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중구여행)부산근대역사를 한눈에 부산근대역사관 관람


부산근대역사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은 부산 미문화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1982년 3월 18일 일어난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났던 건물이지만 부산의 근대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산근대역사관 주소: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24-2

부산근대역사관 전화:051-253-3845



부산근대역사관 관람안내

부산근대역사관 관람시간:09:00~18:00

부산근대역사관 휴관일:1월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그다음날 휴무)

부산근대역사관 관람료 무료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건물 이였습니다. 

1929년 건립되었으며 당시로써는 부산에서 가장 혁신적인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철근콘크리트에 서구 양식이 들어간 외형의 건물은 품격있는 건물로 현재 몇 남지 않은 건물 중 한 곳입니다.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에 지정.



























일제의 경제 수탈 선봉에 섰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부산에 들어온 미군의 숙소로 이용되었습니다. 

1949년에 미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가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1999년 반환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산의 근대 역사관에서 부산 역사 알아보기




















부산근대역사관은 1900년 전후의 암울했던 우리 부산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와 함께 부산 중구에는 근대의 건축물이 건물의 노후와 역사 세우기로 대부분 헐렸지만 40계단과 영도다리 등 아직도 당시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부산의 역사를 이곳 부산 근대역사관에서 알아보세요. 관람은 무료입니다.

 



(전남순천여행)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향수 


아주 옛날 고승이나 인물이 빼어난 분이 간혹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자라나서 나무가 되어 천년세월 동안 푸름을 잃지 않고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1

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전화:061-754-3708



그런데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 현재의 나무 중에서 미적으로도 가장아름답고 독특하며 지팡이의 뒤틀린 모습과도 똑 닮은 그런 나무가 있어 더욱 신기합니다. 

지팡이에의 지존으로 불러도 괜찮을 나무는 순천의 조계산 중턱에 자리한 천자암의 쌍향수입니다.








천자암




일명 곱향나무로도 불리는 천자암의 고목인 쌍향수는 향나무로서 한그루가 아니 두 그루가 똑같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쌍향수는 수려한 외모만큼 그에 걸맞은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흔들면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런다고 극락 가기 위해서 나무를 막 흔들면 안 되겠지요.


쌍곱향나무 



특히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니 천년만년 잘 보존해야겠습니다. 

쌍향수의 높이는 약 25m, 둘레가 3.98m이며 나무의 나이는 약 7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쌍곱향나무의 유래를 보면 두 그루의 향나무가 서로 예를 갖추며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조계산에서 수도했던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짚고 왔던 지팡이이며 두 스님은 천자암에 올라 꽂았는데 그게 오늘날 곱향나무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답니다. 

이를 보면 지팡이계의 지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의 더께 속에 쌍곱향나무도 어쩔 수 없이 외과 수술을 하여 나무의 줄기에다 시멘트로 메우는 수술을 하였으나 푸름은 잃지 않은 모습에 천자암을 올라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으며 쌍곱향나무입니다.

 

피나물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만옥정공원, 진흥왕척경비 창녕척화비 창녕객사 퇴천삼층석탑 만옥정공원 


와우, 창녕에 자주 가지만 창녕 주민을 위한 휴식공원이 이리 많은 줄 몰랐습니다. 

문화재도 많지만, 우포늪, 남지체육공원, 창녕문화공원, 영산연지못, 남산호국공원, 창녕함안보와 합천창녕보등 산책이면 산책, 자전거면 자전거길 등 공원과 낙동강 보 하며 다양한 게 정말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창녕군 창녕읍의 창녕만옥정공원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만옥정공원안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가득해서 더욱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면적은 1만㎡이며 도심 공원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규모였으며 국보 제33호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와 대원군의 창녕척화비, 창녕 객사, 퇴천삼층석탑, 유엔전적비, 창녕현감비군, 지석묘가 공원을 가득 채웠습니다.

 




창녕 만옥정공원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23

창녕 만옥정공원 전화:055-530-2478




2017/11/22 - [여행] -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석빙고, 조선시대 얼음창고 창녕석빙고

2017/11/26 - [여행] - (경남여행/창녕영산여행) 영산 만년교. 13세 소년의 신필 만년교 비석과 돌다리를 보다.



특히 4월에는 벚꽃공원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창녕신라 진흥왕척경비 앞의 벚나무에 벚꽃이 필 때는 정말 아름다운 한 편의 시가 생각날 것 같았습니다. 

유엔전적비를 지나면 흥선대원군의 창녕척화비가 있습니다. 

척화비는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서양인을 배척하고자 곳곳에 척화비를 세워 백성이 이를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창녕척화비는 높이 1.23cm, 폭 46cm, 두께 20cm인 화강암으로 다듬었으며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자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짓이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창녕읍 교화리에 있던 것을 광복 이후 만옥정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그 왼쪽 작은 언덕에 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비각을 세워 보호하는 게 다른 문화재하고 달라도 정말 달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럴 만도 했습니다. 

비석인데요 국보 제33호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입니다. 

창녕군 안에서는 나라의 보배인 국보는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과 함께 딱 두 점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위엄있어 보였습니다.



창녕신라 진흥왕척경비는 넓은 자연 암석을 이용해서 대충 다듬은 다음에 비문을 새겼습니다. 

비문은 중국 육조풍의 해서체로 새겨졌으며 모두 27행에 643자가 쓰였습니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진흥왕이 세운 3곳의 순수비에 나타나는 ‘순수광경’이라는 제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는 순수비가 아니라 영토를 넓히고 신라의 국경을 표시하는 비를 뜻하는 척경비라 합니다. 



그러나 왕을 수행했던 신료의 명단 등이 나와 있어 순수비에 속한다고도 보고 있습니다. 

비문 내용에서 전반부는 마멸되어 거의 판독이 불가능하나 첫머리에 ‘신사년이월일일립(辛巳年二月一日立)’의 글자가 확인되어 이 진흥왕 척경비는 561년인 진흥왕 22년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문의 후반부는 알아볼 수 있는데 대략 400자가 정도를 판독하였다 합니다. 

비문의 후반부에서 보면 어가를 수행한 관리의 관직명과 출신지역과 수행 순서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놓았습니다. 




그 아래쪽에는 퇴천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이층의 기단에 탑신을 세운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따랐습니다. 

상륜부는 분실했으며 위층 기단과 갑석 일부는 부서져 없어졌으며 기단의 면석에는 양쪽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가운데 기둥인 탱주를 새겼습니다. 



각층의 몸돌 양 모서리에 기둥인 우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호.


















그 옆에는 창녕 객사 건물입니다. 

이 객사는 창녕 관아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다고 합니다. 

300~400년 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객사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시장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술정리로 옮겨졌다가 1988년 다시 현재의 위치인 만옥정공원내에 이전했습니다.



객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원, 외국사신이 머무는 숙소이며 또한 임금과 대궐을 상징하는 전폐를 모시는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객사 건물의 배치는 종묘 건물을 모델로 삼아 주건물과 좌우에 익사를 두어 건립되는데 창녕 객사는 주건물로 지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창녕 객사 건물은 벽체와 창호는 없고 지붕에 기둥만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본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되었다 하겠습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31호.












마지막으로 창녕현감비군입니다. 

역사가 깊은 고을이면 입구에 쭉 늘어서 있는 게 고을을 다스렸던 관리의 선정비입니다. 

신라에서부터 조선말까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창녕에 부임했다 떠나는 부사. 현감과 어사 관찰사가 베푼 선정에 떠나는 것이 아쉬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을 백성이 세운 비석입니다. 

창녕 고을의 선정비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은 것을 보면서 오랜 창녕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했습니다.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 학동 진석중 가옥. 몽돌로 유명한 거제도 학동마을 거제 학동 진석중 가옥


거제도에는 학동마을 앞 해안가에 몽돌이 유명합니다. 

학동 몽돌해변은 그 길이도 엄청나게 길어서 처음 그 광경을 보고는 우리나라 해안가에도 이런 신기한 곳이 있구나 했었을 만큼 신통방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학동은 몽돌이 천지삐까리로 많습니다. 

