 등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건물입니다. 동래부 동헌은 1636년 인조 14년에 부사 정량필이 창건하였습니다.





동래부동헌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421-56




 

동래부 동헌의 외삼문 독진대아문


1711년 숙종 37년에 부사 이정신에 의해 충신당이라 이름 지어 아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동래부 동헌은 일제강점기에 동래 군청 청사로 사용하다가 우여곡절인지 모르지만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편입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양산군 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합니다.



동래독진대아문 포스팅 보기:

2016/10/21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동래부 동헌에는 충신당과 좌우에 동익랑과 서익랑과 동래동호부 동헌의 출입문으로 망미루로 불렸던 동래도호아문과 외삼문인 독진대아문 등이 부속건물로 있었습니다. 동헌의 건물을 보면 동익랑은 동헌의 안살림을 담당했던 다모방으로 사용되었고 서익랑은 공물을 보관하는 내유포고, 형벌기구를 보관하는 형장고와 사령이 기거하는 흡창방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동래부 동헌 충신당(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그러나 아쉽게도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정비계획을 한다고 동헌을 철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서익랑 건물은 철거되었고 동래도호아문인 망미루와 독진대하문은 1930년경에 각각 금강공원 입구와 금강공원 내에 옮겨 복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동헌의 중심건물인 충신당만 본래 위치를 고수하며 남아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동래부 동헌의 원래 위치에 복원하면서 전체적인 규모는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충신당과 동익랑 건물은 서로 많이 떨어졌으나 좁은 부지에 새롭게 복원하다 보니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느껴집니다. 충신당은 앞면 7칸에 옆면 4칸 규모로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처음에는 좌·우에 방이 있었으며 가운데에 대청을 두어 수령은 대청에서 공무를 처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동래군청과 보건소 등 관청 건물로 사용하다 보니 벽면과 천장, 마루 등을 용도에 맞게 개조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지희루 동래 읍성 동문의 현판 





서쪽벽은 원래 모습 그대로이며 문설주와 중방등이 남아 있습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도 정면과 서측면만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으며 전면에 놓여 있는 디딤돌과 계단은 이 건물의 바닥이 마루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우루 동래읍성 남문 현판






은일루 동래읍성 암문에 있던 현판



심성루 동래읍성 서문의 현판





동래부 동헌의 충신당은 부산 지방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단일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유일한 건물입니다. 또한, 동래부 동헌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로 평가하고입니다.


 

찬주헌






 










 




망미루 포스팅 보기: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망미루(동래도호아문)


동래부 동헌의 출입문이었던 망미루는 바깥쪽으로 동래도호아문의 편액이 걸려 있으며 안쪽에는 망미루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동래도호아문은 1742년 영조 18년에 동래부사였던 김석일에 의해 동헌 앞에 세워진 문루입니다. 1895년 고종 32년에 동래도호부가 동래관찰사영으로 승격되어 포정사로 불렸습니다. 동헌을 들어서는 입구의 망미루 누각 위에는 동래읍성의 사대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큰 북이 걸려 있었다 합니다. 동래도호아문인 망미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으로 누각 밑으로 사람들의 통행이 가능한 꽤 높은 크기의 건물이었습니다.





건물을 바치는 기둥의 아랫부분은 모두 장초석의 돌기둥을 세워 더욱 튼튼하게 보이도록 하였으며 동래도호아문의 권위와 외관을 갖추었습니다. 2층 누각 바닥은 귀틀마루에다 사방을 개방하였으며 그 끝에는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이는 건물의 천장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고 방어와 감시용으로 세워진 건물로 보입니다.


 




고마청으로 마굿간








동래독진대아문은 1636년 인조 14년에 부사 정양필에 의해 동래부 동헌 충신당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700년 숙종 26년에 동래부사 김덕기와 1870년인 고종 7년에 부사 정현덕에 의해 중수와 중건되었다 합니다. 이 문은 1655년 효종 6년에 동래부의 군사권을 담당했던 경상좌병영이 있는 경주진영에서 독립하여 동래독진(東萊獨鎭)이 되었음을 알리는 동래독진대아문 현판이 정면에 걸려 있습니다.














또한, 양쪽 기둥에는 진변병마절제영과 교린연향선위사라는 주련(柱聯)이 걸려있으며 이 뜻을 보면 동래부가 진변의 병마절제사의 영이며 대일 외교시 일본사신을 접대하는 관아라는 뜻입니다. 부산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아 대문이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솟을삼문인 홑처마 기와 건물입니다. 대문의 천장 아래 홍살이 있는 것을 보면 동래부 동헌의 외대문으로 보입니다.


 





 

 

 

독경당은 동래부사가 독서하며 휴식했던 공간.



조선 후기에 건립된 전형적 관아 출입문이며 부산 지역의 대표적 건물인 망미루와 동래부동헌의 외대문인 동래독진대아문은 1920년대까지 원래의 자리인 동래시장 입구와 농협인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시가지 정비계획을 추진한다고 헐릴 위기에 처하자 동래읍성 주민들에 의해 금강공원 입구와 금강공원내에 각각 이건했다가 2014년 우리 문화재의 보호와 원형복원 차원에서 다시 원래 위치로 옮겨 복원했습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옛 부산미문화원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 일제강점시 수탈현장의 중심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부산지점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이 되었습니다. 


