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개목사 원통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의 천등산 봉정사를 이곳저곳 둘러보고는 인근에 개목사를 찾았습니다. 

개목사 또한, 봉정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함께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봉정사를 나와 개목사로 찾아가는 것이 시멘트 길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개목사 앞까지 산길이 험해서 정말 오르는 길이 만만찮았습니다.

 



안동 천등사 개목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안동 천등사 개목사 전화:054-841-6304



2018/07/16 - [여행]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명옥대.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여행

2017/06/14 - [맛집]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 제사음식 그대로 맛보는 곳 안동 전통음식 헛제삿밥, 맛50년 헛제사밥



개목사는 ‘눈이 뜨이다’는 뜻인데 그 뜻이 궁금했습니다. 

처음 능인스님이 창건하면서 흥국사로 불렸는데 왜 개목사로 바뀌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개목사의 지명유래를 보면 그에 관한 전설이 두 개 내려옵니다. 



먼저 조선 세종 때 명제상으로 불렸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일화입니다. 

맹사성은 학문의 경지도 높았지만, 풍수지리에도 아주 밝았다 합니다. 

그가 안동부사로 부임하여 하루는 관내 시찰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관민 중에 유달리 보지 못하는 소경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는 천등산의 지세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맹사성은 그 길로 천등산 아래에 있는 흥국사를 찾아가서 이곳의 이름을 개목사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러 고나서는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 사라졌다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설은 능인대사와 관계된 전설입니다. 

천등산의 지세로 소경이 많았는데 능인대사가 천등굴에서 도를 깨치고는 흥국사를 세웠더니 그 후에 눈 먼 사람이 없어졌다 하여 개목사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천등산의 봉정사, 개목사는 능인대사와 때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능인스님은 천등산 아래 암굴에서 수도정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능인스님 앞에 스님의 수행을 시험하고자 천녀가 나타났습니다. 

천녀는 온갖 달콤한 말로 스님을 꾀며 파계하여 내려가서 함께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자신은 부처님밖에 없다며 불법의 진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능인스님의 수행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천녀는 스님의 마음을 도저히 꺾지 못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옥황상제의 명으로 스님의 부처님 공덕을 시험했다고 말하면서 옥황상제가 보낸 등불로 굴을 환하게 밝혀 더욱 정진하여 꼭 득도할 것을 염원하며 사라졌습니다.

 




능인스님은 그 등불을 의지하며 주야로 더욱 정진하였고 마침내 크게 도를 깨우쳐 굴을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 대망산이라 불렸던 산은 천등산이라 불렸으며 스님이 수도했던 굴 천등굴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개목사는 원통전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원통전은 문간채를 통해 들어서는데 꼭 안동의 고택 같은 분위기입니다. 

개목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본존불로 모셨습니다. 

건물을 1969년에 해체를 하는 과정에서 ‘천순원년(天順元年)“의 글자가 발견되면서 1457년 세조 3년에 창건된 건물로 보고 있습니다.

 




원통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의 맞배지붕 기와 건물이며 좌우 측면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법당은 온돌방이며 천장은 뼈대가 드러난 연등모양의 위부분이 노출해 있는데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서는 아주 드문 경우라 합니다. 

1963년 1월 2일 보물 제242호에 지정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명옥대.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여행


이번에 유네스코에서 안동 봉정사 등 7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했습니다. 

그래서 일전에도 안동봉정사를 둘러보고 왔지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안동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그전에 안동 봉정사를 가기 전에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명옥대를 보았습니다.




 안동 봉정사 입구 명옥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산 76




2017/06/14 - [맛집]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 제사음식 그대로 맛보는 곳 안동 전통음식 헛제삿밥, 맛50년 헛제사밥


 


명옥대는 봉정사 주차장에서 봉정사로 100미터 즘 오르다 보면 왼쪽에 명옥대(鳴玉臺)가 새겨진 검은 빗돌이 나옵니다. 

소나무숲을 들어서면 암반의 계곡에 물이 떨어집니다. 

최근에 잦은 수량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 폭포 건너편에 누정인 명옥대가 자리했습니다.





어느 높은 산의 큰 계곡을 생각한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대학자이자 명망가인 이황은 이 실폭포 같은 작은 계곡에서도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놓았습니다. 

명옥대는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봉정사에 머물 때 이곳에 자주 나왔다 합니다.

 




낙수대라 불리던 것을 폭포의 떨어지는 물소리가 마치 옥이 구르는 듯 아름답다 하여 명옥대라 하고 이곳에서 이황은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합니다. 

그 유래를 보면 중국 진나라시인 유사형의 ‘비천수명옥(飛泉漱鳴玉)’의 시구에 따왔다 합니다. 

그 뜻을 풀이하면 ‘솟구친 샘이 명옥을 씻어 내린다’라는 뜻으로 1565년(명종 20년)에 이황이 명옥대로 바꾸었다 합니다.

 


작은 폭포 오른쪽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새겼다는 명옥대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명옥대에 정자는 1665년(현종 6년) 퇴계 선생이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강학했던 장소를 기념하여 지역 사림에서 세웠습니다.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사각 정자입니다.

 





자연석 주춧돌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깔았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정자의 기둥에서 2칸의 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밮견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1920년경에 명옥대 수리가 이루어졌을 때 아마 방을 헐어내고 누마루 형식으로 바꾸었던 게 아닌지 보고 있습니다.







국보를 위시한 봉정사의 많은 문화재와 함께 원형이 변형되었다지만 요즘 같은 무더운 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무더위기를 이기는 정자인 명옥대를 보고 왔습니다.

 1986년 12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경남여행/양산여행)양산 원동 신흥사. 신흥사 대광전 벽화 보물 제1757호


경상남도 양산 원동에서 가장 가볼 만한 절집은 축천산을 파고 앉은 절골 초입에 자리한 신흥사입니다. 

신흥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01년 신라 기림왕 4년에 선본 선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불교의 북방 전래설과 아도화상에 의해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한 것에서 보면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양산 원동 신흥사 대광전 벽화 신흥사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268

양산 원동 신흥사 대광전 벽화 신흥사 전화:055-381-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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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원효대사의 창건설 등 신흥사를 두고 많은 억척이 난무합니다. 

신흥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에는 사격을 갖춘 절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흥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의 훈련장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왜적에 의해서 신흥사 건물은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1657년 효종 8년에 대광전을 중창했습니다. 

이는 1988년 대광전 보수를 하면서 상량문의 기록과 암막새 기와에서 확인했다 합니다. 

1801년에 대웅전을 중수했으며 1854년에 요사채인 음향각을 건립하는 등 신흥사의 명맥을 유지해오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승려인 대처승이 기거하면서 신흥사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광복이되면서 대처승이 물러가고 절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며 한국동란이 발발하면서 소위 영남알프스라는 신불산 주의로 빨치산들이 숨어들었습니다. 

이들을 남도부빨치산이라 불렀으며 일부는 신흥사에 은신했습니다.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을 견디려고 건물의 나무를 뜯어내어 불을 피우는 바람에 신흥사는 더욱 황폐해 졌습니다.

 




빈절로 남아 있던 신흥사는 1983년 영규스님에 의해 중창을 하여 오늘날 사격을 갖춘 대가람으로 변모했습니다. 

필자가 처음 신흥사를 찾았을 때는 대광전 본전 이외에는 그저 황량했습니다. 

그리고 원동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신흥사는 조금씩 규모를 갖추었으며 최근의 방문에는 잘 짜인 대가람의 면모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신흥사에서 꼭 보고 와야 하는 곳이 대광전입니다. 

그리고 외벽과 내부 벽면의 벽화로 1988년 대광전 부분 해체를 하면서 ‘순치 14년’이란 명문을 발견하여 1657년(효종 8)에 중건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크기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를 한 맞배기와지붕 건물입니다.





지붕의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다포식으로 꾸몄으며 화려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특이하게도 신흥사 대광전은 조선 중기에 세워졌으면서도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이 나타나는 건물입니다. 

이를 보면서 옆면은 국보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평가받는 안동 봉정사와 예산의 수덕사를 보는 듯했습니다.





대광전에서 건물 내·외벽과 포벽, 대량과 고주에 70여 점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광전 내부의 동쪽 면에는 앉은 자세의 삼존도와 여래도, 팔상도, 아수라도를 서쪽 면에는 아미타삼존도와 여섯 구의 보살도, 사천왕도, 여래도, 팔상도, 신중도가 그려 져 있습니다. 

약사삼존도와 아미타 삼존도는 17세기 후반의 벽화로 보고 있습니다. 화풍이 유려하다는 평가입니다.

 


후불벽의 관음삼존도는 관음보살이 물병 대신에 물고기를 들고 있으며 군청색 바탕에 백색안료를 사용했습니다. 

대부분 17세기 중엽의 작품이지만 1801년 대광전을 중수하면서 다시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외벽의 벽화는 비바람에 노출되어 확인이 불가할 정도로 훼손되어 안타깝습니다. 

신흥사 대광전의 벽화는 보물 제1757호.

 


그리고 대광전의 석조여래삼존상 복장유물에서 고려말 삼은 중 한 분인 목은 이색 선생이 간행한 천노금강경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천노금강경과 같은 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신흥사는 창건과 함께 만어사로 불렀다 합니다. 

그리고 설화를 보면 삼랑진의 만어사 전설과 똑 닮았습니다.

 


만어사에서 가야국의 수로왕이 기도하는데 산신이 나타나 말하기를 양주(옛 양산지명)땅의 옥지에 독룡이 살고 있으니 이를 내쫓아야하한다고 했습니다. 

수로왕은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더니 부처님이 육신통의 주술을 발휘하여 만어사의 돌을 모두 물고기로 변하게 하고 옥지의 독룡을 동해로 내쫒아 버렸습니다.







그 이후 신흥사 주위의 돌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고 하며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만어사라 하였다 합니다. 

2014년 방문시에 내부의 사진 촬영은 금한다고 대광전 입구에 붙어있어 겉모습만 찍고 돌아왔으며 이번에도 먼발치에서 내부 사진 한 장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블로그에서 내부벽화 사진을 올려 놓은 것을 보고 벽화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꼭 벽화를 세세하게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부산여행/부산서구여행)부산 최고의 전망대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를 다녀왔습니다. 

천마산은 우리 집 뒷산이라 주말에 심심하면 올라가곤 합니다. 

그래서 한 해에 많이 올라갈 때는 15회 이상 천마산을 찍고 내려옵니다. 

또한, 천마산을 간다고 하면 반드시 거치는 곳이 석성봉수대입니다. 

이는 석성봉수대가 천마산의 정상이기 때문인데 매번 천마산 산행 때마다 자연스럽게 정상 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산 서구 천마산 석성봉수대 주소: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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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친근한 산인데 최근에 와서 조금 뜸했습니다. 

그러든 차에 석성봉수대 학술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석성봉수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이가” 하며 다시 보니 우리 집 뒤에 천마산의 석성봉수대였습니다.

 


석성봉수대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봉수대로 석성봉수대는 왜구의 출몰 때 해안에 너무 치우쳐 있어 수정동의 구봉봉수대로 옮기면서 폐쇄되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내 고장의 봉수대를 아는 정도인데 이번에 조사가 이루어져 그래도 정확한 봉수대의 축성연대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술조사는 부산박물관 문화재 조사팀이 2018년 4월 9일부터 4월 27일까지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석성봉수대는 조선 초기 지리서인 『경상도지리지(1425)』봉수조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봉수 노선 중 하나인 동래~한성 간을 잇는 봉수이며 부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 중 한 곳이라 합니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8)』와 『동국여지승람(1481)』편찬 사이 어느 시점에서 석성봉수대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면서 남구 용당동의 오해야항 봉수대가 등장합니다. 

이는 석성봉수대의 기능이 오해야항 봉수대로 모두 이관하면서 폐지된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석성봉수대의 사전 지표조사에서 봉수대의 동쪽 하단부에 봉수대의 기단으로 보이는 석축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시굴조사를 하면서 석성봉수대는 남북방향으로 길게 타원형이며 가운데는 네모형태의 연소실이 남아 있고봉수대의 외벽은 동쪽 경사면에 약 75cm 높이의 4단 석축이 남아 있습니다. 





장방형의 깬돌을 가지고 ‘품(品)’자형 쌓기를 했는데 이를 보면 고려시대나 그 이전의 신라시대 석축 쌓기로 보입니다. 

봉수대 석축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단부에 아주 큰 자연석을 보강하였으며 봉수대 내부는 판처럼 얇은 돌로 내면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투석전에 대비해 준비한 주먹만 한 몽돌도 나왔습니다.





정상부에는 연기를 피우기 위한 연소실 바닥이 확인되었는데 암반을 깨고 판석을 깔았으며 두께 10cm 정도의 암갈색 재층이 남아 있었습니다. 

석성봉수대 주위에는 편편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항상 보면서 봉수대 건물지였나 생각을 하며 지나다녔습니다. 

이러한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 토기 조각, 중판타날의 선조문 기와편, 고려 초기의 해무리굽 청자편, 흑백 상감의 팔각접시편,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편 등 시대를 막론하고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통일신라 시대 말에서 고려와 조선 초기에 걸쳐 당시 잦은 왜구의 출물에 대비하는 군사 관련 시설이 있었던 게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해안도시 부산이라서 그런지 부산에만 총 12곳의 봉수대가 있다고 하는데 그 많은 숫자에 놀랐습니다. 

이게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다고 합니다. 

이 많은 봉수대 중에 제가 가본 곳은 몇 군데밖에 없습니다.