그리고 도장포마을의 바람의 언덕, 신선대, 해금강 마을과 해금강 전망대, 우제봉을 들어가는 입구에 학동마을이 있습니다.




2018/03/20 - [여행] -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신선대 여행



 


이곳 학동에는 몽돌해변 이외에도 등록문화재 제277호인 거제 학동 진석중가옥이 있습니다. 

거제 학동 진석중가옥은 1947년에 지어진 한옥 기와건물입니다. 

지금은 주위에 화려한 펜션 등에 가려져 진석중가옥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진석중가옥은 등록문화재라 하지만 대문도 없고 관리는 부실해 보였습니다.

 






마을 주민의 이야기로는 60년 전만 해도 거제도에서 최고 유지 중 한집안이며 떵떵거렸다고 합니다. 

당시에 어촌의 집 규모로는 대단했으며 광채도 큼지막한 게 학동 마을의 어선은 대부분 진석중 가옥 배였지 했습니다. 

마침 주인장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을 좀 보고 싶다며 인사를 드렸더니 보고 가라고 했습니다.





전에도 한번 보고 갔던 곳입니다. 

진석중가옥의 특징은 한옥과 일본식 건축이 절충된 양식이며 해방 이후에 지은 상류층 건물입니다. 

건물은 안채, 별채, 창고, 대문으로 ‘ㅁ’자형 입니다. 

진석중가옥은 현재 후손이 생활하고 있어 자세히 볼 수 내부를 볼수 없지만, 건물의 구조는 벽장과 창호, 입구의 별채는 욕실과 화장실이 집안에 딸린 구조입니다.








당시 모든 집은 화장실을 안채에서 멀리 떨어진 대문에다 많이 두었는데 집안에 두었다는 것은 현재 가정집의 구조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실용적인 집 구조였습니다.

 화장실이 건물 내부에 있다는 별채를 보면 ‘一’자형 평면 구조에 뒷부분에 화장실과 욕실을 배치하고 복도와 연결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안채는 가족의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생활의 편리한 부분은 별채에다 넣어 기능성을 우선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어릴 때는 농촌에 살았지만, 밤에 멀리 있는 화장실에 한번 가려면 죽을 맛이었습니다. 

요런 거 생각하면 당시로써는 정말 획기적인 살림집 구조입니다. 

거제 학동 진석중가옥은 근대 건축물로서 경남 남해안 도서지방의 상류층 살림집 특징과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어 보존가치가 아주 높은 건물이라 합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함월산 기림사. 왕의 길, 경주 함월산 기림사 여행


지난 가을여행에 경주에서 가장 골짜기라 해도 괜찮을 도통골에 자리한 기림사를 다녀왔습니다. 

기림사는 신문왕의 이야기가 많이 전하는 곳입니다. 

신라 수도 서라벌에서 부왕인 문무대왕을 만나려면 이곳 기림사를 반드시 지나가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토함산 옆인 추령으로 도로가 뚫렸지만, 

당시에는 기림사를 거쳐 넘어다녔습니다.




경주 왕의 길 함월산 기림사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417

경주 왕의 길 함월산 기림사 전화:054-744-2292




2016/11/15 - [여행] - (경주여행)굴불사지 사면석불. 경덕왕이 염불소리를 듣고 발견했다는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2016/10/29 - [여행] - (경주여행)이차돈과 백률사. 신라 불교의 최초 순교자 이차돈의 전설이 있는 백률사 여행을 하다. 백률사

2016/10/26 - [여행] - (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보물 제665호인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은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문화재. 중생사

2016/10/22 - [여행]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 경주 능지탑지 여행.

2017/04/09 - [여행] - (경주여행)경주최부자집 경주최씨고택 여행. 경주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 경주최씨고택.




기림사 천왕봉

신문왕은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 문무왕의 무덤을 감포 앞바다 암초인 대왕암에 장사를 지낼 때도 이 길을 넘어다녔으며 이견대에서 신통한 피리인 만파식적을 구할 때도 이길로 다녔습니다.  

지금은 옛길을 새롭게 발굴하여 왕의 길이라 부르며 봄 여름 가을 많은 관광객이 이 길을 걸으려고 찾습니다.



왕의 길 중심에 자리한 기림사는 오래된 절의 내력에서 보듯이 기림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재미있습니다. 

기림사의 창건은 인도 천축국에서 온 광유성인이 임정사를 세웠다 합니다. 옛날 인도 범머라국에는 임정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광유성인이 오백제자를 모아 놓고 설법을 하며 중생을 제도했습니다.

 


서천국에는 400여 개의 소국을 다스리는 사라수대왕이 있었는데 무상도에 관심이 많아 국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광유성인은 사라수대왕을 임정사에 초청하였습니다. 

사라수대왕은 광유성인을 찾아 먼 길도 마다치 않고 출발했습니다.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왕비는 다리가 아프다 했고 사라수대왕은 왕비를 장자의 집에 비녀로 팔고 대왕은 광유성인을 찾아 계속 나아갔습니다.

 


대왕은 광유성인을 만났고 임정사에서 왕생계를 외우며 수행정진 했습니다. 

사라수왕의 왕비는 장자의 집에서 사내아이를 낳았으며 그 아이는 ‘극락’을 뜻하는 ‘안락국’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아기였던 안락국은 7년 만에 부왕인 사라수대왕을 만났으며 부왕의 가르침을 받아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기림사 진남루

광유성인은 해동의 남쪽 땅에 명당자리가 있으니 그곳에다 절을 짓고 중생을 제도하고 불법을 전하라며 안락국에게 떠나라 합니다. 

스승의 명을 받은 안락국은 계림국의 명당에 절을 짓고 임정사라 했습니다. 

그 뒤에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면서 신라 최초 절이라는 뜻으로 ‘기원정사“의 이름을 따서 기림사라 했습니다.



이게 기림사의 출발이며 기림사의 현판에는 함월산 기림사라 되어 있습니다. 

절을 감싸고 않은 산이 경주 함월산이기 때문입니다. 

기림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보통 사찰 영역의 출입문을 뜻하는 천왕문은 제법 걸어가야 합니다. 

천왕문은 우락부락한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악귀로부터 불법을 수호하고 절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이곳을 지나야만 비로써 기림사 경내에 들어섭니다. 

기림사는 창건 당시부터 대적광전이 있었다 합니다. 

법당에는 삼신 여래를 모셨으며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불과 석조 오백나한 상을 모신 응진전. 삼층목탑, 정광여래사리각, 진남루, 무량수전 건물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광여래사리각은 없어지고 삼층목탑은 초석만 남아 있습니다.

 


기림사의 문화재를 보면 정면 가장 큰 규모가 대적광전입니다. 

단층이 벗겨졌는지 알 수 없지만, 무채색의 건물은 묵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보물 제833호. 금자사경은 보물 제959호이며 유물전시관에는 종이로 만든 보물 제415호 건칠보살상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응진전 앞의 삼층석탑과 진남루 등은 기림사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문화재입니다. 

기림사는 ’한국 33 관음성지‘이며 전통사찰 제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기림사 대적광전

기림사에서 눈길이 가는 목재 건축물은 진남루입니다. 

새롭게 복원을 했지만 한눈에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1호이며 건물의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진남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기림사는 승병과 수군의 훈련장소 였으며 그때 불린 이름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기림사 응진전·삼층석탑

앞면 7칸에 옆면 2칸, 지붕은 옆에서 보면 사람인 자를 한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우물마루에다 판벽은 창호가 있었으나 사용용도가 바뀌면서 지금의 진남루는 원형이 바뀌어 알 수 없습니다.


기림사 약사전



응진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이며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습니다. 

현재 건물은 조선 후기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입니다. 

기림사 약사전은 1600년대에 처음 지어져 1654년(효종5년)에 중창되었고 1678년(숙종 4년)에 약사 법당을 중수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1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대적광전은 기림사를 대표하는 본전건물입니다. 

지혜의 빛을 세상에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 후 여러 번 중수를 거쳐 1629년인 조선 인조 7년과 1793년 정조 17년에 고쳐 지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1862년(철종 13년) 기림사에서 일어난 대화재에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건물입니다.