부산시 중구 대청동에 있는 부산근대역사관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지어졌으며 처음에는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 해방을 맞았으며 부산에 들어온 미군들 숙소가 되었다가 1949년 미국 해외공보처인 미문화원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1982년 3월 18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최인순, 김현장, 김은숙, 문부식 등 부산 모대학교 대학생들이 반미운동을 외치미 이곳 문화원을 불 질렀습니다. 당시 이들의 변호를 담당했던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며 담당 판사는 이회장 전 한나라당 총재였습니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이후에 부산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요구로 미문화원은 철수하였고 건물은 1999년 대한민국 정부로 반환되었다가 6월에 부산시에서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이자 조선침략의 상징적 건물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건물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조성하여 다시는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자 근대역사전시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전시내용을 보면 외세의 침탈과 수탈로 형성된 부산의 근현대역사와 개항기 부산,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와 근현대 한미관계 및 부산의 근대거리로 짜였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은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로 지정하였습니다. 당시로써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에다. 외형은 서구건축양식을 도입하여 혁신적인 건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탈리아풍의 외관은 더욱 돋보이며 현재 부산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의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보기 힘든 건축 형태 중 하나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부산 근대역사관


 

 

 

 

 

 

 

 

 

 

 

 

 

 

 

 

 

 

 

 

 

 

 

 

 

 

 

 

 

 

 

 

 

 

 

 

 

 

 

 

 

 

 

 

 

 

 

 

 

 

 

 

 

 

 

 

 

 

 

 

 

 

 

 

 

 

 

 

 

 

 

 

 

 

 

 

 

 

 

 

 

 

 

 

 

 

 

 

 

 

 

 

 

 

 

 

 

 

 

 

 

 

 

 

 

 

 

 

 

 

 

 

 

 

 

 

 

 

 

 

 

 

 

 

 

 

 

 

 

 

 

 

 

 

 

 

 

 

 

 

 

 

 

 

 

 

 

 

 

 

 

 

 

 

 

 

 

 

 

 

 

 

 

 

 

 

 

 

 

 

 

 

 

 

 

 

 

 

3층에 전시 중인 부산의 근대거리는 일제강점기의 대청동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대청동은 일본인들의 거류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조선은행 등 금융기관, 양조장, 가구점, 병원, 일본식 과자점 및 세탁소, 미곡판매소와 출판사 등 많은 회사와 상업시설이 대청동에 모두 몰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점은 대부분 일본인이 경영하였으며 각종 근대 시설들도 모두 일본인을 위한 것으로 현재까지도 대청동과 중앙동은 그때의 영향인지 출판과 금융업의 중심지가 되어 있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 정보 및 관람안내

 

부산근대역사관 관람시간: 09:00~18:00

부산근대역사관 입장시간: 09:00~17:00

부산근대역사관 휴관일:1월 1일, 매주 월요일, 단 월요일일 공휴일일 경우 다음날 휴관.

매월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 지정 관람시간 연장 09:00~20:00(2시간 연장)

부산근대역사관 입장료:무료

부산근대역사관 주소:(우48949)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04 부산광역시 부산근대역사관


부산근대역사관 전화:051-253-3845~6 팩스:051-253-3320


 

 

 

 


 

(부산축제)보수동책방골목문화축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가을 문화축제가 열립니다. 문화축제 행사 일정표 올려요. 


올해도 부산 보수동에 있는 헌책방 골목에서 2016년 제13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를 개최합니다. 그 무더웠던 여름도 가을 앞에 꼬랑지를 내리고 이제 책 읽기 좋은 날씨입니다. 책을 읽는데 계절이 따로 있을까마는 그래도 선선한 날에 보는 책은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올해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는 “책 마을로 가자. 책, 옷을 입다”를 주제로 열립니다. 보수동책방골목은 책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새 책은 물론이고 독자의 손을 거쳐 간 헌책까지 들어오는 곳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모여 보수동책방골목의 책꽂이에 차곡차곡 꼽혀 생명을 불어넣을 줄 독자를 기다립니다. 돌아오는 주말에 보수동책방골목에서 잠들어 있는 책에다 생명을 풀어 넣는 축제가 열립니다. 올해로 벌써 13회째입니다. 물론 올해도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행사가 있습니다. 2016년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의 주행사로 아름다운 책표지, 제본전 행사를 열어 책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제본 체험전입니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간직하고 싶은 사진이나 책을 보수하는 과정을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하니 좀체 만나기 힘든 행사인데 꼭 찾아주세요. 가을은 말만 살찌는 게 아니며 보수동책방골목에서 우리 머리도 감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책으로 살찌워보세요.



2016년 제13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



2016년 10월 21일(금)~10월23일(일)


장소:보수동책방골목일원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 행사 일정표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부산의 옛 지명은 동래였습니다. 조선 시대 동래부의 행정중심지를 둘러싸는 읍성이 있었는데 그게 오늘날 복원하여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5호가 되었습니다. 동래읍성의 범위는 아주 넓어 부산광역시 동래구의 복천동·안락동·명륜동·칠산동·명장동 일원까지 걸쳐져 있으며 그 가운데 마안산을 정점으로 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지와 남문 터 등의 평탄지를 포함하는 전형적인 평산성 형식의 석성입니다.