천마산 석성봉수대 주변에는 임진왜란 때 화살로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누대라 해야 하는 지 조릿대라 해야 하는지 봉수대 남동쪽 주위를 뒤덮고 있어 항상 그 아래가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올라가 보았는데 석성봉수대 밑의 조릿대가 모두 잘려나가 먼발치에서 품었던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ㅎㅎ








확인해보니 까막눈이 저로서는 그저 돌멩이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현재 천마산 정상인 석성봉수대는 1971년 천마산악회에서 주위의 돌을 모아 탑을 쌓았고 이를 천마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모양이 봉수대를 닮아 보입니다. 

전망하나는 끝내줍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배동 삼릉. 신라왕릉 경주 배동 삼릉과 삼릉숲 여행


경주의 배동을 삼릉이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세 왕릉이 있는 소나무 숲을 어릴 적부터 배리숲·삼릉숲이라 불렀습니다. 

삼릉은 이름 그대로 3개의 능이 있음을 뜻합니다. 

일렬로 3개의 능이 서 있고 오른쪽에 55대 경애왕릉이 있습니다. 

이번 경주 남산을 돌면서 마지막에 삼릉을 보고 왔습니다.




경주 배동 삼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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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은 신라시대의 경주 박씨 왕릉입니다. 

신라 8대 아달라왕과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세왕을 모신 능입니다. 

세 왕릉은 원형의 봉분에 흙을 덮은 형태입니다. 

현재 삼릉의 주인은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능이라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먼저 8대 아달라왕(재위 154~184)을 보겠습니다.



아달라왕의 부왕은 7대 일성왕릉입니다. 

일성왕릉 또한 인근인 경주 서남산 탑동의 해목령 아래 산기슭에 있습니다. 

아달라왕은 재위 시절 156년에 계립령(하늘재)과 2년 후에는 소백산의 죽령 길을 열었는데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통로입니다. 

백제의 침입으로 우리 백성을 잡아가자 아달라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쳐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백제는 포로로 잡아간 백성을 돌려주면서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아달라왕이 다스릴 때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전설은 포항 호미곶의 선바위에 가면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부는 아달라왕 4년인 157년에 동해의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오랑이 해안가 바위에 올라가 해초를 열심히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랑을 태우고는 그대로 일본으로 가버렸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연오랑을 보고는 이는 하늘이 내려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며 그들의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세오녀는 연오랑이 오지 않자 바다로 나갔고 바위에서 연오랑의 신발을 발견하고는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바위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연오랑이가 있는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해안 바위에서 세오녀를 발견한 일본 주민은 놀라서 연오랑에게 아뢰었고 이들 부부는 재회하여 세오녀는 귀비가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신라에서 사라지자 신라에는 해와 달이 사라지는 암흑천지가 되었고 해를 관찰하던 일관은 이는 우리나라에 있던 해(연오랑)와 달(세오녀)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라 보고했습니다.

 


아달라왕은 일본에 가서 어서 이들 부부를 데려오라고 사신을 보내었습니다. 

연오랑은 “하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었는데 어찌 돌아가겠나” 하면서 돌아갈 수 없다며 그 대신 왕비인 세오녀가 짠 비단 한 필을 내어주면서 이 비단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된다고 돌려보내었습니다.

 


사신은 아달라왕에게 비단을 내어놓고 보고하였고 아달라왕이 비단을 놓고 친히 제를 올리자 예전처럼 하늘에는 해와 달이 떴다고 합니다. 

아달라왕은 신하에게 이 비단을 잘 보관할 것을 명하고 국보로 삼았습니다. 

비단을 보관했던 창고는 귀비고라 하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 오늘날 포항시의 동해면이며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하였다 합니다.

 


지금도 흥해부터 호랑이 꼬리처럼 툭 튀어나온 호미곶 일대를 영일만이라 하며 영일이란 지명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전설입니다. 

삼릉에서 제일 위의 능을 말합니다. 

신덕왕(재위 912~917)의 성은 박씨 이름은 경휘, 본명은 수종이며 헌강왕의 사위입니다. 

효공왕이 자손이 없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버지는 정강왕 때 대아찬을 지낸 예겸으로 선성대왕에 추봉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겸은 의부이며 친부는 흥렴대왕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정화부인이며 왕비는 헌강왕의 딸 의성왕후입니다. 

두 아들은 승영과 위응이며 54대 경명왕과 55대 경애왕에 오릅니다.



당시에는 후백제의 견훤과 태봉의 궁예가 쳐들어와도 방어할 힘이 없을 정도로 신라의 국력은 쇠락할 때로 쇠락했습니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시신은 화장하였고 유골은 수습하여 잠현의 남쪽에 안장했다고 합니다. 

가운데 능이 신덕왕입니다.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 두 번이나 도굴당했습니다. 

그 후 내부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횡혈식석실묘(굴식돌방무덤)로 확인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무덤 내부일부벽면에 황색·백색·붉은색·군청색·감청색의 색칠을 확인했으나 벽화는 아니라고 합니다. 

54대 경명왕(?~924)은 이름은 승용이며 아버지는 신덕왕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의성왕후입니다.








이때에는 경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지역이 왕건과 견훤에게 빼앗겼으며 이들이 서로 신라의 서라벌을 차지하려는 패권을 벌리는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어수선한 경주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설화가 내려옵니다. 

사천왕사 벽화에 그려진 개가 울었으며 오방신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고 그 벽화의 개가 바깥으로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황룡사구층목탑의 그림자가 사지 금모의 집 뜰에 열흘이나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성안에 쫙 퍼졌다 합니다. 

이게 신라의 멸망을 암시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경명왕이 죽자 황복사 북쪽에서 장사 지냈다 합니다.

1971년 4월 대한민국 사적 제219호에 지정했습니다.













(경주여행)경주 남산 배동 망월사 연화탑. 경주 배동 망월사 연화탑


경주 남산에는 많은 불교 문화재가 남아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절집은 얼마쯤 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남아 있는 문화재에 비해 절집은 훨씬 그 숫자가 적습니다. 

그중에서도 서남산에는 과연 몇 개의 절집이 남아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삼불사와 망월사, 그리고 함월사, 관음사, 와룡사 등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이며 특별나게 이름난 사찰은 더더욱 찾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주 배동삼존불입상이 있는 삼불사가 조금은 알려졌지만 그것도 삼존불입상을 보려고 찾는 관광객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 삼불사를 보고 나란히 있는 남산 배동 망월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경주 망월사는 현재 뚜렷한 문화재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찾는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는 조용한 남산의 절집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비지정문화로 알려지지 않은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이름 또한 망월사 연화탑이라 불리는데 연당에 석축을 쌓아 그 위에 석탑을 올려서 그런지 고귀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옥개석 층급받침에 연화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여느 석탑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라고 합니다. 4단의 층급받침에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귀끝은 살짝 들렸습니다. 

망월사 연화탑에서 지붕돌만 원래의 것이라 합니다.

 


지금 망월사와 삼불사와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는 이곳을 선방골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선방사의 폐사지로 알려져 있으며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과 주위에 흩어져 있는 부재와 망월사 연화탑과 그 주위 남아 있는 부재는 대부분 선방사지의 석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주 배동 남산 망월사 연화탑



망월사 연화탑은 9~10세기의 석탑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무너진 두 개의 석탑에서 나온 탑재와 근래에 새로운 탑재로 다시 짜 맞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의 망월사는 원효종 사찰입니다. 원효대사를 종조로 하고 있으며 1963년에 창건했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배동 삼릉 경애왕릉. 경주 남산 배동 비운의 왕 경애왕릉 여행


경주 배동에는 여러 왕릉이 있습니다. 

6대 지마왕릉, 8대 아달라왕·53대 신덕왕·54대 경명왕릉이 나란히 있는 삼릉과 55대 경애왕릉입니다. 

배동하면 대표하는 게 삼릉이지만 삼릉 옆에 신라 비운의 왕인 경애왕을 모신 경애왕릉을 보고 왔습니다. 

경주 서남산을 대표하는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자리한 삼릉 오른쪽 구릉지인 기린천 옆에 있습니다.




경주 신라 55대 경애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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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왕은 53대 신덕왕의 아들로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927년 남산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 백제의 견훤에게 죽은 비운의 왕입니다. 

성은 박씨이며 이름은 위응, 어머니는 자성왕후이며 경명왕의 동생입니다. 

경명왕이 승하하자 아들의 나이가 어려 대신 왕위를 이어받아 924년에 즉위했습니다.





이 당시 통일신라는 고려와 후백제의 잦은 침입에다 국운이 쇠퇴할 때로 쇠퇴하여 완전 망할 징조였나 봅니다.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다 후백제의 견훤에게 죽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때 견훤의 강요로 자결한 것은 맞겠지만 나라가 적의 공격으로 망하기 직전인데 포석정에서 술판을 벌이는 정신나간 군주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또 그때가 음력으로 11월이라 합니다. 

이를 양력으로 하면 12월이나 1월에 가까운데 생태도 얼려버린다는 매우 추운 한겨울입니다. 

요즘보다 더 추웠을 엄동설한에 바깥에서 연회를 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습니다.





포석정은 연회장소가 아니라 원래 화랑이었던 문노의 화상이 모셔진 사당인 포석사가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8세 풍월주 문노의 화랑도는 호국선이라 불렀는데 이를 보면 경애왕은 견훤이 서라벌에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나머지 대신들과 이곳에 나와 신라를 지켜줄 것을 문노의 화랑도에 빌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게 사람 심정이라데 경애왕도 마지막까지 군주로서 신라를 구해보고자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긴 견훤은 전쟁의 승자로서 경애왕이 연회를 열다 칼에 맞아 죽었다는 나약하고 얼빠진 군주로 묘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경애왕이 승하하자 해목령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일부 학자는 해목령에서 너무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하며 일성왕릉이 경애왕릉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라 왕릉은 대부분 비정된 상태라 능의 주인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경애왕릉은 능의 밑 둘레가 43m, 지름 12m, 높이는 4.2m이며 일반 무덤 보다 큰 평범한 평태이며 흙으로 둥글게 쌓은 봉분입니다.

대한민국 사적 제222호






(경주여행)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경주 배동삼존불을 만나다.


경주 배동삼존석불입상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배리삼존불의 정식 명칭은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 분의 부처님을 모셨습니다. 

현재 본존불인 아미타여래에 좌우로 협시보살인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며 1923년에 주위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자리에 맞추어 세웠다 합니다.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65-1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삼불사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65-2

경주배리석불입상,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삼불사 전화:054-74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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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배동석불입상 본존불 아미타여래

그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풍찬노숙으로 있었는데 1980년대에 전각을 세워 배동 삼존불은 비는 피했지만 그 대신 자연 채광은 가려져 세 불상의 혼화한 미소는 사라졌다는 평가입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는 곳은 경주 배동의 남산 선방골이며 신라시대 선방사가 존재했던 곳이라 전합니다.


경주배동석불입상 관음보살


이곳 삼불사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도 선방사에 모셔졌던 석불 입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배동삼존석불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불상의 근엄함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분의 얼굴에서 모두 천진함이라 할까요 아니면 개구쟁이 같은 그런 순진무구한 미소가 그대로 느껴져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서민들이 좋아할 그런 불상이었습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불로 크기가 2.8m이며 머리에는 도톰한 상투모양의 육계가 이중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향해 막은 시무외인 자세이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편 자세인 여원인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배동석불입상 대세지보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에 화사한 느낌이 드는 본존불은 얼굴이 네모나고 풍만합니다. 

눈썹은 둥글고 입은 다물었으며 뺨은 통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와 사부대중을 어루만져줄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협시보살은오른쪽이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입니다. 

머리에 쓴 보관에 불상을 조각했으며 얼굴은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어 전체적으로 밝은 모습임을 느꼈습니다. 

잘록한 허리에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가도록 해서 손가락은 약간 구부렸으며 왼손은 보병을 쥐고 있습니다.





왼쪽은 대세지보살입니다. 

구슬과 꽃송이로 엮은 두툼하며 긴 목걸이가 발목까지 내려오고 세 불상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을 했습니다. 

연꽃무늬가 앙련과 복련으로 대칭되게 새겨진 2단의 좌대 위에 서 있습니다. 

오른손은 목걸이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올려 무엇인가 쥔 듯한 자세입니다.

 


머리 광배인 두광에는 5구의 작은 불상과 큰 꽃문양을 새겼습니다. 

그래서 인지 저 또한 왼쪽 대세지보살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의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보면 제작 시기는 삼국 말기인 7세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며 보물 제6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제주도여행)제주도 용두암, 제주 용두암에서 아침을 맞다.


제주도 용두암을 보고 왔습니다. 

용두암은 검은 현무암으로 높이는 약 10m인 화산석입니다. 

화산석이라 암질은 검은색이며 흑룡이라 합니다. 

용두암 안내판을 보면 2012년 임진년이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의 해였으며 흑룡은 용기와 비상, 희망, 행운을 가져온다는 전설이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주 용두암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483

제주 용두암 전화:064-711-1022

제주 용두암 입장료 무료



2016/09/28 - [여행] - (제주여행)선녀와 나무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60~70년대 풍경을 추억 태마 공원 선녀와 나무꾼에서 되살리다. 선녀와 나무꾼

2016/09/27 - [여행] - (제주여행)섭지코지. 제주여행 초보라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 동화속의 궁전 같은 섭지코지. 섭지코지




또한, 소원을 빌면 행운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있어 저도 혹시 2012년 임진년의 흑룡은 아니지만 2018년 흑룡에게 소원을 한번 빌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아직 6개월쯤 남아 있어 소원이 이루어질까 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은 우리나라에서도 신성시하는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 일원에서는 용의 진가가 우리보다 더한 신령스러운 존재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용을 본 적은 없지만, 용두암을 보면 상상속 용의 모습이 이른 모습이구나 할 정도로 리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습니다.

