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맛집/동래맛집)여름 갈무리로 동래 함흥냉면 전문점 함경면옥에서 냉면 먹고 왔습니다. 


그 무더웠던 한여름도 이제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 이제 살맛이 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화요일 통영출장을 갔다가 저녁은 시원한 냉면으로 올해 무더위를 갈무리하자며 일행과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냉면은 원해 꽁꽁 온 세상을 얼게 하는 한겨울에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와 먹는 게 진정한 냉면 맛이라 합니다.

 



함흥냉면전문점 동래본점 함경면옥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213

함흥냉면전문점 동래본점 함경면옥 지전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433-7

함흥냉면전문점 동래본점 함경면옥 전화:051-556-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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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이제 냉면은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름도 다 끝났지만 그래도 냉면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통영출장을 마치고 냉면을 먹으려고 부산 동래 메가마트 건너편의 함흥냉면전문점 함경면옥으로 ‘부렁부렁’ 차를 몰았습니다.



함경면옥은 주차장이 넓어 주차하기도 편리합니다. 

무더위가 다 지나갔다지만 그래도 주차장에는 여러 대가 주차를 하고 있어 역시 부산 동래구 냉면 맛집은 무엇인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함경면옥은 제가 가끔 찾는 곳입니다. 

식당은 2층이며 올라가서 주문했습니다. 

주문과 동시에 함경면옥은 선불입니다. ㅋㅋ

 


음식도 먹기 전에 음식값부터 받는 게 좀 무엇하지만 ㅎㅎ 아마 누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음식값도 안 내고 도망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비빔냉면, 일행은 물냉면 그리고 양이 조금 적을 것 같아 만두를 주문했습니다. 

한여름에 면을 먹을 때는 시원한 슬러시 육수가 나오는 물냉면, 물밀면, 막국수 등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무더위도 조금은 물러나고 해서 제가 좋아하는 비빔냉면을 시켰습니다.

 


따뜻한 육수가 먼저 나와 정말 좋았습니다. 

구수한 느낌의 육수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기다리던 냉면이 나왔습니다. 

냉면의 면발은 아주 가늘어 꼭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 같습니다. 

그리고 면발이 가늘면서 메밀이 들어갔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합니다. 

아니면 면발이 퍼져버려 그만큼 냉면은 맛이 떨어집니다. 

사진 몇 장 찍었는데 벌써 면발이 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서빨리 십자로 가위질하고 식초를 치고 고추냉이를 조금 넣으면 준비 완료. 먼저 달걀을 입으로 가져갑니다. 

달걀을 먼저 먹는 이유는 모두 아시죠. 

매운 음식을 먹으면 달걀이 위벽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냉면을 먹기 전에 먼저 먹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이제 빨리 저어서 섞어 비빔냉면의 첫맛을 느껴봅니다. 

달걀을 먹어서 그런지 그리 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음 바로 이 맛이여 하며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실 냉면만 먹으면 냉면 양이 조금 적습니다. 

그래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만두와 함께하면 좋습니다. 

만두냉면이라 할까요?. 

고기를 함께 먹는 고기냉면이 있듯이 만두와 함께하는 만두냉면으로 맛있는 냉면 한 그릇 하세요. 

동래 함흥냉면전문점 함경면옥에서 냉면 어때요?

 함경면옥 냉면 가격 물냉면 9,000원, 비빔냉면 9,000원


 



(경남여행/통영여행)비진도 바다백리길 선유봉 산호길 걷기. 비진도 선유봉 산호길 


통영 비진도에서 2박 3일 휴가를 보냈습니다. 

휴가를 해수욕장이 있는 섬에서 보냈지만 정작 바닷물에는 손가락 발가락 한 개도 담가보지 않고 이틀 동안 바다백리길인 비진도 산호길과 소매물도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그저 섬산행을 즐기는 휴가였습니다.





비진도 선유봉 주소: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비진리 산 129-1





비진도 선유봉 지도


비진도 선유봉 고도표



일단 비진도에는 외항과 내항이 있습니다. 

내항은 안쪽에 있으며 외항은 바깥쪽에 있습니다. 

통영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비진도로 향하면 먼저 도착하는 곳이 내항선착장이고 그다음이 외항선착장입니다. 

외항마을은 비진도의 아름다움을 모두 가졌다 해도 좋은 곳입니다.

 


비진도 외항해수욕장



두 섬을 사구로 연결하는 모래 해변과 그 반대편에는 몽돌해변이 나누어져 있는데 처음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일단 이번산행인 바다백리길의 비진도 산호길 찾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내항에서 시작하여 외항마을을 거쳐 외항선착장 옆에 있는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선유봉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으며 두 번째는 외항선착장에 있는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바로 선유봉으로 가는 방법입니다.


비진도 외항마읋






비진도 외항마을 방풍림


비진도 솔비치펜션



2013년도에 비진도 바다백리길인 산호길을 내항 마을에서 시작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숙소인 솔비치펜션을 나와 외항선착장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선유봉 산행의 대부분은 미인전망대로 바로 직진하여 선유봉 정상을 찍고 오른쪽으로 하산을 시작해서 설풍치를 거쳐 다시 외항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정석입니다. 

이번에는 이와 반대로 설풍치를 거쳐 선유봉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일행은 휴가를 즐기려고 낚시나 휴식을 한다고 해서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날씨지만 혼자 선유봉 산행을 출발했습니다. 

입구에 공원관리사무소 옆에는한려해상국립공원 사진촬영 포인트를 알리는 시설물과 선유봉 1.8km 이정표가 있습니다. 

사무소 왼쪽의 시멘트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조금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입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직진하여 정상으로 향하지만, 예전에 한번 올랐던 적이 있어 이번에는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오른쪽 하산길 방향으로 꺾었습니다. 

직진은 선유봉이 1.7km이며 오른쪽의 선유봉은 3.2km입니다. 

늦은 오후 시간에다가 날씨가 워낙 무더워서 그런지 선유봉을 오르는 사람은 저 빼고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낭에는 물만 들었을 뿐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곧 선유봉 산호길 출입구인 게이트를 통과하고 본격적인 산길로 바뀌었습니다. 

강렬한 뙤약빛을 가려주는 숲 속에 들어서 그런지 한결 시원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사는 주위에도 나무를 많이 심어야 된다고 하는가 봅니다.



숲 그늘을 걸어가면 작은 암자인 비진암과 민가 몇 채가 있는 수포 마을에 닿습니다. 

조용한 게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나도 조용한 곳에 이런 별장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길은 설풍치까지 오르막이 거의 없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산허리를 돌아나가게끔 이어집니다. 



갑자기 전망이 열리면서 갈치바위(슬핑이치, 설풍치) 안내판이 나옵니다. 

까마득한 바위 절벽인데 이름이 갈치바위라 불리는 걸 보면 이 바위봉우리가 갈치같이 생겼나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태풍이 휘몰아쳐 파도가 높을 때에 파도가 이 바위 절벽을 넘어 들이치면서 소나무가지에다 갈치를 걸쳐놓고 간다고 해서 얻은 이름입니다.

 




엄청나게 높은 바위절벽인데 파도가 이곳까지 들이친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습니다. 

ㅋㅋ 태풍 다음날 한전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진짜 갈치가 걸려 있는지를 말입니다. 

혹시 압니까. 때깔 좋은 은갈치가 걸려 있는지를요?  안내판 뒤 바위봉우리는 설풍치(雪風峙)입니다. 

이는 추운 한겨울에 북풍한설이 몰아쳐 바다 쪽으로 뻗은 바위 위 등마루에 눈이 쌓여 은세계의 설경을 이룬다 하여 붙은 지명으로 이 남쪽 섬에도 많은 눈이 내린다고 생각하니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선착장에서 1.8km 걸어왔으며 선유봉은 이제 1.4km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둘레길이라면 이제부터 선유봉 정상까지는 본격적인 오르막 산길입니다. 

그런데 노루여의 기암절벽과 조망이 좋아 힘든 줄도 모르고 오릅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조금 오르면 나무로 만든 덱인 노루여전망대가 나옵니다. 

내려다보면 꼭 공룡의 발을 닮은 듯 보였습니다.





선유봉의 아름다운 이름답게 산에는 노루가 많이 살았다 합니다. 

섬 주민이 노루사냥을 할 때 정상에서 노루를 벼랑 쪽으로 내몰아 절벽에 떨어지게 해서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워낙 경사가 급하고 끝에는 바위벼랑이라 가끔 노루들이 바다로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걸 배로 건져 올렸다는데서 나온 지명이며 노루같이 생긴 여가 있다 하여 불린다고도 합니다.



이곳에서 거제도와 통영의 크고 작은 섬을 대부분 볼 수 있습니다. 

연화도와 욕지도, 내·외부지도, 두미도, 추도, 연대도, 미륵도, 오곡도와 멀리 남해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일등전망대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가파른 비탈의 오르막 산길이 시작되며 다시 나무 전망덱이 나와 숨도 돌리겸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시 능선으로 난 산길을 따릅니다. 

왼쪽에 선유봉 정상과 하산해야 할 능선이 보입니다. 

선유봉 정상은 올라온 길에 비해서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2층으로 덱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래도 조망은 별로였습니다. 거제도 가라산과 저구항, 망산, 장사도, 특별보호구역인 소병대도, 가왕도, 어유도, 대·소매물도와 그사이에 괭이 갈매기 서식지인 홍도까지 보입니다.





이정표에는 선착장까지 2km 남았습니다. 

이제 하산을 서둘러 미인전망대로 향했습니다. 

나무덱 계단을 넘어서면 먼저 흔들바위가 나타납니다. 

하늘로 올라간 선녀는 비진도에 홀로 남은 어머니 식사가 걱정되었습니다. 

그 선녀는 매일 어머니가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려고 밥공기 모양의 바위를 내려보냈는데 그게 오늘날 선유봉의 흔들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곧 선유봉에서 가장 멋지다는 비진도 산호길의 미인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미인전망대는 아름다운 비진도의 전망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에 엄지 척입니다. 

두섬을 연결하는 사구인 외항해수욕장과 그 반대에는 몽돌해변이 펼쳐져 두 눈을 시원하게 정화해주었습니다.

 



비진도는 여성의 유방 또는 아령, 아라비아 숫자인 8을 닮았다고 합니다. 

이곳에 올라서면 그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머리를 들면 왼쪽부터 오곡도, 곤리도, 학림도이며 발아래에는 춘복도 뒤로 통영 미륵도와 한려수도 미륵산케이블카도 보였습니다. 

비진도 오른쪽에 한산도와 용초도, 추봉도, 죽도와 거제도 가라산과 망산도,

그 우측에 장사도와 소덕도, 소병대도, 대덕도, 대병대도, 가왕도, 어유도, 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섬까지 펼쳐지는 그야말로 미인전망대에서 비진도 파노라마가 펼쳐졌습니다. 

여기서 비진도 일몰을 보고 갈까했는데 곧 그 생각을 접어야 했습니다.



 일몰 시간이 넘었다고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국립공원에서는 야영도 안되고 우짜고 지짜고~~~” 하면서 막 떠들었습니다. 

알았다. 나도 여기서 잘 생각이 별로 없다. 

저 밑에 비싸돈 주며 깨끗한 펜션을 얻어놓고 내가 왜 여기서 자겠나, 사진 찍고 내려간다마 조금만 기다리라고 대답을 해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센스에 접촉하면 계속 우짜고 지짜고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미인전망대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은 선착장인 하산길이지만 망부석 전망대로 직진하여 뒤돌아보았습니다. 

미인전망대의 바위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미인전망대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곧 나무덱 전망대가 나왔습니다. 

망부석전망대는 미인전망대에서 보았기에 패스하고 갈림길에 되돌아와 선착장 1.1km를 보고 내려갑니다.

 


일사천리로 하산을 하여 내려오면은 비진도 선유봉 산호길의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바다백리길인 비진도 선유봉 산호길을 끝마쳤습니다. 

때마침 오곡도 뒤로 해가 늬엿늬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둘레길 내내 메고 올라갔던 삼각대를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앞에 설치하고 비진도 외항선착장의 일몰을 찍으면서 마무리했습니다. 

비진도의 솔비치펜션에서 시작하여 총거리는 5.7km에 3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전남여행/해남여행) 달마산 미황사. 해남 땅끝 달마산 미황사 여행


해남여행을 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곳 모두가 선경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만큼 해남을 찾는 여행객은 볼 곳이 많은 곳입니다. 

해남의 산은 대부분 기치창검이 치솟은 듯 삐쭉삐쭉한 바위로 이루어졌고 삼면이 바다로 둘려 어디를 가던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그 속에 잠든 듯 깨어있는 천년고찰은 고고한 해남의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남 땅끝 달마산 미황사 주소: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1

해남 땅끝 달마산 미황사 전화:061-533-3521




 


해남의 대표사찰은 두륜산의 대둔사와 달마산의 미황사를 첫손으로 꼽습니다. 

두 고찰 모두 두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천년고찰에 포함합니다. 

그중에 해남의 명산인 달마산의 미황사를 찾았습니다. 

달마산 하면 언뜻 달마대사를 떠올립니다. 

그 달마대사의 법신이 머물렀다는 산이 달마산입니다.

 


능선을 따라 솟은 바위가 만개의 부처님 모습과 닮았을 정도로 부처님의 기운이 가득한 산입니다. 

그 때문인지 달마산의 기운이 장난 아닐 정도로 드세어 항상 신령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설화가 없을 수 없습니다. 

미황사 창건설화는 1692년(숙종18)에 지은 미황사 사적기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749년인 신라 경덕왕 때 달마산 아래 포구에 돌배가 닿았습니다. 

이를 본 의조화상이 마을 사람과 함께 포구에서 돌배를 맞았습니다. 

그 돌배는 많은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습니다.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40성중, 16나한, 탱화, 금환, 검은 돌을 싣고 금인이 돌배를 저어 왔습니다.

 


그런데 검은 돌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검은 소가 나왔습니다. 

그날 밤에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금인이 나와 ”나는 돌배를 저어 도착한 우전국 왕이다. 

부처님을 모실 곳을 찾아 여러 나라를 다니다 이곳에 닿았는데 달마산을 보니 만불이 나타남으로 여기에다 부처님을 모시려 하니 검은 소에 경전을 싣고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다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도록하오“하며 사라졌습니다.

 


스님은 꿈에서 깨어나 꿈도 이상하다며 소등에다 경전을 싣고 걷는데 갑자기 검은소가 드러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겼습니다. 

달마산 골짜기에 들어서니 또다시 검은소가 드러누워 이번에는 아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의조화상은 첫 번째 소가 누웠던 자리에다 통교사를 새우고 검은소가 눌러앉은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습니다.





그 때문에 미황사(美黃寺)는 소와 인연이 깊은 사찰입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매우 아름다워서 따왔으며 황은 금인의 색상이 누런 금빛에서 따와 미황사가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천년고찰인 달마산의 미황사는 1989년까지 빈 사찰로 남아 있었었습니다. 