☞2016/10/17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수축을 기록한 내주축성비

2016/10/13 - [여행]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복천동고분군

2016/10/12 - [여행] - (부산여행)동래 장관청.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음 가봤던 동래 장관청 건물이 지금은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중. 동래 장관청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2016/10/08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송공단. 임진왜란 때 동래성 전투에서 산화한 송상현을 모신 제단 송공단 참배







내주축성비


북문



동래읍성은 마안산의 산성과 평지성을 모두 갖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형태의 읍성입니다. 동래읍성의 축성을 보면 삼한시대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당시 동래에는 독로국으로 불렸던 성읍국가가 존재했습니다. 그때 이미 성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동래읍성에 관한 기록은 1021년 현종 12년에 동래성을 수리했다며 고려사에 등장합니다.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바다 건너 일본의 약탈이 심했고 또한 동래부는 대일외교 창구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어 동래는 관아의 규모도 크고 격식이 높은 정3품의 부사가 담당하였습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발장군이 지켰던 부산진성이 무너졌습니다.


 



왜적 방어의 1차 관문인 동래성까지 왜군은 물밀 듯이 밀려들었습니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동래성을 지키는 송상현 부사에게 ‘명나라를 치기 위한 길을 빌려 달라’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내자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으로 군·관·민은 최후의 일인까지 동래성을 사수하고자 하였습니다.



장영실과학관






그러나 수적인 열세에 마침내 동래성은 무너졌고 송상현 부사는 순절하였으며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두 전란은 끝이 났고 동래성은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731년인 영조 7년에 동래부사로 부임한 정언섭에 의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무너진 성을 다시 더욱 크게 수축하였습니다.











그에 관한 기록이 지금 북문 안에 세워져 있는 내주축성비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증축된 성의 규모는 약 3.8km이며 오늘날에 복원된 동래읍성도 그때의 흔적을 기초로 하였습니다. 동래읍성에는 동문을 지희루, 서문을 심성루, 남문은 무우루라 부르면서 익성을 두었습니다.











동서남북 사대문에 문루가 있었으며, 은일루인 암문과 인생문, 남문의 앞쪽에 세병문이, 뒤쪽은 주조문의 이중구조였고 그 외 북문·서문·동문은 옹성을 쌓아 적이 성문을 쉽게 공격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래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다시 한 번 헐리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서장대








일제는 시가지 정비계획을 세우면서 평지의 동래읍성을 모두 철거하였습니다. 지금 복천동과 안락동 등 평지에는 읍성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으며 그 터만 알리는 작은 빗돌만 세워져 당시의 가슴 아픈 흔적을 말해줍니다. 복원된 동래성은 북문·인생문·서장대·북장대·치성과 여장 등이 현재 있습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동래 장관청.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처음 가봤던 동래 장관청 건물이 지금은 해체·복원 공사가 진행중. 동래 장관청


이번에 동래시장 인근을 배회하다가 알게 된 문화재 동래 장관청입니다. 장관청을 보면서 둥래부동헌이나 송공단, 동래읍성, 동래향교 등 이름난 곳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번 동래구 여행의 수확이라면 수확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금 한창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라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일하시는 분이 없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뭐 복원 공사하면 완전 건물을 해체하여 새로 짓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입구의 행랑건물은 아예 해체하여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동래부청사 건물의 하나였던 군장관들의 집무소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널브러진 공사 자재로 인해 올케 구경은 할 수 없었고 사진만 몇 장 담아왔습니다. 동래부는 지리적 여건으로 일본과 아주 가까워 국방상 요충지로 여겼습니다. 1655년 효종 6년에 독진으로 승격하면서 동래부는 군사상의 지위가 강화되었고 군관의 기관이 설치되었습니다.





부사는 행정인 경찰 담당이며 군사적인 속료인 군교가 있었는데 장관, 군관, 포교가 이에 속합니다. 동래 장관청은 1669년 현종 10년에 동래부사 정석이 창건하였으며 숙종 때 두 차례 중건되었습니다.







그 후에 1706년인 숙종 32년에 동래부사 황일하가 향청이 있던 이곳에다 다시 옮겨 세웠습니다. 장관청은 앞면 7칸, 옆면 2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부연이 있는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며 도리 끝에 접시받침을 한집입니다.


 





지금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행랑채는 앞면 7칸, 옆면 1칸의 민도리집으로 현재는 건물의 형태를 전혀 알 수 없게끔 완전히 해체된 상태입니다. 건물에 사용된 부재는 재사용을 기다리며 바닥의 주춧돌만 건물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동래 장관청은 부산 지방에 남은 조선 후기 관아 건물로 당시 건축양식을 가늠해볼 수 있지만, 워낙 여러번 구조를 바꾸는 등 개조하여 처음 모습과는 심한 변형이 있어 1997년 일차 전면 해체 복원을 했는데 이번에 다시 해체 복원이 진행 중입니다. 복원이 완료되면 다시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1972년 6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지정(참고:문화재 안내판)


동래 장관청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 94번길 36-6(지번:동래구 수안동 510-1)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시장 인근에 동래부관아가 복원되어 지나는 길에 보게 되었습니다. 복원된 동래부관아 중에서 가장 내마음에 남아 있는 건물이 맨 왼쪽에 복원된 망미루로 2층의 문루입니다. 그러니까 1층은 문이고 2층은 누각인데 이 건물은 필자가 어렸을 때의 추억이 있습니다.