 








어쩜 그리 웅장하고 장엄한지 그래서 이른 아침 제주도 일출에서의 용두암이 보고 싶어 새벽에 달려갔습니다. 

붉은 여명에 용두암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날 날씨가 좋지 않아서 옳은 용두암 일출은 만나지 못해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붉은 기운이 감도는 용두암의 장엄함에 넋을 잃고 삼성 갤럭시노트5로 몆장 담아 보았습니다.



용두암의 당당함을 보면 여러 전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하는 전설은 용두암이 있는 이곳 용연에 이무기가 살았습니다. 

이무기는 승천을 기다리며 살았는데 한라산의 산신이 가지고 있는 옥구슬만 있으면 승천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구슬을 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용연계곡을 통해 한라산 백록담으로 살금살금 올라가서 산신의 구슬을 훔쳐 왔고 이무기는 "이제 승천이다"며 하늘 오르기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는 용연에서 승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라산의 산신은 이무기가 옥구슬을 훔쳐간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저넘이 어찌 승천을, 이놈!! 하면서 대로하여 산신은 활을 당겼습니다. 

승천하던 용은 화살에 맞아 그만 떨어졌습니다. 

용은 조금만 더 하는 아쉬움과 울분, 통분을 금치 못하고 포효하다 몸을 뒤틀며 죽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이 오늘날의 용두암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몸은 바닷물에 잠겨있고 머리만 바깥으로 나와 있어 용두암이 되었다 합니다.

 


인어공주인지 황옥공주인지 모르겠지만 왜! 누가 옷을 입혀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 용두암 입장료는 무료




(부산동래여행)수안역에서 임진왜란 참상인 동래읍성 해자. 수안역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 


현재 책 한 권을 보는 중입니다. 

보는 것도 아니죠 하루 만에 다 읽어갈 정도로 지금은 조금 남았습니다.

책의 제목은 ‘임진왜란 부산, 그 길을 걷다’입니다. 

저자는 정약수 선생님이며 벌써 가지고 있던 책이지만 마침 보던 책을 다 보고 다음 볼 책을 고심하다가 책상 위 포개진 책 위에 ‘임진왜란 부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안역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200-4




2016/11/05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복천박물관. 가야시대 복천동 고분군 유물전시관인 복천박물관 여행 복천박물관

2016/10/21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을 만나다. 동래부 동헌 외삼문 동래독진대아문

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2016/10/17 - [여행] - (부산동래여행/부산동래가볼만한곳)동래읍성 내주축성비. 동래읍성 수축을 기록한 내주축성비

2016/10/13 - [여행] - (부산여행/동래여행)동래복천동고분군, 삼국시대 고분군 동래복천동고분군을 여행하다. 복천동고분군

2016/10/11 - [여행] - (부산여행)동래부관아 망미루. 동래부동헌 앞에 세워졌던 망미루가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2층 누각건물입니다. 동래부관아 망미루




책 제목에서 보듯이 임진왜란에서 가장 먼저 함락된 부산진성과 동래성이야기라 생각되었습니다. 

저 또한, 세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동래읍성과 부산진성의 흔적이 있는 자성대. 다대포 윤공단 등 부산의 여러 임진왜란 전적지를 다니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금은 알고 있어 그런 유의 책이라고 치부하면서 별 관심 없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잠시 머리말을 읽다가 임진왜란의 그 생생한 내용에 책을 놓지 못해 바로 하루 만에 책한권을 다 읽을 판이었습니다. 

책 내용에 나오지만, 임진왜란에 몇몇 장수를 빼고는 나라와 백성의 안위는 도외시하고 장수란게 자기 살길을 찾아 도망치는 것을 보면서 울분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특히 경상좌수사였던 박홍이 취했던 태도에는 이런 자가 장수였다는 것에 참담할 뿐입니다.





절영도(현 영도) 앞바다를 꽉 메운 왜군의 함선을 보고 달려온 부산진첨사 정발장군은 오늘 밤 왜군에게 기습공격을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박홍은 이런저런 핑계로 빠져나갔고 정발은 더는 기대를 하지 않고 다시 부산진성에서 일전을 치를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박홍은 왜군의 동태를 본다고 황령산에 올라가 바다를 뒤덮은 왜군의 함선을 보고는 놀라 그 길로 내려와 배를 수장시키고 식량창고에다 불을 지르고는 도망 쳐 버렸습니다.







현재 수영에는 당시 경상좌수영이 복원해 있으나, 당시 왜군이 무혈입성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경상우수사의 원균 또한 좌수사의 박홍 못지않았습니다. 

원균 또한 거제도의 우수사를 부하 장수에게 맡기고 도망쳐버렸습니다. 

왜적은 부산진성을 지키던 정발장군에게 “명나라를 치려 하니 길을 내어 달라”하자 장군은 “내어 줄 길이 없다”며 3,000여 군·관·민은 목숨 걸고 싸웠으나 성은 함락되었고 정발장군은 절명하였습니다.





이들은 부산진성의 여세를 몰아 들불처럼 나아갔습니다. 

주력부대는 동래성으로 향하고 일부는 다대포로 향했습니다. 

다대포첨사 윤홍신장군도 왜적을 맞아 끝까지 싸웠으나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왜는 1592년 4월15일 송상현부사가 지키는 동래성에다 '전즉전의부전즉가도(戰則戰矣不戰則假道)'인 “싸울 테면 나와서 싸우고 아니면 길을 빌려 달라”고 하자 송부사는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는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으로 답하며 끝까지 동래성을 사수하다 군·관·민 모두 동래성에서 옥쇄하였습니다.








왜는 ‘움직이고 피 흘리는 모든 것은 살해했는데 여자고 어린아이고 고양이고 개 할 것 없이 모두 도륙했다’고 일본의 ‘길야일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참혹했던 현장의 모습이 도시철도 4호선 공사 도중에 발견되었습니다. 동래읍성이 있었던 수안역인데 동래읍성을 따라 땅을 파서 만든 해자였습니다.

 






동래읍성 해자는 성벽에서 30m 떨어져 있고 폭은 5m에다 높이는 대략 2m 깊이에 돌을 쌓은 형태였습니다. 

‘임진왜란 부산. 그 길을 걷다’에서 수안역 동래읍성 해자에서 남자 59명, 여자 21명, 어린이 1명 등 모두 81명의 인골이 수습되었다 합니다. 

이들은 칼에 베였거나 활과 총 , 둔기 등에 맞았거나 조총에 맞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 뚫린 인골과 함몰된 인골이 발굴된 현장을 보면서 당시 처참했던 현장 분위기를 그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칼과 화살촉, 목궁, 해자 바닥에 설치한 목익 등 널브러진 무기류를 보면서 당시의 처참한 모습에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이안눌이 남긴 시를 보고서입니다. 

이안눌의 시에는 두 왜란의 참담함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1608년경 이안눌이 동래부사로 부임해왔습니다.







“4월15일 새벽에 집집이 곡소리가 일어나 천지가 소슬하고 처참한 바람이 숲을 진동하니 놀라서 나이 많은 아전에게 물으니 이날이 임진년 성이 함락된 날이라 하였다”로 시작되는 ‘동래맹하유감’입니다. 

당시 송상현부사와 백성이 함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며 쌓인 시체 밑에 깔려 목숨을 건진 사람은 천백 명 중 한두 명뿐이었다 합니다.







이는 종군 승려 텐게이의 서정일기에 동래성 전투에서 “3,000을 목 베고 500을 포로로 잡았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4월 15일 친족의 제사를 지내는 통곡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울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번 큰 전란의 참상을 겪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 경술국치, 한국동란 등 수많은 전란과 핍박은 모두 준비하지 않은 데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불완전한 정세 속입니다. 준비하지 않고 넋 놓고 있다가는 또 어떤 전란과 핍박을 당할지 모를 일입니다. 

수안동의 처참한 동래읍성 해자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부산, 그 길을 걷다 저자 정약수


(전남진도숙박)진도에서 괜찮은 숙소 퍼스트모텔. 진도 퍼스트모텔


지난번에 1박 2일 진도여행을 하면서 숙박은 진도읍내로 나와서 했습니다. 

세방낙조전망대에 그 유명하다는 일몰 구경을 하고 나서 돌아 나와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고해서 우리가 가고자 했던 모텔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모텔임을 알리는 간판의 불은 꺼져 있고 주차장에는 차가 여러 대 주차해 있으면서 주차장 불도 꺼진 상태라 문 닫았나 하며 한 사람이 확인하러 갔더니 돌아와 하는 말이 만실이라 방이 없다고 했습니다.




진도 괜찮은 모텔 진도 퍼스트모텔 주소: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 453-12

진도 괜찮은 모텔 진도 퍼스트모텔 전화:061-542-1111



2018/04/30 - [여행] - (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대교 진도타워와 울돌목해양에너지공원 명량대첩 전승지

2018/04/28 - [여행] - (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 진도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진도 회동리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관상 깨끗해 보이는 퍼스트모텔로 향했습니다. 

여기에는 간판불이 들어와 있고 해서 모텔 영업을 했습니다. 

일행이 내려가서 확인하고는 방을 두 개 잡았는데 여기에도 우리가 원하는 그런 방은 없고 저처럼 혼자인데도 어쩔수 없이 가격이 더 비싼 프리미엄 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했습니다.







저 혼자인데도 2인용 침대와 1인용 침대가 있는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띵까띵까 하고 보냈습니다. 

이거라도 없었다면 해남 쪽으로 나가서 방을 잡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퍼스트모텔도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입구에 만실이라며 방이 없다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요즘 주말 여행지는 방 구하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조금만 늦었다면 이 방도 얻지 못할뻔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보면 전라도 쪽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나 봅니다. 

특히 주말에 진도 쪽으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미리미리 방을 예약해야 저희 같은 이런 사단이 생기지 않습니다. ㅎㅎ







진도 퍼스트모텔 내부도 깨끗하고 방도 큰 게 혼자 사용하기에는 억수로 크고 가족이 사용해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도 2대나 갖추고 있어 밤에 컴퓨터 때문에 싸울 일도 없을 듯했습니다. 

에어컨도 중앙집중식이 아닌 방마다 독립 형태로 달렸어 무더운 한여름 밤을 시원하고 쾌적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욕실은 온수를 받는 탕이 없는 게 대세인듯합니다. 

진도 퍼스트모델도 몸을 담글 탕 대신에 하늘에서 바로 떨어지는 듯한 해바라기형태의 큰 샤워기가 달려 있어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맞으며 시원하게 몸을 씻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모두 독립형태로 유리 칸막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튕길 염려도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숙면을 취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진도대교로 차를 달렸습니다. 

진도대교 아침 일출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날 퍼스트모텔의 컴퓨터로 검색해서 나만의 일출장소도 찾고 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거 보다 컴퓨터로 하는 게 훨씬 편리했습니다.










물론 세면도구는 기본으로 비치해 있었습니다. 

일부 모텔에 가면 세면도구 등은 비치 안된 곳도 많아 요즘은 칫솔 등을 챙겨가는데 진도퍼스트모텔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필요한 게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진도여행에서 괜찮은 숙소였습니다.










(2018 부산국제모터쇼)부산 벡스코 부산국제모터쇼의 레이싱모델. 부산국제모터쇼 레이싱모델


2018 부산국제모터쇼에 댕겨왔습니다. 

부산국제모터쇼는 지난 6월8일 금요일 부터 시작했으며 오는 6월17일 일요일 까지 열리며 장소는 해운대구 센텀인 부산 벡스코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인 6월10 일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와 무슨 관람객이 그리 많은지 ㅎㅎ

관람객이 정말 밀릴 정도로 많았습니다. 

2016년 부산국제모터쇼가 열렸을 때도 둘러보고 왔는데 2년전인 그때도 관람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당시 신차도 찍고   레이싱모델도 찍고하니까?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 다 보지 못하고 벡스코 2관은 그냥 건너 뛰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자동차는 포기 하고 스포츠 차량 같은 쿠페만 둘러보고 레이싱모델을 우선으로 담았습니다. 

'차보다 사람' 아니 올해 컨셉은 '차보다 모델"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이번 2018 부산국제모터쇼에서는 레이싱모델만을 담아 왔습니다.

역사도 오래된 부산국제모터쇼라서 그런지 진짜 멋진 신차도 많았습니다. 

부산국제모터쇼 한번 보고 오세요. 그리고 후회는 하지 않을 듯합니다.

레이싱모델은 2년전에 보았던 모델들도 있었으며 2년전이나 올해나 정말 미모는 그대로 였습니다.

일단 레이싱모델 네분을 먼저 올려봅니다. 

모델분 성함은 모르는 분도 있고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부산국제모터쇼 입장료 어른 9,000원.




부산국제모터쇼 부산 벡스코 주소: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1500

부산국제모터쇼 부산 벡스코 전화:051-740-7300




2018/05/27 - [여행] - (부산여행/해운대구여행)삼성 갤럭시 노트5로 찍은 2018 해운대 모래축제 모래 조각. 해운대 모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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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9 - [여행] - (부산동래여행)동래읍성. 송상현부사와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의 아픔이 남아 있는 동래읍성 여행















































현대 자동차  신차 구경하세요. HDC 2 햐~~~ 진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저 처럼 야외 활동이 많은 사람은 모두 탐낼 그런 SUV입니다.