 






앞면 5칸에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축양식입니다. 

이 밖에도 삼천불전, 관음전, 삼성각, 명부전, 유물전시관, 매월당 등 건물이 있지는 근래에 불사가 이루어져 대사찰의 변모가 갖추어져 기림사의 옛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합니다.

 



기림사 관음전










(경북여행/포항여행)포항 선바위 둘레길. 호미반도해안둘레길 포항 동해면 호미곶 선바위 


한반도를 포효하는 호랑이에 비유합니다. 

그 호랑이의 꼬리가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호미곶입니다. 

포항 호미곶에는 호미반도해안들레길을 조성했으며 그 가운데 핵심적인 곳이 동해면의 입암리와 마산리를 잇는 700m의 포항 선바위길입니다. 

호미곶에는 하늘을 받치듯 한 사람의 손 형상을 세워놓아 새해에는 일출과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입니다. 

그때 겸사겸사 해서 찾으면 정말 좋은 곳입니다.




포항 선바위 둘레길 주소: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




2017/12/01 - [여행] - (포항여행)포항 운제산 오어사와 오어지, 가을빛이 내려 앉은 오어사와 오어지 갤럭시 노트5로 담다.




포항 시내에서는 오천읍을 거쳐 동해면으로 가는 그 가운데 해안가에 입암마을이 있습니다. 

이 도로가 영일만을 가던 옛길이며 자동차 드라이브코스로는 최고로 엄지 척입니다. 

선바위는 절벽 밑에 숨어 있어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내판을 잘 보고 가야 합니다.







선바위와 하선대는 바다 위를 걷습니다. 

종아리를 동동 걷어서 바닷속을 뛰어든다고 싶겠지만, 바다에다 덱을 깔아놓아 전혀 바지를 안 걷어 올려도 되는 그저 남녀노소 모두 눈 호강만 하면 됩니다. 

이곳에서 최고의 절경은 선바위입니다. 

높이가 약 6m이며 우뚝 서가 있다고 해서 한자로 입암이라고 합니다.





선바위는 선바위길 입구를 딱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그때문에 더욱 당당해 보이는 게 멋집니다. 

선바위는 자갈과 시멘트를 어개어 놓은 듯합니다. 

이는 화산 활동을 하면서 뜨거운 화산 열로 벤토나이트성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대단한 규모였으며 벼락을 맞아 쪼개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 합니다.





이 일대는 모두 선바위와 똑같은 지질이며 독특한 모양입니다. 

아마 일부 사람은 대만의 예류지질공원과 많이 비슷하다 할 것 같습니다. 

예류지질공원의 여왕바위를 닮아가는 바위도 보였습니다. 

어마 무시한 세월을 보내면 여왕바위가 될 것 같습니다.

 










선바위를 지나면 남근석이 나옵니다. 

꼭 도깨비 방망이를 닮았으며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진짜로 금은보화가 막 쏟아질 것 같습니다. 

파도가 때려 바위 조각이 떨어져 나가 사람도 되었다가 미륵도 닮았다가 보는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선바위길은 걷는 내내 보는 재미에 상상을 더해 느끼게 했습니다.



 

폭포바위





선바위길에는 폭포 바위도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위틈의 골짜기를 따라 물이 떨어지나 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저 멋진 바위골입니다. 예류지질공원에는 여왕 머리 바위가 있다면 포항 선바위길은 왕관을 쓴 여왕바위가 있습니다. 

자연의 묘미가 그저 신비할 뿐입니다.



여왕바위




킹콩

영화 킹콩에서 빌딩을 오르는 화난 킹콩이 포항의 동해바다 절경에 취해 그만 넋을 빼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킹콩도 혼을 빼놓는 선바위 절경 정말 킹콩이라고 참 이름 잘 지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힌디기라는 백색 바위가 나옵니다. 천길 낭떠러지에 큰 구멍도 뚫려 있습니다.




힌디기



노씨 성을 가진 분이 정착하여 흥하기를 바라며 흥덕이라 불렀다는데 그게 음이 변해 힌덕, 힌디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위가 흰색이라 흰 언덕이라 불렸다가 흰덕, 힌디기로 바뀌었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힌디기는 화산 활동을 하면서 화산성분이 백토로 형성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 합니다.








하선대

힌디기를 지나면 자갈마당도 나옵니다. 

자각자각 밟으며 걷는 재미도 있고 들이치는 파도가 자갈을 애무하며 내는 소리에 귀가 다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눈을 바다 한가운데로 돌리면 수면에 많은 갈매기가 앉아 있습니다. 

그곳이 하선대입니다.

파도가 좀 들이치면 하선대는 물에 잠겨 보이며 이 일대를 황옥포 또는 한미끼라 부릅니다.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놀고 갔다는 하선대에는 전설이 없을 수 없습니다. 

옛날 칠월칠석날이면 동해 용왕이 하늘의 선녀를 하선대에 초청해서 춤과 노래를 부르며 신명 나게 놀았습니다. 

그중에서 용왕의 마음을 움직인 참한 선녀가 있어 용왕은 왕비로 삼고 싶었습니다. 

선녀는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아야 혼인할 수 있다며 거절을 하자 용왕은 옥황상제의 환심을 사려고 태풍을 없애고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면서 옥황상제의 근심 걱정을 덜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에 옥황상제는 마음을 움직여 용왕과 선녀의 결혼을 허락하였고이 둘은 이곳에 자주 내려와 밀월을 즐겼다 하며 이 바위가 하선대입니다. 


 


멀리 바위 두 개가 솟은 게 자세히 보면 돌배를 닮았습니다. 

마을에서는 먹바위, 검둥바위라 부릅니다. 

여기에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을 입혀 봅니다.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의 연오랑과 세오녀편에 있습니다. 옛날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연오랑은 해안가에서 바위에 붙은 해초 채취를 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습니다. 


먹바위

일본에서는 돌배에 사람이 탄 것을 보고 비범한 사람이라 생각해 그들의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세오녀는 저녁이 되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바닷가에 나가 남편을 찾았고 바위에 벗어 놓은 남편의 신발을 발견하고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바위는 쏜살같이 달려 일본으로 향했고 연오랑과 세오녀는 서로 만났습니다. 그러자 신라에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해와 달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일관은 왕에게 해와 달의 기운이 모두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며 아뢰었습니다. 

왕은 큰일이라며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를 어서 빨리 고국으로 모셔오라 했습니다. 

연오랑 부부는 이게 하늘의 뜻이라면 신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오녀가 짠 명주 비단 한 필을 주면서 이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보라고 했습니다.

 


사신은 왕에게 고하였고 왕이 비단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다시 환하게 세상을 비추었습니다. 

왕은 비단을 나라의 보물로 삼고 창고에 잘 보관하게 하고 귀비고라 불렀으며 비단을 놓고 하늘에 재사 지냈던 곳은 영일현 도는 도기야라 했습니다. 

현실로 돌아와 이 먹바위가 연오랑과 새오녀를 일본에 실어 날랐다는 그 돌배가 아닌가 하며 다시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펴 봅니다.

 



선바위

이제 살을 애이던 추위도 지나고 여행하기 좋은 봄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날 포항 선바위둘레길과 기기묘묘한 해안가 바위 여행을 떠나보세요.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전혀 다른 모습인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경주 여행 포스팅에서 이번에는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서출지 가운데 있는 경주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경주 남산은 문화재의 보고라 할 만큼 많은 보물과 국보가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 떡을 주무르듯이 빚어낸 석불과 석탑이 남산을 가득 채웠고 그것도 모자라 남산 언저리에 무수한 문화재가 널려 있습니다.




경주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227-3

보물 제124호



2018/03/23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서찰을 받아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서출지 여행

2018/03/22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동남산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경주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2017/12/21 - [여행] - (경주여행)경주 월정교와 춘양교지. 반월성에 걸린 경주 월정교

2017/04/09 - [여행] - (경주여행)경주최부자집 경주최씨고택 여행. 경주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 경주최씨고택.