 

 


원래 자리에 옮겨오기 전에는 동래구 온천동 금강공원 입구에 있었습니다. 금강공원을 오르는 입구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니까 벌써 40년도 훨씬 더 지난 세월입니다. 같은 부산의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좀체 갈 기회가 없었지만, 항상 생각이 나는 게 어릴 적 뛰놀던 망미루였습니다.


 

 


그 망미루가 제 위치로 다시 옮겨 복원되었다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반가움에 앞서 망미루 포스팅을 합니다. 망미루는 원래 지금의 자리 바로 옆 그러니까 수안파출소 앞에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그 자리에 망미루 터를 알리는 작은 빗돌이 서 있으며 원래 자리로 복원한다며 바로 30m 옆 동래부 관아 내에 비딱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복원을 제대로 하여 망미루의 누각 문을 열고 그쪽으로 사람을 드나들게 하면 더욱 좋았는데 아쉽게도 그런 기능은 하나도 없고 그저 형태만 갖추어 복원된 모습이 많이 아쉽습니다.


 

 


망미루는 조선 후기인 1742년 영조 18년에 동래부사 김선일에 의해 동래부 동헌 앞에 세워졌습니다. 망미루는 1895년 고종 32년에 동래도호부가 동래관찰사영으로 승격하면서 포장사라 불렀고, 누각에는 동래읍성 사대문을 여닫는 시간과 정오를 알리는 큰북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리를 한다며 망미루 철거를 단행하자 지역민들이 단합하여 경비를 모금해 1930년경에 온천장의 금강공원 입구로 옮겨 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1970년에 한 번 해체복원을 하였으며 그 뒤에도 소소한 수리가 이루어지다 2014년 민족정기를 되찾자는 취지와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 동래부 동헌을 복원하면서 안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망미루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중층 누각인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일반 누문에 비해 누각의 규모가 높고 큰데 이는 누각 아래로 사람이 통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대문으로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또한, 누각 기둥을 받치는 긴 돌기둥인 장초석은 누각의 안전을 보안함과 동시에 위엄을 갖추었으며 누마루는 귀틀마루를 깔고 마루 외곽은 계자난간으로 돌렸습니다. 일반의 누각은 산천의 경치를 보기 위해 천장을 높여 탁 트이게 하는 게 보통인데 동래읍성의 망미루는 천장이 낮은 게 외부에서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와 감시용의 건물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망미루의 앞쪽에는 ‘동래도호아문’이, 반대편인 안쪽에는 ‘망미루’의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또한 망미루(望美樓)는 임금의 명으로 한양에서 내려온 동래부사가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하여 2층의 누각을 망미루라 부른대서 유래하며 1919년 동래장터에 울려 퍼진 3.1 운동의 시발점이 망미루입니다.


 

 

 

 


이곳 누각에서 만세삼창으로 시작되었으며 우리에게는 민족의식을 고취시켜준 건물로 일제는 아마 악착같이 허물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동래성의 흔적은 진짜 돌멩이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최근에 와서 마안산 일원에 동래성이 복원되었고 동래부 관아도 복원하였습니다.


 

 


망미루 복원에 사용된 부재는 최대한 기존의 부재를 다시 사용하였으며 붉은 단청은 복원과 함께 벗겨내고 지금은 원래의 나무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1972년 6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동래부 관아(동래부동헌)


동래부 관아 주소: 부산시 동래구 수안동 421-56(수안치안센터 건너편)



18세기 동래성 모습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송공단. 임진왜란 때 동래성 전투에서 산화한 송상현을 모신 제단 송공단 참배


필자는 동래읍성 역사 축제를 앞두고 송공단을 찾았습니다. 송공단이 어떤곳이냐고요??? 송공단은 1592년 일본이 명나라를 친다는 구실로 5월 23일(음력 4월 14일)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전쟁은 우리의 치욕사 중 하나인 임진왜란입니다. 부산은 일본에게는 조선을 치기 위한 하나의 교두보였습니다. 왜군은 5월 24일 정발장군이 막았던 부산진성을 먼저 치고 동래읍성으로 진격했습니다. 






☞2016/10/06 - [부산 축제]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제22회 동래읍성역사축제가 열려요. 동래읍성역사축제









당시 동래읍성은 동래부사 송상현께서 성문을 지켰습니다. 동래읍의 백성과 송상현은 죽음을 각오하며 한 뜻으로 끝까지 싸웠으나 종과부족으로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송상현은 갑옷에다 관복을 걸치고 북쪽의 선조에게 예를 올린 뒤 부채에다 부모님께 올리는 한시를 적었습니다.