역시 좋은 차는 먼저 안다니까요? 얼마나 관람객이 많은지 ㅎㅎ 





또 하나 제네시스 쿠페입니다. 문짝이 하늘로 열리는 꿈의 자동차였습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독수리를 닮은 듯 멋진 제네시스 모델이었습니다.

탐나는 자동차였습니다.







(전남여행/순천여행)두 종단 싸움에 대한민국 최고의 절집이 된 순천 조계산 선암사. 조계산 선암사.


순천 조계산은 동·서로 선암사와 송광사인 두 사찰을 두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순천 여행에서는 조계산 선암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순천 선암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적인 사찰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유홍준 교수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조계종과 태고종의 오랜 종단 싸움으로 선암사는 송광사처럼 개발의 미명에서 밀려나게 되어 오늘날 최고의 가람이란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참 우습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순천 선암사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순천 선암사 전화:061-754-5247




2018/06/06 - [여행] - (전남순천여행)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곱향나무



순천 선암사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한국적 고찰 분위기가 생생하다는 선암사를 찾았던 5월, 바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오색의 연등이 승무처럼 나풀나풀 미풍에 춤을 추는 모습이 한국 최고의 절집과 정말로 잘 어울렸습니다. 

선암사의 창건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으나 백제 때 아도화상과 신라말의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분분합니다마는 후자인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해서 선암사로 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고 합니다.





선암의 유래는 절 서쪽 높고 편편한 바위에서 옛 선인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하여 절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선암사는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의 부속암자였던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의 중창을 진두지휘하셨다 합니다. 

당시 선암사는 중창으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는데 법당은 13동에다 전각이 12동에 많은 스님이 상주하면서 수도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거느린 암자만 19개였을 정도로 조계산에서는 송광사와 함께 최고의 사찰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유재란이 터지면서 왜적이 송광사로 들이닥쳤고 송광사는 전각과 건물, 암자가 치솟는 불길 속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나서 쇠락한 선암사는 1660년 다시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경잠·경준·문정대사 이 세 분이 8년간의 각고 끝에 중창을 이루어 선암사는 옛 모습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선암사는 여러 번 중창을 거듭하고 이어져 오다 1823년(순조23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명부전 등 수많은 전각이 불길에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해붕·눌암·익종 세 분 대사에 의해 선암사는 6번째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청량산과 혜천사로 고쳐 불렀던 명칭을 본래의 이름인 조계산과 선암사로 다시 고쳐 부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암사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과 6·25 한국전쟁에 또다시 역사의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쳐 좌우의 대립과 갈등 속에 큰 피해를 보게 되었으며 그 후 비구와 대처승인 조계종과 태고종의 두 종단에서 소유권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의 선암사가 옛 모습을 간직한 게 전통사찰의 무분별한 개발을 보면서 어찌 보면 그 분쟁이 다행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선암사는 사적 및 명승 8호에 지정될 정도로 짙은 숲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주차장에서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는 1.5km 흙길은 울울창창한 숲 속 터널로 한여름의 무더위도 무색하게 만듭니다.

 


이 길을 벗어나면 오늘날의 선암사 명성을 있게 하는데 일조한 승선교가 왼쪽에 걸려 있습니다. 

무지개가 걸린 듯한 승선교는 홍예식의 아치형 다리입니다. 

승선의 뜻을 보면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란 뜻으로 이 아치형 다리 밑을 통해서 ’신선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인 강선루를 보는 풍경은 가히 선경이며, 제가 보기에도 선암사의 제1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선암사 홍보물과 블로그, 카페 등 선암사를 알리는 모든 홍보 사진은 승선교 아래에서 강선루를 보는 사진이 메인 사진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이곳이 사진작가와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나 모두 공통의 선암사 승선교 포인트입니다. 

저 또한 미물이라 남들처럼 승선교 아래에서 강선루를 담아보려고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아치 교각 사이로 강선루를 넣고 사진 몇 장을 담고 올라왔습니다.



승선교는 조선 시대인 1713년(숙종39년)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화강암으로 완공한 다리입니다. 

다리 규모는 길이는 14m이며 높이 4.7m 폭 4m 반원형 아치로 대단한 규모입니다. 

다리 아래 천장 가운데에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넓은 계곡을 끼고 세워진 기단부는 자연 암반 위에다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게끔 튼튼하게 기초를 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승선교는 길게 다듬은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짜 맞추고 주변 계곡에서 주운 작은 돌은 차곡차곡 쌓은 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 정교합니다. 

다리 아래 천장에 달린 용머리는 승선교의 화룡점정일 정도로 돋보이는데 옛말에 이 돌을 빼버리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속설이 전해온다고 합니다. 

함부로 빼버리면 안 될듯합니다. ㅋㅋ 누구 장난으로 빼지 마세요. 

혹시 다리가 무너지면 큰일나니가요?





승선교을 세우게 된 유래가 전해져 옵니다. 

1698년(조선·숙종24년)호암대사는 관음보살 친견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담하여 바위에서 몸을 던지려 했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홀연히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대사는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경내에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고 계곡에 무지개 모양의 승선교를 세웠다 합니다.



승선교 외에도 선암사의 승려였던 초안과 습성스님이 1729년 보성 벌교의 홍교도 보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를 보면서 당시 선암사의 규모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의 가장 큰 보시는 월천공덕이라하며 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편하게 다니도록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를 보면서 승선교를 세우고 난 뒤 돌다리인 홍교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인당은 선암사 경내를 들어서는 입구에 만들어진 긴 알 모양의 연못입니다. 

연못 안에는 작은 섬을 만들었으며 선암사 사적에는 신라 경문왕2년인 862년에 도선국사 때 만들어졌다 합니다. 

삼인당에서 삼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말합니다. 

연못의 섬은 자리이타(自利利他) 타원형의 연못은 자각각타(自覺覺他)를 의미하며 뜻을 풀이하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며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한다"는 뜻의 불교사상으로 이러한 모양과 이름을 가진 연못은 현재 선암사에만 남아 있다합니다. 

삼인당은 전라남도기념물 제46호



부도군을 지나면 나오는 게 목장승입니다. 

양쪽에 세워진 목장승은 조선 말엽에 세워진 목장승의 모조품입니다. 

1987년 9월에 세운 것이며 장승에 새긴 '호법선식'은 불법을 수호하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성불하게 만드는 착한 신을 뜻합니다. 

'방생정계'를 새긴 장승은 이곳부터는 더욱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함을 뜻합니다.













선암사 대웅전 보물 제1311호

 대웅전은 부처님을 주존불로 모신 건물입니다.

선암사 대웅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불탔던 것을 1660년 (조선·현종1년)에 다시 중건하였습니다. 

1766년(영조 42년)에 또다시 화재가 일어나 소실되었다가 1824년(순조 24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 모양을 한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기단은 기둥 면석 감돌로 조립하고 그 위에 다시 주춧돌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으로 세웠습니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두었고 그 위로 공포를 짜 올렸으며 출목수는 밖 3출목, 안 4출목으로 그 모습이 대단히 장중하고 화려합니다. 

대웅전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에 용조각과 공포 등이 장엄하게 단장되었으며 단청도 비교적 선명합니다. 

선암사에는 매화나무도 참 많았습니다.














선암사 본존불을 모신 대웅전















이곳에 선암매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가는 길에 50주 정도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원통전 담장 뒤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의 홍매화가 문화재로 지정해 있습니다. 

이 두 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 입니다.

매화나무의 수령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약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었다고 하며 이를 보면 600년 된 매화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암사 중수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2호

1707년 (숙종33년)에 건립된 비로 정유재란 때 불탄 선암사를 약휴대사를 중심으로 중건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이수와 귀부, 비신은 일반적인 양식의 비석이지만 전체 높이는 502cm, 비신의 폭은 125cm이며 비신 두께는 30cm로 조선시대 비석으로는 매우 뛰어나다 합니다.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동·서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양식의 삼층석탑이며 선암사의 중심건물인 본존불을 모신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세운 두기의 석탑입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인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세워 두 탑은 규모와 솜씨가 똑같아 같은 사람이 동시에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기단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우주와 탱주를 하나씩 새기고 각 기단의 윗면에는 3단의 굄돌로 윗돌을 받치게 했습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이고 4단의 층급받침으로 되어있습니다. 

지붕돌의 꼭대기에는 2단의 굴곡인 굄돌이 있는데 이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노반과 그 위에 작은 석재가 남아 있습니다. 

석탑의 양식을 추정하면 신라 중기 이후 9세기의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에서는 꼭 보고 오는 게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선암사의 화장실인데요 화장실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마 제가 알기에는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찰에서는 해우소 또는 근심 푸는 곳이라 부르는데 선암사의 해우소는 뒤깐이라 작은 명패를 달고 있습니다. 

선암사 뒤깐은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우리 전통 화장실로 선암사 여러 곳을 둘러 본다고 이번에는 화장실을 빼 놓고 와 버렸습니다. ㅋㅋ 

정말 많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선암사 여행은 어느 사찰에 비유해도 참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번에 많이 챙겨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보지 못하고 온게 참 많았습니다. 

다음 선암사 여행에서는 이번 여행에서 못보고 온거 부터 챙겨야겠습니다. 


선암사 일주문 천장의 용조각, 화재방지를 위한 비방으로 보입니다.


선암사 부도군


(전남순천여행)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곱향나무, 천자암 쌍향수 


아주 옛날 고승이나 인물이 빼어난 분이 간혹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자라나서 나무가 되어 천년세월 동안 푸름을 잃지 않고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주소: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1

순천 조계산 송광사 천자암 쌍곱향나무 전화:061-754-3708



그런데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 현재의 나무 중에서 미적으로도 가장아름답고 독특하며 지팡이의 뒤틀린 모습과도 똑 닮은 그런 나무가 있어 더욱 신기합니다. 

지팡이에의 지존으로 불러도 괜찮을 나무는 순천의 조계산 중턱에 자리한 천자암의 쌍향수입니다.








천자암




일명 곱향나무로도 불리는 천자암의 고목인 쌍향수는 향나무로서 한그루가 아니 두 그루가 똑같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쌍향수는 수려한 외모만큼 그에 걸맞은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이 나무를 흔들면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런다고 극락 가기 위해서 나무를 막 흔들면 안 되겠지요.


쌍곱향나무 



특히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니 천년만년 잘 보존해야겠습니다. 

쌍향수의 높이는 약 25m, 둘레가 3.98m이며 나무의 나이는 약 7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쌍곱향나무의 유래를 보면 두 그루의 향나무가 서로 예를 갖추며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조계산에서 수도했던 보조국사와 그의 제자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짚고 왔던 지팡이이며 두 스님은 천자암에 올라 꽂았는데 그게 오늘날 곱향나무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답니다. 

이를 보면 지팡이계의 지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의 더께 속에 쌍곱향나무도 어쩔 수 없이 외과 수술을 하여 나무의 줄기에다 시멘트로 메우는 수술을 하였으나 푸름은 잃지 않은 모습에 천자암을 올라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으며 쌍곱향나무입니다.

 

피나물




(경남양산여행)양산 황산공원 캠핑장 인근에서 화려한 꽃양귀비를 만나다.


봄부터 각 지자체에서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매화를 시작으로 벚꽃 축제, 유채꽃 축제 등 연달아 꽃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양산 물금읍의 황산공원에 꽃 양귀비가 활짝 폈다 하여 방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달려갔습니다. 

5월 초순부터 조금씩 꽃 양귀비가 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초절정을 넘어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물의 꽃 양귀비지만 화려함을 잊지 않고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꽃 양귀비를 보려고 물금의 황산 체육공원을 찾아온 관광객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도 이만큼 많은 꽃 양귀비는 보지 못했으며 양귀비란 이름답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부산과 가까운 곳인 물금의 낙동강 둔치에 조성해서 그런지 황산공원 캠핑장과 황산 체육공원 등을 찾던 사람은 덤으로 꽃 양귀비까지 볼수 있어서 정말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우연하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황산공원의 꽃양귀비 축제가 열리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꽃 양귀비축제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끝물의 꽃 양귀비라도 보게 된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내년에는 가장 화려할 때 찾아서 꽃양귀비 사진을 꼭 담아야겠습니다.




 양산 황산공원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1141



2018/03/25 - [여행] - (경남여행/양산여행)원동매화축제 순매원. 원동매화축제 순매원 매화 보고 왔어요.


 


양산시 물금읍의 황산체육공원 꽃양귀비 사진으로 구경하기








 


(부산여행/해운대구여행)2018년 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모래축제를 만나다.


지난 화요일 부처님오신날에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2018년 해운대모래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지금쯤이면 모래 조각작품은 모두 해운대해수욕장의 모래로 변했을 것 같은데 모래축제의 좋은 점이 이리 환경친화적입니다. 