그때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아서야 했는데 아깝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미황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보물 제947호인 대웅보전과 보물 제1183호인 응진당입니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건물답게 웅장합니다. 

또한, 만개의 부처님이라는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한 열두폭 돌병풍이 뒤를 받쳐주며 서향으로 앉아 이게 미황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미황사를 더욱 찾게 하는 거 같습니다.






미황사 대웅전의 중창에 관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1754년 소응천(蘇凝天)이 쓴 『달마산미황사대법당중수상량문』입니다. 

미황사 대웅전의 기록으로는 이게 유일할 정도로 남아 있는게 없다고 합니다. 

미황사 상량문에 3번의 미황사가 중창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에 불타 1598년에서 시작된 제1차 중창은 1601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기록 만으로는 현재 대웅전의 중창인지 확인 할 수 없으며 이후에도 2회의 중건이 더있었기 때문입니다. 

2차 중창은 1658년에 시작되어 1660년에 마무리되었습니다. 

2차 중창은 1차 중창과 비교해 보면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때 중창된 대웅전이 현재의 대웅전과 관계된 게 아닌가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3차 중창은 1751년에서 1754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대웅전 이외에도 나한전(응진전) 등이 함께 중창되었습니다. 

이때 쾌행이 상편수로 전체를 총괄하였다 합니다. 

3차 중창이 현존하는 대웅전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건물로 보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는 2차 중건을 하면서 대웅전을 새롭게 지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 고쳐 지은 것인지는 확인 할수 없다고합니다.





1821년『영암미황사대법당삼존개금급단청중기』에 보면 삼존불 개금과 단청이 이때 다시 이루어졌으며 현재 대웅전의 외관은 단청이 탈색된 상태지만 내부의 단청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1980년 6월에 전라남도 지방유형문화 제79호에 지정되었으며 1982년 대웅전 해체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1988년 4월에 보물 제947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미황사 대웅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 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불전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미황사 대웅전은 자연석을 막돌허튼층쌓기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따로 기단을 세우지 않고 바로 축대를 기단으로 삼았는데 이 방식은 다른 불전에서는 흔하지 않은 방식이라 합니다.

 




대웅전의 초석은 모두 막돌초석의 형식을 띠지만 막돌 그대로 사용한 것과 막돌 위에 원형의 쇠시리로 기둥이 앉을 자리인 주좌를 새긴 것과 막돌에다 원형으로 연꽃을 새기고 그위에 원형의 한단 쇠시리로 기둥이 앉을 자리를 만든 세 가지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징적인 것은 복련, 연봉형, 고사리형 문양, 게, 거북 등 바다짐승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는 조선시대 후기 전라도 해안지방 사찰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민간신앙적인 요소를 불교가 수용한 것 같습니다. 대웅전의 기둥은 팽주가 12개, 내부가 2개로 총 14개이며 모두 배흘림기둥을 사용했습니다.







대웅전에서 눈여겨 볼 곳은 앞면의 창호입니다. 

처음에는 시골 부엌문과 같은 양식인 문지방에 고정하여 구멍을 뚫고 문짝에 촉을 두어 끼워 회전하여 안으로 여닫는 방식인 둔테목 구조였으나 1982년 해체보수 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창으로 바꾸었습니다. 

앞면의 문은 문살을 소슬빗꽃살의 살대로 한 사분합을 설치하고 양쪽 툇간에는 빗꽃살의 살대로 한 삼분합을 설치했습니다.





앞면의 문살은 툇간의 문살보다 장식성을 가미했다고는 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여 대웅전의 건물과 잘 어울려 품위를 잃지 않아 보였습니다. 

양쪽 측면의 출입문은 한 개씩이며 띠살여닫이문을 달았습니다. 

대웅전의 바닥은 우물마루를 전체에 깔았습니다. 

응진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입니다.







석가모니와 16나한을 봉안하였으며 미황사의 부불전으로 대웅전 오른쪽의 계단 위에 있습니다. 

『달마산미황사대법당중수상량문』에는 나한전이라 했으나 지금 현판에는 응진당이 걸려있습니다. 

응진당 또한, 정유재란으로 불탔다가 이듬해인 1598년 중창을 시작하여 1601년 마무리되었으며 대웅전과 함께 2차, 3차 중창하였습니다








응진당의 천장은 대웅전과 같은 형식인데 공포는 이보다 앞선 형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1993년에 보물 제118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문화재청 2011 해남 미황사 대웅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참고)





부산에서 출발하여 해남읍내를 가지 않고 미황사 아래에서 점심으로 연잎밥을 먹기로 계획하고 미황사로 찾아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연잎밥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ㅋㅋ 황당 그자체였습니다.

 무엇이 되느냐하니까 단팥죽과 팥빙수만  된다는 이야기 ㅎㅎ



차마고도라고 불리는 달마산 둘레길 달마고도를 걸으려고 왔는데 ㅎ 단밭죽 한그릇만 먹고 어찌 갈지 그저 암담했습니다. 

우찌하지도 못하겠고 할수 없이 단밭죽에 연빵인지 빵하고 점심으로 대체하고 달마고도 둘레길을 떠났습니다. 

미황사에서 연잎밥을 먹으려는 분은 필히 확인을 하고 출발하는게 좋습니다. 

아니면 저처럼 밥도 쫄쫄 굶고 댕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 점심으로 먹었던 단밭죽 한그릇










(경북여행/안동여행)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안동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봉정사 세계문화유산. 


이번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우리나라 전통사찰 7곳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나같이 모두 유명사찰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두 동의 국보 건축물을 보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안동의 봉정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봉정사는 국보인 대웅전과 극락전 이외에도 여러 국가 문화재를 보유했습니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안동봉정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안동봉정사 전화:054-853-4181



2018/08/05 - [여행] - (안동여행)의성김씨학봉종택. 의성김씨학봉종택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운장각에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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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사찰로 규모보다 이리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을 찾기 힘들 정도로 봉정사는 숨겨진 보배로운 사찰입니다. 

봉정사 입구에서 내려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놓은 길을 걸었습니다. 

천연 고찰을 만난다는 설렘을 진정도 시키면서 산사의 진한 풀 내음과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음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16년에도 봉정사 여행을 했지만 2년 만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설렜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오르막이라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돌려야 했습니다. 

막바지에 봉정사 오르는 돌계단을 두고 푸름을 잃지 않은 굵은 소나무가 무더위에 그늘을 만드는 양 길가에 드러누워 관광객을 맞이했습니다.



봉정사에는 따로 천왕문이 없으나 이 소나무가 천왕문 역할을 하는 듯 당당합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봉정사 출입문인 누각형태의 만세루가 있습니다. 

일자로 길게 늘어선 게 세월의 더께를 느껴질 정도로 오래되어 보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1680년(숙종6년)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창건 후에는 덕휘루(德煇樓)라 불렀다 하나 언제부터 만세루가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세루의 특징은 봉정사의 출입문 역할을 하며 산비탈을 깎아서 봉정사 절터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터를 다졌습니다.

 


만세루는 축대 가운데에다 걸친 형태로 그 아래에 출입계단을 내어 봉정사를 드나들도록 했습니다. 

그 때문에 대웅전에서 만세루를 보면 지면과 연결된 단층건물이지만 외부에서 보면 2층 누각형태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앞면 5칸에 옆면 3칸의 크기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자모양을 한 홑처마 맞배지붕건물입니다.



마루가 깔린 만세루는 정자나 강당 역할 등을 담당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닥은 우물 정자 모양을 한 우물 마룻바닥에 평난간을 돌렸습니다. 

특히 만세루에서 눈여겨 볼 점은 누각을 받치는 기둥입니다. 

다듬지 않은 자연형태인 기둥은 휘어진 게 찾는 사람의 마음을 경직되지 않게 편안함을 주며 언뜻 보면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여겨집니다. 

만세루는 장식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운판과 북,, 목어를 설치하였고 덕휘루 현판과 기문도 걸려 있습니다. 

유형문화재 제325호. 

만세루를 지나면 봉정사 경내입니다.

 


먼저 앞쪽에 사찰의 중심건물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이 있습니다. 

나라의 보물이 한점도 아니고 두 점이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봉정사 대웅전은 가운데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두고 좌우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962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나온 기록을 보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중창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극락전 상량문과 천등산 봉정사기(1728), 양법당중수기(1809)인 묵서와 1999년 해체 수리하면서 봉정사 탁자 조성기, 법당중창기(1435), 정면 어칸 기둥 묵서(1436), 대웅전개연중수기(1601)등의 기문을 찾아내어 대웅전의 변천 과정을 알게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확인된 자료에서 1809년까지 9~10회 정도 대웅전을 보수했으며 그중 1361년인 공민왕 10년의 불단 묵서와 1428년 세종 10년에 불화기록, 1431년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내어 최소한 봉정사 대웅전은 1425년인 세종 7년 전후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봉정사대웅전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크기로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모양의 팔작기와지붕입니다. 

봉정사대웅전은 기존의 대웅전과 다르게 대웅전 앞에 조선시대 누마루 양식인 툇마루를 달아내었습니다. 

이는 고려와 조선 초기의 건물 양식을 접목한 형태로 눈여겨 볼만합니다. 

안동 봉정사에서는 대웅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 봉정사 극락전입니다.









극락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이며 1971년 극락전을 수리하다 1625년 인조 3년에 작성한 상량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상량문에는 672년인 신라 문무왕 12년에 능인 대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원효대사의 창건설로 알려졌었으며 1363년인 공민왕 12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훨씬 이전부터 극락전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천등산은 대망산이라 불렀으며 능인대사가 대방산 토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고 그 과정에서 스님의 불력을 시험하려고 천녀는 능인에게 파계하여 속세에 내려가서 함께 살자고 유혹하였으나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불제자의 도리라며 완강히 거부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본 옥황상제는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수도 하도록 하였습니다. 

스님은 도를 깨치자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려 봉황이 내려앉은 곳에 봉정사를 창건했습니다.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온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고 산은 천등산이라 불렀습니다.

 



천등산 봉정사는 최근까지 6번의 큰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6.25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는 등 많은 어려움과 곡절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봉정사 불전은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1999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도 한국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 부릅니다. 

건물 내부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고 그 앞에다 부처님을 보시는 불단을 만들었습니다. 

닷 집은 화려하지 않으나 섬세하게 꾸몄으며 대장전이라 불렸다가 극락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과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맞배지붕 단층 기와건물입니다. 

봉정사의 많은 목조 건물 중에서 미니어처처럼 가장 작아 보이는 건물로 당시의 독특한 건축기법에 시선을 끄는 건물입니다. 

1969년 해체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1616년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은 것을 확인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물 제449호.








고금당과 극락전 사이에는 고려시대 양식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에 지정되었으며 이중 기단에 석탑의 기단부 일부는 깨어지고 상륜부는 분실되었으나 대체로 깔끔하며 양호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봉정사는 대웅전과 극락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데 그 역할을 담당하는 건물이 화엄강당입니다. 

봉정사의 오래된 건축물을 많이 접하다 보니 화엄강당의 연역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목조건물은 몇 년쯤 되었는지 그 궁금증을 가지며 화엄강당을 차근차근 보았습니다.

 






화엄강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 크기로 주심포양식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양법당중수기에는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이때 화엄강당도 새로 지어졌거나 수리된 게 아닌지 보고 있습니다. 

본전불을 모신 대웅전에 비해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는데 이는 법당과 강당의 차별을 두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엄강당은 보물제488호.





봉정사 경내를 둘러보고  영산암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주맛집)제주공항맛집 은갈치 전문점 제주마당. 문어전복철판통갈치조림 제주마당


2016년 제주여행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았던 제주마당, 제주마당의 유명요리는 통마리 갈치조림인데 제주마당에서 특수제작한 철판에 갈치가 토막 내지 않은 통째 나오는데 일명 ‘점보철판통갈치조림’입니다. 

그런데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한정판매라하여 그날 물건은 다 소진 되었다하여 그냥 넓은 냄비에 끓여나오는 갈치조림을 먹고 온 뼈 아픈 전력이 있었던 곳입니다.




제주마당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914-2

제주마당 전화:064-749-5501

제주마당 메뉴:갈치회. 고등어회, 갈치조림, 갈치구이, 고등어조림, 고등어구이, 점보철판통갈치조림, 문어전복철판통갈치조림, 통갈치구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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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도 먹을 수 있을까 하며 반신반의했습니다. 

3박4일 제주에서 3일째 되는 저녁을 이곳 제주마당에서 먹기로 하고 찾아갔습니다. 

준비한 물량이 모두 소진되어 맛도 못보고 일반갈치조김을 먹어야 했던 뼈아픈 전력을 씻어 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해서 ‘문어전복철판통갈치조림’이었습니다.



제주마당의 철판통갈치조림은 여러 방송매체에서 소개되었던 집이라 제주여행을 계획하는 분은 꼭 한번은 찾는다는 그런 유명맛집입니다. 

그래서인지 주택가에 있지만, 항상 손님이 찾는가 봅니다. 

이날도 통갈치를 맛보려는 손님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또한, 제주공항과 인접해 있어 제주 여행을 시작할 때나 제주여행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코스로 제주마당에서 통갈치조림를 먹고 공항으로 가기 편리해서 그런지 정말 손님이 많았습니다. 

손님의 규모에 비해 주차장은 음식점 앞이 전부이지만 이면도로 양옆으로 주차하면 됩니다. 

우리도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적당한 곳에 주차하였습니다.

 


제주갈치하면 다 아시죠? 

갈치는 그물로 쓸어담는 게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 낚시로 잡아 올려야 하는 귀한 생선입니다. 

흔히 낚시에 걸려 올려오는 갈치를 보면 비늘에 빛이 반사되어 마치 은빛이 물결치는 게 아름답기가 말로 형언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갈치를 은갈치라 부르며 제주특산물에서 최고로 치는가 봅니다.

 


역시 모든 요리도 가장 먼저 눈맛이 좋아야 합니다. 

갈치요리도 사람 키만 한 긴 사각 통철판이 먼저 우리의 기를 팍 죽여놓습니다. 

큰 통에 국물이 자작하며 긴 은빛 갈치가 반듯하게 누워있습니다. 

일반갈치조림과 비교하면 철판요리에 사용하는 통갈치는 어마어마하게 굵은 놈이었습니다.

 




어른 팔뚝만 한 크기로 보였습니다. 

그만큼 먹을 게 많았습니다. 

점보철판통갈치조림에 문어와 전복이 더 들어가는데 전복은 처음부터 여러 마리가 들어가 있지만 살아있는 문어 다 보니 끓는 과정에서 문어를 올려 줍니다. 

물이 뜨거워서 그런지 문어는 연신 밖으로 도망치려 아우성이고 도우미 분은 가위로 자꾸만 문어를 잡아 두고 그런 과정을 거쳐 문어의 희생으로 문어전복철판통갈치조림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문어전복통갈치요리라고 문어 전복 갈치만 들어 있는 게 아닙니다. 