송공단 주소:부산시 동래구 복천동 229-78

송공단 문의 전화:051-550-4161







“孤城月暈(고성월운:외로운 성은 달무리처럼 포위되었지만)

列鎭高枕(열진고침:여러 다른 진영에서는 도와줄 기척이 없습니다)

君臣義重(군신의중: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무거우니)

父子恩輕(부자은경:부모와 자식의 은정을 가벼이 하오리다)”

송상현부사는 포로가 되었으며 항복할 것을 강요받지만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자 정원루에서 그를 처참하게 살해했으며 그의 첩인 금섬 또한 그를 따라 자결하였습니다.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는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1호인 송공단이 있습니다. 송공단은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하신 동래부사 송상현과 그의 휘하 장졸을 모신 제단으로 1742년인 영조 18년에 동래부사 김석일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단을 만들기 전에는 순절한 정원루터에 있었는데, 동래성의 남문 밖인 지금의 동래경찰서 자리인 농주산입니다.







 농주산에다 임진왜란으로 순절하신 분을 모신 제단을 쌓고 동래부사 송상현,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과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하신 모든 분을 모셨습니다. 1742년 제단은 지금 모습과 달리 동서남북 4단인 열십자 형태였습니다. 북단에는 송상현, 조영규, 노개방 등, 동단에는 유생 문덕겸 등, 서단에는 송상현의 첩 금섬 등, 남단에는 향리 송백 등을 모셨고 매년 음력 4월 15일 관에서 그들을 기리는 제사를 올렸습니다.





1760년에 와서는 부산진 첨사 정발과 이정헌을, 1766년에는 다대첨사 휸흥신을 함께 송공단에서 배향했습니다. 그러다 동래성에서 순절하신 분만 따로 모시게 되었고 다대포에서 순절한 윤흥신은 윤공단에, 부산진에서 순절하신 정발장군은 정공단으로 옮겨 각각 배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송공단은 2005년 11월에 1767년 ‘충렬사지(忠烈祠志) 기록에 나온 대로 복원한 상태이며 7단 16기로 구성했습니다. 중앙에다 충렬공 송상현 순절비, 동단에는 조영규와 노개방을, 서단에는 문덕겸 등을 모셨으며 따로 송상현의 첩 금섬 등을 모셨습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본관은 여산이며 자는 덕구, 호는 천곡 또는 한천이며 시호는 충렬입니다. 송공단은 동래시장 뒤쪽에 있습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제22회 동래읍성역사축제가 열려요. 동래읍성역사축제


부산 동래구 동래읍성역사축제가 열립니다. 올해 벌써 22회째입니다. 동래읍성 하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성을 끝까지 사수하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송상현 동래부사 님이 있습니다. 왜장인 고니시유키나카가 송상현부사에게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내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송상현 부사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이라 적은 나무판자를 왜장에게 던지며 끝까지 동래읍성의 백성과 함께 목숨을 건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수적인 열세에 어쩔 수 없이 동래읍성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에게 함락되고 맙니다. 송상현 부사는 동래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부채에다 부모님에게 올리는 절명시를 남겼습니다. 







“孤城月暈(고성월운:외로운 성은 달무리처럼 포위되었는데)

列鎭高枕(열진고침:여러 다른 진영에서는 도와줄 기척이 없습니다)

君臣義重(군신의중: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무거우니)

父子恩輕(부자은경:부모와 자식의 은정을 가벼이 하오리다)”

그리고 동래읍성 백성과 송상현은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습니다.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의 뜻인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는 동래읍성역사축제, 올해 동래읍성역사축제 부제이며 동래읍성 광장과 동래문화회관, 온천장 일원에서 2016년 10월 7일(금)~9일(일)까지 3일간 열립니다.



동래 읍성 역사 축제 축제장 오시는 길






올해에는 송상현 부사와 동래읍성 백성이 동래읍성을 사수하기 위해 펼쳤던 치열한 전투장면인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을 뮤지컬로 연출하고 전국에서 유일한 동래 세 가닥 줄다리기 재현, 엽전을 가지고 동래장터에서 동래읍성민 체험, 전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동래파전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푸짐한 먹거리로 제22회 동래읍성역사축제 행사가 펼쳐집니다.



동래 읍성 역사 축제 행사 일정표(10월 7일(금)~10월 9일(일))




동래읍성역사축제의 주요행사를 보겠습니다. 동래부사 행차, 동래성 전투 실경 뮤지컬, 동래 세 가닥 줄다리기. 동래부사 송상현 이야기 인형극, 동래장터, 동래온천 용왕제 길놀이와 함복입고 동래성 나들이, 전통 혼례 복식 체험, 조선시대 무기·병영 체험, 호패 체험, 성곽 밟기 체험 등 다양한 참여 체험행사가 열립니다.






동래 읍성 역사 축제 행사 안내





그리고 부대 행사로 수안동 인정시장, 명륜1번가, 동래구청, 명륜동 가구거리,사직동 먹자골목, 사직동 가구거리, 명장1동 먹자골목, 동래시장, 동래 온천장에서 동래 세일 대축제를 2016년 10월 7일(금)~11일(화)까지 열립니다. 업소별로 5~50% 자율할인을 한다고 합니다. 동래부사 송상현과 동래읍성민을 기리는 동래읍성역사축제에 많은 시민의 참여가 있어야겠습니다.