모래 축제에 사용한 모래는 모두 바로 해운대해수욕장에 제사용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해운대모래축제 해운대해수욕장 주소: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1015

해운대모래축제 해운대해수욕장 전화:051-749-7619



2017/06/03 - [여행] - (해운대여행)2017 해운대모래축제. 2017년 해운대모래축제를 만나다. 해운대모래축제

2016/10/05 - [부산 축제] - (부산국제영화제)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일정표,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행사 일정표. 부산국제영화제

2017/06/07 - [여행] - (부산동구여행)호랭이이바구길. 부산 동구 범일동 호랭이이바구길을 걷다

2017/06/11 - [여행] - (부산서구여행)닥밭골행복마을. 소원바위에서 소원을 빌어 봐! 닥밭골벽화마을 여행

2017/05/24 - [부산 축제] - (부산축제)2017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 2017년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 행사 일정 안내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

2017/05/06 - [부산 축제] - (부산여행)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 골목축제 구경 오세요





모래축제가 아니라도 해운대해수욕장은 매년 모래가 파도에 휩쓸려버려 따로 모래를 사서 보충을 해야 했습니다. 

보충 할 모래로 모래축제에 사용될 작품을 만들어 해운대해수욕장의 홍보도 하며 일거양득의 효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의 해운대 모래 축제는 우리나라에서 5월에 열리는 축제 중 가장 뜨거운 열기로 인기 있습니다. 

예년의 해운대 모래축제 조각작품과 비교하면 올해는 더욱 풍성했으며 모래 조각 또한 대작이 많아 해운대를 찾은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했습니다.

 


올해 2018년 해운대 모래축제의 주제는 ‘영웅, 모래로 만나다’였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영웅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대한남아의 기백을 만방에 떨친 전설의 마라토너 고 손기정선수 하며 근대 역사 속의 인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영웅은 삼국지의 관우가 은월도를 휘두르며 나타났습니다. 

용맹한 장군의 모습이 사실감 있게 그려졌습니다. 

이외에도 해운대모래축제의 메인은 뭐라 해도 역시 3D로 제작된 반지의 제왕이었습니다. 

그 크기가 세로 6m에 가로 30m인 대작으로 사방을 정말 섬세하게 표현해 놓아 실감 나게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 6개국 10명이 참가한 명실공히 부산 최고의 여름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올해는 더는 해운대모래축제를 볼 수 없다는 게 정말 아쉽습니다. 

매년 갖는 생각이지만 그리 힘들게 승화된 예술작품이 4일 만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해운대 모래축제는 임팩트하게 굵고 짧게 해서 강렬함을 심어주는 것 같아 이래서 벌써 2019년 해운대 모래축제를 다시 기다리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2018년 해운대 모래축제 '영웅, 모래를 만나다' 모래조각 사진 보기

























(울산여행/장생포여행)장생포고래박물관 야외 전시장과 고래빵, 고래아이스크림 맛보기


장생포를 우리나라에서 고래의 고향이라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선사시대부터 장생포는 고래잡이가 성행했다는 암각화가 발견되어 현재 울산에서 유일한 두 점의 국보가 그 암각화입니다. 

그래서 울산의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웰리스키즈랜드의 윌리스장난감박물관을 보고 나서 자투리 시간이 남아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의 야외 전시장을 대충 둘러보았습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매암동 139-29

장생포고래박물관 전화:052-256-6301



2018/05/15 - [여행] - (울산여행)울산대공원과 울산시립도서관 여행.

2017/04/22 - [여행] - (울산여행)울주 반구대암각화. 봄에 좋은 여행지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

2017/04/12 - [여행] - (울산여행)울주 천전리 각석. 국보 147호 청동기시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을 만나다.

2017/03/30 - [여행] - (울산여행)영남알프스 작천정계곡. 하얀 암반과 함께 운치있는 작천정계곡과 누각

2016/11/25 - [맛집] - (울산맛집/언양맛집)원조언양옛날곰탕. 겨울철 보양식인 나주곰탕식 소머리곰탕이 맛있는 원조언양옛날곰탕.



장생포고래문화특구라서 그런지 규모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건물도 번듯한 고래박물관에는 실물 고래골격과 포경유물이 전시 중이라 하며 돌고래수족관에는 고래생태체험관까지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유람선을 타고 고래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고래 바다 여행선’도 운항 중이라 합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장생포고래박물관의 내부를 생략하고 외부만 둘러보아도 고래와 관계된 여러 조형물이 많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금강산도 식구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천하제일경의 경치도 배가 불러야 눈에 들어온 다로 생각하고 고래빵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 반드시 맛본다는 고래빵과 고래아이스크림입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앞 야외에 실물 크기의 고래모형을 전시 중인데 그 아래쪽에 고래빵 판매장이 있지만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는 오늘 내로 고래빵 맛을 보겠나 싶었습니다. 

할 수 없이 고래문화마을로 올라가는 곳에 보았던 고래 빵집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고래 문화특구와 떨어져 있어 기다리지는 않고 맛볼 수 있었습니다. 

크림이 들어간 것은 소진되어 어쩔 수 없이 팥 고래 빵만 맛봤습니다. 

빵 맛은 강구에서 먹어본 대게 빵과 비슷했습니다. 

내 입맛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장생포고래박물관 장생포 고래빵 주소: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 60_11

장생포고래박물관 장생포 고래빵 전화:052-267-7543






이날 날씨가 엄청나게 무더웠는데 고래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갈 수 없었습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에 끌려 고래빵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고래아이스크림은 고래모형에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그 위에다 아이스크림이 올려진 모습입니다. 

울산 장생포고래문화특구까지 와서 고래 이미지를 형상화한 고래빵과 고래아이스크림을 안 먹고 갈 수 없을 듯합니다.

 


이외에도 볼거리가 참 많은데 고래문화마을은 장생포고래문화특구내의 장생포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 고래 바다여행선과 연계하여 고래생태체험공원인 고래문화마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입니다.

 


그리고 고래빵집 주위인 옛 장생포마을에는 고래를 주제로 한 벽화골목도 있습니다. 

70~80년대의 장생포항의 풍경이라든지 고래 포경의 모습 등을 보면서 장생포항의 옛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찾아와서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의 여러 곳을 세심하게 둘러보아야겠습니다.

 


(울산여행)울산대공원과 울산시립도서관 여행. 


울산대공원과 울산도서관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울산의 중심에 자리한 울산대공원은 울산광역시를 대표하는 중심공원으로 그 규모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울산시립도서관을 여행했다고 하니까 웬 도서관 여행하며 조금은 생뚱맞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울산대공원 주소:울산시 남구 옥동 108

울산대공원 전화:052-271-8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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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도서관은 4월 말에 개관했다 하여 어떤 형태의 도서관인지 한번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울산도서관 또한 최첨단 시설로 초 매머드급의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그럼 먼저 노는 게 장땡이니까 울산대공원을 둘러보겠습니다. 

울산대공원 정문을 내비게이션에 찍고 가면 안전하게 데려다 줍니다.



저도 스마트폰의 카카오 내비로 딱 찍고 가니까 어느새 정문 앞이었습니다. 

울산대공원 정문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어 딱 주차하고 들어갔습니다. 

주차비는 유료이며 그대신 울산대공원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주차비 는 무조건 카드결제만 됩니다. 참고하세요.

 정문을 딱 들어섰더니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시민이 운동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먼저 큰 호수가 보였습니다. 

부산의 공원에서는 옛날 상수원으로 사용했던 곳을 공원으로 하다 보니까 울산대공원의 호수하고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울산대공원의 호수는 진짜 새벽에 토끼가 내려와서 물을 먹고 가는 그런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그려졌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과 맑은 물, 그리고 초록의 나무가 서로 어울려 공업도시 울산이란 이미지를 많이 상쇄해줄 것 같았습니다.



부산에는 이런 공원이 없이어서 정말 많이 부러웠습니다. 

부산시민공원이라 봐야 그저 편편한 땅에 근래에 조성해서 공원 같은 분위기가 날려면 30년은 족히 지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울산대공원은 구릉지에 울울창창한 소나무숲과 정렬된 가로수하며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조화를 잘 이루어진 그런 공원이었습니다.

 


울산대공원은 1986년 대공원 조성을 추진하면서 울산시에서 부지를 사들이고 1995년 대기업의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SK가 공원 내의 제반 시설 등을 후원하여 시에 무상기부하면서 오늘날의 울산대공원이 되었습니다. 

그 규모는 364만㎡(약 110만 평)이며 시설면적이 90만㎡라고 합니다. 

대단한 규모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호수를 돌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최근에 개방된 메타세쿼이아 숲이었습니다. 울산대공원 내의 현충탑 입구인 '용의 발' 광장에서 화장실 뒤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숲은 길이가 270m에 나무는 총 264주이며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울산대공원에서 최고의 나들이 코스로 자리 잡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연못까지 있어 깊은 산 속 옹달샘 분위기가 나는 게 더욱 운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메타세쿼이아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 나무로 알려졌으며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고 수관이 넓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운치 있는 길 하면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따를 그 어떤 나무도 없어 보입니다.

 


현충탑도 둘러보고 큰 호수도 한 바퀴 돌면서 풍차도 보았습니다. 

울산대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울산대공원 장미축제입니다. 

장미원은 약 56,000㎡ 면적에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지에서 들여온 265종에 57,000종의 장미가 꽃을 피면 완전 장관을 연출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이자 최고의 장미정원이라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8년 5월18일(금)~5월27일(일) 10일간 울산대공원 장미원과 남문광장에서 울산대공원 장미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울산대공원에서 나와 이제 울산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울산도서관 또한, 지난 4월26일 개관했습니다. 

울산시의 중심지에서 약간 비켜난 남구 여천동에 자리했습니다. 

울산도서관을 가려면 먼저 책 형상을 한 도서관교를 건너야 합니다.




울산도서관 주소:울산 남구 여천동 1265-3

울산도서관 전화:052-266-5670


 


그리고 바로 도서관 내부로 들어서는데 울산도서관의 전체 면적은 15,100㎡이며 14만 6천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합니다. 

부대시설로는 문화교실과 다목적홀, 전시실까지 갖추어진 도서관이라 다양한 전시와 문화행사 등이 열린다고 합니다.

 


1층 내부는 엄청나게 큰 책장으로 꾸며져 있으며 유명작가가 쓴 수많은 장서가 진열되어 여행과 고적, 문화재 등의 답사를 좋아하는 저에게도 꼭 갖고 싶었던 책이 여러 권 보였습니다. 

필자의 구매 품목에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1층에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독자의 발견, 독서의 기쁨」전인데 요즘은 만나기 힘든 일제강점기 근대 소설의 신문연재물로 당시 독자를 찾아갔던 빛바랜 신문과 책 등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월북작가로 한때 금기시되었던 홍명회의 임꺽정이라든지 계몽소설인 심훈의 상록수, 이광수의 무정, 채만식의 탁류, 이인직의 혈의 누, 정비석의 자유부인, 박경리의 토지, 현진건의 무영탑 이외에도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7월 1일까지이니 참고하세요. 

야외에는 101인의 노란색 원형 책상이 놓여 있습니다. 

여름에는 조금 더워서 그런데 선선한 가을에는 천고마비의 계절답게 하늘을 벗 삼아 책 읽기와 토론에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울산시립도서관에서도 찾아가는 도서관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사한 색상의 울산도서관 버스도 있었습니다. 

울산대공원과 울산시립도서관을 여행하면서 규모와 시설 면에서 다시금 울산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남밀양여행)삼성 갤럭시 노트5로 담은 밀양 위양지. 5월 이팝나무와 위양지 반영



  5월의 경남 밀양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 또는 밀양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하라면 밀양 위양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밀양에서 5월 추천여행지로 압도적인 이유는 위양못 가운데 자리한 인공섬에 완재정의 정자가 있습니다.




5월 이팝나무꽃이 아름다운 밀양 위양지 주소: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7


2017/11/29 - [여행]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지. 갤럭시 노트 5로 찍은 밀양 위양지 가을 정취. 밀양 이팝나무 위양지

2016/12/15 - [여행] - (밀양여행)김종직 생가 추원재와 김종직의 묘, 호랑이 무덤 여행.

2016/11/12 - [맛집] - (밀양맛집/상동맛집)상동역 웰빙 고동국. 경상도 들깻가루로 끓여낸 고소한 국물이 일품인 상동역 웰빙 고동국


 


그 정자와 이팝나무가 서로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연출합니다. 

이팝나무 꽃과 정자인 완재정이 위양못에 비치는 반영은 어떤 수식어로도 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예쁩니다.

 


화창한 5월에는 밀양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가 됩니다. 

저 또한 위양지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4월에 두 번이나 찾아갔으며 이팝나무에 이팝꽃이 피는 지난 5월 9일에 방문하여 완재정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이팝꽃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한마디로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이팝은 흰 쌀밥을 뜻하는 꽃입니다. 

누가 이팝을 흰 쌀밥에 비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팝나무는 민초들이 매섭게 추운 겨울을 버티면서 남은 양식을 다소비하고 들로 산으로 산나물을 뜯는다든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며 항상 배곪는 봄을 보내 애만 했는습니다.

이 힘들고 어려웠던 계절을 춘궁기라 하며 일명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꽃이 워낙 하얀색이고 수북하여 꼭 밥그릇에 푸짐하게 담긴 흰 쌀밥같이 보여 이밥이 이팝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입니다. 

푸짐한 듯 흰색만 보면 흰 쌀밥으로 여길 정도로 헛것이 보이는 시절을 말해주는 이팝나무가 위양지의 완재정에서는 화려한 봄꽃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번주에 위양지의 이팝나무 꽃은 모두 사그라지겠지만 그래도 녹색 이파리를 머금은 위양지의 수많은 고목과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의 반영은 위양지의 명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밀양여행에서 사계절 밀양 부북면 위양지를 꼭 추천합니다.




위양지 사진은 고물 삼성 갤럭시 노트5로 모두 담았습니다. 주차장과 관람료는 무료


밀양 위양지 이팝나무와 실록의 반영 사진으로 보기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탑골마애불상군. 34점의 불교 문화재가 빼곡한 남산탑골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문화재가 남아있습니다. 