이외에도 문어전복철판통갈치조림의 맛을 빛내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가 함께 들어갑니다. 

건져 먹을게 얼마나 많은지 문어전복철판통갈치조림요리는 최대 8명까지 먹을수 있는 양이라 합니다.

 




우리 일행은 유아 빼면 6명인데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양이 많았습니다. 

배불리 먹어도 먹어도 양이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겨 놓고 나왔는데 집에서 먹던 갈치보다 굵기가 엄청나다 보니 갈치조림 먹는 맛이 확 느껴졌습니다. 

역시 갈치는 잔챙이 보다 굵은 게 맛좋으며 먹는 맛도 있었습니다. 

다음 제주여행에서도 곡 통갈치구이나 조림을 먹고 와야겠습니다. 

(안동여행)의성김씨학봉종택. 의성김씨학봉종택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운장각에서 보다.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봉정사를 보려고 찾았던 안동여행에서 먼저 만나는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입니다. 

봉정사와 함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학봉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후에 1679년(숙종5년) 문충 시호를 받았습니다.




의성김씨학봉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5

의성김씨학봉종택 전화:054-672-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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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 하면 황윤길과 함께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조선침략의도를 정탐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분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은 학봉선생을 경상도 관찰사 초유사로 임명하여 전란을 막도록 했습니다. 

먼저 학봉김성일선생 종택을 보기 앞서 학봉선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학봉김성일선생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황윤길과 조선통신사로 참여하여 일본의 조선침략의도를 파악하려고 동행합니다. 

조선통신사의 업무가 끝나고 김성일과 황윤길은 조정에 보고하였습니다. 

황윤길은 조만간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며 전쟁설을 보고하지만, 김학봉은 그와 반대로 일본은 전쟁을 일으킬 꿈도 꾸지 않는다며 전쟁불가 설을 서로 상반 댄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황윤길의 보고대로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고 조정은 김성일에게 파직과 함께 참형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이에 류성룡은 김성일에게 왜 그런 보고를 하였느냐고 묻자 김성일은 그때야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왜란의 가능성을 부정한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 나기도 전에 온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게 더 시급하다는 판단을 하여 그런 보고서를 올리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류성룡은 선조에게 나아가 지금 전쟁으로 시국이 혼란한데 김성일만이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며 다시 등용할 것을 청했습니다. 

선조는 경상도관찰사초유사로 임명하였고 학봉선생은 경상도로 내려와 의병장 김성일과 정인홍 등을 도와 왜군을 막는데 힘썼습니다.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장군이 죽자 학봉선생은 진주성을 수성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왜적은 군량미 확보를 위해 곡창지역인 호남평야로 진격하려고 진주성을 침공한다는 계획을 미리 알고는 의병과 힘을 모아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왜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 승리로 호남평야는 지켜낼 수 있었고 진주성 전투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입니다. 

학봉선생은 1593년 왜적의 재침에 대비하다가 진주성에서 병사했습니다. 

의성김씨학봉종택은 들어서는 삼문 입구에 ‘학봉선생구택’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앞면 5칸에 옆면 1칸인 대문채를 지나면 진초록의 잔디가 깔린 마당에 들어섭니다.

 


넓은 정원에는 유실수와 소나무와 다양한 문양석이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마당을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을 했다면 본격적인 학봉구택을 둘러보겠습니다. 

학봉선생은 퇴계 이황의 제자였으며 류성룡과 함께 성리학의 학통인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추앙 받는 분입니다



학봉종택은 원래 이곳에 있었으나 저지대로 조금만 비가와도 물이 들이쳤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762년(영주38년)에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옮겼습니다. 

1964년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안채만 옮겼으며 사랑채는 그곳에 남겨두고 소계서당으로 사용하게 하였습니다. 

학봉종택의 사랑채는 한일자 건물이며 안채로 들어서는 출입문은 열려 있고 왼쪽의 닫힌 문은 부엌문입니다.



안채에는 현재에도 김성일 후손이 거주하는 공간이며 사생활을 침해할까 싶어 출입을 삼가는 게 좋을 듯해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안채는 오른쪽에 3칸의 대청을 두었고 왼쪽에 2칸의 안방으로 꾸몄습니다. 그 끝에 부엌이 붙은 전형적인 경상북도 양반가옥의 ‘ㅁ’자형 구조입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2칸은 온돌방이며 2칸은 마루입니다. 

4칸의 사랑채 앞면에 길게 툇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1963년 옮겨오면서 새로 지었으며 칸마다 각각의 현판이 달렸습니다. 

사랑채 옆에는 운장각(雲章閣) 건물이 있습니다. 운장각 안에는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과 유품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국가 문화재인 보물이 수두룩해서 그런지 출입문이 잠겨 있습니다. 

‘운장’은 "탁피운한(倬彼雲漢) 위장우천(爲章于天)”에서 한자씩 따왔는데 “저 높은 은하수처럼 하늘 가운데서 맑게 빛난다”라는 뜻입니다. 

이 앞에도 안동여행을 하면서 학봉종택을 방문했으며 이번에도 학봉종택을 찾았으나 운장각은 개방되지 않고 굳게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오늘은 안동에 관계되는 분인지 단체관광객이 찾아 왔으며 그분들과 인사를 하려고 학봉김성일선생 종손되시는 분이 하얀 계량한복을 입고 나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체 관람객은 가시고 잠시 있다가 우리보고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으시기에 부산서 왔습니다. 하고서 "저기 운장각은 평소 개방을 하지 않는가 봅니다" 하며 여쭈었습니다.

 



종손분이 "예" 하시면서 "큰 카메라를 들어 신 거 보니까 어디 사진 찍으러 다니시는 분입니까" 하시며 운장각을 한번 보여 주겠다고 흔쾌히 가자고 했습니다.

 내심 많이 기뻤습니다. 

기쁜 마음에 운장각으로 따라갔습니다. 

번호 키가 달려 있으며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수많은 책과 병풍이 보관되어 있고 오른쪽 금고도 열어주시면서 내부를 공개했습니다. 

그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학봉김성일 선생의 경연일기, 해사록과 선생의 친필 유고와 사기, 고려사절요 등 조선 초기에 간행된 전적 56종 261점과 교지, 편지 등 고문서 17종 242점 등 총 73종 50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봉선생의 유물인 안경, 벼루, 말안장, 신발 등 400여 년이 넘었다는 선생의 유품을 보면서 후손들의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휴대전화로 사진 몇 장을 담았습니다. 

이번 안동 학봉김성일 선생 종택여행을 하면서 저에게는 큰 수확이라면 운장각에 보관된 선생의 유품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만났던 거였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그 옆에 또 다른 건물은 풍뇌헌입니다. 

누각형태로 지어졌으며 앞면 4칸에 좌우 각 1칸은 온돌방을 깔고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넣었습니다. 

앞에는 툇마루에 난간을 둘렀습니다. 

처마는 겹처마를 넣어 건물의 품위를 한껏 높혔습니다.

 



학봉 김성일선생 기념관



(제주여행)폭염도 두렵지 않은 제주도 삼나무 숲인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


요즘 불볕더위가 연일 세계를 태우고 있습니다. 

한반도도 수은주가 40도가 넘는 등 찜통더위를 넘어 완전 가마솥더위가 연일 기록경신을 하는 등 장난 아닌 날씨입니다. 

요즘 같은 날씨라면 최근에 제주여행을 하면서 찾았던 삼나무 숲이 정말 너무나 그립습니다. 

아!!! 다시 그 숲길을 걸으면서 무더위를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사려니숲길 입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사려니숲길 붉은오름 입구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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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많이 알려진 삼나무숲 하면 제주여행을 한 분들은 '아! 그 숲' 하며 벌써 아실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사려니숲입니다. 

사려니숲은 제주 방언으로 신령스러운 숲이란 뜻이며 신성한 곳을 의미합니다.



사려니는 ‘살안이’ 또는 ‘솔안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살’과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을 뜻하는 신의 영역인 산 이름에 쓰이는 말이라 합니다. 그

래서 그런지 무더운 날씨인데도 정말 선선한 게 신선이 휘리릭하며 내려올 듯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련한 숲 속의 향기에 이끌려서인지 제주 사려니숲은 선남선녀들이 엄청나게 찾아왔습니다. 

사려니숲은 서귀포시 남원읍 함남리 사려니오름에서 물찻오름을 이어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까지 이어지는 15km의 숲길을 말합니다.

 


필자는 지난번에 제주여행을 하면서 제주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인 제주 시험림이 있는 사려니오름과 주위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반드시 예약해야만 트레킹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려니오름 쪽은 조용하게 걸으면서 힐링할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좋았던 감정을 쫓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158-4 붉은오름 입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제주 랜트카의 내비게이션에 사려니 숲을 찍고 찾아갔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려니 숲길 하니까? 제주시 조천읍의 교래리 산등성이의 입구로 우리를 자꾸만 안내했습니다.



이곳에서 문제점은 주차할 때가 따로 없어 수 킬로미터 밑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하는 단점이 있어 주차할 공간을 찾는다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표선면의 붉은오름 입구의 사려니 숲 입구를 찾아내었습니다.





이곳에는 도로도 넓고 길게 주차장도 마련해 놓아 다행히 주차할 공간이 보여 주차를 하고 삼나무숲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사려니숲길은 해발 500~600m의 높이에 걸쳐있으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위에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말찻오름, 물찻오름, 괴평이오름, 마은이오름, 붉은오름, 거린오름, 사려니오름과 서중천, 천미천을 끼고 있습니다. 

사려니 숲길은 전형적인 온대산림지역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 천연림과 인공조림된 삼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하게 식재되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사려니숲길은 에코힐링을 체험하는 최적 최고의 치유 숲입니다. 

사려니숲길은 중간마다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인 잣성과 숯을 구웠던 숯가마터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제주 산간의 산림목축문화를 알 수 있는 숲길입니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 생태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런 숲길이라면 안 걸어 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 일행 중에 아직 돌도 안된 갓난애가 유모차를 타고 있고 해서 입구의 삼나무 숲길만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때에도 바깥 온도는 엄청나게 더웠습니다.

 










그런데 삼나무숲을 들어서는 순간 몸의 열기가 쑥 빠져나가듯 선선해졌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수림 울창한 산림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마 삼나무숲과 외부 온도와는 4~5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려니숲의 삼나무숲은 1930년대에 심어졌으며 대략 80년이 넘은 나무들입니다. 

여기에서 뿜어내는 자연의 향기인 피톤치드는 대도시의 숲 속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와는 양과 질적으로 엄청나게 차이가 나며 맑은 공기와 피를 맑게 하는 음이온이 풍부합니다.

 






또한, 해로운 병균까지도 퇴치하는 등 사려니숲길의 매력으로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제주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저희처럼 짧은 구간이라도 꼭 한번 걸어볼 것을 권합니다.

 











(경북여행/안동여행)일직면 안동 소호헌. 안동소호헌 여행


우리나라 고찰 일곱 군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하여 그 기념으로 안동에 있는 천등산 봉정사를 여행했습니다. 

봉정사는 그 이전에도 둘러보았으나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두 동의 고건축물이 국보에 지정될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안동 소호헌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562



2018/07/27 - [여행] - (안동여행)안동이천동석불상. 안동제비원석불

2018/07/18 - [여행]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개목사 원통전

2018/07/16 - [여행]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명옥대.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여행

2017/06/14 - [맛집]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 제사음식 그대로 맛보는 곳 안동 전통음식 헛제삿밥, 맛50년 헛제사밥




안동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난 뒤 부산으로 돌아오려고 남안동 톨게이트로 빠져나가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이유는 안동 일직면의 보물 제475호인 소호헌과 보물 제57호 조탑동 5층 모전 석탑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조탑동 5층 모전 석탑은 찾아보려고 했으나 잘 일정과 맞지 않아 이번에 꼭 보고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동여행을 떠났습니다.



안동에서 내비게이션에 조탑동 5층모전석탑을 찍고 출발했습니다. 

조탑동에 도착해서 마을의 모전석탑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하필 꼭 조탑리오층모전석탑을 보고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았더니 이번에는 모전석탑을 분해해서 복원하려는지 가림 건물을 세워놓아 외부에서는 볼 수 없게끔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모전석탑 안내판을 보다가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 생가가 있다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같이한 부부는 권정생의 안내판을 보고는 “생가가 여기에 있네”하면서 “꼭! 저기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권정생이 사실 조금 생소했지만 ‘몽실언니’의 작가라는 말을 듣고 ‘아! 그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생가를 보고 난 뒤 다시 소호헌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소호헌을 들어서는 솟을대문의 문이 꽉 닫혀 있었습니다. 

아직 해는 남아 있었지만, 너무 늦어서 문을 닫은 듯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그렸습니다. 

자세히보니 문간채에 붙은 작은 방의 창문이 열려 있어 후손인지 관리인이 있어 보였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볼까 하다가 괜히 싶어 담장 밖에서 왔다갔다하며 까치발을 들고 겉모습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마음먹은 대로 볼수없었는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소호헌은 안동 법흥동의 고성이씨 임청각 이명의 5남인 청풍군수를 지낸 무금정 이고가 분가하면서 건립한 집입니다.



그 후 이고는 외동딸에게 장가 온 사위 대구 서씨인 함재 서해(1537~1559)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현재 대구서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해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정지이며 호는 함재에 저서로는 『함재집』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던 분으로 소호헌은 서해선생이 서재로 사용한 별당건물입니다.



소호헌은 앞면 4칸에 옆면 2칸의 규모에 왼쪽 3칸은 대청을, 오른쪽 1칸은 누마루를 넣었습니다. 

누마루와 붙은 대청 앞면에 직각으로 꺾어서 2*1칸의 방을 드렸습니다. 

소호헌은 위에서 보면 ‘T'자형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부속된 방은 사람 인(人)자인 맞배지붕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대청과 누마루 사이에는 사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개방하도록 하였으며 누마루에서 방에 붙은 툇마루에는 난간을 돌렸습니다. 

누마루를 빼고는 축대를 높이 쌓았으며 주춧돌 위에 건물을 받치는 기둥을 바로 세우지 않고 평방 모양의 귀틀을 짜 돌려 그 위에다 기둥을 세운 건물로 조금은 특별하게 지어졌습니다.

초익공 계통의 공포와 창방머리의 격이 높은 조각수법, 대들보는 주두(암술머리) 위에 얹었으며 포대공을 놓고 종량과 종두리를 받치게 하였습니다.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으며 합장형의 소슬도 보이는데 주택건축에서 소슬 대공을 사용한 예는 소호헌 이외에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특별한 건물로 보입니다. 

안동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소호헌을 보면서 늦게 소호헌을 찾은 저를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다음 안동 여행을 할 때는 우선하여 일직면의 소호헌과 조탑동 5층 모전석탑을 꼭 만나야겠습니다. 




(안동여행)안동이천동석불상. 안동제비원석불


안동에서 가장 독특한 석불을 보고 왔습니다. 

큰 자연석에 따로 바위를 올려 불두를 새겼는데 전체 크기가 12.39m인 아주 큰 불상입니다. 