 



 


인생문


 

 

  

 

 


송공단

 

 

 

 

동래향교

 

 

 

 


복천고분군


 

 

 

 

 

 

 

 



(부산국제영화제)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일정표,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행사 일정표


올해 드디어 영화팬들을 위한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합니다. 10월 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레드카펫을 밟는 스타는 예년의 숫자보다 조금 적은 158명입니다. 올해 참가자는 임권택, 이두용, 김수용, 김유진, 허진호, 곽경택, 김기덕 등 쟁쟁한 감독이 모두 나오며 배우로는 신영균, 신성일, 조민수, 배종옥, 한효주, 안성기, 김희라, 오지호, 윤진서, 한예리, 박소담, 서준영 배우 등 많은 분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개막식 사회자는 설경구와 한효주가 나오고 폐막식 사회자는 김민종과 최여진씨가 봅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행사도 엄청나게 그 열기가 뜨거울 것 같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초청작 69개국 299편이며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22편이 소개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영화 관람하세요. 영화 상영과 궁금한 점은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http://www.biff.kr/kor/html/schedule/date.asp?day1=6&Location=03를 참고하세요 날짜별, 극장별, 부문별로 시간표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최기간:2016년 10월 6일(목)~15일(토)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관: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메가박스 해운대, 소향시어티 센텀시티, 영화의 전당 5곳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전체 69개국 299편/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22편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주요행사:핸드 프린팅, 마스터클래스, 오픈토크, 아주담담, 야외무대 인사, 시네마 투게더, BIFF 포럼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더 보이는 인터뷰: 이병헌,  손예진, 윤여정,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분노' 감독 이상일, 배우 와타나베 켄,

'블리드 포 디스' 감독:벤 영거, 배우:마일스텔러, 에론 에크하트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

춘몽, 검은 사제들, 커피메이트, 두 남자, 신고질라, 얄미운 여자, 죽여주는 여자, EFP, 더 테이블,

미세스 케이, 아수라, 곡성, 너의 이름은, 그물, 나의 연기 워크삽, 분장, 소음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환절기, 컴 투게더, 누에치던 방, 꿈의 제인, 용순, 춘천 춘천, 두 번째 겨울, 아기와 나.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

춘몽, 검은 사제들, 커피메이트, 두 남자, 신고질라, 얄미운 여자, 죽여주는 여자, EFP, 더 테이블,

미세스 케이, 아수라, 곡성, 너의 이름은, 그물, 나의 연기 워크삽, 분장, 소음들,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환절기, 컴 투게더, 누에치던 방, 꿈의 제인, 용순, 춘천 춘천, 두 번째 겨울, 아기와 나.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주담담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대담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짧은 영화, 긴수다


(부산국제영화제홈피캡쳐)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호국사찰 금정산 범어사 여행


부산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큰 규모인 금정산 범어사.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로 양산 통도사, 가야산 해인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입니다.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과 부산 최고의 사찰인 범어사는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그 유래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2016/10/01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는 당을 걸었던 당간은 없고 범어사에는 범어사 당간지주만 남았네요. 범어사 당간지주

2016/09/30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얼굴인 웅장한 일주문 조계문을 만나다. 범어사일주문 조계문

2016/09/29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외벽의 담벽에서 만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대단.



범어사 일주문 조계문


유래를 보면 금정산 산정에 50척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사시사철 물이 가득하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물빛은 항상 금빛을 띠고 있어 그곳에는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어가 살고 있다 하여 금정산과 범어사의 설화가 탄생했습니다.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대사께서 신라 문무왕 10년인 670년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678년에 창건했습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도 범어사가 678년에 창건되었다고 되어 있는 게 범어사 창건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천왕문 


그리고 범어사의 창건 설화를 보면 신라 문무왕 당시 왜군의 침입이 잦아 대왕이 항상 근심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10만의 병선을 거느리고 왜인이 신라를 공격해온다는 소문으로 대왕은 수심에 가득 차 잠이 들었는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당나라에서 귀국한 의상을 불러 ‘화엄신중기도’를 권하며 사라졌습니다.





문무왕은 의상과 함께 금정산에 올라 7일 동안 화엄신중독송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남해의 왜선은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여 죽고 죽이더니 물러갔다 합니다. 문무왕은 크게 기뻐하며 의상에게 이곳에다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게 오늘날의 범어사입니다.


 

보제루


그러니까 범어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왜구를 진압했던 비보 사찰인데 이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에는 서산대사가 범어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조직하자 그것을 알게 된 왜군은 범어사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고, 1919년에는 만해 한용운 스님과 범어사 스님의 독립운동입니다.


 




구포 나루에서 3.1만세 독립선언문 초안을 몸에 품고 왜경의 눈을 피해 금정산을 넘어와 범어사에 도착하여 밤새워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범어사 스님과 부설학교인 명정보통학교(현 금정중학교) 학생은 동래장터에서 부산 최초의 3.1운동을 주도하다 스님과 학생은 투옥되었고 학교는 폐교되는 등 부산의 항일 운동은 범어사를 시작으로 들불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범어사의 현존하는 건물은 모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에 건립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범어사를 호국사찰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임진왜란 이후로 범어사는 10여 년간 폐허가 되었습니다.