흔히 신라 천 년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주에서 남산을 가지 않고 경주 여행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꼭 경주 남산을 가볼 것을 권합니다. 

그만큼 경주 남산은 다양한 많은 석조 문화재가 눈길을 끕니다. 

그중 유독 눈길이 가는 곳이 경주 남산 탑골마애불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주남산탑곡마애불상군(경주남산탑곡마애조상군)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 69-1



2018/03/30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함월산 기림사. 왕의 길, 경주 함월산 기림사 여행

2018/03/27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전혀 다른 모습인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2018/03/23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서찰을 받아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서출지 여행

2018/03/22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동남산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경주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2017/12/21 - [여행] - (경주여행)경주 월정교와 춘양교지. 반월성에 걸린 경주 월정교

2018/02/01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향교, 경주 교동의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경주향교




경주 남산탑곡마애불상군은 남쪽 면의 삼층석탑으로 배반동 탑곡이라 불리며 남산탑곡마애불상군인 문화재로 불립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불상 조각이 빈틈없이 네 면에 빼곡하게 새겨져 있어 일명 부처바위라 부릅니다. 

하나의 바위에 이리 많은 불상이 새겨진 것은 이곳 말고는 아직 만나보질 못했으며 무려 34점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합니다.



바위의 크기가 높이 약 9m에 넓이가 30m인 화강암으로 정말 빈틈없이 새겨놓은 마애불상을 친견하면서 그 예술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남산탑곡마애불상군 아래에는 현재 옥룡암이란 절이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신인사란 절이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이는 이곳에서 신인사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이를 보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흔적이 이곳 바위에 새겨진 남산탑곡마애불상군입니다.

먼저 덱 계단을 올라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북쪽 면입니다. 

좌우로 9층 탑과 7층 탑을 새겼는데 서로 마주 보고서 있습니다.

 








두 탑의 가운데에는 부처님이 연꽃 위에 앉아 있으며 두 탑 위에는 2명의 천인이 날고 아래에는 사자 두 마리를 새겨 놓았습니다. 

탑의 지붕 끝에 풍탁과 층마다 창문이 새겨져 목탑의 세부적인 표현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 볼 때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이 이 모습과 비슷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신라시대 목탑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동쪽면에는 가운데에다 여래상을 새겼고 좌우로 협시보살을, 그 주위로 6구의 비천상과 승려상, 금강역사상, 나무 등 모두 11구의 불상과 보살상을 배치했습니다.

 여래상과 보살상을 배치한 삼존불상은 연화 문양 대좌에다 머리에서 빛이 뿜어나오는 듯 형상한 광배까지 모두 갖춘 모습입니다.

또한,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게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서쪽 면은 남산탑곡마애불상군에서 가장 좁은 면적입니다. 

서쪽 면은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결가부좌 하며 도를 깨우쳤음을 보여주는 여래조상과 비천상 2구를 새겨 놓았습니다.

 이를 돌아 올라가면 이 바위의 가장 높은 남쪽 면에 닿습니다.





목조건물을 세운 흔적이 발견되는데 이를 추측해보면 감실에 새겨진 삼존불상이 신인사의 주존불로 모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오른 쪽에는 수양 버드나무와 세 분의 부처가 새겨져 있으며 왼쪽에는 2m 정도 높이의 석불이 서 있습니다. 

불두는 분실되었으며 잘록한 허리와 봉긋 솟은 가슴을 보면 여성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오른손이 배를 써 담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삼존불과 마주하며 암반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으며 석등이 있었던 자리 등과 편편하게 다듬어진 평지를 보면 보호 건물이 있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남산탑곡마애불상군의 조각솜씨가 정교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남산탑곡마애불상군은 보호각이 없이 자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자연마모가 상당히 심한 상태라 많은 아쉬움이 드는 문화재입니다. 

8세기의 불상 특징은 입가에만 옅은 미소가 나타나는 데 반해 남산탑곡마애불상군은 눈가에까지 옅은 미소가 표현되는 것을 보면 7세기 후반의 통일신라마애불상군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인사 또한 7세기 중엽에 명랑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신인종의 종파였다 합니다. 보물 제201호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 남사리 북삼층석탑


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을 소개하겠습니다. 

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은 인근에 남사리삼층석탑이 있는 것을 보면 한 쌍의 석탑이 아니었나 추정을 해봅니다. 

이 남사리북삼층석탑은 작은아버님이 계신 영천의 호국원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 1년에 두 번은 꼭 보는 탑이라 고적답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나칠 때마다 항상 어떤 탑인지 궁금했습니다.




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313-3



2018/03/27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전혀 다른 모습인 남산리 동·서 삼층석탑

2018/03/30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함월산 기림사. 왕의 길, 경주 함월산 기림사 여행

2018/03/23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남산리 서출지와 이요당. 서찰을 받아 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서출지 여행

2018/03/22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동남산 염불사지 동·서삼층석탑. 경주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2018/03/20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고운 최치원의 상서장 여행. 상서장에서 최치원의 상소문 시무십여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리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보았습니다. 

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은 주택가에 자리했으며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원래 남사마을에 있던 것을 1973년 경주경찰서 신청사를 완공하면서 기단부를 제외하고 지붕돌 3개를 경찰서에 가져가 정원에 보관했다 합니다.

 




아마 정원에 조경으로 가져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남사리 주민이 계속 반환하여 달라고 요청해 1995년 원래의 자리에 가져와 복원하면서 경주 남사리북삼층석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단층의 기단은 4개의 돌로 짜맞추어 원래 있던 돌과 같은 크기이며 새로 만들었습니다. 

네 모퉁이에 모서리 기둥인 운주를 세웠으며 가운데에는 탱주를 새겼습니다. 

그 위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으며 지붕돌의 밑면은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지금은 원래 탑의 이미지를 온전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탑은 훼손이 심했으나 탑을 복원하면서 부재를 교체하고 남은 돌은 한쪽에 전시 중이며 통일신라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보물로 지정된 남사리 삼층석탑을 찾아가야 겠습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호




(충남여행/공주여행)춘마추갑 마곡사 여행. 태화산 마곡사 여행


춘마추갑의 태화산 마곡사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이제야 블로그 포스트를 합니다. 

봄이면 마곡사라는 수식어처럼 마곡사는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지만 봄이면 더욱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공주 태화산 마곡사 주소: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공주 태화산 마곡사 전화:041-841-6220




마곡사는 640년인 백제 무왕 41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습니다. 

그리고 1172년인 고려 명종 대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였고 범일대사와 도선국사, 각순대사로 이어지면서 보수와 중수를 거쳤습니다.

또한, 조선의 세조는 마곡사에 영산전의 사액을 내렸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마곡사에는 보물 6점과 다수의 유형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습니다. 

보물로는 801호인 대웅보전, 802호인 대광보전, 800호인 영산전, 799호인 마곡사 오층석탑, 270호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과 6권이 각각 269호, 270호에 지정됐습니다.




공주 마곡사 입장료 성인 3천원







이외에도 사천왕문, 해탈문, 청동향로, 괘불, 목패, 세조가 탔다는 연등은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마곡사에서 일주문을 지나면 해탈문이 기다립니다. 

해탈문은 법계로 들어서는 문으로 마곡사의 출입문으로서 속세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기둥 사이를 모두 판장벽으로 막았고 내부에는 금강역사와 보현밀 문수동자을 봉안했으며 겹처마팔작지붕 건물입니다.

1987년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6호입니다.









그다음에 만나는 게 천왕문입니다. 

호법신장인 사천왕상을 모셨으며 마곡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악귀와 잡신을 물리칩니다. 

벌써 보기에도 우락부락한 게 험상궂게 생겼습니다. 

천왕문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이며 겹처마맞배지붕 건물에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2호에 지정했습니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영산전입니다. 

1650년에 중수했다고 하며 고려 시대 목불7구가 남아 있다 합니다. 

다리를 건너면 마곡사의 중심건물인 대광보전과 오층석탑이 나옵니다. 

마곡사의 중심을 잡는 것은 마곡사 오층석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정교한 게 특이하게 생겼으며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대광보전 앞에 딱 버티고 선 게 그만큼 웅장하며 보무도 당당합니다. 

2층 탑의 사면에는 ‘사방불’을 새겼으며 상륜부는 현재 국내 탑에서 하나뿐인 라마식 보탑과 비슷한 모양으로 청동으로 풍마등을 조성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마곡사 오층석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모습의 이력답게 마곡사 오층석탑의 전설 또한 특이해서 이 탑이 나라의 기근을 사흘 동안 막을 수 있다는 전설입니다.

 


대광보전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788년에 중창했으며 특이한 배치로 대광보전 건물의 정면이 남쪽을 보고 있다면 내부에 모신 비로자나 부처님은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있습니다. 

대광보전에는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부처님에게 공양할 삿자리를 짜며 자신의 업장소멸을 빌었다합니다. 

그 후에 앉은뱅이는 다리가 펴져 두 발로 걸어 나왔다는 전설이 있으며, 최근까지도 법당 안에 삿자리가 깔렸었다 합니다. 

대광보전 안에는 세조가 김시습을 만날 때 타고 왔다는 어가도 있습니다.























대광보전 뒤 높은 축대를 오르면 2층 구조로 지어진 대웅보전이 있습니다. 

내부는 통층으로 지어졌습니다. 

특이한 것은 전각 내부에 싸리나무 기둥을 4개 세웠으며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분이 이 싸리나무 기둥을 만지며 돌아 윤이 반질반질했습니다. 

대웅보전은 대웅전과 같은 뜻으로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한데서 나왔습니다. 

1785년 3년간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백밤김구선생이 머물렀다는 백범당이 있습니다. 

김구선생은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여 사형수가 되었으나 탈옥에 성공해 마곡사에 은신하다 잠깐 출가해서 머물렀다 합니다. 

1946년에 해방 이듬해 마곡사를 찾아 응진전 앞에 향나무 한그루를 심었으며 지금은 장성하여 백범 또는 김구나무라 불리고 있습니다.

 




공주 마곡사 여행이었습니다.








(부산여행/부산진구여행)2018 삼광사 연등축제, 삼성 갤럭시 노트5로 찍은 삼광사 연등축제


올해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삼광사에서 연등 축제가 열렸습니다. 

지난 4월29일 점등식을 시작으로 부처님오신날인 5월22일까지 매일 저녁 5만 개의 연등에 불을 밝힙니다. 

이 연등축제를 CNN은 한국에서 꼭 보아야 할곳에 선정할 정도로 밤의 삼광사는 많은 연등에 불야성을 이룰 정도로 장관을 연출합니다. 

전국의 많은 산사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모두 연등을 달지만 이런 대규모의 연등은 그 어떤 사찰에서도 만나기 힘듭니다. 

저 또한 몇 해째 매년 연등축제 관람을 했지만, 그때마다 삼광사 연등의 화려함에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2018년 부처님오신날 삼광사 연등 축제도 예년보다 더욱 화려하고 정교한 연등의 장식에 연등과 같이 온 세상의보이지 않는 곳 까지 부처님의 광명이 비추어 더욱 밝은 세상이 되길 빌었습니다. 

삼성 갤럭시 노트 5 촬영





2018 삼광사 연등축제 삼광사 주소: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54-58

2018 삼광사 연등축제 삼광사 전화:051-808-7111



2018/04/02 - [여행] - (부산여행/부산지구여행)부산시민공원과 부산시민공원역사관 여행, 부산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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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대교 진도타워와 울돌목해양에너지공원  명량대첩 전승지. 진도타워와 명량대첩 전승지 울돌목 여행


진도 여행의 관문인 진도대교를 건너면 먼저 만나는 게 이순신 장군의 3대첩 중 한곳인 명량대첩의 울돌목입니다. 

진도여행에서 가장 먼저 보고 만나야 할 곳이 울돌목입니다. 

울돌목에는 진도를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진도타워와 명량대첩 전승지입니다.




진도타워, 진도타워 전망대 주소: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산 2-80

진도타워, 진도타워 전망대 전화:061-542-0990


2018/04/28 - [여행] - (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 진도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진도 회동리




먼저 진도타워가 있는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진도대교가 가장 잘 보였습니다. 

또한, 진도대교의 야경을 가장 아름답게 본다는 곳이며, 진도대교 전망대라 부릅니다. 

진도타워에서 보면 똑 갊은 진도대교가 두 개 있습니다.

 


지금은 진도대교가 쌍둥이지만 1984년 10월 길이가 484m에 폭 11.7m의 외톨이 대교로 건설했습니다. 

교통량의 증가로 2005년 12월에 제2 진도대교를 건설했으며 진도대교가 가설된 이곳이 울돌목입니다.

 


물살이 워낙 빠르게 빠져나가 이를 보고 바다가 운다고 합니다. 

그 소리가 워낙 거친데 마치 와랑와랑 내 뱉는거 같습니다. 

이 물소리 때문에 바다가 우는 목이라 하여 울돌목이라 부릅니다.

 




불멸의 이순신 장군은 이 울돌목의 지세와 지형, 바다를 이용해서 세계 해전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했던 곳 울돌목. 

울돌목을 보면서 지난번 여행에서보다 더 많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명량대첩 전망대 울돌목의 망금산 진도타워에는 이순신의 전승지를 보여주듯 모든 조형물이 명량대첩과 관계 있습니다.