이천리석불이라 불리는데 제비원 석불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석의 큰 바위에다 몸을 얕게 새겼으며 부처 머리를 따로 올린 마애불 형태입니다.




안동 이천동석불상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산 2



2018/07/18 - [여행]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개목사 원통전

2018/07/16 - [여행]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명옥대.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여행

2017/06/14 - [맛집]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 제사음식 그대로 맛보는 곳 안동 전통음식 헛제삿밥, 맛50년 헛제사밥




서쪽으로 향한 제비원 석불은 자세히 볼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아야만 전체를 알수 있습니다.

워낙 큰 석불이다 보니 밑에서 보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불두를 자세히 보면 뒷부분이 수직으로 잘려나간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따로 돌을 올려 머리 가운데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를 큼지막하게 만들어 올렸습니다.





얼굴은 통통하여 풍만하며 두 눈썹 사이에 백호를 양각했으며 좁으면서 길게 실눈을 뜬 듯한 눈과 그 위에 반원형의 짙은 눈썹을 표현했습니다. 

우뚝 솟은 코와 다부져 보이는 입술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고 목에는 삼도를 새겨 전체적으로 잘 생긴 미남형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자연석에 새긴 몸체에 걸친 법의는 양어깨를 감쌌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왼쪽 어깨의 옷 주름과 오른쪽의 법의 자락이 서로 교차해 접혀 있습니다. 

가슴 밑으로는 속옷의 띠가 보이고 양손은 모두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으며 오른손은 배에 왼손은 가슴에 올린 형태의 입상입니다.





발아래에 불상을 받치는 큰 연꽃 대좌를 음각했습니다. 

이천동의 석불은 'ㄷ'자 형태이며 원래에는 보호하는 기와지붕이 있었다는 것을 17세기 초의 안동읍지인 영가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초기에도 부처 머리 위에 닫집이 있었다 합니다.


 




지금은 당시 기둥을 세웠다는 흔적만 불상 어깨에 남아 있습니다. 

석불 아래 바위 끝에 연미사 중수기인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연미사는 634년 선덕여왕 3년에 명덕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공식 명칭은 안동이천동석불상입니다.



마애의 불신과 불두를 따로 합해 만들어진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에 유행했던 양식으로 안동 이천동석불상도 이시기인 고려 시대에 제작된 석불상입니다. 

1963년 1월에 보물 제115호에 지정. 안동 이천동석불상은 제비원 석불이라 부르는데 이는 미륵불이 있는 넓은 공원이 오래전에 원(院)이 있었던 곳입니다.



원은 요즘으로 치면 여관이며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연미사는 교통의 중요한 길목에 있는 사찰이라 국가에서 출장을 가는 관리의 숙소로 국가에서 지정하여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과는 다르게 석불상 위로 기와지붕이 올려진 게 꼭 제비와 닮았나 봅니다.

 




그래서 연자루(燕子樓)라 했는데 그 끝에다 요사를 짓고는 제비의 꼬리를 뜻하는 연미사가 되었으며 석탑 밑 법당은 제비부리에 해당하여 연구사라 했습니다.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개목사 원통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의 천등산 봉정사를 이곳저곳 둘러보고는 인근에 개목사를 찾았습니다. 

개목사 또한, 봉정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함께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봉정사를 나와 개목사로 찾아가는 것이 시멘트 길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개목사 앞까지 산길이 험해서 정말 오르는 길이 만만찮았습니다.

 



안동 천등사 개목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안동 천등사 개목사 전화:054-841-6304



2018/07/16 - [여행]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명옥대.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여행

2017/06/14 - [맛집]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 제사음식 그대로 맛보는 곳 안동 전통음식 헛제삿밥, 맛50년 헛제사밥



개목사는 ‘눈이 뜨이다’는 뜻인데 그 뜻이 궁금했습니다. 

처음 능인스님이 창건하면서 흥국사로 불렸는데 왜 개목사로 바뀌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개목사의 지명유래를 보면 그에 관한 전설이 두 개 내려옵니다. 



먼저 조선 세종 때 명제상으로 불렸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일화입니다. 

맹사성은 학문의 경지도 높았지만, 풍수지리에도 아주 밝았다 합니다. 

그가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하루는 관내 시찰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관민 중에 유달리 보지 못하는 소경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는 천등산의 지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맹사성은 그 길로 천등산 아래에 있는 흥국사를 찾아가서 이곳의 이름을 개목사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러 고나서는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 사라졌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은 능인대사와 관계된 전설입니다. 

천등산의 지세로 소경이 많았는데 능인대사가 천등굴에서 도를 깨치고는 흥국사를 세웠더니 그 후에 눈 먼 사람이 없어졌다 하여 개목사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천등산의 봉정사, 개목사는 능인대사와 때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능인스님은 천등산 아래 암굴에서 수도정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능인스님 앞에 스님의 수행을 시험하고자 천녀가 나타났습니다. 

천녀는 온갖 달콤한 말로 스님을 꾀며 파계하여 내려가서 함께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자신은 부처님밖에 없다며 불법의 진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능인스님의 수행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천녀는 스님의 마음을 도저히 꺾지 못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옥황상제의 명으로 스님의 부처님 공덕을 시험했다고 말하면서 옥황상제가 보낸 등불로 굴을 환하게 밝혀 더욱 정진하여 꼭 득도할 것을 염원하며 사라졌습니다.

 




능인스님은 그 등불을 의지하며 주야로 더욱 정진하였고 마침내 크게 도를 깨우쳐 굴을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 대망산이라 불렸던 산은 천등산이라 불렸으며 스님이 수도했던 굴 천등굴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개목사는 원통전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원통전은 문간채를 통해 들어서는데 꼭 안동의 고택 같은 분위기입니다. 

개목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셨습니다. 

건물을 1969년에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천순원년(天順元年)“의 글자가 발견되면서 1457년 세조 3년에 창건된 건물로 보고 있습니다.

 




원통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의 맞배지붕 기와 건물이며 좌우 측면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법당은 온돌방이며 천장은 뼈대가 드러난 연등모양의 위부분이 노출해 있는데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서는 아주 드문 경우라 합니다. 

1963년 1월 2일 보물 제242호에 지정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명옥대.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여행


이번에 유네스코에서 안동 봉정사 등 7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했습니다. 

그래서 일전에도 안동봉정사를 둘러보고 왔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안동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그전에 안동 봉정사를 가기 전에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명옥대를 보았습니다.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산 76




2017/06/14 - [맛집]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 제사음식 그대로 맛보는 곳 안동 전통음식 헛제삿밥, 맛50년 헛제사밥


 


명옥대는 봉정사 주차장에서 봉정사로 100미터 즘 오르다 보면 왼쪽에 명옥대(鳴玉臺)가 새겨진 검은 빗돌이 나옵니다. 

소나무숲을 들어서면 암반의 계곡에 물이 떨어집니다. 

최근에 잦은 수량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 폭포 건너편에 누정인 명옥대가 자리했습니다.





어느 높은 산의 큰 계곡을 생각한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대학자이자 명망가인 이황은 이 실폭포 같은 작은 계곡에서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놓았습니다. 

명옥대는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봉정사에 머물 때 이곳에 자주 나왔다 합니다.

 




낙수대라 불리던 것을 폭포의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옥이 구르는 듯 아름답다 하여 명옥대라 하고 이곳에서 이황은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합니다. 

그 유래를 보면 중국 진나라시인 유사형의 ‘비천수명옥(飛泉漱鳴玉)’의 시구에 따왔다 합니다. 

그 뜻을 풀이하면 ‘솟구친 샘이 명옥을 씻어 내린다’라는 뜻으로 1565년(명종 20년)에 이황이 명옥대로 바꾸었다 합니다.

 


작은 폭포 오른쪽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새겼다는 명옥대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명옥대에 정자는 1665년(현종 6년) 퇴계 선생이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강학했던 장소를 기념하여 지역 사림에서 세웠습니다.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사각 정자입니다.

 





자연석 주춧돌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깔았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정자의 기둥에서 2칸의 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밮견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1920년경에 명옥대 수리가 이루어졌을 때 아마 방을 헐어내고 누마루 형식으로 바꾸었던 게 아닌지 보고 있습니다.







국보를 위시한 봉정사의 많은 문화재와 함께 원형이 변형되었다지만 요즘 같은 무더운 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무더위기를 이기는 정자인 명옥대를 보고 왔습니다.

 1986년 12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전남맛집/순천맛집)순천 조계산 선암사 맛집 초원식당. 순천 선암사 맛집 초원식당


이름난 절집 앞의 식당에서 꼭 있는 음식이 산채 정식과 산채비빔밥에 나물에 비벼 먹는 보리밥입니다. 


아마 뷸교에서 하찮은 미물도 죽이지 않는다는 교리 때문인 것도 있으나 대부분 사찰은 높은 산을 끼고 있어 이곳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건강식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산채비빔밥이나 산채정식, 보리밥이 고기보다 몸에 좋은 거 같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순천 조계산 선암사 맛집 초원식당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758

순천 조계산 선암사 맛집 초원식당 전화:061-754-5811



2018/06/09 - [여행] - (전남여행/순천여행)두 종단 싸움에 대한민국 최고의 절집이 된 순천 조계산 선암사. 조계산 선암사.

2018/06/06 - [여행] - (전남순천여행)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곱향나무






청정의 산에서 나는 산나물이라 덩달아 내 몸도 좋아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순천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를 여행하고는 선암사 주차장 건너편의 선암사 상가에 초원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보다조 이날은 보리밥이 입에 더 당겼습니다.





“어! 보리밥도 있네” 하면서 돌로 세운 큰 다리를 건너 바로 계곡 가에 붙어 있어 아주 편리했습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선암사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물소리도 듣기 좋고 해서 평상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큰 고목도 그늘도 드리우고 해서 야외에 꼭 캠핑온 느낌이었습니다.





초원식당의 주메뉴가 역시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보리밥이었습니다. 


닭백숙도 있지만, 선암사에서 부처님을 만나고 왔는데 싶어 이날만은 패스했습니다. 


산채비빔밥하고 보리밥을 주문했더니 차려나오는 반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테비블에 쫙 깔리는 게 완전히 덮을 정도였습니다.








몇 가지 반찬인지 갯수를 봤더니 대충봐도 20개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산채지만 상다리가 부러질 만 했습니다. 

저는 보리밥입니다. 

보리밥을 가지고 산채비빔밥처럼 비벼 먹기로 했습니다. 

대접이의 보리밥에 갖은 나물을 올렸습니다. 

콩나물도 올리고 도라지, 고사리, 무채. 시래기 등 종류가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친 갖은 나물을 임금님이 드시는 수라상의 신선로 마냥 보리밥 위에 빙 돌리고 가운데 화룡점정으로 고추장을 올리면 보기도 좋고 맛있는 산채비빔 보리밥이 됩니다. 

산채비빔밥은 달걀 후라이가 나오지만, 보리밥에는 후라이가 따로 없습니다. 

이제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밭고랑을 갈 듯이 쓱쓱 비벼주면 됩니다.



젓가락이 숟가락보다 더 잘 비벼진다는 사실 ㅎ 이제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습니다. 

멋모르고 고추장을 푹 떠 많이 넣어서 그런지 조금 매웠습니다. 

당하게 넣는 게 중요합니다. 

입안에서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보리밥과 수분이 촉촉한 싱그러운 나물과의 만남에 숟가락이 춤을 추었습니다.



제가 보리밥을 좋아해서도 그렇고 선암사 깊은 계곡의 풍치와 선암사를 걸어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허기도 있어서 그런지 보리밥이 완전 꿀맛이었습니다. 

양이 제법 많았는데 한 그릇을 뚝딱 비웠습니다. 

역시 산사를 찾은 뒤에는 고기보다 나물이 더욱 맛있습니다. 







내 몸의 건강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듯 가벼웠습니다. 

가자 이제 다음 여행지로 천자암의 쌍향수를 만나러 go go go 




(경남여행/양산여행)양산 원동 신흥사. 신흥사 대광전 벽화 보물 제1757호


경상남도 양산 원동에서 가장 가볼 만한 절집은 축천산을 파고 앉은 절골 초입에 자리한 신흥사입니다. 

신흥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01년 신라 기림왕 4년에 선본 선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불교의 북방 전래설과 아도화상에 의해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한 것에서 보면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양산 원동 신흥사 대광전 벽화 신흥사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268

양산 원동 신흥사 대광전 벽화 신흥사 전화:055-381-4432



2018/05/31 - [여행] - (경남양산여행)양산 황산공원 캠핑장 인근에서 화려한 꽃양귀비를 만나다.

2018/03/25 - [여행] -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매화축제 순매원. 원동매화축제 순매원 매화 보고 왔어요.






그러다 보니 원효대사의 창건설 등 신흥사를 두고 많은 억척이 난무합니다. 

신흥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에는 사격을 갖춘 절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흥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의 훈련장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왜적에 의해서 신흥사 건물은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1657년 효종 8년에 대광전을 중창했습니다. 

이는 1988년 대광전 보수를 하면서 상량문의 기록과 암막새 기와에서 확인했다 합니다. 

1801년에 대웅전을 중수했으며 1854년에 요사채인 음향각을 건립하는 등 신흥사의 명맥을 유지해오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승려인 대처승이 기거하면서 신흥사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광복이되면서 대처승이 물러가고 절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며 한국동란이 발발하면서 소위 영남알프스라는 신불산 주의로 빨치산들이 숨어들었습니다. 

이들을 남도부빨치산이라 불렀으며 일부는 신흥사에 은신했습니다.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을 견디려고 건물의 나무를 뜯어내어 불을 피우는 바람에 신흥사는 더욱 황폐해 졌습니다.

 




빈절로 남아 있던 신흥사는 1983년 영규스님에 의해 중창을 하여 오늘날 사격을 갖춘 대가람으로 변모했습니다. 

필자가 처음 신흥사를 찾았을 때는 대광전 본전 이외에는 그저 황량했습니다. 

그리고 원동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신흥사는 조금씩 규모를 갖추었으며 최근의 방문에는 잘 짜인 대가람의 면모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신흥사에서 꼭 보고 와야 하는 곳이 대광전입니다. 

그리고 외벽과 내부 벽면의 벽화로 1988년 대광전 부분 해체를 하면서 ‘순치 14년’이란 명문을 발견하여 1657년(효종 8)에 중건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크기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를 한 맞배기와지붕 건물입니다.





지붕의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다포식으로 꾸몄으며 화려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특이하게도 신흥사 대광전은 조선 중기에 세워졌으면서도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이 나타나는 건물입니다. 

이를 보면서 옆면은 국보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평가받는 안동 봉정사와 예산의 수덕사를 보는 듯했습니다.





대광전에서 건물 내·외벽과 포벽, 대량과 고주에 70여 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광전 내부의 동쪽 면에는 앉은 자세의 삼존도와 여래도, 팔상도, 아수라도를 서쪽 면에는 아미타삼존도와 여섯 구의 보살도, 사천왕도, 여래도, 팔상도, 신중도가 그려 져 있습니다. 