2016/10/26 - [여행] - (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보물 제665호인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은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문화재. 중생사

2016/11/15 - [여행] - (경주여행)굴불사지 사면석불. 경덕왕이 염불소리를 듣고 발견했다는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그 중 한곳이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입니다.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은 폐사지로 추정되지만 염불사지 같은 절터 명칭을 찾지 못하고 지역의 이름을 따와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남산리 서 삼층석탑


그런데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이 자리한 이곳은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남산사로『삼국유사』에는 ‘남산 동쪽의 양피사’를 근거로 폐사지를 추정하고 있을 뿐 아직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다 합니다. 

아마 인근에 양피 저수지가 있는 것을 저수지 명칭이 양피사에서 근거한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은 나란히 섰다 하여 보통 남산리 쌍탑이라 합니다. 

그런데 쌍탑이라면 쌍둥이처럼 똑 닮지는 않아도 조금은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산리 쌍탑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완전 180도로 그 모습을 달리하는 이란성 쌍둥이인 특이한 모습이라 더욱 눈길이 갑니다.




남산리 서 삼층석탑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쪽 탑은 모전 석탑의 형식으로 세웠다 생각됩니다. 

기단부는 바위를 벽돌식으로 다듬어 쌓았으며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 8개를 어긋나게 놓아 서로 물리게끔 했습니다. 

층마다 몸돌과 옥개석인 지붕돌을 한 개씩 다듬어 올렸고 전탑 형식인 죽장리 오층석탑과 같은 지붕돌의 경사면에 5개의 층단을 두었습니다. 

또한, 처마 밑에도 층급받침을 5개 두었습니다.





남산리 서탑은 동탑에 비해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하겠습니다. 

동탑의 기단부는 돌을 그냥 다듬은 형태로 쌓았다면 서탑은 2중 기단에 위층은 사방 널돌에 팔부중상을 돋을새김한게 돋보입니다. 

진짜 예술성이 장난 아닙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이 꿀떡 같았지만, 문화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둘려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보이는 곳만 렌즈를 당겨 담았습니다. 

팔부중상 하나하나 개성이 넘쳐나며 한 분 한 분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세세하게 조각했습니다. 

한 면마다 불법을 수호하는 두 분의 팔부신장을 조각했는데 동쪽에는 야차와 용, 남쪽은 아수라와 건달바, 북쪽은 긴나라와 마후라가 서쪽은 천과 가루라 신장입니다.



팔부중상은 신라 중대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탑은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을 나타내는 신앙의 한 표현입니다. 

원래 석탑은 열반에 든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곳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듯이 아주 신성시 하며 불법을 보호하는 팔부신장을 새겨 악귀들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의 높이는 동탑은 7.04m, 서탑은 5.85m이며 동탑이 서탑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서찰을 받아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서출지 여행


경주 남산 동쪽에는 특별난 이력의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이라 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연못보다는 조금 큰 못이라 생각됩니다. 

이곳에 정자를 지어 놓고 세상 시름을 잊으며 지냈을 분을 생각하니 정말로 부러웠습니다. 

뒤로는 경주를 대표하는 남산이 드리우고 앞에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은 토함산을 정원 삼아 그 가운데 연못에 정자을 세운 이요당은 사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973




2016/10/22 - [여행]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 경주 능지탑지 여행.

2016/10/26 - [여행] - (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보물 제665호인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은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문화재. 중생사

2016/10/29 - [여행] - (경주여행)이차돈과 백률사. 신라 불교의 최초 순교자 이차돈의 전설이 있는 백률사 여행을 하다. 백률사

2016/11/15 - [여행] - (경주여행)굴불사지 사면석불. 경덕왕이 염불소리를 듣고 발견했다는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2017/04/09 - [여행] - (경주여행)경주최부자집 경주최씨고택 여행. 경주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 경주최씨고택.




연못에 돌을 쌓아 정자의 턱을 받쳤으며 나머지는 연못에 몸을 맡기며 즐거움을 노래했을 이요당은 1664년 조선 현종 5년에 임적(1612~1672)이 지었던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3칸 규모였다고 하나 5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치며 앞면 4칸에 옆면 2칸으로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팔작기와지붕에 건물은 ‘ㄱ’자 형태입니다.

 


임적은 평소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 마을에서 덕망이 높았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어 농작물이 바싹 말라 농민이 애를 태웠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선생은 직접 땅밑에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내어 마을은 물론이고 이웃마을에까지 물을 공급하여 사용하게 했습니다. 

서출지 정자의 편액은 물과 산을 즐긴다는 ‘요산요수’의 뜻을 취해 ‘이요당’이 되었습니다.





이요당을 품은 서출지는 신라 시대 때부터 있었으며 전설이 있습니다.

488년 신라 21대 소지왕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소지왕은 궁궐을 나왔다가 남산 아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난데없이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습니다. 

쥐는 소지왕에게 까마귀가 날아가는 쪽을 가르키며 따라가라고 일렀습니다.


 


소지왕은 신하를 보내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신하가 서출지 부근에 이르자 멧돼지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정신이 팔려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면서 소지왕에게 전해주라고 당부했습니다. 

신하는 괴이하게 생각하여 소지왕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봉투 겉면에는 “봉투를 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만약에 보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는 글이 있어 고민하다가 두 명이 죽는 거보다는 한명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봉투를 뜯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가 보고는 “두 명은 백성을 말하며 한 명은 임금을 뜻한다며 봉투를 뜯을 것을 아뢰었습니다.


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소지왕이 봉투를 뜯었더니 안에는 ‘사금갑(射射匣)’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이며 소지왕은 궁궐로 돌아와 활을 당겨 화살을 거문고 통에 쏘았습니다. 

그때 거문고 통 안에서 비명이 났습니다. 

통 안을 보니 궁녀와 승려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잡아 참형시키고 그일이 있은 후 서찰을 받아 임금의 목숨을 구했다는 뜻인 서출지(書出池)라 불렀습니다. 

서출지 사적 제138호


(경북여행/경주여행)고운 최치원의 상서장 여행. 상서장에서 최치원의 상소문 시무십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리다.


우리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역사 속의 인물 중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한분은 너무나 잘알고 있는 고운 최치원 선생입니다. 

많은 분은 고운 최치원 선생을 시대의 풍운아라 이야기합니다.

이번에 고운 최치원의 경주 상서장을 가보았습니다. 

상서장은 경주 최씨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나랏일을 걱정하는 ‘시무십여조’를 써서 상소를 올렸던 곳입니다.





고운 최치원의 경주 상서장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274


2017/04/09 - [여행] - (경주여행)경주최부자집 경주최씨고택 여행. 경주에서 가장 뜨는 여행지 경주최씨고택.

2016/10/22 - [여행]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능지탑지. 문무왕의 화장터 경주 능지탑지 여행.

2016/10/26 - [여행] - (경주여행)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 보물 제665호인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은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문화재. 중생사

2016/10/29 - [여행] - (경주여행)이차돈과 백률사. 신라 불교의 최초 순교자 이차돈의 전설이 있는 백률사 여행을 하다. 백률사

2016/11/15 - [여행] - (경주여행)굴불사지 사면석불. 경덕왕이 염불소리를 듣고 발견했다는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최치원은 868년 약관 12세에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엄청나게 빨리 조기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7년 만에 귀국하여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통일신라 말기에 조정에서는 그의 어떤 뜻도 펼칠 수 없었습니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안 그래도 미운털이 박힌 최치원이 ‘시무십여조’로 더욱 미운털이 박히자 40세에 모든 관직을 내던지고 산천을 주유하는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말년에 가야산 해인사에 여생을 보내며 ‘계원필경’ 등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상서장 뒤로 최지원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 있으며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상서장은 조선 순조 이후에 건립되었다 합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46호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신선대 여행


거제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은 바람의 언덕이 있는 해금강과 거제도의 유토피아 외도입니다. 

그중에서도 해금강과 외도는 유람선을 타야 갈수 있지만 갈곶리의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가 있는 도장포마을은 14번 국도와 연결되어 손쉽게 찾아가집니다. 