판옥선 모형이라는 진도타워에는 7층의 전망대부터 명량대첩 승전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이 진도타워전망대에는 입장료가 있습니다. 

천원이며 관람 시간은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해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무패 전승은 가히 하늘이 내린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진도타워전망대에는 올라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강강술래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보름날 서로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며 강강술래를 부르는 전통 민속놀이도 이곳 진도대교가 세워진 망진산 정상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 수군이 수적으로 열세임을 알고 왜적에게 우리 수군의 수가 많은 것을 보이려고 밝은 날 마을의 처녀와 아주머니가 손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왜적의 눈을 속였습니다. 

이 강강술래도 이순신 장군의 전략에서 기인했습니다.

 그 시작이 진도타워의 망진산입니다.

 












그리고 울돌목해양에너지공원 내 명량대첩 전승지로 향했습니다. 

울돌목을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서입니다. 

정유재란 때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과 당당히 맞서 싸워 세계 해전사에 있을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승리했던 울돌목. 울돌목은 오늘도 변함없이 거칠게 그때를 이야기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장군 동상과 전망 덱에서 그때를 생각하며 회상에 잠겼습니다.




 울돌목명량대첩전승지인 울돌목해양에너지공원 주소: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1

울돌목명량대첩전승지인 울돌목해양에너지공원 전화:061-542-0881


















그 다음 날 새벽 진도읍에서 울돌목으로 향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전승지의 해돋이를 담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 날은 흐리지 않아 진도대교와 동상이 잘 보이는 인근 작은 포구에다 삼각대를 설치했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호령하는 듯한 장엄한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 두 주탑인 진도대교를 미숙한 사진 실력이지만 담아 보았습니다.



 진도 진도대교와 이순신장군 해돋이 포인트: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전리 52-1 앞




(전남여행/보성벌교여행)소설 태맥산맥의 벌교 금융조합건물, 남도여관인 보성여관, 벌교홍교 여행


이번에 2박 3일 진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벌교에서 꼬막정식을 먹었습니다. 

벌교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으로 등극한 벌교 꼬막정식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는 외서댁을 겁탈하면서 꼬막 맛에 비유를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태백산맥 남도여관인 보성여관 주소: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640-2

태백산맥 남도여관인 보성여관 전화:061-858-7528




2016/11/10 - [맛집] - (보성맛집/벌교맛집)벌교 거시기 꼬막 식당. 겨울철 별미 꼬막회무침에 반하다. 벌교 거시기 꼬막 식당



그러니까 벌교의 꼬막은 태백산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덕분에 점심시간을 전후해서 유명 꼬막식당에 찾아가면 자리가 없습니다. 

아니 자리가 없는 것은 다행인데 이날도 우리 앞에 23팀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벌교까지 와서 꼬막정식을 먹고 가지 않을 수 없고 해서 일제강점기에 벌교의 본정통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벌교 본정통에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보성여관(소설속의 지명 남도여관)과 벌교 금융 조합건물의 무대가 남아 있습니다.



벌교금융조합건물은 우리가 밥 먹기로 했던 거시기꼬막정식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벌교금융조합앞 주차장에다 주차를 했기에 먼저 벌교금융조합건물을 보았습니다. 

소설에서 보면 송기묵이 금융조합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며 막대한 돈을 긁어모았지만, 그의 최우는 좌익에게 피살되고 맙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꼭 교회 예배당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진짜 일제강점기에는 건물이 웅장해 보였을 듯합니다. 근래에 수리했는지 깨끗한 모습입니다.

 


소설 속에 남도여관(보성여관)으로 등장하는 보성여관은 등록문화재로 132호에 지정했습니다. 

전형적인 일본식 2층 가옥이며 2009년 12월에 17억을 들여 상가였던 곳을 모두 원래의 모습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여 지금은 다시 여관으로 영업 중입니다.





보성여관은 임만수와 토벌대가 남도여관에서 반란세력 진압을 위해 숙식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나옵니다. 

복원이 되어 지금은 벌교에서 꽤 규모 있는 전통 여관 건물로 보였습니다. 

기다린 보람에 맛있는 꼬막정식을 먹었지만, 예전보다 가격이 많이 올라 꼬막정식 가격이 이제 만만찮았습니다.

 








그리고 이곳까지 온 김에 홍교를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벌교를 관통하는 하천에 걸린 세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홍교와 소화다리, 철교이며 홍교는 횡계 다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소화다리와 철교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홍교는 보물 제304호에 지정된 홍예식 다리입니다.



보성벌교 홍교 주소: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보성벌교 홍교 전화:061-850-5204



조선 시대인 1729년(영조5년)년에 조계산 선암사의 초안과 습성 스님이 만들었다합니다. 

불교에서 가장 큰 보시는 월천공덕으로 “다리를 놓아 편안하게 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전체 길이는 27m이며 높이는 약 3m, 폭이 4.5m 쯤 되며 1737년과 1844년에 보수되었으며 1981년에서 1984년까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처 오늘날의 홍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홍교는 국내 무지개식 다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 합니다. 

홍교입구에는 ‘보성벌교 홍교중수비군’이 있습니다. 

모두 다섯 기로 홍교를 보수하면서 고친 내력과 참여자 등을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힘들다 합니다.





(전남여행/진도여행)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 진도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진도 회동리



이번에 진도여행을 하면서 모세의 기적 현상이 일어난다는 진도 회동리를 보고 왔습니다. 

오늘은 바다 갈림 현상인 모세의 기적은 볼 수 없지만 바다 갈라짐이 일어나는 곳을 보며 뽕할머니 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2014년 3월1일과 2일 이틀 동안 진도 여행을 하면서 모세의 기적인 바다 갈라짐 현상을 체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뽕할머니상 모세의 기적 주소: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신비의바닷길 148 앞





당시 이른 새벽이라 아쉬움이 많았지만,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훤한 대낮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찾았던 진도 회동리. 

모세의 기적이란 무엇인가 하면 다 아시겠지만, 유대인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집트군이 추격해오고 홍해에 도착한 유대인은 바다를 보면서 황망해하며 진퇴양난에 빠져 어찌할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때 책임자였던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내려치자 바닷물이 쩍 갈라졌고 그 길을 통해 유대인이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그러자 홍해는 언제 갈라졌느냐 하는 듯 원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를 모세의 기적이라 하며 지금은 자연현상인 밀물과 썰물에 해저의 높은 곳이 수면에 드러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이런 현상이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총 12곳이며 동해보다는 남해와 서해에 대부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동해보다 남해와 서해가 바다 밑의 지형이 복잡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바닷속에 퇴적물이 많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모세의 기적인 바다 갈라짐 현상이 대표적인 곳이 화성 제부도, 여수 사도·소매물, 고흥 우도, 보령 무창포, 변산반도 하섬과 서건도, 실미도 등이며 대표적인 곳이 진도 회동리입니다. 

진동 회동리 모세의 기적인 바다 갈라짐 현상은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라 하여 ‘국가지정 명승 제9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신비의 바닷길로서는 대표적인 곳이 되었습니다. 

왜 이곳에 뽕할머니 상이 서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유대인이 홍해가 갈라져 무사히 물을 건넜다면 회동리는 호랑이와 뽕할머니 전설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반도의 호랑이가 멸종되었다니 아니다니 하면서 말들이 많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한반도의 여러 곳에서 호랑이가 살았나 봅니다.



이곳 진도의 어촌마을인 호동마을에도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을 잡아먹는 등 마을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어느 날 마을 사람은 호랑이를 피해 바다 건너 모도로 모두 피신을 떠났으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을에는 뽕할머니만 남았습니다. 

할머니는 손자와 가족이 보고 싶어 매일 밤을 우리 가족을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바다의 용왕께 빌었습니다.



꿈속에 용왕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 터니 바다를 건너가라”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지난밤의 꿈이 하도 생생해서 모도가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무지개가 걸리듯 바다의 물이 빠지며 땅이 드러났습니다. 

그때 모도에 피난 갔던 마을 사람이 할머니를 찾으러 돌아왔고 할머니는 가족을 만나 바라던 소원을 이루었지만, 가족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뽕할머니의 소원으로 바닷길이 열려 무사히 돌아왔다 하여 호동마을을 회동마을로 바꾸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해마다 바닷길이 열렸고 마을에서는 풍어제와 소원성취의 기원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열리는 진도 바닷길 축제의 기원이 풍어제와 기원제에서 시작되었다고합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약 2.8km 거리에 폭은 40m쯤이며 바닷길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시간은 약 60분입니다. 

올해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2018년 5월 16일~5월19일(4일간) 까지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에서 열립니다. 참고하세요



(김해여행/김해금관가야휴게소)부산외관순환고속도로 김해금관가야휴게소에서 휴식을...


내가 여행 포스팅을 많이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포스팅을 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포스팅할 휴게소는 최근 새롭게 개통한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딱 하나뿐인 ‘김해금관가야휴게소’입니다. 

부산과 가까워 벌써 여러 번 이곳을 지나쳤습니다.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김해금관가야휴게소 주소: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월촌리 765





그런데 항상 밤에만 지나다니다 보니까 화려한 불빛과 함께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고 어떤 곳인가 싶어 궁금증도 발동하고 해서 꼭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예, 이번에 또다시 이곳을 지나게 되어 궁금증을 풀려고 찾았습니다.



김해금관가야휴게소가 신식휴게소라 그런지 깔끔하고 인테리어가 한마디로 끝내줍니다. 

그래서 볼거리도 정말 많고 해서 잘 들어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일단 밤 야경은 한마디로 Good, 낙동강과 함께 부산 금정산 쪽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한마디로 야경이 끝내줍니다.



그리고 부산에서는 약 8km쯤 되는 금정산 터널을 통과하고 낙동강에 걸린 긴 다리인 낙동강대교를 건너면 바로 김해금관가야휴게소입니다. 

김해에서는 대동요금소 인근의 대감분기점에서 부산 방면으로 올리면 곧 만나는 휴게소가 김해금관가야휴게소입니다.

 




여기서 낙동강대교를 건너 금정산 터널을 통과하면 부산 요금소가 나옵니다. 

엄청나게 빠른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진영휴게소에서 대부분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김해금관가야휴게소를 보겠습니다. 

일단 김해금관가야휴게소 규모가 빵빵하고 큰 게 시원합니다. 

넓이는 52,100㎡이지만 감이 잘 안 와서 쉬운 평당으로 계산하면 15, 760평입니다.





여기에 주차시설인 소형차가 304대, 대형차량 46대, 장애우 차량 6대를 포함해서 총 356대가 동시 주차 가능해서 넉넉한 주차공간이라 피곤한 몸이 쉬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며 환경입니다. 

이번에 보니까 낙동강 강둑 방향으로 내려가는 덱 계단도 보였는데 확실하게 아직 확인은 못 했습니다.



김해는 가야국이며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됩니다. 

그래서 김해금관가야휴게소는 김해의 역사를 부각하면서 김수로왕과 허왕후를 모티브로 한 상징물 영상물이 있습니다. 

화장실 입구 벽면의 대형 LED 화면과 투명 미디어 아트를 설치해서 한층 더 김해 금관가야문화를 보고 이해하고 접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여튼 다른 고속도로휴게소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많은 최첨단 디지털을 활용한 게 김해금관가야휴게소의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2층은 전망대라는데 올라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1층에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더 잘 보일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는 포토존과 버스킹의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무대가 있다 합니다.


 






‘디지털 포트레이트’라 해서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듯이 화면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나게 하는 그런 곳도 있어 많은 추억도 만들어 줍니다.

 여기는 재미있을 듯합니다. 

식당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특화된 메뉴인 ‘수로왕갈비탕’, ‘가야시레기추어탕’, ‘가야튀김우동’과 ‘가락어묵우동’ 등이 있습니다. 

다음에 지역맛집에 먹지 않고 꼭 수로왕갈비탕을 먹고 ㅋㅋ 이수로왕이 한번 되어야겠습니다.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상에 있는 김해금관가야휴게소는 재미삼아 찾아도 충분한 볼거리와 여행거리를 제공해줄 것 같습니다. 



 뒤에 방문한 김해금관가야휴게소에서 디지털포토레이트로 거울을 보고 한작품 만들었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요리 사진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영천·경산·청도여행)영천 구지리, 경산 반곡지, 청도 유등리 복사꽃마을 삼색 여행


영남지역에는 복사꽃으로 유명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복사꽃은 꿀벌이 수정하고 나면 무더운 여름에 맛있는 과일인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립니다. 

천도복숭아의 품종은 따로 있지만 복숭아를 흔히 천도라 합니다. 

하늘의 신선이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이름에서 부터 벌써 존귀한 과일 느낌이 듭니다.





영천 복사꽃마을 구지리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대청면 구지리 561-5




2018/04/19 - [여행] -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읍성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청도 석빙고 여행

2018/03/30 - [여행] - (경북여행/경주여행)함월산 기림사. 왕의 길, 경주 함월산 기림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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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은 영남지방에서는 귀하지 않은 그만큼 흔한 꽃으로 여러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복숭아로 유명한 곳이 어디인지 한번 보면 부산과 가까운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와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와 영덕군도 있습니다.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여름철 이 지역의 국도를 지나면 도롯가에 복숭아를 모두 내다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모두 복사꽃 마을로 불리며 이른 봄이면 복사꽃 촬영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부산과 가까운 영천 구지리와 경산 반곡지, 청도 유등리에서 복사꽃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가장 편한 노선으로 복사꽃 여행 경로를 선택했습니다. 