약사삼존도와 아미타 삼존도는 17세기 후반의 벽화로 보고 있습니다. 화풍이 유려하다는 평가입니다.

 


후불벽의 관음삼존도는 관음보살이 물병 대신에 물고기를 들고 있으며 군청색 바탕에 백색안료를 사용했습니다. 

대부분 17세기 중엽의 작품이지만 1801년 대광전을 중수하면서 다시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외벽의 벽화는 비바람에 노출되어 확인이 불가할 정도로 훼손되어 안타깝습니다. 

신흥사 대광전의 벽화는 보물 제1757호.

 


그리고 대광전의 석조여래삼존상 복장유물에서 고려말 삼은 중 한 분인 목은 이색 선생이 간행한 천노금강경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천노금강경과 같은 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신흥사는 창건과 함께 만어사로 불렀다 합니다. 

그리고 설화를 보면 삼랑진의 만어사 전설과 똑 닮았습니다.

 


만어사에서 가야국의 수로왕이 기도하는데 산신이 나타나 말하기를 양주(옛 양산지명)땅의 옥지에 독룡이 살고 있으니 이를 내쫓아야하한다고 했습니다. 

수로왕은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더니 부처님이 육신통의 주술을 발휘하여 만어사의 돌을 모두 물고기로 변하게 하고 옥지의 독룡을 동해로 내쫒아 버렸습니다.







그 이후 신흥사 주위의 돌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고 하며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만어사라 하였다 합니다. 

2014년 방문시에 내부의 사진 촬영은 금한다고 대광전 입구에 붙어있어 겉모습만 찍고 돌아왔으며 이번에도 먼발치에서 내부 사진 한 장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블로그에서 내부벽화 사진을 올려 놓은 것을 보고 벽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꼭 벽화를 세세하게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부산여행/부산서구여행)부산 최고의 전망대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를 다녀왔습니다. 

천마산은 우리 집 뒷산이라 주말에 심심하면 올라가곤 합니다. 

그래서 한 해에 많이 올라갈 때는 15회 이상 천마산을 찍고 내려옵니다. 

또한, 천마산을 간다고 하면 반드시 거치는 곳이 석성봉수대입니다. 

이는 석성봉수대가 천마산의 정상이기 때문인데 매번 천마산 산행 때마다 자연스럽게 정상 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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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친근한 산인데 최근에 와서 조금 뜸했습니다. 

그러든 차에 석성봉수대 학술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석성봉수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이가” 하며 다시 보니 우리 집 뒤에 천마산의 석성봉수대였습니다.

 


석성봉수대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봉수대로 석성봉수대는 왜구의 출몰 때 해안에 너무 치우쳐 있어 수정동의 구봉봉수대로 옮기면서 폐쇄되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내 고장의 봉수대를 아는 정도인데 이번에 조사가 이루어져 그래도 정확한 봉수대의 축성연대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술조사는 부산박물관 문화재 조사팀이 2018년 4월 9일부터 4월 27일까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석성봉수대는 조선 초기 지리서인 『경상도지리지(1425)』봉수조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봉수 노선 중 하나인 동래~한성 간을 잇는 봉수이며 부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 중 한 곳이라 합니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8)』와 『동국여지승람(1481)』편찬 사이 어느 시점에서 석성봉수대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면서 남구 용당동의 오해야항 봉수대가 등장합니다. 

이는 석성봉수대의 기능이 오해야항 봉수대로 모두 이관하면서 폐지된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석성봉수대의 사전 지표조사에서 봉수대의 동쪽 하단부에 봉수대의 기단으로 보이는 석축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시굴조사를 하면서 석성봉수대는 남북방향으로 길게 타원형이며 가운데는 네모형태의 연소실이 남아 있고봉수대의 외벽은 동쪽 경사면에 약 75cm 높이의 4단 석축이 남아 있습니다. 





장방형의 깬돌을 가지고 ‘품(品)’자형 쌓기를 했는데 이를 보면 고려시대나 그 이전의 신라시대 석축 쌓기로 보입니다. 

봉수대 석축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단부에 아주 큰 자연석을 보강하였으며 봉수대 내부는 판처럼 얇은 돌로 내면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투석전에 대비해 준비한 주먹만 한 몽돌도 나왔습니다.





정상부에는 연기를 피우기 위한 연소실 바닥이 확인되었는데 암반을 깨고 판석을 깔았으며 두께 10cm 정도의 암갈색 재층이 남아 있었습니다. 

석성봉수대 주위에는 편편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항상 보면서 봉수대 건물지였나 생각을 하며 지나다녔습니다. 

이러한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 토기 조각, 중판타날의 선조문 기와편, 고려 초기의 해무리굽 청자편, 흑백 상감의 팔각접시편,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편 등 시대를 막론하고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통일신라 시대 말에서 고려와 조선 초기에 걸쳐 당시 잦은 왜구의 출물에 대비하는 군사 관련 시설이 있었던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해안도시 부산이라서 그런지 부산에만 총 12곳의 봉수대가 있다고 하는데 그 많은 숫자에 놀랐습니다. 

이게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다고 합니다. 

이 많은 봉수대 중에 제가 가본 곳은 몇 군데밖에 없습니다.



천마산 석성봉수대 주변에는 임진왜란 때 화살로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누대라 해야 하는 지 조릿대라 해야 하는지 봉수대 남동쪽 주위를 뒤덮고 있어 항상 그 아래가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올라가 보았는데 석성봉수대 밑의 조릿대가 모두 잘려나가 먼발치에서 품었던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ㅎㅎ








확인해보니 까막눈이 저로서는 그저 돌멩이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현재 천마산 정상인 석성봉수대는 1971년 천마산악회에서 주위의 돌을 모아 탑을 쌓았고 이를 천마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모양이 봉수대를 닮아 보입니다. 

전망하나는 끝내줍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배동 삼릉. 신라왕릉 경주 배동 삼릉과 삼릉숲 여행


경주의 배동을 삼릉이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세 왕릉이 있는 소나무 숲을 어릴 적부터 배리숲·삼릉숲이라 불렀습니다. 

삼릉은 이름 그대로 3개의 능이 있음을 뜻합니다. 

일렬로 3개의 능이 서 있고 오른쪽에 55대 경애왕릉이 있습니다. 

이번 경주 남산을 돌면서 마지막에 삼릉을 보고 왔습니다.




경주 배동 삼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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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은 신라시대의 경주 박씨 왕릉입니다. 

신라 8대 아달라왕과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세왕을 모신 능입니다. 

세 왕릉은 원형의 봉분에 흙을 덮은 형태입니다. 

현재 삼릉의 주인은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능이라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먼저 8대 아달라왕(재위 154~184)을 보겠습니다.



아달라왕의 부왕은 7대 일성왕릉입니다. 

일성왕릉 또한 인근인 경주 서남산 탑동의 해목령 아래 산기슭에 있습니다. 

아달라왕은 재위 시절 156년에 계립령(하늘재)과 2년 후에는 소백산의 죽령 길을 열었는데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통로입니다. 

백제의 침입으로 우리 백성을 잡아가자 아달라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쳐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백제는 포로로 잡아간 백성을 돌려주면서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아달라왕이 다스릴 때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은 포항 호미곶의 선바위에 가면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부는 아달라왕 4년인 157년에 동해의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오랑이 해안가 바위에 올라가 해초를 열심히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랑을 태우고는 그대로 일본으로 가버렸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연오랑을 보고는 이는 하늘이 내려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며 그들의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세오녀는 연오랑이 오지 않자 바다로 나갔고 바위에서 연오랑의 신발을 발견하고는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바위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연오랑이가 있는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해안 바위에서 세오녀를 발견한 일본 주민은 놀라서 연오랑에게 아뢰었고 이들 부부는 재회하여 세오녀는 귀비가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신라에서 사라지자 신라에는 해와 달이 사라지는 암흑천지가 되었고 해를 관찰하던 일관은 이는 우리나라에 있던 해(연오랑)와 달(세오녀)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라 보고했습니다.

 


아달라왕은 일본에 가서 어서 이들 부부를 데려오라고 사신을 보내었습니다. 

연오랑은 “하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었는데 어찌 돌아가겠나” 하면서 돌아갈 수 없다며 그 대신 왕비인 세오녀가 짠 비단 한 필을 내어주면서 이 비단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돌려보내었습니다.

 


사신은 아달라왕에게 비단을 내어놓고 보고하였고 아달라왕이 비단을 놓고 친히 제를 올리자 예전처럼 하늘에는 해와 달이 떴다고 합니다. 

아달라왕은 신하에게 이 비단을 잘 보관할 것을 명하고 국보로 삼았습니다. 

비단을 보관했던 창고는 귀비고라 하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 오늘날 포항시의 동해면이며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하였다 합니다.

 


지금도 흥해부터 호랑이 꼬리처럼 툭 튀어나온 호미곶 일대를 영일만이라 하며 영일이란 지명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전설입니다. 

삼릉에서 제일 위의 능을 말합니다. 

신덕왕(재위 912~917)의 성은 박씨 이름은 경휘, 본명은 수종이며 헌강왕의 사위입니다. 

효공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정강왕 때 대아찬을 지낸 예겸으로 선성대왕에 추봉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겸은 의부이며 친부는 흥렴대왕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정화부인이며 왕비는 헌강왕의 딸 의성왕후입니다. 

두 아들은 승영과 위응이며 54대 경명왕과 55대 경애왕에 오릅니다.



당시에는 후백제의 견훤과 태봉의 궁예가 쳐들어와도 방어할 힘이 없을 정도로 신라의 국력은 쇠락할 때로 쇠락했습니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시신은 화장하였고 유골은 수습하여 잠현의 남쪽에 안장했다고 합니다. 

가운데 능이 신덕왕입니다.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 두 번이나 도굴당했습니다. 

그 후 내부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횡혈식석실묘(굴식돌방무덤)로 확인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무덤 내부일부벽면에 황색·백색·붉은색·군청색·감청색의 색칠을 확인했으나 벽화는 아니라고 합니다. 

54대 경명왕(?~924)은 이름은 승용이며 아버지는 신덕왕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의성왕후입니다.








이때에는 경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이 왕건과 견훤에게 빼앗겼으며 이들이 서로 신라의 서라벌을 차지하려는 패권을 벌리는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어수선한 경주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설화가 내려옵니다. 

사천왕사 벽화에 그려진 개가 울었으며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고 그 벽화의 개가 바깥으로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황룡사구층목탑의 그림자가 사지 금모의 집 뜰에 열흘이나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성안에 쫙 퍼졌다 합니다. 

이게 신라의 멸망을 암시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경명왕이 죽자 황복사 북쪽에서 장사 지냈다 합니다.

1971년 4월 대한민국 사적 제219호에 지정했습니다.













(경주여행)경주 남산 배동 망월사 연화탑. 경주 배동 망월사 연화탑


경주 남산에는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절집은 얼마쯤 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남아 있는 문화재에 비해 절집은 훨씬 그 숫자가 적습니다. 

그중에서도 서남산에는 과연 몇 개의 절집이 남아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삼불사와 망월사, 그리고 함월사, 관음사, 와룡사 등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이며 특별나게 이름난 사찰은 더더욱 찾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주 배동삼존불입상이 있는 삼불사가 조금은 알려졌지만 그것도 삼존불입상을 보려고 찾는 관광객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삼불사를 보고 나란히 있는 남산 배동 망월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경주 망월사는 현재 뚜렷한 문화재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찾는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는 조용한 남산의 절집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비지정문화로 알려지지 않은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이름 또한 망월사 연화탑이라 불리는데 연당에 석축을 쌓아 그 위에 석탑을 올려서 그런지 고귀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옥개석 층급받침에 연화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여느 석탑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라고 합니다. 4단의 층급받침에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귀끝은 살짝 들렸습니다. 

망월사 연화탑에서 지붕돌만 원래의 것이라 합니다.

 


지금 망월사와 삼불사와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는 이곳을 선방골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선방사의 폐사지로 알려져 있으며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과 주위에 흩어져 있는 부재와 망월사 연화탑과 그 주위 남아 있는 부재는 대부분 선방사지의 석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주 배동 남산 망월사 연화탑



망월사 연화탑은 9~10세기의 석탑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무너진 두 개의 석탑에서 나온 탑재와 근래에 새로운 탑재로 다시 짜 맞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의 망월사는 원효종 사찰입니다. 원효대사를 종조로 하고 있으며 1963년에 창건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 경주 남산 배동 비운의 왕 경애왕릉 여행


경주 배동에는 여러 왕릉이 있습니다. 

6대 지마왕릉, 8대 아달라왕·53대 신덕왕·54대 경명왕릉이 나란히 있는 삼릉과 55대 경애왕릉입니다. 

배동하면 대표하는 게 삼릉이지만 삼릉 옆에 신라 비운의 왕인 경애왕을 모신 경애왕릉을 보고 왔습니다. 

경주 서남산을 대표하는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자리한 삼릉 오른쪽 구릉지인 기린천 옆에 있습니다.




경주 신라 55대 경애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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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왕은 53대 신덕왕의 아들로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927년 남산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 백제의 견훤에게 죽은 비운의 왕입니다.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위응, 어머니는 자성왕후이며 경명왕의 동생입니다. 

경명왕이 승하하자 아들의 나이가 어려 대신 왕위를 이어받아 924년에 즉위했습니다.





이 당시 통일신라는 고려와 후백제의 잦은 침입에다 국운이 쇠퇴할 때로 쇠퇴하여 완전 망할 징조였나 봅니다.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다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때 견훤의 강요로 자결한 것은 맞겠지만 나라가 적의 공격으로 망하기 직전인데 포석정에서 술판을 벌이는 정신나간 군주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또 그때가 음력으로 11월이라 합니다. 

이를 양력으로 하면 12월이나 1월에 가까운데 생태도 얼려버린다는 매우 추운 한겨울입니다. 

요즘보다 더 추웠을 엄동설한에 바깥에서 연회를 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습니다.





포석정은 연회장소가 아니라 원래 화랑이었던 문노의 화상이 모셔진 사당인 포석사가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8세 풍월주 문노의 화랑도는 호국선이라 불렀는데 이를 보면 경애왕은 견훤이 서라벌에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나머지 대신들과 이곳에 나와 신라를 지켜줄 것을 문노의 화랑도에 빌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게 사람 심정이라데 경애왕도 마지막까지 군주로서 신라를 구해보고자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긴 견훤은 전쟁의 승자로서 경애왕이 연회를 열다 칼에 맞아 죽었다는 나약하고 얼빠진 군주로 묘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이 승하하자 해목령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일부 학자는 해목령에서 너무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하며 일성왕릉이 경애왕릉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라 왕릉은 대부분 비정된 상태라 능의 주인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경애왕릉은 능의 밑 둘레가 43m, 지름 12m, 높이는 4.2m이며 일반 무덤 보다 큰 평범한 평태이며 흙으로 둥글게 쌓은 봉분입니다.