그래서 부산에서 바람의 언덕과 우제봉을 연결하는 둘레길을 찾았다가 도장포마을의 유람선 선착장과 바람의 언덕 그리고 풍차, 신선대를 구경했습니다.



거제도 바람의언덕 주소: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산 14-47(도장포마을)











섬인 거제도에서도 툭 튀어나온 갈곶리는 조금은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으로 바다 전망이 좋은 곳이라 합니다. 

그 중심에 도장포마을이 있습니다. 

도장포마을은 큰 바다가 아닌 갈곶리의 북쪽인 내륙을 보고 있어 움푹 들어앉아 아늑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태풍이 들이치면 도장포 선착장에 많은 배가 피신했을 듯 보였습니다.

 






도장포마을의 유래를 보면 오래전에 원나라와 일본 등을 무역하던 도자기 배의 창고가 있었다 하여 도장포로 불렀다 합니다. 

그게 오늘날에 도장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도장포선착장은 항상 파도가 잔잔하여 대한해협을 지나던 선박들이 많이 쉬어 갔던 곳이라 합니다.
















도장포 선착장에서 북쪽에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덱 계단이 있습니다. 

지금은 명칭이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지만, 그 이전에는 ‘띠밭늘’이라 불렀다 합니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띠밭이란 지명을 보면 아마 띠 풀이 언덕을 뒤덮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바람의 언덕’으로 지명을 바꾸고 2009년 11월에 바람의 언덕 마스코트인 풍차를 설치하면서 일약 거제도를 대표하는 거제도 관광 1번지가 되었습니다.







거제시 홈페이지를 보면 바람의 언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한없이 넓고 고즈넉하다. 여기서 보이는 것들은 하나같이 지루하지 않은 한가함을 입었다. 섬도, 등대도, 유람선도, 바람마저도 한가해 보인다. 짊어진 마음의 짐을 바다에 던지거나 바람에 날려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다. 영국에 황량한 폭풍의 언덕이 있다면, 한국에는 넉넉한 바람의 언덕이 있다.“








바람의 언덕은 작지만 초라하지 않은 엄마의 품속같이 안온한 우리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많은 티브이 드라마와 영화, 예능프로그램이 다투어 촬영되었습니다.

 TV드라마는 2003년 ‘이브의 화원’, 2004년 ‘회전목마’ 영화는 2005년 ‘종려나무숲’ 등이 촬영되었으며, 2009년 5월에는 KBS 2TV인‘1박2일’이 촬영되었던 곳입니다. 

바람의 언덕 풍차와 함께 보는 전망이 정말 시원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는 가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선대 구경입니다. 신선대는 도장포마을의 남쪽에 배의 돛대같이 우뚝한 바위에 편편한 전망대를 말합니다. 

대병대도와 소병대도 가라산과 망산 등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을 만한 빼어난 자연경관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선대의 또 다른 절경은 망산 뒤로 넘어가는 거제도 일몰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거제도 낙조와 오목한 해안의 변화무쌍한 절경, 자르륵 자르륵 몽돌을 애무하는 파도소리는 신선대 몽돌의 운치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거제도 신선대. 바람의 언덕, 도장포마을 대중교통편.

 

"부산서부터미널에서 거제시 고현시외버스터미널행 버스를 탑니다. 부산서부터미널에서 6:00~22:00까지 운행하며 20분 간격, 심야버스 23:00 운행, 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금강행 55번(6;25, 9;05, 11;05, 13;05, 1705, 18;25) 시내버스를 타고 도장포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끝. 우제봉 둘레길을 마친 후 해금강주차에서 출발해서 도장포마을을 거처가는 고현시외버스터미널행(해금강마을 출발시간 7:35, 12:38. 14:38. 16:38, 18:48, 19:30)은 각각 총 6회 운행합니다. 고현에서 부산서부(사상)터미널행은 6:00~21:30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심야버스(22:00, 23:00)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내비 검색은 해금강테마박물관, 도장포마을, 바람의 언덕 입력"





(전남여행/광양여행)동백림 동백꽃이 유명한 옥룡사지. 광양 벽계산 옥룡사지 동백나무 여행


광양 백운산을 등지고 아담한 봉우리인 백계산이 있습니다. 백계산 아래에는 우리나라 풍수가의 대가인 도선국사께서 주석하며 머물렀다는 옥룡사지가 있습니다. 도선국사께서는 광양 백운산 토굴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용맹정진하며 수도하여 득도에 이르렀습니다.






광양 동백나무 옥룡사지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산 35-1

광양 동백나무 옥룡사지 전화:061-797-2418








 



이제 수도를 마치고 토굴을 나서려고 했지만, 양반자세로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그런지 무릎이 굳어서 다리를 펼 수 없어 앞으로 넘어질 뻔 했습니다. 그러자 급한 나머지 넘어지지 않으려고 주위의 나무를 잡았는데 그만 가지가 부러지면서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수액을 받아먹었더니 굳었던 무릎을 펼 수 있었다 하여 ‘뼈에 이로운 물이다’라는 골리수라 부르게 되었고 그게 고리수의 유래이자 백운산 고로쇠가 유명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로쇠 수액 하면 도선국사를 빼놓을 수 없으며 도선국사 하면 광양시 옥룡면 옥룡사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럼 옥룡사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옥룡사는 8세기인 통일신라 때에 창건되었다 합니다. 도선은 864년~898년까지 대략 34년 옥룡사에서 머물렀으며 옥룡사에서 입적했습니다.




 



현재 옥룡사지를 뒤덮은 동백나무도 도선국사가 절터의 기운을 보강하려고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니다. 현재 옥룡사지는 동백숲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합니다. 절터는 덩그런 빈터만 남아 있으며 주춧돌로 보이는 돌만 몇 개 깔려 있어 옛날 대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옥룡사는 언제까지 존재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1878년 고종 15년에 대화제로 소실되었다 하니 조선 말기까지는 옥룡사가 천년의 법통을 이으며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실과 함께 폐사되었으며 1920년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도선국사의 비석과 부도, 동진대사의 부도와 탑비가 남아 있어 마을에서는 비석거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비석과 부도마저도 찾을 수 없으며 도선국사와 경보스님 탑비와 부도만 현재 복원해 있습니다.





옥룡사지는 1996년 정비 복원계획하에서 개인 소유인 토지를 사들이고 그리고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비석거리에 탑비와 부도를 보호했던 비각의 흔적을 확인했으며 도선국사 부도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에 8각의 바닥 돌이 있었고 그 아래에서 인골이 들은 석곽이 출토되어 당시 도선국사의 인골로 추정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현재 옥룡사지 주위로는 작게는 100년에서 300년이 넘은 오래된 동백나무 7,000여 그루가 겨울 강추위를 무색게 하며 붉은 꽃망울을 빵빵 터트려 옥룡사지를 찾는 관광객을 즐겁게 해줍니다. 2월달에 동백꽃 보러 옥룡사지 여행 한번 계획해 보세요.




(부산맛집/동래구맛집)부드러워 정말 맛있는 사직종합운동맛집 쌍둥이돼지국밥. 쌍둥이 돼지국밥 


부산에서 유명한 돼지국밥집중 한곳은 남구 대연동에 있는 쌍둥이 돼지국밥입니다. 본점은 대연동의 쌍둥이 돼지국밥이며 인근인 사직동에도 쌍둥이 돼지국밥 집이 있습니다. 쌍둥이 돼지국밥은 대연동과 사직동에 딱 두 집뿐입니다. 



쌍둥이 돼지국밥집 하기에 처음에는 그 집에 애들이 쌍둥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쌍둥이 돼지국밥의 연역을 보면 쌍둥이 자매 중 언니가 돼지국밥 집을 운영하다가 국밥집을 정리하면서 동생인 고맹연씨가 돼지국밥의 조리비법을 전수받아 처음 돼지국밥 집을 대연동에 열면서 상호를 쌍둥이 돼지국밥을 한 게 그 유래입니다.