영천 구지리 복사꽃 마을을 먼저 갔다가 되돌아 나와 경산 반곡지를 거쳐 25번 국도의 남성현 터널을 빠져나와 청도 화양읍 유등리에서 갈무리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녁은 청도에서 유명한 청도 추어탕을 먹기로 했습니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산 나들목을 나와 35번 국도의 언양 교차로에서 24번 도로로 바꿔 타고 밀양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석남사 못미처 덕현 교차로에서 내려 가지산 온천을 지나고 운문령을 타 넘으면 경상북도청도 땅입니다. 

운문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운문댐을 지나면 대천 삼거리입니다. 

농촌에는 벌써 봄기운이 완연해서 그런지 논에 나와 모내기 준비를 하는 농부가 많이 보였습니다. 

농부의 부지런함을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운문댐 전망대를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 919번 지방도인 운용로를 타고 경산시 용성면 소재지에 도착해서 용대로를 탔습니다. 

곧 고죽교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었습니다. 

도로 옆 오른쪽에 복사꽃이 한 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다가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복사꽃만 피었다면 지나쳤지만, 복사꽃 아래에는 노란 민들레 꽃이 함께 피어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이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면 많이 아쉬워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구지리 복사꽃 마을로 향했습니다. 

외촌 저수지를 지나고 곧 금박산을 잇는 고개를 넘었습니다.




갑자기 선분홍색 물감을 뿌린 듯 온 구릉지를 복사꽃이 붉게 물들였습니다. 

KTX 굴다리를 지나면 왼쪽에 구지신저수지를 끼고 온통 복사꽃이 활짝핀 복숭아나무였습니다. 

와!!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저도 주차하고 복사꽃에다 KTX를 넣는 사진을 한번 담아보려고 삼각대를 펼쳤습니다.



마침 한 분이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진 아래쪽에다 복사꽃을 크게 넣고 KTX를 넣는 촬영 포인트였습니다. 

이곳에서 사진을 담고 한 모퉁이를 도니까 바로 구지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을 빙 둘러 모두 복숭아나무이며 지천으로 복사꽃이 피었습니다. 

이곳에서 한참동안 작품(?) 활동을 벌였습니다.



나무 덩치가 크고 오래된 복숭아나무도 보였습니다. 

고목을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며 마치 용이 하늘을 타고 오르는 듯 한 복숭아나무는 사군자의 매화가 부럽지 않은 자태였습니다. 

복사꽃마을·복숭아마을 안내판을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로 향했습니다. 

자인면을 들어서면 삼성현의 고장을 알리는 안내판이 곳곳에서 반깁니다.

 





경산 복사꽃 촬영지 반곡지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반곡지까지는 대략 20km 거리에 30분쯤 걸렸습니다. 

반곡지 주차장에는 주차할 곳이 없이 차 꽉 찼습니다. 

다행히 나오는 차를 보고 그 자리에 주차할 수 있었습니다. 

복사꽃으로 유명한 반곡지의 명소는 익히 알려졌습니다. 

2011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에 지정되었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반곡지를 찾고 있습니다. 

반곡지는 복사꽃과 수령이 300년이 넘었다는 버드나무의  반영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그림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합니다.



이 반곡지의 광경을 담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구지리 복사꽃 마을의 복사꽃은 한창 맵시를 뽐내고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반곡지의 복사꽃은 모두 꽃잎이 떨어져 끝물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녹색의 이파리로 한창 물이 오른 버드나무를 보면서 복사꽃의 아쉬움을 달랠수 있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바람이 그리 부는지 반곡지에는 잔물결이 많이 일어 반곡지의 1경인 반영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둘레길을 따라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을 포기하고 반영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어보였습니다.

어쩔수 없이 반곡지 반영을 포기하고 마지막 복사꽃 마을인 청도 화양면 유등리로 향했습니다. 

상대온천을 뒤로하고 고갯길을 돌아 남천면 금곡리에서 25번 국도로 차를 올렸습니다.

 


잘 닦여진 국도는 금방 남성현 터널을 지나고 남성현 교차로에서 내려 용암온천을 지나 유등리 노산못에 닿았습니다. 

20km 거리에 25분쯤 걸렸습니다. 

이곳은 반곡지와는 다르게 온 마을에 복사꽃이 선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노산지 주위에 주차하고 저수지를 한 바퀴돌아 보았습니다.




청도 유등리 복사꽃마을 주소:경산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마땅하게 그림이 될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찾아보았습니다. 

사진 포인트는 야산에 올라가 복사꽃을 크게 넣고 마을 쪽을 보고 사진을 담는다면 그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포기하고 눈으로 그저 복사꽃의 아름다움만 질리도록 보았습니다.





이날 미세먼지와 황사가 정말 심했습니다. 

폰에 미세먼지로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문자가 계속 날라 왔습니다. 

그래도 뿌연 날씨 속에 영천·경산·청도 복사꽃마을 삼색 여행을 무사히 마치며 차를 청도역으로 달렸습니다. 

청도 추어탕으로 목구멍의 미세먼지를 좀 씻어내려고요 


(경북여행/청도여행)청도읍성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청도 석빙고 여행


청도를 거치면서 잠시 들러 청도 읍성과 청도석빙고를 보고 왔습니다. 

청도읍성은 현재 일부 복원된 상태이며 석빙고는 허물어진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석빙고는 남북한을 합해 총 7곳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한에 6개의 석빙고가 있으며 그 대부분이 경주와 청도, 현풍, 창녕읍과 영산에 각각 1개씩 총 5개와 안동에 1개뿐인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청도읍성과 청도석빙고 주소: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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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석빙고는 남한에서 모두 영남권에만 모두 몰려 있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먼저 청도읍성 주차장에다 주차하였습니다. 

청도군을 다스렸던 현감들의 선정비가 수두룩한 게 많은 선정비가 청도군의 오랜 역사를 대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청도읍성은 경상북도청도군 화양읍 교촌리·동상리·동천리에 걸쳐 쌓은 토성과 석성을 혼합해 쌓은 성입니다.

 




남고북저의 읍성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다 하며 산성과 평지성을 혼합한 평산성으로 성벽은 자연석 협축벽입니다. 

북쪽과 서쪽, 동쪽에 성문을 내었으며 읍성의 높이는 1.65m에 길이는 약 1,8km, 성벽 위를 덧쌓은 여첩은 600측이라 합니다. 

1590년(선조25)에 청도읍성을 석축형태로 고쳐 쌓으면서 성벽을 더 높였습니다.



때마침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왜적의 총공세에 동·서·북·문은 불타버렸고 읍성은 허물어졌습니다. 

다시 청도읍성 문루와 성벽을 재정비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나 일제강점기에 읍성을 철거하는 정책을 벌여 성벽과 문루를 모두 뜯어 파괴했습니다. 

그때 장관청, 아전청, 회계소, 동헌, 객사, 군기고와 3개의 누각이 철거됐습니다.





청도 선정비군은 서상리 동천리 남성현 등에 흩어져 있던 것을 2008년 청도읍성 동문지 주변에다 옮겼습니다. 

선정비는 1675년에서 1904년까지 건립된 비석으로 모두 30여 기입니다. 

청도석빙고는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규모도 크다 합니다. 

또한, 그 모습이 가장 적나라합니다.





청도석빙고 이외의 석빙고는 모두 복원과정을 거쳐 큰 고분 같은 모습이지만 청도석빙고는 지붕은 뼈대만 남았고 벽체는 돌을 촘촘히 쌓은 석빙고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했던 청도석빙고는 화양읍 동천리 청도읍성 동문 부근에 자리했습니다.



 






당시 동문으로 살짝 나와서 얼음을 빼갔을듯합니다. 

석빙고 앞에는 석빙고를 축조하면서 함께 세운 비석이 유구한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줍니다. 

비석에는 3개월가량 공사를 해서 완성했으며 건립날짜와 석빙고 건립에 관계한 이름까지 나와 있는 그야말로 창녕석빙고의 출생기록부입니다.







창녕석빙고 비석에는 “조선 1713년(숙종39년) 2월11일에 진사 박상고에 의해 공사를 시작해서 그해 5월5일 공사가 마무리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도석빙고의 빙고는 길이가 14.75m, 넓이 5m, 홍예 높이 4.4m에 화강암을 사용했습니다.









서쪽에다 출입구를 내고 동·서 방향이며 천장은 4개의 홍예가 걸쳐져 있습니다. 

바닥은 직사각형에 안쪽으로 경사지게 했고 흙을 다진 다음 그 위에다 돌을 깔았으며 가운데에는 배수구를 내었습니다. 

10개의 돌을 어긋나게 짜맞추어 4개의 홍예를 만들었고 그 위에는 장방형의 돌을 걸쳐 천장을 덮는 형태였으나 지금은 돌은 모두 깨어져 몇 개만 남아 있습니다. 

청도 석빙고는 1963년 1월 보물 제323호에 지정했습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문화공원. 동요 산토끼를 상징하는 토끼 조형물 창녕문화공원 여행


창녕에서 두 번째 찾았던 공원은 창녕군을 대표하는 창녕문화공원입니다. 

창녕문화공원은 창녕군청 뒤의 야트막은 산봉우리와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을 푹 담근 명덕저수지, 창녕향교를 아우르는 7만 평의 넓이로 보는 재미와 걷는 재미가 쏠쏠한 군민공원이었습니다.





창녕문화공원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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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문화공원을 구성하는 시설물은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주는 분수대와 화왕산과 창녕 읍내의 빼어난 전망을 선사하는 팔각정, 산새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걷는 산책로, 108개 번뇌를 씻어준다는 108계단,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는 놀이터 등이 있으며 공원과 연계된 수변 생태공원인 명덕저수지가 있습니다.

 


휴식과 산책을 동시에 겸할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다양한 수생식물을 심어 어린이의 자연학습장으로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또한, 공원 인근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12호인 창녕향교와 교동 고분군까지 갖추고 있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인양사를 창건하면서 세웠다는 인양사 조성비를 보고 찾았던 창녕문화공원은 다른 공원과 다르게 창녕의 지명과 문화라는 이름이 붙어 무엇인가 특별한 공원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창녕은 동요 산토끼의 고장으로 ‘산토끼노래동산’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어린이는 물론이고 청장년층까지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로 시작하는 산토끼 동요는 모르는 분이 없는 국민동요입니다.





이 산토끼 노랫말은 1928년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안리 당시 이방보통학교에 재직했던 이일래(1903~1979) 선생이 지었습니다.

학교 뒷산 고장산을 올랐다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산토끼를 보고서 생각한 노랫말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나라 잃은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나라와 억압에 빼앗겨버린 자유를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동요라 합니다.


창녕문화공원



저도 창녕문화공원의 산토끼 조형물을 만나면서 새삼스럽게 산토끼의 노랫말에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녕문화공원의 탄생은 바로 이 노랫말인 ‘산토끼’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시설 등이 참 잘되어 있어 가족공원으로서도 최고였습니다.





108계단을 오르다가 왼쪽의 덱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키큰 나무가 서 있는 오솔길을 오르면 어느덧 봉우리에 팔각정 전망대에 닿습니다.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창녕읍내를 세세하게 내려다보는 그야말로 일급조망이 펼쳐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날 날씨가 흐려서 많이 아쉬웠지만 맑은 날이면 전망은 끝내줄 듯합니다.





 재미있게 산토끼를 풍자화한 조형물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지어도 보았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명덕저수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다가 보니까 사직단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싶어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합니다. 

그런 곳이라 하면 아주 신성시했던 곳 같았습니다.











창녕현 사직단의 기록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등장하며 『여지도서』, 『경상읍지』, 『조선후기지방지도』, 『교남지』 등의 문헌에 나타나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현의 서쪽 1리에 위치한다고 하며 지금의 사직단과 위치나 방향 등 모든 게 일치하며 창녕 사직단은 16세기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창녕사직단







창녕은 6·25 한국동란의 최고 격전지였던 낙동강 방어선 중 한 곳인 박진 나루터와 오항 나루터, 남지 등을 방어했던 미 제24사단이 북괴의 제4사단을 맞아 많은 병력을 희생하면서 지켜내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세워진 ‘6.25 월남 참전기념비’를 보면서 이분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과 6·25 참전 용사로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의가사 제대를 하셨던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했습니다.

월남 참전비를 보면서 이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습니다.

 








이제 명덕저수지입니다. 생태공원답게 수변공원을 따라 덱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참 반영이 아름다웠습니다. 누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저 아름다운 반영을 깨트리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못은 고요했습니다. 

연못을 돌아 창녕향교로 향했습니다.

 



창녕명덕저수지 명덕수변공원








창녕향교

창녕향교는 외삼문이 굳게 닫혀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으며 까치발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창녕 지역 유림이 건립했으며 공자의 위폐 봉안과 외삼문과 동·서재, 강학소인 명륜당, 동·서무, 제향 영역인 대성전으로 구성했습니다. 

창녕향교는 명륜당 뒤로 제향 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특이한 점은 석축을 쌓은 석재 중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사찰의 기단, 면석 등이 섞여 있는데 이는 폐사된 인양사의 부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높게 석축을 쌓고 명륜당을 세웠으며 앞면5칸, 옆면 2칸의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입니다. 

명륜당의 둥근 나무 기둥을 받치는 둥근 돌기둥의 주춧돌에 명륜당은 더욱 웅장하며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창녕향교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원년인 1650년에 한 차례 중건되었고 여러번 중수가 있었다 합니다. 

다시 명덕저수지로 돌아와 수변공원을 가로지르는 덱 길을 걸으면서 창녕문화공원 여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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