대한민국 사적 제222호






(경주여행)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경주 배동삼존불을 만나다.


경주 배동삼존석불입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배리삼존불의 정식 명칭은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 분의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현재 본존불인 아미타여래에 좌우로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며 1923년에 주위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자리에 맞추어 세웠다 합니다.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65-1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삼불사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65-2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삼불사 전화:054-74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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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 [여행] - (경주여행)경주 월정교와 춘양교지. 반월성에 걸린 경주 월정교


경주배동석불입상 본존불 아미타여래

그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풍찬노숙으로 있었는데 1980년대에 전각을 세워 배동 삼존불은 비는 피했지만 그 대신 자연 채광은 가려져 세 불상의 혼화한 미소는 사라졌다는 평가입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는 곳은 경주 배동의 남산 선방골이며 신라시대 선방사가 존재했던 곳이라 전합니다.


경주배동석불입상 관음보살


이곳 삼불사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도 선방사에 모셔졌던 석불 입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배동삼존석불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불상의 근엄함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분의 얼굴에서 모두 천진함이라 할까요 아니면 개구쟁이 같은 그런 순진무구한 미소가 그대로 느껴져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서민들이 좋아할 그런 불상이었습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불로 크기가 2.8m이며 머리에는 도톰한 상투모양의 육계가 이중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향해 막은 시무외인 자세이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편 자세인 여원인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배동석불입상 대세지보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에 화사한 느낌이 드는 본존불은 얼굴이 네모나고 풍만합니다. 

눈썹은 둥글고 입은 다물었으며 뺨은 통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와 사부대중을 어루만져줄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협시보살은오른쪽이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입니다. 

머리에 쓴 보관에 불상을 조각했으며 얼굴은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어 전체적으로 밝은 모습임을 느꼈습니다. 

잘록한 허리에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가도록 해서 손가락은 약간 구부렸으며 왼손은 보병을 쥐고 있습니다.





왼쪽은 대세지보살입니다. 

구슬과 꽃송이로 엮은 두툼하며 긴 목걸이가 발목까지 내려오고 세 불상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을 했습니다. 

연꽃무늬가 앙련과 복련으로 대칭되게 새겨진 2단의 좌대 위에 서 있습니다. 

오른손은 목걸이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올려 무엇인가 쥔 듯한 자세입니다.

 


머리 광배인 두광에는 5구의 작은 불상과 큰 꽃문양을 새겼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 또한 왼쪽 대세지보살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의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보면 제작 시기는 삼국 말기인 7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며 보물 제6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제주도여행)제주도 용두암, 제주 용두암에서 아침을 맞다.


제주도 용두암을 보고 왔습니다. 

용두암은 검은 현무암으로 높이는 약 10m인 화산석입니다. 

화산석이라 암질은 검은색이며 흑룡이라 합니다. 

용두암 안내판을 보면 2012년 임진년이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의 해였으며 흑룡은 용기와 비상, 희망, 행운을 가져온다는 전설이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주 용두암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483

제주 용두암 전화:064-711-1022

제주 용두암 입장료 무료



2016/09/28 - [여행] - (제주여행)선녀와 나무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60~70년대 풍경을 추억 태마 공원 선녀와 나무꾼에서 되살리다. 선녀와 나무꾼

2016/09/27 - [여행] - (제주여행)섭지코지. 제주여행 초보라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 동화속의 궁전 같은 섭지코지. 섭지코지




또한, 소원을 빌면 행운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있어 저도 혹시 2012년 임진년의 흑룡은 아니지만 2018년 흑룡에게 소원을 한번 빌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아직 6개월쯤 남아 있어 소원이 이루어질까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은 우리나라에서도 신성시하는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 일원에서는 용의 진가가 우리보다 더한 신령스러운 존재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용을 본 적은 없지만, 용두암을 보면 상상속 용의 모습이 이른 모습이구나 할 정도로 리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습니다.

 








어쩜 그리 웅장하고 장엄한지 그래서 이른 아침 제주도 일출에서의 용두암이 보고 싶어 새벽에 달려갔습니다. 

붉은 여명에 용두암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날 날씨가 좋지 않아서 옳은 용두암 일출은 만나지 못해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붉은 기운이 감도는 용두암의 장엄함에 넋을 잃고 삼성 갤럭시노트5로 몆장 담아 보았습니다.



용두암의 당당함을 보면 여러 전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하는 전설은 용두암이 있는 이곳 용연에 이무기가 살았습니다. 

이무기는 승천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한라산의 산신이 가지고 있는 옥구슬만 있으면 승천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구슬을 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용연계곡을 통해 한라산 백록담으로 살금살금 올라가서 산신의 구슬을 훔쳐 왔고 이무기는 "이제 승천이다"며 하늘 오르기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는 용연에서 승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라산의 산신은 이무기가 옥구슬을 훔쳐간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저넘이 어찌 승천을, 이놈!! 하면서 대로하여 산신은 활을 당겼습니다. 

승천하던 용은 화살에 맞아 그만 떨어졌습니다. 

용은 조금만 더 하는 아쉬움과 울분, 통분을 금치 못하고 포효하다 몸을 뒤틀며 죽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오늘날의 용두암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몸은 바닷물에 잠겨있고 머리만 바깥으로 나와 있어 용두암이 되었다 합니다.

 


인어공주인지 황옥공주인지 모르겠지만 왜! 누가 옷을 입혀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 용두암 입장료는 무료




(부산동래여행)수안역에서 임진왜란 참상인 동래읍성 해자. 수안역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현재 책 한 권을 보는 중입니다. 

보는 것도 아니죠 하루 만에 다 읽어갈 정도로 지금은 조금 남았습니다.

책의 제목은 ‘임진왜란 부산, 그 길을 걷다’입니다. 

저자는 정약수 선생님이며 벌써 가지고 있던 책이지만 마침 보던 책을 다 보고 다음 볼 책을 고심하다가 책상 위 포개진 책 위에 ‘임진왜란 부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안역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200-4




2016/11/05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복천박물관. 가야시대 복천동 고분군 유물전시관인 복천박물관 여행 복천박물관

2016/10/21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2016/10/17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수축을 기록한 내주축성비

2016/10/13 - [여행]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복천동고분군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책 제목에서 보듯이 임진왜란에서 가장 먼저 함락된 부산진성과 동래성이야기라 생각되었습니다. 

저 또한, 세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동래읍성과 부산진성의 흔적이 있는 자성대. 다대포 윤공단 등 부산의 여러 임진왜란 전적지를 다니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금은 알고 있어 그런 유의 책이라고 치부하면서 별 관심 없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잠시 머리말을 읽다가 임진왜란의 그 생생한 내용에 책을 놓지 못해 바로 하루 만에 책한권을 다 읽을 판이었습니다. 

책 내용에 나오지만, 임진왜란에 몇몇 장수를 빼고는 나라와 백성의 안위는 도외시하고 장수란게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치는 것을 보면서 울분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특히 경상좌수사였던 박홍이 취했던 태도에는 이런 자가 장수였다는 것에 참담할 뿐입니다.





절영도(현 영도) 앞바다를 꽉 메운 왜군의 함선을 보고 달려온 부산진첨사 정발장군은 오늘 밤 왜군에게 기습공격을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박홍은 이런저런 핑계로 빠져나갔고 정발은 더는 기대를 하지 않고 다시 부산진성에서 일전을 치를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박홍은 왜군의 동태를 본다고 황령산에 올라가 바다를 뒤덮은 왜군의 함선을 보고는 놀라 그 길로 내려와 배를 수장시키고 식량창고에다 불을 지르고는 도망 쳐 버렸습니다.







현재 수영에는 당시 경상좌수영이 복원해 있으나, 당시 왜군이 무혈입성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경상우수사의 원균 또한 좌수사의 박홍 못지않았습니다. 

원균 또한 거제도의 우수사를 부하 장수에게 맡기고 도망쳐버렸습니다. 

왜적은 부산진성을 지키던 정발장군에게 “명나라를 치려 하니 길을 내어 달라”하자 장군은 “내어 줄 길이 없다”며 3,000여 군·관·민은 목숨 걸고 싸웠으나 성은 함락되었고 정발장군은 절명하였습니다.





이들은 부산진성의 여세를 몰아 들불처럼 나아갔습니다. 

주력부대는 동래성으로 향하고 일부는 다대포로 향했습니다. 

다대포첨사 윤홍신장군도 왜적을 맞아 끝까지 싸웠으나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왜는 1592년 4월15일 송상현부사가 지키는 동래성에다 '전즉전의부전즉가도(戰則戰矣不戰則假道)'인 “싸울 테면 나와서 싸우고 아니면 길을 빌려 달라”고 하자 송부사는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으로 답하며 끝까지 동래성을 사수하다 군·관·민 모두 동래성에서 옥쇄하였습니다.








왜는 ‘움직이고 피 흘리는 모든 것은 살해했는데 여자고 어린아이고 고양이고 개 할 것 없이 모두 도륙했다’고 일본의 ‘길야일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참혹했던 현장의 모습이 도시철도 4호선 공사 도중에 발견되었습니다. 동래읍성이 있었던 수안역인데 동래읍성을 따라 땅을 파서 만든 해자였습니다.

 






동래읍성 해자는 성벽에서 30m 떨어져 있고 폭은 5m에다 높이는 대략 2m 깊이에 돌을 쌓은 형태였습니다. 

‘임진왜란 부산. 그 길을 걷다’에서 수안역 동래읍성 해자에서 남자 59명, 여자 21명, 어린이 1명 등 모두 81명의 인골이 수습되었다 합니다. 

이들은 칼에 베였거나 활과 총 , 둔기 등에 맞았거나 조총에 맞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 뚫린 인골과 함몰된 인골이 발굴된 현장을 보면서 당시 처참했던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칼과 화살촉, 목궁, 해자 바닥에 설치한 목익 등 널브러진 무기류를 보면서 당시의 처참한 모습에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이안눌이 남긴 시를 보고서입니다. 

이안눌의 시에는 두 왜란의 참담함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1608년경 이안눌이 동래부사로 부임해왔습니다.







“4월15일 새벽에 집집이 곡소리가 일어나 천지가 소슬하고 처참한 바람이 숲을 진동하니 놀라서 나이 많은 아전에게 물으니 이날이 임진년 성이 함락된 날이라 하였다”로 시작되는 ‘동래맹하유감’입니다. 

당시 송상현부사와 백성이 함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며 쌓인 시체 밑에 깔려 목숨을 건진 사람은 천백 명 중 한두 명뿐이었다 합니다.







이는 종군 승려 텐게이의 서정일기에 동래성 전투에서 “3,000을 목 베고 500을 포로로 잡았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4월 15일 친족의 제사를 지내는 통곡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울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번 큰 전란의 참상을 겪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 경술국치, 한국동란 등 수많은 전란과 핍박은 모두 준비하지 않은 데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불완전한 정세 속입니다. 준비하지 않고 넋 놓고 있다가는 또 어떤 전란과 핍박을 당할지 모를 일입니다. 

수안동의 처참한 동래읍성 해자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부산, 그 길을 걷다 저자 정약수


(전남진도숙박)진도에서 괜찮은 숙소 퍼스트모텔. 진도 퍼스트모텔


지난번에 1박 2일 진도여행을 하면서 숙박은 진도읍내로 나와서 했습니다. 

세방낙조전망대에 그 유명하다는 일몰 구경을 하고 나서 돌아 나와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고해서 우리가 가고자 했던 모텔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모텔임을 알리는 간판의 불은 꺼져 있고 주차장에는 차가 여러 대 주차해 있으면서 주차장 불도 꺼진 상태라 문 닫았나 하며 한 사람이 확인하러 갔더니 돌아와 하는 말이 만실이라 방이 없다고 했습니다.




진도 괜찮은 모텔 진도 퍼스트모텔 주소: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 453-12

진도 괜찮은 모텔 진도 퍼스트모텔 전화:061-542-1111



2018/04/30 - [여행] - (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대교 진도타워와 울돌목해양에너지공원 명량대첩 전승지

2018/04/28 - [여행] - (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 진도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진도 회동리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관상 깨끗해 보이는 퍼스트모텔로 향했습니다. 

여기에는 간판불이 들어와 있고 해서 모텔 영업을 했습니다. 

일행이 내려가서 확인하고는 방을 두 개 잡았는데 여기에도 우리가 원하는 그런 방은 없고 저처럼 혼자인데도 어쩔수 없이 가격이 더 비싼 프리미엄 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했습니다.







저 혼자인데도 2인용 침대와 1인용 침대가 있는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띵까띵까 하고 보냈습니다. 

이거라도 없었다면 해남 쪽으로 나가서 방을 잡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퍼스트모텔도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입구에 만실이라며 방이 없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요즘 주말 여행지는 방 구하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조금만 늦었다면 이 방도 얻지 못할뻔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보면 전라도 쪽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나 봅니다. 

특히 주말에 진도 쪽으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미리미리 방을 예약해야 저희 같은 이런 사단이 생기지 않습니다. ㅎㅎ







진도 퍼스트모텔 내부도 깨끗하고 방도 큰 게 혼자 사용하기에는 억수로 크고 가족이 사용해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도 2대나 갖추고 있어 밤에 컴퓨터 때문에 싸울 일도 없을 듯했습니다. 

에어컨도 중앙집중식이 아닌 방마다 독립 형태로 달렸어 무더운 한여름 밤을 시원하고 쾌적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욕실은 온수를 받는 탕이 없는 게 대세인듯합니다. 

진도 퍼스트모델도 몸을 담글 탕 대신에 하늘에서 바로 떨어지는 듯한 해바라기형태의 큰 샤워기가 달려 있어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맞으며 시원하게 몸을 씻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모두 독립형태로 유리 칸막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튕길 염려도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숙면을 취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진도대교로 차를 달렸습니다. 

진도대교 아침 일출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날 퍼스트모텔의 컴퓨터로 검색해서 나만의 일출장소도 찾고 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거 보다 컴퓨터로 하는 게 훨씬 편리했습니다.










물론 세면도구는 기본으로 비치해 있었습니다. 

일부 모텔에 가면 세면도구 등은 비치 안된 곳도 많아 요즘은 칫솔 등을 챙겨가는데 진도퍼스트모텔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필요한 게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진도여행에서 괜찮은 숙소였습니다.










(2018 부산국제모터쇼)부산 벡스코 부산국제모터쇼의 레이싱모델. 부산국제모터쇼 레이싱모델


2018 부산국제모터쇼에 댕겨왔습니다. 

부산국제모터쇼는 지난 6월8일 금요일 부터 시작했으며 오는 6월17일 일요일 까지 열리며 장소는 해운대구 센텀인 부산 벡스코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인 6월10 일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와 무슨 관람객이 그리 많은지 ㅎㅎ

관람객이 정말 밀릴 정도로 많았습니다. 