부산동래구맛집 사직종합운동장맛집 쌍둥이돼지국밥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1동 66-9

부산동래구맛집 사직종합운동장맛집 쌍둥이돼지국밥 전화:051-502-0995




2016/11/15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부 동헌. 새롭게 복원한 동래부 관아 건물 동래부 동헌을 여행하다.

2016/11/05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복천박물관. 가야시대 복천동 고분군 유물전시관인 복천박물관 여행 복천박물관

2016/10/21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2016/10/13 - [여행]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복천동고분군







그리고 부산에서 꼭 먹어야 할 돼지국밥으로 소문나면서 현재에는 길게 줄을 서서 먹는 맛집 중 한곳입니다. 그리고 사직동에도 쌍둥이 돼지국밥 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대연동 본점의 쌍둥이 돼지국밥과 똑같은 맛으로 사직동 쌍둥이 돼지국밥집도 문전성시를 이루며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쌍둥이 돼지국밥의 육수는 돼지를 삶은 물이 아니고 돼지사골을 곰탕에 가깝도록 푹 고아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는 국밥이며 담백하면서 돼지기름이 뜨지 않아 정말 깔끔합니다.




 



특히 수백과 수육은 따뜻하게 먹을 수 있게 수육 아래에다 고체연료로 식지 않게 하여 쌍둥이 돼지국밥의 손님에 대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돼지수육용 고기는 목살·삼겹살·항정살을 사용해서 그 돼지고기가 부드러우면서 쫀득하여 돼지국밥을 싫어하는 여성분들도 아주 많이 찾는 곳입니다. 그러나 비계가 아주 많은 국밥을 좋아하는 분은 조금 싱겁다는 말도 합니다만 저는 지금의 쌍둥이돼지국밥이 제 입맛에 딱 맞아 정말 좋습니다. 모든 분이 저의 입맛과 비슷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갈 때마다 빈자리가 없어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직동 주민은 물론이고 사직종합운동장 사직야구장이 가까이 있어 맛집으로 통합니다.

 






(부산여행/송도해수욕장)부산 송도해수욕장 트리문화축제. 부산 송도해수욕장 빛축제.


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 먹자골목인 백년송도골목길로 이어지는 길에 송도 트리 문화축제가 현재 한창 열리고 있습니다. 장장 95일간 일정인데요 내년인 2018년 2월 18일까지 송도해수욕장 밤하늘을 불빛으로 수놓습니다. 





이번 송도해수욕장 트리 문화축제는 ‘가고픈 부산 송도-반가운 송도’란 주제로 열리며 역시나 볼거리는 송도해수욕장의 중앙분수광장입니다.





부산 송도해수욕장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135-5

부산 송도해수욕장 전화:051-240-4086





2017/06/11 - [여행] - (부산서구여행)닥밭골행복마을. 소원바위에서 소원을 빌어 봐! 닥밭골벽화마을 여행

2017/06/03 - [맛집] - (부산서구맛집)닥밭골벽화마을 맛집 영남냉면·밀면. 물과 비빔밀면 42년 밀면집의 포스 영남냉면밀면

2017/05/06 - [부산 축제]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구경 오세요

2017/04/19 - [여행] - (부산여행)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우째 이런마을이 공동묘지에 들어선 비석문화마을 여행

2017/04/14 - [여행] - (부산서구여행)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가슴 먹먹한 부산 사람들의 모습 최민식갤러리에서 만나보세요.

2016/12/03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이태석신부 생가. 울지마 톤즈 이태석신부 생가 여행.








여름에는 분수에서 물줄기를 길게 뿜어내어 시원함을 주었다면 겨울빛축제에서는높이 8m, 지름 3m의 대형 트리 조형물을 설치해 송도해수욕장의 대표 조형물답게 빛의 송도를 다양하게 수놓았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빛 조형물은 화려한 볼거리를 보여주며 100년 송도의 멋스러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점등식은 지난 12월 7일 끝났지만 빛축제 조형물은 2018년 개의 해를 맞아 강아지 모양의 조형물 하며 천사의 날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서 포토존이 따로 없을 정도로 송도해수욕장 전체가 포토존입니다. 2018년은 ‘황금 개띠’라고 합니다. 개처럼 부지런한 한 해가 되길 빌어봅니다.

 




빛축제 조형물은 오후 5시 30분부터 불을 밝혀 밤 11시에 불을 끈다고합니다.. 송도해수욕장 트리 문화축제의 행사인 송도 빛축제 정말 예쁘고 화려합니다. 물론 송도해수욕장은 백 년이 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입니다. 


다이빙대, 케이블카 등 100년 송도해수욕장의 복원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이며 올해 겨울은 더욱 알찬 볼거리로 100년 전통의 송도해수욕장을 느껴보세요.





◀백년 송도해수욕장 트리문화축제 빛축제 사진으로 보기▶












































































(경남함안여행)함안 가볼만한곳 신라 석축산성 성산산성에 오르다. 갤럭시 노트 5로 찍은 성산산성


함안 성산산성


성산산성은 조남산 정상부에 퇴뫼식으로 쌓은 산성이며 6세기경인 신라 시대 산성입니다. 현재 성산산성은 돌을 다듬어 수직형태로 쌓은 석축산성이며 발굴현장에는 하얀 부직포를 덮어놓았습니다. 





1991년부터 발굴조사를 하면서 석축 산성임을 확인했으며. 산성의 전체길이가 1.4km인데 남·북은 길며 동·서로는 짧은 타원형 산성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작은 분지이며, 주위 높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돌렸습니다. 산성의 동·서·남쪽에 성문터 외 우물 1개와 건물터 2곳을 확인 했습니다. 

함안읍지에는 가야 고성이란 기록이 있어나 출토되는 신라기와와 토기파편 등으로 유추하면 6세기 신라 시대 석성이며 동문터에서 많은 목간이 나왔습니다. 종이 대신 나무에 기록한 목간은 동쪽 성벽 부근의 계곡지형을 메우려고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부엽층에서 발견했습니다. 그 부엽층에서 많은 목간과 생활 농기구, 그릇파편, 목기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습니다. 





2017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2014~2016년까지 17차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23점의 목간이 나왔으며, 6세기 신라의 율령체계와 신라 왕경인(王京人)의 관직명 ’대사(大舍)‘ 등 새로운 사실이 확인 되었습니다. 그 중 4면에 글자가 있는 사면 목간 1점에서 길이 34.4cm. 두께 1.0~1.8cm이며 소나무로 길쭉한 모양을 하였습니다. 목간에는 총 56글자가 있습니다. 

이 목간에는 진내별 지방의 촌주가 중앙 출신 관리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올린 문서로 당시 신라 지방사회에까지 중앙정부의 강력한 공권력이 율령을 통해 지방까지 지배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신라 법흥왕의 율령반포 이후의 신라 시대 정권통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며. 함안 성산산성의 출토된 목간은 총 308점에다 우리나라 목간의 절반 정도의 많은수량입니다. 

함안여행을 계획할 때는 성산산성도 올라보고 말이산고분군과 함안읍·가야읍을 둘러보면 정말 좋습니다. 사적 제67호

 




성산산성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함양읍 괴산리·가야읍 광정리


2017/11/27 - [여행]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 무진정, 갤럭시 노트 5로 함안 무진정의 가을 만추를 담다.

2016/10/16 - [여행] - (함안여행)방어산마애불. 보물 제159호 통일신라시대 함안방어산마애불 여행을 하다.
































 

(포항여행)포항 운제산 오어사와 오어지, 가을빛이 내려 앉은 오어사와 오어지 갤럭시 노트5로 담다.   


포항에서 가을에 쉽게 가볼 만한 곳이 오어지가 있는 오어사입니다. 보통 사찰이 큰 저수지를 끼고 있는 곳이 드문 일인데 그래도 오어사는 가을철 단풍그림과 잘어울리는 오어지로 인해 한층 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려고 찾았던 포항 오천읍 오어지와 오어사. 시기를 딱 맞추어 찾아서 그런지 절 주위 단풍은 좋았지만, 가을을 즐기려는 관광객 때문에 오어지와 오어사는 완전 북새통 이었습니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합니다. 창건하면서 많은 큰스님이 이곳에서 주석하며 수도 정진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신라 4대 성인이라는 자장율사는 물론이고 원효대사와 혜공선사. 의상대사가 머물렀으며, 삼국유사를 집필하시면서 일연스님도 이곳에서 계셨다 합니다.