문무왕의 청으로 의상이 창간했던 범어사는 전각이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으며 웅장했다는데 그만 왜적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으며 선조 35년인 1602년에 관선사에 의해 중건하지만, 다시 화재로 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여러 스님에 의해 법등의 불을 밝히는 중창을 하여 오늘날 범어사의 뿌리가 됩니다. 범어사의 가람배치를 보면 산지가람의 특성상 일반사찰과 다른 모습입니다. 맨 아래에다 일주문인 조계문을 세우고 그다음에 천왕문, 불이문을 배치했습니다.



 

 



범어사의 강당인 보제루는 불이문에서 7m의 높이에 계단을 만들어 그 위에 세웠는데 보제루 밑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올라섭니다. 근래까지는 보제루를 돌아서 대웅전 앞마당에 다다랐는데 일제강점기 때 보제루가 변형되어 그 모습이 많이 훼손되어 호국사찰인 범어사에서 일제 잔재가 왼 말이냐며 지금은 삼층석탑의 난간 철거와 함께 보제루도 옛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범어사에서 가장 큰 규모답게 당당하며 웅장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둘러보면 범어사의 모든 전각이 보일 정도로 넓게 조성되었습니다. 보제루 좌우로는 심검당과 비로전, 미륵전을 각각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뒤쪽으로는 선원과 스님들의 요사채, 종무소를, 심검당 뒤로는 강당 등 승려들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당 끝에는 삼층석탑과 고려 시대 석등 사이에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대략 8m의 축대 위에 1613년에 중수된 대웅전이 보무도 당당한 모습입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는 지금은 수리 중인 관음전과 일로향각이 자리하고 왼쪽으로는 명부전과 서향각이 그리고 한 단 높여 한일자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팔상전·독성각·나한전입니다. 제가 이번 범어사 여행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곳입니다.
















화려하기로 그지없는 독성각의 문살과 조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세히 보면 독성각의 눈길을 잡는 것은 무지개형의 문틀 좌우로 모란꽃이 조각되었고 그 밑에 보살 두 분이 각각의 꽃을 받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꽃무늬 문살 또한 독성각의 격조를 한층 더 높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참을 넋을 잃고 문틀 조각을 봤습니다. 팔상전·독성각·나한전의 전각은 18세기 초에 지어졌는데 처음에는 가운데 천태문만 있었으며 1905년 중수하면서 앞면 7칸의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독성각은 스승을 모시지 않고 혼자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말하는데 이는 나반존자를 말하며 이번 범어사 여행을 하면서 파도 파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범어사의 전각들은 저를 더욱 궁금증을 유발하게 합니다. 다음에 범어사의 다른 전각을 만나기 다시 위해 찾아야겠습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불




범어사 부도





 금정상 고당봉


 



금정산 범어사의 유래인 금샘. 금정산 산정에 50척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는 사시사철 물이 가득하며 마르지 않는 샘이 있습니다. 물빛은 항상 금빛을 띠고 있어 그곳에는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금어가 살고 있다 하여 금정산과 범어사의 설화가 탄생했습니다.



범어사 주소: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전화:051-506-3122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복병산 배수지. 일제강점기 건설된 부산 최초 상수도 시설 복병산 배수지.


일제강점기에 우리 부산과 양산에는 총 3곳의 수원지가 건설되었습니다. 흔히 꽃마을로 불리는 구덕 수원지와 초읍어린이 대공원이 있는 성지곡수원지 그리고 또 한곳이 양산 동면의 법기 수원지입니다.









3곳 모두 일본인들의 거주지에 식수공급을 위해 세워졌는데 법기수원지는 당시 온천장과 남산동 등 동래구 쪽에 공급되었으며 구덕 수원지는 서구 등 일본인이 집단거주지역으로 공급하였고 성지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성지곡수원지의 물은 중구 복병산 배수지까지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부산진구의 백양산 골짜기에 있는 수원지의 물을 침전시켜 멀고도 먼 복병산배수지까지 끌고 와 각가정에 공급했다고 하니 당시 수도관개시설로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병산배수지 또한 일반 배수지 형식을 따랐습니다. 땅을 파고 지하에다 물을 담는 통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고 잔디를 심었습니다. 또한, 여과시설의 입구와 벽체는 물을 잘 흡수하지 않는 붉은 벽돌로 불리는 내화벽돌을 쌓았으며 벽체의 위쪽에는 석재로 마감하였습니다.







복병산 배수지는 총 3동이며 왼쪽 저수시설 2동은 일본인에 의해 1910년에 건설하였으며 1973년에는 식수해결을 위해 오른쪽 동을 증축했습니다. 복병산 배수지의 입구를 장식하는 무지개식 석조문틀에 걸린 현판에는 ‘요지무진(瑤池無盡)’의 4글자가 써져 있는데 그 뜻을 보면 ‘선경의 물처럼 마르지 말라’입니다.