2016년 부산국제모터쇼가 열렸을 때도 둘러보고 왔는데 2년전인 그때도 관람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당시 신차도 찍고   레이싱모델도 찍고하니까?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 다 보지 못하고 벡스코 2관은 그냥 건너 뛰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자동차는 포기 하고 스포츠 차량 같은 쿠페만 둘러보고 레이싱모델을 우선으로 담았습니다. 

'차보다 사람' 아니 올해 컨셉은 '차보다 모델"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이번 2018 부산국제모터쇼에서는 레이싱모델만을 담아 왔습니다.

역사도 오래된 부산국제모터쇼라서 그런지 진짜 멋진 신차도 많았습니다. 

부산국제모터쇼 한번 보고 오세요. 그리고 후회는 하지 않을 듯합니다.

레이싱모델은 2년전에 보았던 모델들도 있었으며 2년전이나 올해나 정말 미모는 그대로 였습니다.

일단 레이싱모델 네분을 먼저 올려봅니다. 

모델분 성함은 모르는 분도 있고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부산국제모터쇼 입장료 어른 9,000원.




부산국제모터쇼 부산 벡스코 주소: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1500

부산국제모터쇼 부산 벡스코 전화:051-740-7300




2018/05/27 - [여행] - (부산여행/해운대구여행)삼성 갤럭시 노트5로 찍은 2018 해운대 모래축제 모래 조각. 해운대 모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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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1 - [여행] - (부산여행/부산가볼만한곳)범어사 당간지주. 사찰을 표시하는 당을 걸었던 당간은 없고 범어사에는 범어사 당간지주만 남았네요. 범어사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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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  신차 구경하세요. HDC 2 햐~~~ 진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저 처럼 야외 활동이 많은 사람은 모두 탐낼 그런 SUV입니다.

역시 좋은 차는 먼저 안다니까요? 얼마나 관람객이 많은지 ㅎㅎ 





또 하나 제네시스 쿠페입니다. 문짝이 하늘로 열리는 꿈의 자동차였습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를 닮은 듯 멋진 제네시스 모델이었습니다.

탐나는 자동차였습니다.







(전남여행/순천여행)두 종단 싸움에 대한민국 최고의 절집이 된 순천 조계산 선암사. 조계산 선암사.


순천 조계산은 동·서로 선암사와 송광사인 두 사찰을 두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순천 여행에서는 조계산 선암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순천 선암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적인 사찰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유홍준 교수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조계종과 태고종의 오랜 종단 싸움으로 선암사는 송광사처럼 개발의 미명에서 밀려나게 되어 오늘날 최고의 가람이란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참 우습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순천 선암사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순천 선암사 전화:061-754-5247




2018/06/06 - [여행] - (전남순천여행)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곱향나무



순천 선암사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한국적 고찰 분위기가 생생하다는 선암사를 찾았던 5월, 바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오색의 연등이 승무처럼 나풀나풀 미풍에 춤을 추는 모습이 한국 최고의 절집과 정말로 잘 어울렸습니다. 

선암사의 창건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나 백제 때 아도화상과 신라말의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분분합니다마는 후자인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해서 선암사로 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고 합니다.





선암의 유래는 절 서쪽 높고 편편한 바위에서 옛 선인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하여 절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선암사는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의 부속암자였던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의 중창을 진두지휘하셨다 합니다. 

당시 선암사는 중창으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법당은 13동에다 전각이 12동에 많은 스님이 상주하면서 수도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거느린 암자만 19개였을 정도로 조계산에서는 송광사와 함께 최고의 사찰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유재란이 터지면서 왜적이 송광사로 들이닥쳤고 송광사는 전각과 건물, 암자가 치솟는 불길 속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나서 쇠락한 선암사는 1660년 다시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경잠·경준·문정대사 이 세 분이 8년간의 각고 끝에 중창을 이루어 선암사는 옛 모습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선암사는 여러 번 중창을 거듭하고 이어져 오다 1823년(순조23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명부전 등 수많은 전각이 불길에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해붕·눌암·익종 세 분 대사에 의해 선암사는 6번째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청량산과 혜천사로 고쳐 불렀던 명칭을 본래의 이름인 조계산과 선암사로 다시 고쳐 부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암사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과 6·25 한국전쟁에 또다시 역사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쳐 좌우의 대립과 갈등 속에 큰 피해를 보게 되었으며 그 후 비구와 대처승인 조계종과 태고종의 두 종단에서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의 선암사가 옛 모습을 간직한 게 전통사찰의 무분별한 개발을 보면서 어찌 보면 그 분쟁이 다행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선암사는 사적 및 명승 8호에 지정될 정도로 짙은 숲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주차장에서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는 1.5km 흙길은 울울창창한 숲 속 터널로 한여름의 무더위도 무색하게 만듭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오늘날의 선암사 명성을 있게 하는데 일조한 승선교가 왼쪽에 걸려 있습니다. 

무지개가 걸린 듯한 승선교는 홍예식의 아치형 다리입니다. 

승선의 뜻을 보면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란 뜻으로 이 아치형 다리 밑을 통해서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인 강선루를 보는 풍경은 가히 선경이며, 제가 보기에도 선암사의 제1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선암사 홍보물과 블로그, 카페 등 선암사를 알리는 모든 홍보 사진은 승선교 아래에서 강선루를 보는 사진이 메인 사진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이곳이 사진작가와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나 모두 공통의 선암사 승선교 포인트입니다. 

저 또한 미물이라 남들처럼 승선교 아래에서 강선루를 담아보려고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아치 교각 사이로 강선루를 넣고 사진 몇 장을 담고 올라왔습니다.



승선교는 조선 시대인 1713년(숙종39년)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화강암으로 완공한 다리입니다. 

다리 규모는 길이는 14m이며 높이 4.7m 폭 4m 반원형 아치로 대단한 규모입니다. 

다리 아래 천장 가운데에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넓은 계곡을 끼고 세워진 기단부는 자연 암반 위에다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게끔 튼튼하게 기초를 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승선교는 길게 다듬은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짜 맞추고 주변 계곡에서 주운 작은 돌은 차곡차곡 쌓은 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 정교합니다. 

다리 아래 천장에 달린 용머리는 승선교의 화룡점정일 정도로 돋보이는데 옛말에 이 돌을 빼버리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속설이 전해온다고 합니다. 

함부로 빼버리면 안 될듯합니다. ㅋㅋ 누구 장난으로 빼지 마세요. 

혹시 다리가 무너지면 큰일나니가요?





승선교을 세우게 된 유래가 전해져 옵니다. 

1698년(조선·숙종24년)호암대사는 관음보살 친견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담하여 바위에서 몸을 던지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홀연히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대사는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경내에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고 계곡에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를 세웠다 합니다.



승선교 외에도 선암사의 승려였던 초안과 습성스님이 1729년 보성 벌교의 홍교도 보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를 보면서 당시 선암사의 규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의 가장 큰 보시는 월천공덕이라하며 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편하게 다니도록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를 보면서 승선교를 세우고 난 뒤 돌다리인 홍교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인당은 선암사 경내를 들어서는 입구에 만들어진 긴 알 모양의 연못입니다. 

연못 안에는 작은 섬을 만들었으며 선암사 사적에는 신라 경문왕2년인 862년에 도선국사 때 만들어졌다 합니다. 

삼인당에서 삼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말합니다. 

연못의 섬은 자리이타(自利利他) 타원형의 연못은 자각각타(自覺覺他)를 의미하며 뜻을 풀이하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며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한다"는 뜻의 불교사상으로 이러한 모양과 이름을 가진 연못은 현재 선암사에만 남아 있다합니다. 

삼인당은 전라남도기념물 제46호



부도군을 지나면 나오는 게 목장승입니다. 

양쪽에 세워진 목장승은 조선 말엽에 세워진 목장승의 모조품입니다. 

1987년 9월에 세운 것이며 장승에 새긴 '호법선식'은 불법을 수호하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성불하게 만드는 착한 신을 뜻합니다. 

'방생정계'를 새긴 장승은 이곳부터는 더욱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함을 뜻합니다.













선암사 대웅전 보물 제1311호

 대웅전은 부처님을 주존불로 모신 건물입니다.

선암사 대웅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불탔던 것을 1660년 (조선·현종1년)에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1766년(영조 42년)에 또다시 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었다가 1824년(순조 24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 모양을 한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기단은 기둥 면석 감돌로 조립하고 그 위에 다시 주춧돌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으로 세웠습니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고 그 위로 공포를 짜 올렸으며 출목수는 밖 3출목, 안 4출목으로 그 모습이 대단히 장중하고 화려합니다. 

대웅전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에 용조각과 공포 등이 장엄하게 단장되었으며 단청도 비교적 선명합니다. 

선암사에는 매화나무도 참 많았습니다.














선암사 본존불을 모신 대웅전















이곳에 선암매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가는 길에 50주 정도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원통전 담장 뒤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문화재로 지정해 있습니다. 

이 두 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 입니다.

매화나무의 수령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약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었다고 하며 이를 보면 600년 된 매화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암사 중수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2호

1707년 (숙종33년)에 건립된 비로 정유재란 때 불탄 선암사를 약휴대사를 중심으로 중건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이수와 귀부, 비신은 일반적인 양식의 비석이지만 전체 높이는 502cm, 비신의 폭은 125cm이며 비신 두께는 30cm로 조선시대 비석으로는 매우 뛰어나다 합니다.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동·서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양식의 삼층석탑이며 선암사의 중심건물인 본존불을 모신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세운 두기의 석탑입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인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세워 두 탑은 규모와 솜씨가 똑같아 같은 사람이 동시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기단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우주와 탱주를 하나씩 새기고 각 기단의 윗면에는 3단의 굄돌로 윗돌을 받치게 했습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이고 4단의 층급받침으로 되어있습니다. 

지붕돌의 꼭대기에는 2단의 굴곡인 굄돌이 있는데 이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노반과 그 위에 작은 석재가 남아 있습니다. 

석탑의 양식을 추정하면 신라 중기 이후 9세기의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에서는 꼭 보고 오는 게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선암사의 화장실인데요 화장실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마 제가 알기에는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찰에서는 해우소 또는 근심 푸는 곳이라 부르는데 선암사의 해우소는 뒤깐이라 작은 명패를 달고 있습니다. 

선암사 뒤깐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우리 전통 화장실로 선암사 여러 곳을 둘러 본다고 이번에는 화장실을 빼 놓고 와 버렸습니다. ㅋㅋ 

정말 많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선암사 여행은 어느 사찰에 비유해도 참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번에 많이 챙겨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보지 못하고 온게 참 많았습니다. 

다음 선암사 여행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못보고 온거 부터 챙겨야겠습니다. 


선암사 일주문 천장의 용조각, 화재방지를 위한 비방으로 보입니다.


선암사 부도군


(전남순천여행)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향수 


아주 옛날 고승이나 인물이 빼어난 분이 간혹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자라나서 나무가 되어 천년세월 동안 푸름을 잃지 않고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1

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전화:061-754-3708



그런데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 현재의 나무 중에서 미적으로도 가장아름답고 독특하며 지팡이의 뒤틀린 모습과도 똑 닮은 그런 나무가 있어 더욱 신기합니다. 

지팡이에의 지존으로 불러도 괜찮을 나무는 순천의 조계산 중턱에 자리한 천자암의 쌍향수입니다.








천자암




일명 곱향나무로도 불리는 천자암의 고목인 쌍향수는 향나무로서 한그루가 아니 두 그루가 똑같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쌍향수는 수려한 외모만큼 그에 걸맞은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흔들면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런다고 극락 가기 위해서 나무를 막 흔들면 안 되겠지요.


쌍곱향나무 



특히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니 천년만년 잘 보존해야겠습니다. 

쌍향수의 높이는 약 25m, 둘레가 3.98m이며 나무의 나이는 약 7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쌍곱향나무의 유래를 보면 두 그루의 향나무가 서로 예를 갖추며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조계산에서 수도했던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짚고 왔던 지팡이이며 두 스님은 천자암에 올라 꽂았는데 그게 오늘날 곱향나무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답니다. 

이를 보면 지팡이계의 지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의 더께 속에 쌍곱향나무도 어쩔 수 없이 외과 수술을 하여 나무의 줄기에다 시멘트로 메우는 수술을 하였으나 푸름은 잃지 않은 모습에 천자암을 올라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으며 쌍곱향나무입니다.

 

피나물




(경남양산여행)양산 황산공원 캠핑장 인근에서 화려한 꽃양귀비를 만나다.


봄부터 각 지자체에서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매화를 시작으로 벚꽃 축제, 유채꽃 축제 등 연달아 꽃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양산 물금읍의 황산공원에 꽃 양귀비가 활짝 폈다 하여 방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달려갔습니다. 

5월 초순부터 조금씩 꽃 양귀비가 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초절정을 넘어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물의 꽃 양귀비지만 화려함을 잊지 않고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꽃 양귀비를 보려고 물금의 황산 체육공원을 찾아온 관광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도 이만큼 많은 꽃 양귀비는 보지 못했으며 양귀비란 이름답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부산과 가까운 곳인 물금의 낙동강 둔치에 조성해서 그런지 황산공원 캠핑장과 황산 체육공원 등을 찾던 사람은 덤으로 꽃 양귀비까지 볼수 있어서 정말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우연하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황산공원의 꽃양귀비 축제가 열리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꽃 양귀비축제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끝물의 꽃 양귀비라도 보게 된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내년에는 가장 화려할 때 찾아서 꽃양귀비 사진을 꼭 담아야겠습니다.




 양산 황산공원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1141



2018/03/25 - [여행] -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매화축제 순매원. 원동매화축제 순매원 매화 보고 왔어요.


 


양산시 물금읍의 황산체육공원 꽃양귀비 사진으로 구경하기






(경남맛집/산청단성맛집)문익점 목화시배지 맛집, 겁외사 맛집 목화추어탕식당. 목화식당


경남 산청은 면적이 정말 넓습니다. 

북으로는 함양과 접경하고 남으로는 진주와 하동과 경계하면서 지리산 천왕봉을 주산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산청하면 천왕봉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경호강이 산청군의 가운데를 가르며 남강으로 흘러갑니다.




 문익점 목화시배지 맛집, 겁외사 맛집 목화추어탕식당 주소: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80-3

문익점 목화시배지 맛집, 겁외사 맛집 목화추어탕식당 전화:055-973-8801





그 넓은 산청군에서 남산청의 단성은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길목입니다. 

또한, 단성면은 문익점이 붓통에다 목화씨를 숨겨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목화씨를 심었다는 목화시배지가 있습니다. 

근대 불교계의 큰 별인 성철스님의 출생지가 이곳 단성면이며 그 생가터에는 생전의 성철스님을 만날 수 있는 겁외사를 창건했습니다.





이외에도 단성면은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과 남사예담촌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이말고도 단성면은 이런 볼거리만 있는 게 아니고 맛있는 추어탕집도 있습니다. 

인근 주민과 지리산을 찾는 많은 관광객에게 입소문 난 집이며 목화식당의 추어탕입니다. 