오어사는 창건 당시 항사사라 불렸지만, 원효와 혜공의 일화 때문에 사찰 이름이 바뀌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왜 오어사라 불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원효와 혜공은 이곳에서 수도 정진을 했습니다. 혜공은 항사사에 머물렀고 원효는 오어사 앞 계곡을 건너 골짜기 안의 운제산 자락의 토굴에서 수도에 전념했습니다. 하루는 원효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는 먼저 중국에 유학을 갔다 온 선배로서 원효를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혜공은 원효를 찾아가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했으며 원효 또한 흔쾌히 승낙하여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기란 게 오어사 계곡에 사는 물고기를 삼켜서 죽지 않고 살아서 대변으로 나오는 사람이 이긴다였습니다. 두 스님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서 각자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서 삼켰습니다. 그런데 물고기 한 마리는 죽어서 나왔지만 한 마리는 살아서 오어사 계곡을 거슬러 힘차게 가는 것을 보고 서로 물고기가 자신의 것이라 했습니다. ㅋㅋ


 



원래 이런 내기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인데 두 스님은 아마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나 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내 물고기다’하여 내吾자와 고기魚자를 합해 오어사(吾魚寺)가 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오어사를 품은 운제산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효와 의상, 혜공과 자장은 서로 운제산 자락의 바위절벽에서 참선하며 수도할 때에 하늘의 구름을 잡아 사다리를 만들어 서로 내왕했다 합니다. 그러고 나서 운제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각설하고 가을 오어사의 제1경은 바위 벼랑 끝에 지어진 자장암이 비친 오어지 반영입니다. 많은 사진작가분이 단골로 찍는 사진인데 요즘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오어지의 수량이 만수위가 아니고 계곡도 완전히 말라있어 오어지에 비친 자장암의 반영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저는 오어지에 건설된 구름다리를 건너서 오어사를 붉게 물든인 단풍 반영은 볼 수 있었습니다.



 





















가을의 오어지와 오어사는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또한, 오어사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는데 오어사 동종과 원효대사가 사용했다는 삿갓입니다. 모두 오어사 경내의 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동종은 오어지 공사를 하면서 진흙을 긁어내다 발견해 보존처리를 하고 전시중이며, 삿갓은 1,300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누더기와 같이 헤어져 심하게 훼손된 상태입니다.














종이와 실로 만들었으며 안에는 솜을 넣고 바깥에는 풀뿌리로 만들었다 합니다. 단풍이 좋은 날 오어사의 빛바랜 대웅전을 둘러보고 파란 가을하늘의 오어지 반영을 보면서 내년의 오어사와 오어지 여행이 기다려졌습니다.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갤럭시 노트 5로 찍은 밀양 위양지 가을 정취. 밀양 이팝나무 위양지 




밀양 위양지(位良池)


밀양 부북면 위양지에서 마지막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고 왔습니다. 위양지는 5월 이팝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릴 때 가장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는 저수지 둑과 완재정 주위로 많은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을 위양지 또한 이팝나무의 5월 위양지 못지않게 알려져 많은 사진작가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위양지는 양민을 위한다는 뜻이며 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되었습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의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가 1634년인 인조 12년에 밀주 부사였던 이유달이 새로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밀양구지를 보면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해 위량리를 양양부곡이라 했습니다. 저수지의 이름도 여기에서 나와 양양지라 불렀으며 처음에는 제방의 둘레가 4.5리였다 합니다. 그러다 규모도 축소되고 해서 지금은 수리구역의 제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위양못에는 다섯 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에서 못의 중앙에 있는 섬에는 완재정의 정자가 있습니다.

완재정은 안동권씨의 학산 권삼섭을 기리기 위한 정자이며 완재정 편액은 ‘완전히 물 한가운데 있다’라는 뜻으로 시경의 ‘완재수중앙’에서 그 음을 취했습니다. 

이팝나무와 함께 더욱 알려진 밀양 위양지는 밀양 8경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밀양시 위양지 주소: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2016/12/15 - [여행] - (밀양여행)김종직 생가 추원재와 김종직의 묘, 호랑이 무덤 여행.


2016/11/12 - [맛집] - (밀양맛집/상동맛집)상동역 웰빙 고동국. 경상도 들깻가루로 끓여낸 고소한 국물이 일품인 상동역 웰빙 고동국




































(부산맛집/동래맛집)숙성회전문 사직동 정성도마횟집. 독특한 숙성회의 비법 정성도마횟집



생선회는 싱싱한 활어를 금방 잡아 회로 먹는 게 좋을까 아니면 피를 빼고 숙성과정을 거친 회가 좋을까? 이는 사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숙성이고 활어고 닥치는 대로 좋아하여 가리지 않습니다. 

회라면 그저 좋다고 하는 한 사람입니다. 

하루는 직장 동료가 사직동에 숙성 회를 잘하는 집이 있다 하여 가자고 했습니다. 회가 별다른가 하면서 따라나섰습니다. 


상호는 정성도마이며 사직동 57번 버스종점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른 집은 입구에 흔하게 있는 수족관이 이 집에는없다고 했습니다. 횟집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식당 입구에 길게 늘어서 자리를 차지하는 수족관인데 아무리 숙성 회를 전문으로 한다지만 수족관까지 없을까 하며 도착했더니 진짜 정성도마 입구에는 일반 식당처럼 그저 깨끗했습니다.




부산 동래 사직동 숙성회 전문 정성도마횟집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151-5

부산 동래 사직동 숙성회 전문 정성도마횟집 전화:051-502-9805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2016/10/05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호국사찰 금정산 범어사 여행. 범어사


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2016/10/21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마침 예약을 하고 출발해서 우리 자리가 남아 있었는데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자리가 없어 밖에서 기다릴 뻔했습니다. 

와!! 진짜 손님 많다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도 우리자리 빼고는 모두 손님으로 꽉 찼습니다. 

정성도마에는 손님이 많은 비결이 있었습니다.

선어회는 2.5kg 이상 나가는 활어만 고집하고 그것도 매일 그날 판매할 양만 들어오며 피를 완전히 빼고 나면 소금물에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고 3~8시간 가까이 냉장 숙성 시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 했습니다.


 



정성도마횟집은 다른 집에 흔하게 있는 쌈과 초장도 없습니다. 저도 회를 먹을 때는 깻잎에 초장을 듬뿍 찍어 마늘과 고추를 넣어 먹는데 지금까지는 초장 맛으로 회를 먹어왔습니다. 그래서 초장 맛이 생선회 맛이 돼버렸는데 정성도마는 회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하도록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합니다. 

그래서 정성도마 손님에게는 초장 대신에 가격이 비싸지만 회 전용인 리비시 간장을 사용하고 여기에다 가쓰오부시 등 감칠맛을 내는 재료를 첨가하여 물 같은 일반 간장과는 다르게 농도가 짙은 끈적한 느낌의 회 전용 간장을 만들었다 합니다. 


그리고 일반 횟집은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찌끼 다시 음식은 정성도마횟집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횟집을 생각하고 정성도마를 찾았다면 실망하실 듯, 정성도마는 간단하게 밥을 새알같이 만든 초밥하고 씻은 묵은 김치. 알배추와 풋고추, 된장하고 마늘, 고추 다진 게 전부였습니다.





그야말로 어찌 보면 한 상 차려진 식탁이 아닌 그저 식탁이 깨끗했습니다. 

그래도 최고의 생선회로 경쟁해서 그런지 항상 손님이 넘쳐난다는 이야기. 그날 판매할 양만큼 활어회를 들여와서 장만하여 숙성시켜 모두 소진하면 바로 문을 닫는다는 정성도마횟집. 평소 오후 5시쯤에 문을 연다면 보통 밤 9시면 준비된 숙성회가 모두 손님상에 나가기 때문에 정성도마에 꼬들꼬들하고 찰진 숙성회 맛을 보려면 일찍 가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습니다. 