지금은 성지곡수원지는 폐쇄되었지만 복병산 배수지는 부산 시민들에게 현판의 뜻처럼 지금도 선경 명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북병산 배수지는 그 면적이 2,944.2㎡입니다. 부산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며 일본인의 급수 시설이지만 부산지역에도 본격적인 상수도 시설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의 복병산 배수지는 우리 부산 근대 상수도 시설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부산 초창기의 상수도 시설로서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7월에 부산광역시 등록문화재 제327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복병산배수지는 부산시민의 식수원은 물론이며 현재 지역민의 쉼터이자 건강한 휴식처인 체육공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복병산의 유래를 보면 초량왜관이 가까워 일본인들의 난동과 풍기문란, 밀거래 상인 등을 막기 위해 병사들이 잠복하기 위한 복병막(伏兵幕)을 설치한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복병산 배수지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샘길 10(대청동 1가 6-4)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는 당을 걸었던 당간은 없고 범어사에는 범어사 당간지주만 남았네요.



오래된 사찰 입구에 똑같은 모습을 한두 개의 돌기둥이 있습니다. 이를 당간지주라 하는데 그 역할은 사찰의 표시등 다양한 용도의 깃발을 거는 데 필요한 장대인 당간을 세우기 위한 고정시설물을 말합니다.








2016/09/30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조계문. 범어사의 얼굴인 웅장한 일주문 조계문을 만나다. 범어사일주문 조계문

2016/09/29 - [여행] - (부산여행)금정산 범어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외벽의 담벽에서 만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대단.






흔히 당간은 돌 또는 쇠, 그리고 나무로 되었는데 양산에 있는 통도사의 당간은 돌을 깎아 세웠다면 계룡산 갑사의 당간은 철로 만들녀 졌던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 범어사의 당간은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범어사 창건 사적’과 ‘범어사 사적비명’에 33단의 철당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철당간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아주 귀한 문화재가 될 뻔 했는데 안타깝게도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남아 범어사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33이란 숫자는 불교에서 이상의 세계인 33척을 나타낸 것인데 당간에 그 숫자를 부여한 것을 보면 절에서 당간의 의미가 아주 크다 하겠습니다.





범어사의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현재 범어사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보다는 늦은 시기에 세워졌습니다. 또한, 범어사 당간지주는 돌을 다듬은 솜씨가 정교하지 않고 약간은 투박한 듯하며 소박한 느낌까지 듭니다.










당간지주의 높이는 4.5m에 아주 큰 규모로 이 정도의 크기면은 당간의 규모는 대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간지주는 가로가 50cm, 세로가 87cm이며 기둥의 간격은 79cm로 지주는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끝머리가서는 둥글게 처리했습니다. 현재 범어사 당간지주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입니다.





옛날 물을 받아 보관 했던 돌그릇인 수조는 지금은 어항으로 사용중입니다.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금정산 범어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금정산 범어사 대웅전 외벽의 담벽에서 만난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대단.  


제가 부산에 살고 있으면 금정산을 오르고 아니면 고당봉에서 내려오거나 하면서 매번 통과하는 게 부산 최대 사찰인 금정산 범어사입니다. 그래도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항상 부처님을 찾는 반 불교도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항상 범어사를 다녀서 그런가 다른 오래된 사찰처럼 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뭐 항상 수박 겉핥기로 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하여튼 지금까지 범어사를 너무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범어사를 연달아서 3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대웅전을 보면서 전에 그리 보고 다녀도 외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희미하게 그려진 벽화를 보게 되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흥분의 도가니였다고나 해야할까요. 대웅전을 정면으로 보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대웅전 우측 벽 상단에 힘이 넘쳐 흐르는 긴 꼬리에 허리는 잘룩하며 경계하는 듯 네 발에 힘이 들어가고 두 눈을 부라린 백호가 그려져 있습니다. 호랑이의 입은 또 어떤가요.


 

 

 

 


크게 입을 벌리며 웃는 듯한 모습을 하면서 역시 백수의 왕 호랑이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호랑이와 함께 백학과 백록(사슴)의 모습을 보면서 사찰 대웅전에다 왜 이런 짐승을 그렸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호도 그러하고 사슴과 학까지 귀한 흰색을 나타내는 것은 대웅전을 지키는 비보 역할인가 생각해봅니다. 지금 대웅전 외벽의 방풍판 안쪽에 있지만, 비바람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 벽의 벽화는 그나마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아 매우 안타까우며 어서 빨리 대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범어사 대웅전은 1966년 2월 28일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범어사의 중심법당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며 왼쪽에는 미래불인 미륵불과 오른쪽은 과거불인 제화갈라를 보살의 모습으로 모셨습니다



 


왼쪽에는 미래불인 미륵불과 오른쪽은 과거불인 제화갈라를 보살의 모습으로 모셨습니다. 대웅전의 주존불은 1661년 현종 2년에 조각승 희장이 제작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으로 사 대웅전과 함께 2007년 9월 16일 보물 제1526호에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개금불사를 한 생태입니다.


 

 

 


앞면과 옆면이 각각 3칸이며 이는 임진왜란 이후에 성행했던 다포식 맞배지붕 양식으로 범어사 대웅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기 회에 범어사 대웅전을 보면서 문화재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내면의 모습을 중시 여겨야 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대웅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또다시 범어사 대웅전을 찾아야겠습니다.


 

 

 

 

 

 


◆부산 범어사 정보 안내

★ 범어사 주소: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546

★전화:051-508-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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