저 또한 산청의 덕산 방향으로 이동할 때마다 목화식당의 추어탕을 먹으러 갑니다.





지난 3월 초에도 매화 구경인 산청 3매 여행을 떠났을 때도 점심시간이 되자 여행을 멈추고 차를 몰고 돌아 나와 목화식당의 추어탕을 먹고 되돌아가 여행을 했습니다. 

그 뒤 최근에 지리산 둘레길인 용유담에서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잇는 지리산 둘레길 원점회귀 둘레길을 걷고 이곳 목화식당의 추어탕을 먹고 부산으로 돌아왔을 정도로 목화식당 추어탕마니아입니다.


제피도 빠질수 없습니다.



화식당 추어탕은 다들 국물맛이 시원하며 끝내 준다고 합니다. 

제가 먹어봐도 오래전에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런 맛을 목화추어탕에 느낄수 있었습니다. 

목화식당의 추어탕은 살아 있는 미꾸라지만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잘 삶은 미꾸라지를 채에 걸러 살짝 데친 단배추하며 숙주나물, 청양고추와 다진 마늘 양념을 등을 넣고 마무리는 경상도에서만 볼 수 있는 방아잎을 살짝 올리면 끝. 

그리고 손님의 식탁에 나오는데 추어탕의 국물이 깨끗하며 맑은 국물입니다. 

그 맛이 정말 깔끔하고 시원합니다. 

채에 잘 걸러서 입에 걸리는 게 없을 정도로 담백한 맛입니다.

 


밑반찬은 그때그때 계절에 맞는 토속음식으로 차려집니다. 

시골 밥상을 원하는 저로서는 그런 이유 때문에 더 더욱이 찾게 됩니다. 

갓 담은 배추김치와 깔끔한 반찬은 추어탕과 정말 잘 어울립니다. 

목화식당의 추어탕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갈치이며 참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찾게 되는가 봅니다. 

최근에 방문했을 때 1,000원 인상해서 이제 추어탕은 9,000원입니다. 

또한, 목화식당은 그날 판매할 양만큼 끓여 추어탕이 다 나가면 더는 영업하지 않고 문을 닫습니다. 

저도 그런 경우를 경험했는데 조금 늦다 싶으면 전화를 일단 해보고 방문하세요. 

아니면 헛걸음하게 됩니다.






 


(부산여행/해운대구여행)2018년 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모래축제를 만나다.


지난 화요일 부처님오신날에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2018년 해운대모래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지금쯤이면 모래 조각작품은 모두 해운대해수욕장의 모래로 변했을 것 같은데 모래축제의 좋은 점이 이리 환경친화적입니다. 

모래 축제에 사용한 모래는 모두 바로 해운대해수욕장에 제사용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해운대모래축제 해운대해수욕장 주소: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1015

해운대모래축제 해운대해수욕장 전화:051-749-7619



2017/06/03 - [여행] - (해운대여행)2017 해운대모래축제. 2017년 해운대모래축제를 만나다. 해운대모래축제

2016/10/05 - [부산 축제] - (부산국제영화제)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일정표,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행사 일정표. 부산국제영화제

2017/06/07 - [여행] - (부산동구여행)호랭이이바구길. 부산 동구 범일동 호랭이이바구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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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6 - [부산 축제]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구경 오세요





모래축제가 아니라도 해운대해수욕장은 매년 모래가 파도에 휩쓸려버려 따로 모래를 사서 보충을 해야 했습니다. 

보충 할 모래로 모래축제에 사용될 작품을 만들어 해운대해수욕장의 홍보도 하며 일거양득의 효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의 해운대 모래 축제는 우리나라에서 5월에 열리는 축제 중 가장 뜨거운 열기로 인기 있습니다. 

예년의 해운대 모래축제 조각작품과 비교하면 올해는 더욱 풍성했으며 모래 조각 또한 대작이 많아 해운대를 찾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했습니다.

 


올해 2018년 해운대 모래축제의 주제는 ‘영웅, 모래로 만나다’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영웅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대한남아의 기백을 만방에 떨친 전설의 마라토너 고 손기정선수 하며 근대 역사 속의 인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영웅은 삼국지의 관우가 은월도를 휘두르며 나타났습니다. 

용맹한 장군의 모습이 사실감 있게 그려졌습니다. 

이외에도 해운대모래축제의 메인은 뭐라 해도 역시 3D로 제작된 반지의 제왕이었습니다. 

그 크기가 세로 6m에 가로 30m인 대작으로 사방을 정말 섬세하게 표현해 놓아 실감 나게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 6개국 10명이 참가한 명실공히 부산 최고의 여름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올해는 더는 해운대모래축제를 볼 수 없다는 게 정말 아쉽습니다. 

매년 갖는 생각이지만 그리 힘들게 승화된 예술작품이 4일 만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해운대 모래축제는 임팩트하게 굵고 짧게 해서 강렬함을 심어주는 것 같아 이래서 벌써 2019년 해운대 모래축제를 다시 기다리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2018년 해운대 모래축제 '영웅, 모래를 만나다' 모래조각 사진 보기




























(부산여행/부산항불꽃축제)우여곡절 끝에 담은 2018년 부산항불꽃축제 불꽃놀이. 부산항불꽃축제


2018년 제11회 부산항불꽃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부산항불꽃축제 최고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를 보고 왔습니다. 

부산항은 통칭 부산 북항이라 불리는 부산항대교를 배경으로 북항 매립지에서 펼쳐집니다. 

몇 해 동안 빠지지 않고 부산항불꽃축제를 관람했으며 수정동 산복도로와 영도 봉래산 등 여러 방향을 찾아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부산항불꽃축제 부산항대교 주소:부산광역시 남구 감만동




2018/05/06 - [여행] -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2018 삼광사 연등축제, 삼성 갤럭시 노트5로 찍은 삼광사 연등축제

2018/04/02 - [여행] - (부산여행/부산지구여행)부산시민공원과 부산시민공원역사관 여행, 부산시민공원

2017/12/25 - [부산 축제] - (부산여행/송도해수욕장)부산 송도해수욕장 트리문화축제. 부산 송도해수욕장 빛축제.

2017/05/24 - [부산 축제] - (부산축제)2017 부산항불꽃축제. 제10회 부산항불꽃축제 관람 명당과 행사 일정표 안내

2017/05/24 - [부산 축제] - (부산축제)2017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 2017년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 행사 일정 안내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

2017/05/06 - [부산 축제]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구경 오세요



    


역시나 부산항대교의 불꽃놀이 관람은 부산항대교를 정면에서 보는 동구 수정동과 초량동 일대의 산복도로가 최고의 전망대였습니다. 

그런데 몇 해전에 수정동의 산복도로를 찾았다가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그 넓은 도로를 사람이 꽉 매운 것을 보고 장소도 없고 고생만 엄청나게해서 그 다음해부터 항상 다른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곳만한 전망대를 찾지못했습니다. 

역시 부산항불꽃축제 전망대는 수정동과 초량동 산복도로가 제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다시 초량동 산복도로를 찾았는데 그 당시 많은 사람만 생각했다가 생각보다 관광객이 적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어!! 관람객이 왜 이리 적지하며 산복도로에 걸린 개인 주택 옥상의 주차장에서 불꽃쇼를 보았습니다. 

산복도로에는 개인 주택 옥상은 대부분 주차장으로 만들었는데 이곳이 부산항불꽃축제의 명당자리이며 불꽃축제 사진 촬영이 많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작년에 저도 먼저 왔던 직장동료가 자리를 잡아놓는 바람에 사진도 찍고 구경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지난해 갔던 곳에 갔습니다. 

밤 9시에 불꽃축제가 시작이지만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조금 일찍 가야 했습니다. 

이르게 도착했지만 벌써 여러 사람이 좋은 촬영 포인트마다 모두 삼각대를 설치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바지런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도 가장 왼쪽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쳐 놓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즘 가장 무섭다는 게 호랑이도 아니고 곶감도 아닌 건물주인이 나타나서 불꽃놀이 구경꾼한테 방해된다고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다른 곳은 화각이 어떠니, 이곳도 화각은 안 좋은데 어쩔 수 없이 하며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건물 주인이 빡쳐가지고 그럼 모두 나가라며 “나! 여기 건물주인데”하는 바람에 도매금으로 쫓겨났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건물주한테 앙 다그치는지...

 








여기서 쫓겨나면 이제 어디 가서 또 자리 잡나. 벌써 볼만한 곳은 사람들이 다 차지했을 텐 데 하며 철수를 감행하여 영주삼거리에 있는 ‘역사의 디오라마’에 겨우 자리를 잡아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부산항불꽃축제가 예년보다는 그리 화려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촬영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은가 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담아왔던 부산항불꽃축제 불꽃놀이 구경하세요.

 



2018년 11회 부산항불꽃축제 불꽃놀이 사진으로 보기




































(울산여행/장생포여행)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 전시장과 고래빵, 고래아이스크림 맛보기


장생포를 우리나라에서 고래의 고향이라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선사시대부터 장생포는 고래잡이가 성행했다는 암각화가 발견되어 현재 울산에서 유일한 두 점의 국보가 그 암각화입니다. 

그래서 울산의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웰리스키즈랜드의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을 보고 나서 자투리 시간이 남아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의 야외 전시장을 대충 둘러보았습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139-29

장생포고래박물관 전화:052-256-6301



2018/05/15 - [여행] - (울산여행)울산대공원과 울산시립도서관 여행.

2017/04/22 - [여행] - (울산여행)울주 반구대암각화. 봄에 좋은 여행지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2017/04/12 - [여행] - (울산여행)울주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 청동기시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을 만나다.

2017/03/30 - [여행] - (울산여행)영남알프스 작천정계곡. 하얀 암반과 함께 운치있는 작천정계곡과 누각

2016/11/25 - [맛집] - (울산맛집/언양맛집)원조언양옛날곰탕. 겨울철 보양식인 나주곰탕식 소머리곰탕이 맛있는 원조언양옛날곰탕.



장생포고래문화특구라서 그런지 규모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건물도 번듯한 고래박물관에는 실물 고래골격과 포경유물이 전시 중이라 하며 돌고래수족관에는 고래생태체험관까지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유람선을 타고 고래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고래 바다 여행선’도 운항 중이라 합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장생포고래박물관의 내부를 생략하고 외부만 둘러보아도 고래와 관계된 여러 조형물이 많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금강산도 식구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천하제일경의 경치도 배가 불러야 눈에 들어온 다로 생각하고 고래빵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 반드시 맛본다는 고래빵과 고래아이스크림입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앞 야외에 실물 크기의 고래모형을 전시 중인데 그 아래쪽에 고래빵 판매장이 있지만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는 오늘 내로 고래빵 맛을 보겠나 싶었습니다. 

할 수 없이 고래문화마을로 올라가는 곳에 보았던 고래 빵집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고래 문화특구와 떨어져 있어 기다리지는 않고 맛볼 수 있었습니다. 

크림이 들어간 것은 소진되어 어쩔 수 없이 팥 고래 빵만 맛봤습니다. 

빵 맛은 강구에서 먹어본 대게 빵과 비슷했습니다. 

내 입맛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장생포 고래빵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 60_11

장생포고래박물관 장생포 고래빵 전화:052-267-7543






이날 날씨가 엄청나게 무더웠는데 고래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갈 수 없었습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에 끌려 고래빵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고래아이스크림은 고래모형에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그 위에다 아이스크림이 올려진 모습입니다. 

울산 장생포고래문화특구까지 와서 고래 이미지를 형상화한 고래빵과 고래아이스크림을 안 먹고 갈 수 없을 듯합니다.

 


이외에도 볼거리가 참 많은데 고래문화마을은 장생포고래문화특구내의 장생포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 고래 바다여행선과 연계하여 고래생태체험공원인 고래문화마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입니다.

 


그리고 고래빵집 주위인 옛 장생포마을에는 고래를 주제로 한 벽화골목도 있습니다. 

70~80년대의 장생포항의 풍경이라든지 고래 포경의 모습 등을 보면서 장생포항의 옛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찾아와서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의 여러 곳을 세심하게 둘러보아야겠습니다.

 


(경북맛집/청도맛집)청도역 맛집 청도추어탕 향미식당, 청도추어탕 향미식당



경상북도청도군 청도역 앞에는 가장 많은 음식점이 청도에서 가장 유명한 청도 추어탕 거리입니다. 

청도역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게 추어탕 집인데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기차를 이용해서 청도역에 내렸다면 이제는 자가운전으로 청도를 찾아갑니다.




청도역 청도추어탕 맛집 향미식당 주소: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고수리 954

청도역 청도추어탕 맛집 향미식당 전화:054-371-2910



2018/04/23 - [여행] - (영천·경산·청도여행)영천 구지리, 경산 반곡지, 청도 유등리 복사꽃마을 삼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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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 [여행] - (청도여행)삼족대. 동창천변 그림같은 풍광과 어울리는 삼족당 김대유공의 삼족대 여행.

2017/01/04 - [맛집] - (청도맛집/동곡맛집)스님짜장 강남반점. 스님들도 놀란 독특한 맛집 스님짜장, 스님짬봉, 탕수이 강남반점





그래도 항상 청도역전에 찾아가서 청도 추어탕을 먹고 옵니다. 

그 많은 추어탕집중에서 유독 향미 추어탕 집만을 고집하며 이번에도 향미 추어탕에서 먹고 왔습니다.

 먼저 청도 추어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남원 추어탕과 서울식 추어탕과는 다르게 추어탕은 맑은 국물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청도추어탕도 남원 추어탕과 같은 방식인 미꾸라지를 채에 걸러서 갈아 거의 뼈 등이 씹히지 않으며 육수가 걸쭉하지 않고 깔끔한 맛입니다. 

청도 추어탕에 원조라면 의성식당을 꼽지만 그래도 체계화한 청도 추어탕은 향미식당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향미식당의 최달선사장님은 농림수산부의 한식세계화 추진을 주관하는 향토음식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추어탕 조리교육을 담당했을 정도이니까 말입니다. 

추어탕은 추어 육수에 시원하게 말아먹습니다. 

그리고 경상도 추어탕에는 빠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제피입니다. 

제피는 지역에 따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상도식에는 제피가 없다면 ‘앙코없는 진빵’ 처럼 추어탕의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경상도 추어탕에서는 제피가 필수적입니다. 

제피는 민물고기의 비린 맛도 잡아주는 등 추어탕의 맛을 한층 더 높여주는 효과를 합니다.





그리고 향미식당의 추어탕에는 다진 양념도 빠지지 않으며 청도 추어탕의 맛을 배가시켜주는데 한 몫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즘 사실 자연산 추어를 구하기가 많이 힘듭니다. 

그래도 청도 추어탕에도 수입 추어보다는 동창천과 청도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청도 추어탕의 본 맛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도에서는 한재 미나리와 청도 반시와 함께 청도에서 꼭 먹 음식이 청도 추어탕입니다. 

이번에도 청도역에서 향미식당의 추어탕을 맛있게 먹고 부산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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