정성도마의 숙성회는 광어, 우럭, 참돔만 사용하며 모두 양식을 한 생선입니다. 광어 등은 아무래도 씨알이 굵은 생선이 맛도 더 있기 때문이고 일정한 굵기 이상의 생선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라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먹었던 방식과는 다르게 리비시간장에다 고추냉이를 넣고 두툼한 숙성 회를 찍어 먹었습니다. 코끝이 찡해오는 게 생선회의 원래 맛이 이런거구나 하며 회의 본 맛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게 숙성회의 참맛이구나 하며 초장 맛이 아닌 순수 생선회 맛에 조금은 눈뜨게 되었습니다. 

메뉴판에는 대(7만원),중(5만원),소(3만원) 생선회와 활어회 튀김밖에 없습니다. 생선회와 함께 활어회 튀김(1만원)은 바늘과 실의 관계로 같이 주문한다는데 우리도 튀김을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두툼한 생선살이 잘 튀겨져 아삭한게 고소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생선회의 끝장 판이라는 매운탕은 이 집 만의 맛이라면 맛입니다. 매운탕에는 꼭 라면이 따라나옵니다. 시원한 매운탕에 라면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성도마횟집의 매운탕에 라면이 없다면 앙코 없는 찐빵 맛과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정성도마횟집의 매운탕과 라면, 숙성회와 나무 도마는 손님이 찾는 이유이면서 정성도마횟집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경남여행/창원여행)주남저수지 창원주남돌다리. 800년된 창원주남새다리를 만나다.


방가방가

이번에는 주남저수지 여행을 하면서 돌다리인 주남새다리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주남돌다리는 창원시 주천강에는 대산면 가술리 고등포마을과 동읍 월잠리 판신마을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200m 근방에 콘크리트 다리인 주남교를 새롭게 건설하면서 많은 사람이 건너다니던 다리의 기능은 잃어버렸지만, 돌다리는 그대로 근대에까지 두 마을을 연결하는 돌다리로 남았습니다.






창원주남돌다리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가술리 590

창원주남돌다리 주소: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월잠리 590








그러다 1967년 폭우로 불어난 물에 돌다리는 떠내려갔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난 1996년 창원시에서 주변 하천에 나뒹굴고 있던 돌다리의 잔해를 모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요즘 주남새다리와 같은 전형적인 우리의 옛 돌다리를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꼭 저 멀리 남의 고장의 문화재와 같이 생각하기 쉽지만 부산하고 가까운 곳에 이런 800년의 역사를 가진 돌다리가 있으니 신통방통합니다. 주남돌다리는 화강암과 점판암이며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다리입니다. 4m 간격으로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넓고 평평한 돌판을 여러 장 올린 형태입니다.








교각에 쌓은 돌도 보면 일정한 모양과 크기가 아니라 작은 돌을 여러 개 겹쳐 포개어 쌓았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주남 돌다리를 일명 주남 새 다리라 하는데 이는 새로 만든 다리란 뜻이 아니라 주천강 사이에 놓인 다리로 ‘사이 다리’란 뜻을 가졌으며 ‘사이’를 줄이면 ‘새’가 되는데 그래서 ‘새다리’가 되었다 합니다. 새로 생긴 다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뜻이 아닙니다. 참고하세요.





창원 주남돌다리는 협동정신을 상기시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두 마을 사이에 주천강이 있어 매번 왕래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마을 장정이 보여 동읍에 있는 정병산의 돌로 다리를 놓기로 했습니다. 마침 정병산 정상에 장방형의 평평한 돌을 두 개 발견하고 돌다리의 상판에 제격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우선 한 개를 운반하려고 모든 마을 사람을 동원해 당기고 밀고 젖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기왕 이래 된 거 한꺼번에 두 개의 돌을 옮겨보자며 이번에도 마을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당겼습니다. 그러자 꿈쩍도 하지 않던 돌이 서서히 움직였고 두 마을을 연결하는 주남 돌다리의 상판이 되었다 합니다.










가을과 겨울 최고의 여행지인 주남저수지에서 꼭 보고 와야 할 여행지인 주남돌다리, 마침 백월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찾았는데 돌다리는 황금빛으로 바뀌면서 환상적인 황금 돌다리가 되었습니다. 창원주남돌다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5호입니다.




사진으로 창원주남돌다리 구경하기































(부산서구여행/부산서구가볼만한곳)아미문화학습관 최민식갤러리. 가슴 먹먹한 부산 사람들의 모습 최민식갤러리에서 만나보세요.



부산광역시 서구에 속칭 달동네라 부르는 아미동 비석 마을 언저리에 아미문화학습관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작가 최민식 갤러리가 있습니다. 1957년부터 한평생을 오직 흑백사진으로만 작품을 찍었던 분입니다. 한국동란의 아픈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0년 부산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 부산 사람들의 참 인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았던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전시실. 최민식 선생님을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라 부릅니다. 그분의 작품 속에서 Human(인간)이란 모습을 찾을 수 있으며 사진 한 장 한 장에 우리 부모님의 모습인 억척같은 삶과 일상을 만나게 됩니다. 왜, 우리 부모님이 처절하게 살았는지 최민식 님의 사진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으며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아보세요.






2016/12/03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이태석신부 생가. 울지마 톤즈 이태석신부 생가 여행.

2016/12/11 - [산행] - (부산여행)부산서구 천마산 산행. 부산 최고 조망 산행지 중 한곳 남부민동 천마산 원점산행

2016/11/01 - [여행] - (부산여행)옛 부산미문화원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 일제강점시 수탈현장의 중심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부산지점 건물이 부산근대역사관.

2017/02/08 - [여행]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에서 사진찍기 인증 포인트 바로 여기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아미문화학습관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천마산로 410호

최민식갤러리(아미문화학습관) 전화:051-240-4495~6

최민식갤러리 운영시간:평일 오전10시~오후7시(단 주말은 오후 5시까지)

갤러리 월요일 휴무

대중교통편: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이나 자갈치역하차. 토성역에소는 부산대학병원 응급병동 앞 정류장, 자갈치역에서는 서구청 앞 마을버스 1,2,3를 이용 아미골 공영주차장 하차.

 































(부산다대포일몰) 부산다대포일몰 '해를 따라 서쪽으로...'

2017.3.11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해를 따라 서쪽으로..."









17.3.5 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부산다대포일몰)17.3.5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2017/03/09 - [사진] - 17.2.12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0 - [사진] - 17.2.12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일몰

2017/03/11 - [사진] - (사진)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17.2.12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3 - [사진] - 17.2.12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4 - [사진] - 17.2.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해넘이 일몰






17.3.11 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2017/03/23 - [사진] - 부산일몰명소. 17.3.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22 - [사진] - (부산다대포일몰)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풍경. 어느 가족의 다대포 나들이 풍경

2017/03/20 - [사진] - 17.3.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해넘이).

2017/03/18 - [사진] - 17.3.5 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2017/03/17 - [사진] - 17.3.10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6 - [분류 전체보기] - 17.3.11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해넘이










17.3.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부산일몰명소. 17.3.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09 - [사진] - 17.2.12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0 - [사진] - 17.2.12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일몰

2017/03/11 - [사진] - (사진)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17.2.12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3 - [사진] - 17.2.12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2017/03/14 - [사진] - 17.2.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해넘이 일몰

2017/03/15 - [사진] - 17.2.1 부산송도해수욕장 해돋이 일출

2017/03/16 - [분류 전체보기] - 17.3.11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해넘이















17.3.11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풍경. 어느 가족의 다대포 나들이 풍경





17.3.18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해넘이). 얼굴은 모자이크 약간 했습니다. 






17.3.5 부산다대포해수욕장일몰. 오늘도 다대포해수욕장으로 나갈볼 계획이었는데 구름땜시 접어야겠습니다. 아쉽지만 지난 3월5일 일몰사진입니다. 







17.3.10 부산다대포해수욕장 일몰






17.3.11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일몰, 해넘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